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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58화 (157/218)
  • 158화. 대신관의 아들

    “성녀라니... 그렇다면 그 불투명한 것은 역시...”

    “지금 따님께서는 가지고 계시는 마력이 너무도 방대해서 스스로 그 마력을 다루실 줄 모르십니다. 신체에 불균형하니 잡힌 마력이 몸에서 세어 나가게 되는 이유지요. 수많은 영혼들이 그 세어 나온 성녀의 마력을 발견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세린과 제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신관은 그런 부부를 향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태초의 마력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우선 실체를 잠시라도 찾을 수 있죠. 그 실체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으며, 본래 가지고 있었던 능력도 발현할 수 있습니다. 몰론 성녀에게서 수거했던 마력만큼 만이지요.”

    “그럼 어제는....”

    “영혼들이 본래 가지는 한이 깊으면 깊을수록 삶에 대한 욕구가 짙어지기 마련이지요. 따님이 흘리신 마력을 통해 제 삶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영혼들이 달려든 것이 어제의 상황일 것입니다.”

    대신관의 말에 제이가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마력을 다룰 수 없었던 어린 아기였을 적부터 위험했을 일이 아닙니까. 앤젤라는 지금까지 잘 지내왔습니다.”

    “따님의 곁에 항시 강한 영혼이 붙어 있었습니다. 다른 영혼들이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강인한 영혼이요. 몰론 지금도 곁에 있습니다.”

    “!!!”

    “제 능력이 부족한 탓에 외모나 모습이 보이지는 않으나 따님께 해가 되는 영혼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지요.”

    대신관의 말에 세린은 입술을 꾹 깨물다가 이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그 영혼을 믿을 수도 없어요. 믿는다고 해도 그 영혼이 늘 앤젤라의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전 딸의 안전이 중요해서 교주님을 뵈러 온 거예요.”

    “.... 마음을 압니다.”

    대신관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따님을 저희 신전에서 마력을 연습하도록 해주심은 어떠신가요. 안정적으로 마력을 다루시고 신체가 자리를 잡을 때 까지 말입니다.”

    “네???”

    당황스런 말에 제이와 세린의 눈이 커졌다.

    경악하는 두 사람의 눈을 다정히 바라보며 대신관이 말했다.

    “아예 신전으로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이틀에 한 번, 아니면 삼 일에 한 번씩 신전에 방문해서 저와 함께 마력을 다루시는 연습을 하시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 태초의 마력을 인지하고 연습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

    “인지하지 못했기에 무의식적으로 마력을 흘렸던 것이었고 그 흘린 마력으로 그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신관의 말을 경청하며 세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몸이 약한 제 딸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너무도 서글펐다.

    항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앞으로도 어제와 같은 일들이 또 벌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또 한 번 그녀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안전해지려면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

    세린의 마음이 굳어갈 무렵, 세쌍둥이들은 데미언을 따라 방을 옮기고 있었다.

    하얀색의 여신 조각상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주변을 장식한 기둥마저도 우아했다.

    앤젤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에드와 레기의 손을 잡고 열심히 주변을 구경했다.

    “이쪽입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십시오.”

    “우와아...”

    누추하다고 표현한 방은 무척이나 환했고 깔끔했다.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하얀 티 테이블에 자리한 세쌍둥이들에게 데미언이 차와 함께 간식을 건네주었다.

    그의 손에 착용된 하얀 장갑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던 앤젤라는 데미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예뻐요!”

    “... 네?”

    “오빠 예뻐요!”

    “...!!!”

    순수한 칭찬과 온전한 호의에 데미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절로 눈을 굴리며 당황한 데미언은 이내 다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 어색한 거리감을 느낀 레기는 데미언에게 “잘 먹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한 후 앤젤라에게 과자를 쥐여 주었다.

    “앤젤라! 이거 먹어봐. 쿠키 먹고 싶었다며?”

    “와아!! 웅!!”

    “맛이 어때?”

    “맛있어!”

    레기와 에드의 질문에 앤젤라의 표정이 환해졌다.

    데미언은 그런 세쌍둥이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조금씩 부드러운 웃음을 입가에 담았다.

    냉기가 느껴진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자 눈이 부실만큼 빛이 났다.

    그런 제 모습에 화들짝 놀란 데미언은 이내 입가를 굳히며 눈을 내렸다.

    시야에 담긴 제 새하얀 장갑을 어색하게 정돈하며 쌍둥이들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그러던 그때, 거리를 벌리려는 데미언을 향해 앤젤라가 다정히 물었다.

    “오빠는 이름이 뭐에요?”

    “...... 아.”

    약간 당황스러운 마음을 품은 백금색의 눈동자를 굴려 아름다운 연두색 눈동자와 마주한 데미언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데미언 하트만입니다.”

    “그렇구나...! 난 앤젤라에요. 아빠가 내가 천사님 같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래요.”

