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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53화 (152/218)
  • 153화. 곁에

    세린과 제이가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급하게 일어난 레기는 아직도 자고 있는 동생들의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주며 정돈하느라 바빴다.

    “읏샤!”

    고사리마냥 작은 손으로 동생들의 잠자리를 정돈하는 모습이 너무도 앙증맞았다. 완벽하게 정리된 이부자리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동생들이 깰까봐 조용히 문을 열어 밖으로 향했다. 아리엘은 그 기특한 모습을 눈에 담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착하기도 하지.’

    활발한 첫째의 기상과 비교되는 둘째와 셋째의 늦잠은 평온했다. 그러던 중 깊이 잠든 앤젤라의 손에서 마력이 무의식적으로 세어 나왔고 그 모습에 아리엘이 미간을 좁혔다.

    ‘또 또...’

    그녀의 마력이 더 세어 나오지 않도록 아리엘이 앤젤라의 마력을 수거하였고 이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언제쯤 네 스스로 마력을 다룰 수 있으려나.’

    이렇게 마력을 흘리고 다니면 얼마나 위험한지 그녀는 모를 것이 분명했다. 아리엘의 눈이 창문가를 흘긋 바라보자 우글거리는 수많은 영혼들이 존재하였고 아리엘은 그들을 향해 미간을 좁히며 살벌하게 말했다.

    ‘저리 안가?’

    나직한 그 목소리에 영혼들이 기겁을 하며 흩어졌다. 적은 양의 마력으로도 저리 몰려드는데 자신이 곁에 없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었다.

    ‘얼른 커라. 내가 쉴 수 있게.’

    그렇다. 그녀의 빠른 성장만이 그녀 스스로가 안전해지는 길이었다.

    “움마.....”

    ‘그래그래, 엄마 곧 오신단다.’

    “우우....”

    ‘귀엽기는...’ 웅얼거리는 작은 입술이 참 귀여웠다. 아리엘의 마음이 녹아내릴 만큼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철컥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리엘은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을 깨우러온 듯한 그 사람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올곧게 아이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 인영이 너무도 반갑기도 너무도 애틋하기도 해서 아리엘의 입술이 빳빳하게 굳어갔다.

    그래, 앤젤라와 에드의 할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단 한 사람.

    에드윅이었다.

    에드윅은 달콤한 잠에 빠진 아이들을 다정히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에드, 앤젤라 일어나보렴.”

    “웅우...”

    “밥을 먹고 엄마와 아빠를 맞이해야지.”

    “엄마아...?”

    “그래, 엄마.”

    에드윅의 부드러운 말에 부스스 눈을 뜬 에드와 앤젤라의 표정이 환해졌다.

    “엄마가 와요??”

    “아빠도요??”

    “그래, 곧 오실 시간이란다. 어서 밥을 먹고 준비해야지.”

    “와아!!!”

    아이들의 환한 음성과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방을 울렸다. 아리엘은 그런 아이들을 다정히 바라보는 에드윅을 관찰하며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조용히 아리엘의 가슴을 죄여왔다.

    내가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알고 싶지 않아.’

    그래, 어떤 표정을 할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알고 싶지 않았다.

    “뛰면 넘어질지도 모른단다. 자, 할아버지 손을 잡거라.”

    “아하하하!”

    “할아버지 에드도 잡아주세요!”

    “당연하지. 이리오렴.”

    점점 멀어지는 다정한 소음을 멍하니 바라본 아리엘은 아주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앤젤라와 너무 멀리 떨어지면 그녀가 위험하기에.

    ‘앤젤라를 위해서야...’

    그래, 그 아이를 위해서.

    “앤젤라, 에드. 레기 오빠는 벌써 씻고 있더구나.”

    “우와 오빠 빠르다...”

    “형은 빨리 일어났나봐...”

    “하하하.”

    여전히 넓은 등과 부드러운 미소.

    나직한 목소리.

    그 사무치게 그리운 뒷모습을 멍하니 따라 나서며 아리엘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할아버지! 앤젤라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요!”

    “같은 마음이로구나. 할아버지도 우리 앤젤라와 에드, 레기 모두를 좋아한단다.”

    “엄마도요??”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빠도요?”

    “.....”

    잠깐의 정적이 길게 느껴질 찰나에 에드윅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억지스러운 대답이었지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앤젤라의 미소가 환해졌다. 서둘러 제 아빠와 엄마가 보고픈 마음에 그녀의 기분이 붕 떠올랐다.

    마구 달리는 작은 다리와 손 사이로 마력이 조금씩 흘러 넘쳤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말이다. 아리엘은 그런 앤젤라의 기색에 눈을 찌푸리며 그 마력들을 서둘러 수거했다.

    ‘조심해야 한다니까 정말....!’

    아리엘은 수거한 마력을 제 혼에 담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꺼번에 몰려든 영혼들의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죽겠네...’

    아 이미 죽었지 참.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피식 웃은 이리엘은 제 근처로는 다가오지 못하는 작은 영혼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한이 맺혀있기에 이리 필사적인 것인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 따위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저리가 훠이! 훠이!’

