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아이들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당으로 이동하던 로레인의 앞에 에드윅과 이엔이 나타났다.
“아버지? 이엔?”
로레인이 의문이 담긴 눈동자를 하고 에드윅을 바라보았고 에드윅은 조금 굳은 얼굴로 그를 향해 물었다.
“시간 괜찮으냐.”
“시간이요?”
“그래, 아이들은 내가 맡을 테니... 이엔과 잠시 이야기라도 하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에드윅의 침묵 속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로레인은 약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윅은 그런 로레인을 대신해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며 부드럽게 안으로 이끌었다.
“할아버지랑 먹자꾸나. 뭐가 먹고 싶니.”
“고기 먹고 싶어여!”
“그래. 고기를 달라 이르마.”
다정한 그의 말을 끝으로 식당의 문이 닫혔고 로레인은 조금 굳은 얼굴로 이엔을 바라보았다.
“... 무슨 일이지? 누구에 관한 문제인거냐.”
“... 앤젤라님에 관한 문제입니다.”
“!!!”
단번에 로레인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는 제 미간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이내 한숨을 쉬며 앞장섰다.
“내 집무실로 가지.”
“네.”
그의 뒷모습이 담긴 그림자가 걱정으로 물들여져 갔다.
로레인의 집무실.
로레인은 꽃차를 담은 컵을 이엔의 앞에 내려놓으며 그의 건너편에 자리했다.
이엔은 조금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하며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였으나 이내 두 눈으로 로레인을 올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전하와 대공작님께서도 늘 걱정하셨던 문제이십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2황자 전하께 먼저 여쭈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리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무슨 문제이기에 그러는 것이냐.”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지... 허공을 바라보며 자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허공?”
로레인의 눈이 조금 찌푸려졌으나 이엔은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자주 무언가를 속삭이시거나 대화를 나눕니다. 그...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대답을 듣고 있는 것이 명확한 내용들이었던지라... 정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
“그리고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분명 옆에 계셨는데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고개를 다시 돌리면 그 자리에 안 계신다던지... 갑자기 거리가 멀어져 있다고 하던지...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무슨....”
“어둠술사의 능력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어떠한 어둠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로레인의 눈이 왈칵 일그러졌다.
이엔은 금빛 눈동자에 걱정을 가득 담으며 물었다.
“혹시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특이한 마력 때문인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만약 앤젤라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말 실존하는 것이라면 그 존재가 혹시라도 그분께 해를 끼칠까봐 불안하기도 합니다.”
“.......”
쉽게 넘겨들을 문제는 아니었다.
로레인은 제 입가를 감싸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
가뜩이나 몸이 약한 아이인데... 이런 문제로 혹시 그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다면...?
저절로 생각되는 끔찍한 생각에 로레인이 제 얼굴을 거칠게 쓸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되었다.
“일단 그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습인지, 앤젤라에게 어떤 말들을 하는 지 알아내야겠지.”
“.... 실존하는 것이 분명할까요?”
“앤젤라의 묘사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로서도 이런 상황들은 처음이니까 그 아이의 묘사나 이야기를 통해서 찾아보는 것 말고는 아직 생각나는 방법이 없어.”
“.... 그럼 식사 후에 앤젤라님을 모셔올까요?”
“내가 직접 데리러가마. 넌 그동안 아이들을 부탁한다.”
“네. 그리 하겠습니다.”
이엔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로레인의 고민이 깊어졌다.
‘일반 사람들과 마법사인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앤젤라의 눈에 보인다고?’
그 존재가 무엇일까.
앤젤라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라면 어떻게 되는 반드시 처리를 할 생각을 하며 로레인은 이를 악 물었다.
*
에드윅과 식사가 끝난 후 즐거운 모습으로 레기와 에드와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 앤젤라는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이엔을 발견하고 맑게 웃으며 그에게 두 팔을 뻗었다.
“이엔!!”
“앤젤라님.”
그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담기자마자 에드와 레기도 밝게 웃으며 그에게 안겼다.
“이엔!”
“이엔이다!!”
그 격한 환영에 이엔의 금빛 눈동자에 기쁨이 담겼다.
그러던 중 로레인이 부드럽게 앤젤라를 이엔에게서 받아 안으며 다정히 말했다.
“우리 레기와 에드, 오스카, 테리는 이엔과 할아버지랑 놀고 있으렴. 삼촌이 잠깐 앤젤라와 이야기만 하고 금방 올게.”
로레인의 부드러운 말에 레기가 다급히 물었다.
“왜요? 앤젤라 아파요?”
자주 앤젤라의 건강을 체크하러 방문하는 로레인을 알기에 그녀가 걱정되어 물어본 레기였다.
그런 레기가 귀여운 듯 달콤하게 웃은 로레인이 부드럽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아프지 않지만 정말 안 아픈지 삼촌이 알아보려는 거야. 걱정하지 마렴.”
“정말이죠?”
“그럼, 삼촌은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잖아?”
“..... 네!”
안심한 듯 미소를 짓는 레기를 부드럽게 바라보던 로레인은 이내 앤젤라를 데리고 제 집무실로 워프했다.
*
동그란 연두색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 주변을 장식한 수수한 그림들을 관찰했다.