    “네... 잘 어울리는 이름 같습니다.”

    데미언의 눈가에 조금 수긍이 서렸다.

    그런 그를 향해 레기가 입을 열었다.

    “저는 레기 스페라도입니다. 외숙... 아니, 황후마마께서 강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지어주셨습니다.”

    “어, 에드 스페라도에요! 외삼촌이 행복하게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아...”

    즐거운 듯 보이는 세쌍둥이들의 자기소개는 모두 개성적이었다.

    데미언은 그런 쌍둥이들을 난처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입술을 열어 자신을 다시 소개했다.

    “제 이름은 데미언 하트만입니다. 아버지께서... 늘 변치 않는 사람이 되라 바라시며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데미언의 소개에 쌍둥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묵묵히 그 부담스런 시선을 견디던 데미언은 다정히 그들의 앞으로 과자를 밀어주며 말했다.

    “쿠키가 식기 전에 드셔야 맛이 좋습니다. 아버지와 대공작님, 대공마님께서는 조금 더 있으셔야 오실 테니 천천히 드세요.”

    “와아!”

    “앤젤라, 쿠키만 많이 먹으면 목이 말라. 이거랑 같이 먹어.”

    “웅!! 오빠도 얼른 먹어.”

    “오빠 먹고 있어. 앤젤라도 많이 먹어.”

    다정한 쌍둥이들의 대화에 데미언의 시선이 저절로 그들을 향했다.

    저 사랑스런 모습과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에 대해 쉽게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넘치게 받은 사랑과 넘치게 건넸을 애정이 가득 찬 집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데미언은 제 손을 마주 잡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사랑이 가득한 환경이 부러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아버지와 어머니께 충분히 사랑을 받아왔고 충분히 애정을 느꼈으니까.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하나의 비밀은 그의 숨을 옥죄고 있었다.

    데미언은 차츰 떨리는 눈동자를 꾹 감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한참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엄마!!”

    “어머니!”

    “아버지다!”

    세린과 제이가 대신관과 함께 부드럽게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세쌍둥이는 무척이나 밝아진 얼굴로 서둘러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제이는 제 품에 안기는 에드를 부드럽게 안아 올렸고 세린에게 달려가던 앤젤라도 안아 올렸다.

    “아빠?”

    “엄마가 힘들단다. 오늘은 아빠를 먼저 안아주렴.”

    “헤헤 아빠도 좋아요!”

    제이의 부드러운 말에 앤젤라가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세린은 그런 앤젤라를 다정히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앤젤라.”

    “웅??”

    “앤젤라는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

    “배워야 할 거요??”

    “응. 레기 오빠가 검을 배우고 에드 오빠가 마법을 배우듯이 앤젤라도 배워야 할 것이 생겼어.”

    “와아!!”

    제 오빠들과의 공통점이 생긴 것 같아 신이 난 앤젤라의 눈이 밝게 빛났다.

    세린은 그런 앤젤라를 다정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앤젤라가 배워야할 것들에 대해 알려줄 선생님이시란다. 인사하렴.”

    “???”

    세린의 부드러운 손짓에 그에 맞춰 시선을 돌린 앤젤라는 아까 마주본 대신관을 발견했다.

    눈이 부실만큼 밝은 백금발의 머리카락과 머리카락만큼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

    입가에 다정한 미소를 한 것 품고 있는 그의 모습에 앤젤라의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

    “선생님?”

    “제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해보지를 못해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선을 다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앤젤라님.”

    “선생님!! 앤젤라 선생님 좋아요!”

    “.....”

    제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지만 대신관은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앤젤라님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어 좋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쑥스러울 때만 짓는 앤젤라의 홍조가 가득한 미소에 제이의 표정이 완전히 딱딱하게 굳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저희는...”

    “저야말로 감사하...”

    대신관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제이는 다급하다고 느껴질 만큼 빠르게 밖으로 사라졌다.

    누가 봐도 그와 앤젤라의 거리를 떨어트리기 위함인지라 세린은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곤 대신관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교주님이 직접 가르쳐주신다고 하시니... 마음이 놓여요.”

    “훌륭하지 못한 스승일지도 모릅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앤젤라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아요. 감사합니다.”

    “과분한 인사지만 받아드리겠습니다.”

    세린과의 인사가 끝나고 대공가족은 마차를 타고 대공저로 돌아갔고 신전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데미언은 그런 마차를 바라보다가 이내 대신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 가르치신다니 무엇을 가르치시는 겁니까.”

    “성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시란다.”

    “...!”

    데미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대신관은 그런 아들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조금 속상한 눈동자를 하고 말했다.

    “그 능력과 태초의 마력을 다룰 줄 몰라 항시 위험한 가시밭길에 서 있던 분이시니... 어찌 외면을 하겠느냐.”

    “......”

    대신관의 말을 듣고 있던 데미언의 작은 등에 짙은 고통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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