    제 손짓 한 번에 허겁지겁 도망가는 영혼들이 안쓰러웠다.

    저런 영혼들을 구원해주는 것이 신관들의 의무가 아니던가.

    서둘러 그들을 도왔으면 하는 마음에 아리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

    “우와 아버지!!!”

    “어머니!!”

    마차에서 내리는 세린과 제이를 향해 세 아이들이 몸을 던졌다. 세린은 기겁을 한 얼굴로 앤젤라와 에드를 받아 안았고 제이는 세린처럼 놀란 얼굴로 레기를 안아 올렸다.

    “얘들아 뛰면 위험해!”

    “엄마 보고 싶었어여!!”

    “그랬어? 우리 예쁜이들. 으이그 엄마도 보고 싶었어.”

    “아하하하!”

    앤젤라의 애교에 사르르 눈을 접으며 웃은 세린이 부드럽게 에드와 함께 앤젤라를 끌어안으며 그들의 볼에 얼굴을 비볐다.

    앤젤라와 에드의 웃음이 청량하게 황성의 앞에서 울렸고 제이는 그런 세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레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그래, 레기. 엄마, 아빠 없는 동안 동생들을 잘 돌봐주었니?”

    “네!! 레기가 에드랑 앤젤라 이불도 덮어주고, 책도 읽어주고, 손도 잡아줬어요!”

    “훌륭하구나. 덕분에 마음이 놓였단다.”

    “헤헤헤.”

    제이의 부드러운 칭찬에 레기의 두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옅은 홍조의 기색이 너무도 귀여워서 제이는 그런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열렬한 재회를 지켜보던 에드윅의 표정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 떨어져있는 짧은 시간동안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이 귀엽기도 애틋하기도 했다.

    “바람이 차가워질 텐데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라도 나누거라.”

    “아빠!”

    에드윅의 제안에 세린이 커진 눈망울로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그를 꽉 껴안으며 밝게 웃음을 지었다.

    “정말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아빠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여행을 다녀올 수 없었을 거예요.”

    “네가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제가 안 되었어요. 얼른 이리 오세요, 드리고 싶은 선물이 많아요.”

    “선물?”

    “빨리요!”

    세린의 손길에 에드윅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다정한 한 가정 속에서 아름답게 웃는 세린이 그의 가슴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저절로 옛날... 참으로 행복하다고 여겼던 그 시간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였다.

    ‘엄마! 엄마!’

    앙증맞던 세린의 애탄 목소리.

    ‘그래, 엄마 여깄지 세린.’

    사무치게 그리운 아리엘의 미소.

    ‘레인 오빠도 여깄어!’

    ‘테오 오라버니는 여기 있단다 세린.’

    ‘형아, 나도 세린이 보고 싶어여, 안아 주세여.’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귀여웠던 그 시절의 아들들.

    ‘아빠가 안아주마. 이리 오거라 트레일.’

    ‘하하하하!’

    ‘당신! 조심해요. 트레일 다칠라!’

    ‘내가 그 정도로 연약해 보인다면 곤란한데...’

    ‘무슨 소리래요 정말!’

    ‘하하하!’

    그 작은 아이들을 안아주며 밝게 웃음 짓는 제 자신.

    그래,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이 그 때였다. 다른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인생의 행복이 몰려있던 그 시간.

    그곳에는 당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 할 수 있던 것이었다.

    잠시 추억에 잠긴 에드윅의 눈가가 짙어졌다.

    ‘에드윅.’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생생하게 그의 귀를 자극했다.

    ‘에드윅.’

    오랜만에 들어보는 제 이름에 그의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자리했다.

    그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제 인생에 단 한 명 뿐이었으니까.

    ‘에드...’

    “아빠!”

    “....!”

    다정한 외침에 저절로 상념에서 깬 에드윅이 고개를 내렸다. 제 시선을 맞춰오는 사랑스런 딸이 걱정스럽게 그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거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아... 다른 생각을 하느라 미처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아이들 돌보시느라 힘드셨나 봐요.”

    “그런 이유는 아니란다. 정말 다른 생각을 해서 그랬단다.”

    “어떤 생각을 하셨기에 그렇게 멋지게 웃고 계시는 거예요?”

    “흠? 내가 멋진 것은 늘 있는 일이라...”

    “......”

    세린의 표정이 안쓰럽게 일그러졌다.

    그 사실적인 반응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에드윅의 소리죽여 웃으며 세린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 선물부터 보여 주거라. 기대하고 있으니 웬만해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란다.”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황성의 입구를 채운 선물로 쌓은 산을 향해 걸어가는 세린과 에드윅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아리엘의 눈이 부실만큼 말이다. 아리엘은 환하게 웃는 세린과 에드윅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히 웃었다.

    ‘다행이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당신의 행복이 늘 당신 곁에 존재해서.

    세린이 그 누구보다 환하게 자라나서.

    비록 자신이 그들의 곁에 없지만 말이다.

    가족들의 저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 제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았다.

    세린의 저주, 백성들의 불신, 마법사, 페르돈 후작.

    절망과 슬픔, 처절함이 지나치게 섞여났던 지난 과거 속에서 아리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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