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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46화 (145/218)

146화. 앤젤라의 시선

로레인은 창백한 낯으로 앤젤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허공에 띄어진 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제 피의 반절이 끔찍한 반란군의 피라면 남은 반절은 저 아름다운 여인의 피였다.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지만 앞으로도 마주할 리가 없을 그 사람이 제 영상구에 남아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 자신이 반란군의 피만 섞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어릴 적, 에드윅의 집무실에서 우연치 않게 발견한 제 친모의 정보와 모습이 담긴 영상구를 집중하며 관찰하던 로레인은 거의 본능적으로 제 공간에 그 정보들을 숨겨놓았었다.

그리곤 제 궁에서 몰래 몰래 제 친모의 정보를 낭독하고 모습을 관찰했다.

그땐 왜 그랬을지 스스로도 제 마음을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자신을 낳다가 죽은 제 친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과 동시에 원초적인 그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점차 짙은 기억에 잠겨가는 로레인을 향해 앤젤라가 물었다.

“삼촌 누구에여?”

“..... 누구라고 해야 할까.”

“웅?”

그래, 당신을 누구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머니?

내 어머니는 나를 가슴으로 낳고 마음으로 키우셨던 분이 떳떳하게 계시는데 감히 당신을 내 어머니라고 칭해야 하는 것일까?

당신이 죽은 이유가 나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데.... 내게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을 과연 원하고 있을까?

당신의 인생을 종말 시킨 내가 원망스럽지 않다고 당당히 말 할 수 있나?

로레인은 영상구 속의 아름다운 제 또 다른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앤젤라... 삼촌의 주변에 계속 저 사람이 있었던 거니?”

“네! 매일 삼촌 뒤에 서 있거나 막 어, 옆에 있었어여..”

“..... 그랬구나.”

로레인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앤젤라의 시선에 담기는 것들은 모두 살아있는 것이 아닌 존재들이었나.’

로레인은 부드럽게 앤젤라를 안아주며 물었다.

“앤젤라, 그럼 다른 예쁜 사람은 어떻게 생겼니?”

“웅?? 비밀인데...”

“비밀?”

“네...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비밀이래여.”

“..... 하지만 앤젤라는 방금 삼촌에게 다 말해주기로 했잖아?”

“앗! 맞아!”

앤젤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다 두 손으로 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마음을 굳힌 얼굴로 로레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비밀이에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여?”

“그래, 비밀은 꼭 지킬게.”

“앤젤라 막 따라다니는 예쁜 언니는 머리가 아빠 눈이랑 똑 같아여!”

“.... 하늘 색 말이니?”

“웅! 그리고 막 눈은 엄마 눈이랑 똑같아요! 신기하져?”

“.......!!!!”

로레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모르고 앤젤라는 말을 이었다.

“막 앤젤라 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가 언니 많이 사랑했다고 하고...! 막 앤젤라 눈이 언니 닮은 거라고 그러고...!”

“........”

“나빴져??”

앤젤라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로레인은 숙여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말로 내뱉을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잔혹하게 덮쳤다.

“앤젤라....”

“웅?”

“왜... 그러니까 왜... 그 언니라는 사람은.... 네 곁에 머무는 것인지... 아니?”

“어....”

앤젤라의 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생각이 난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길을 잃었다고 했어여!”

“.....!!!!”

“막 집으로 가는 길이 없어졌다고 잃어버렸다고 했어여!”

앤젤라의 말이 끝나자 로레인은 작은 소녀를 제 품에 꽉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길을 잃었다고...?

도대체 언제부터 길을 잃은 거지?

애초에 왜 길을 잃은 거냐고.

그의 머릿속에 끔찍한 기억들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마탑과의 전쟁이 벌여졌던 동북황태자의 납치사건.

그리고 대마법사이자 제국의 황후였던 아리엘의 유골을 훔쳐 영혼을 끌어내려 시체를 되살린 마탑의 잔인한 실험.

세린의 마법으로 소멸된 아리엘의 껍데기와 죽어가는 세린을 살린 아리엘의 영혼.

기억이 거기까지 미치자 로레인의 얼굴이 더욱 더 창백해졌다.

‘설마... 그 때 세린을 살린 여파로....?’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그녀의 영혼이 얼마나 방황을 하고 얼마나 외로운 고통 속에서 남아 있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로레인은 앤젤라를 품에 안아주면서 목까지 차오르는 괴로운 숨을 꾹 눌러 참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거지?

아니, 애초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 것이지?

앤젤라의 영혼을 보는 눈?

아니면 방황하고 있는 제 주변의 영혼?

로레인은 앤젤라를 안은 자세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문 밖으로 향했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의 가슴은 차가워졌고 머리는 뜨겁게 타올랐다.

‘아버지께 말씀을... 아니... 형님에게... 하... 아니야.’

이런 개 같은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가족에게 솔직하게 내뱉으라는 거지?

애초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 건가?