그리곤 그림들 사이에 하나 유독 눈에 띄는 귀여운 자수가 앤젤라의 눈에 강하게 박혔다.
로레인의 눈동자를 꼭 닮은 아름다운 제비꽃이 수놓아진 그 천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조금 삐뚤빼뚤한 모습이기는 하나 제비꽃을 이루는 실들의 색 조합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앤젤라는 그 수를 가리키며 외쳤다.
“삼촌, 제비꽃이에여!”
“하하하 그렇구나. 제비꽃이 맞아.”
“삼촌 눈이랑 똑같아여! 엄청 예뻐.”
“고맙단다 앤젤라.”
로레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앤젤라를 안고 제비꽃이 수놓아진 천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곤 부드럽게 그 천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이게 누가 만들어준 것인지 아니?”
“웅? 모르겠어요...”
“앤젤라의 엄마가 만들어준 것이란다.”
“엄마가여??”
“그래, 삼촌을 닮았다며 열심히 수놓아준 것인데... 매일 보고 또 봐도 예쁘더구나.”
“우와... 엄마 대단 해여.”
“그렇지?”
감탄하는 앤젤라의 표정에서 예전 세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로레인은 피식 웃으며 부드럽게 앤젤라의 등을 두드려주다가 이내 그녀를 의자에 앉혀주었다.
“앤젤라, 삼촌이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궁금해요?”
“응. 많이많이.”
“웅! 앤젤라가 다 알려줄게여!”
언제든 질문하라는 듯이 제 허리에 늠름하게 손을 올린 앤젤라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로레인은 키득키득 웃으며 그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추고 물었다.
“우리 앤젤라에게 비밀 친구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어.”
“비밀 친구?”
“그래, 앤젤라의 비밀친구. 우리 앤젤라에게만 보인다며?”
로레인의 입가엔 미소가 담겼으나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는 걱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앤젤라는 조그마한 입술을 삐쭉이다가 이내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앤젤라 친구 아니에여!”
“저런... 친구가 아니었구나.”
“친구는 어, 앤젤라랑 키도 똑같고 어, 이렇게 손도 잡아주는 건데 앤젤라보다 키도 크고 손도 못 잡아여.”
“.... 그렇구나.”
로레인의 제비꽃 색 눈동자가 심각해졌다.
“손을 왜 잡아주지 못하는 거야?”
“안 만져져여. 막 내가 이렇게 힘을 주면 만질 수 있는데 힘 안주면 안 만져져여.”
“...... 그래?”
앤젤라는 제 고사리같이 작은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술을 삐쭉였다.
로레인은 그런 앤젤라를 달래주며 물었다.
“지금 여기에도 있니?”
“웅?”
그의 질문에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앤젤라는 이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여기는 없어여.”
“그래? 지금은 어디 놀러갔나 보구나. 항상 앤젤라만 따라다니니?”
“웅... 앤젤라만 따라올 때도 있고, 엄마 옆에 있을 때도 있고... 오빠들 옆에 있을 때도 조금 있고...”
‘가족들에게 모두 붙어 다니고 있었다고...’ 로레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듯이 앤젤라를 향해 말했다.
“앤젤라, 그 아이는 어떻게 생겼어?”
“움......”
앤젤라는 로레인의 품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수를 세어보더니 이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둘.... 두 명 예뻐여.”
“..... 둘?”
“웅! 엄청 예뻐요. 그런데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여.”
“.......”
‘앤젤라가 보는 것이 한 명이 아니었다고...?’ 혼란스런 눈으로 앤젤라를 바라보던 그를 향해 앤젤라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예쁜 언니는 앤젤라가 아니라 삼촌만 따라 다녀여.”
“..... 뭐?”
“레인 삼촌 옆에만 있었어여, 그 예쁜 언니!”
“.......”
앤젤라의 말에 로레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여졌다.
‘내 옆에 있고, 나만 따라다니고?’
로레인은 혼란스런 머릿속을 정리하며 앤젤라를 향해 단호히 물었다.
“앤젤라, 그 예쁜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웅?”
“머리카락이 무슨 색인지, 눈이 무슨 색인지 뭐 이런 거....”
“어어.....”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그러다 이내 로레인의 품에 기대며 밝게 말했다.
“머리는 어... 밤이에요. 반짝반짝 해여!”
“이엔처럼 말이니?”
“우웅! 아니요, 막, 별이 잔뜩 있는 밤 같아여!”
‘빛나는 검은색이면.... 남색을 말하는 건가?’
“그리고? 눈은 무슨 색이야??”
“움...”
앤젤라의 손이 천천히 로레인을 가리켰다.
“삼촌이랑 똑같은 색 이에여.”
“.......”
“제비꽃처럼 예뻤어여.”
로레인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떨렸고 이내 입술을 굳게 깨물다가 한 손을 들어 오래도록 숨겨놓았던 영상구의 한 장면을 허공에 띄었다.
앤젤라의 시선이 그 장면으로 옮겨졌다.
“.... 혹시 이 사람과 닮았니...?”
로레인의 질문에 앤젤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담겼다.
“맞아요!! 이 언니에여!”
로레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영상구 속에서 담긴 한 인영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던.... 제 친모의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