로레인의 죄책감에 가득한 가슴에 고개를 기댄 앤젤라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 작은 소녀의 시선에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걸었던 것일까?

4실이 되어가는 어린 앤젤라의 시선에는 항상 한 인영이 서 있었다.

그 인영은 푸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제 엄마를 닮은 새싹을 닮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누구세여?”

‘..... 나?’ 앤젤라의 질문에 푸른 머리카락의 여인은 당황스런 얼굴로 제 자신을 가리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앤젤라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작은 소녀가 올곧게 직시하는 것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경악에 물들여진 얼굴로 외쳤다.

‘내가 보이니??’

“웅!”

‘세상에... 어쩐지 특이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더니...’

“웅??”

‘아니란다 아가야.’

여인의 대답에 앤젤라의 고개가 살짝 기울여지며 큰 연두색 눈동자를 크게 뜨자 여인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사랑스러워!!!!’

격하게 외친 여인의 목청이 청량하게 앤젤라의 귀를 자극했다.

달려들 듯 두 팔을 벌리며 달려오는 여인의 손은 당연하게도 앤젤라를 통과했다.

앤젤라를 통과하는 제 불투명한 손을 바라보며 여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아쉬운 웃음을 지었다.

‘아... 역시 안 되네...’

중얼거리며 한숨을 쉰 여인은 이내 한 손으로 턱을 받쳐 앤젤라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안아주고 싶었는데... 못 안아주네.’

“언니 집은 어디에여?”

‘언니? 아하하하! 그런 단어는 처음이야!’

“웅??”

‘흠흠! 이 언니는 집이 없단다.’

“웅??? 왜 집이 없어여?”

앤젤라의 질문에 여인의 연두색 눈동자가 조금 슬프게 빛났다.

여인은 다정히 앤젤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다가 이내 굳게 다물어진 입술을 열었다.

‘길을 잃었거든.’

“웅?”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대신 데려다주느냐고 길을 잃어버렸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여인을 멍하니 바라보던 앤젤라가 이내 제자리에서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앤젤라가 언니 집 찾아줄게여!”

‘뭐?? 아하하하하!! 누구 딸인지 정말 귀엽네!’ 트레일의 결혼식 전, 이엔의 품에 안겨 할아버지 댁에 간다는 소식을 접한 앤젤라의 표정이 환해졌다.

“앤젤라 할아버지 빨리 보고 싶어!!”

“앤젤라, 오빠가 할아버지한테 데려다줄게! 같이 가자!”

“웅!!”

그런 남매의 대화를 듣던 여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앤젤라 너의 할아버지가 이 언니를 엄청 사랑했던 거 아니?’

그런 여인의 말에 앤젤라의 눈이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부정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앤젤라 사랑해요.”

‘그래그래, 너도 사랑했지만 이 언니도 사랑했다고?’

“흥!!”

‘어머 얘 좀 봐... 에드윅이 너무 사랑만 준 거 아니야?’ 여인의 당황스런 눈치에도 앤젤라의 볼이 부풀어지기만 했을 뿐이었다.

*

앤젤라를 성에 데려다준 후부터 로레인은 서재에 틀어박혀 앤젤라의 상황과 그러한 유사한 인물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로서 인생의 절반을 학업과 실험에 매진했지만 앤젤라의 상황은 완전히 그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워낙 유례사항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도 해서 자료도 없었다.

‘영혼... 죽어있는 자... 본 적이 없는 마력. 방법은?’

로레인은 그런 고민을 안고 천천히 제 침실로 이동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이 달빛을 받자 더욱 쓸쓸하게 비춰졌다.

로레인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창문 밖으로 강하게 제 모습을 비추는 달을 관찰했다.

그의 머릿속에 귀여운 음성이 짙은 여운을 남기며 울려 퍼졌다.

‘그런데 예쁜 언니는 앤젤라가 아니라 삼촌만 따라 다녀여.’

나를 따라다닌다고.

‘레인 삼촌 옆에만 있었어여, 그 예쁜 언니!’

내 옆에만 있었다고.

도대체 왜...?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던 것인지.

아니면 말해주지 못한 원망 때문에 내 곁에 머무는 것인지.

왜 내게서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로레인은 천천히 시선을 제 옆으로 돌렸다.

지금도 내 곁에 있을까?

대답이야 몰론 들리지 않을 것이고 제 눈과 똑같은 제비꽃색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로레인은 자조적으로 피식 웃으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앤젤라의 말로는 길을 잃은 영혼이 둘이라고 했는데...”

한 명은 자신의 배로 아플 거 다 아프고 날 낳아주신 어머니고 한 명은 날 가슴으로 낳아주신 어머니라고.

그의 눈이 촉촉이 젖어갔다.

“우스운 정도를 넘은 것이 이미 한참 전이라 이제 더 이상 말도 잇지 못하겠네요.”

창문 밖의 달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췄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러한 경우에는 어디에서 물어야 하는 것일까?

깊은 밤까지 고민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의 답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전.’

그곳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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