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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44화 (143/218)

144화. 로레인의 마음

열심히 길을 달리던 마차의 창밖으로 아름다운 하늘과 봄꽃으로 장식된 높은 산들이 보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이 너무 오랜만이라 세린의 눈이 반짝였다.

“제이! 꽃이 예쁘게 폈어요!”

“큽...”

“얼른 저것 좀 봐요! 예쁘죠??”

웃음을 참는 제이를 모르고 세린은 열심히 창문 밖을 구경했다.

제이는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뒤로 자리했다.

세린의 등 뒤로 단단한 가슴이 닿았고 그녀의 어깨 앞으로 그의 팔이 나타나 창문을 짚었다.

어쩌다보니 제이의 품에서 창문을 바라보게 된 세린은 잔뜩 붉어진 볼을 하고 당황스럽게 제이를 바라보았다.

“제이...?”

“정말 예쁘게 폈군요.”

“아...! 그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 세린만큼 예쁩니다.”

“!!!”

세린의 얼굴이 무척이나 붉게 물들여졌다.

제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한 손으로 세린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천천히 입술을 내려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깃털이 내려앉은 것만 같은 부드러운 입맞춤에 세린의 눈이 차츰 떨려갔다.

수줍은 기색이 만연한 세린이 고개를 돌려 제이와 시선을 마주하자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 고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세린의 볼을 부드럽게 감싸며 입을 맞췄다.

늘 하던 입맞춤과는 분위기가 다른 그 느낌에 세린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결혼을 한지 5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그와 이리 입을 맞추면 늘 똑같이 설렜고 동시에 너무도 행복했다.

여전히 그녀와 그는 사랑에 빠져있었다.

두 부부의 달콤한 시간은 신속하게 흘러갔고 마차는 빠르게 세린과 제이의 목적지로 향했다.

*

같은 시각 황성.

에드와 레기, 앤젤라는 예전 세린의 집무실이었던 달궁의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나름 학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에드윅에게 손님이 찾아와 잠시 아이들끼리의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깃펜을 작은 손으로 움켜쥐어 그림을 그리는 앤젤라와 그 옆에 앉아 책을 읽는 레기.

그리고 건너편 침대에 누워 글씨를 따라 써보는 에드.

세쌍둥이의 집중하는 침묵을 제일 먼저 깬 것은 앤젤라였다.

앤젤라는 집중하느라 튀어나온 홍조가 가득한 볼을 갑작스럽게 부풀렸고 곧이어 다급히 제 그림을 감추며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허공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아니에요! 이건 엄마랑 앤젤라에요!”

“앤젤라?”

“칫! 바보! 미워요!”

앤젤라의 두 눈이 슬프게 일그러지자 옆에 있던 레기가 앤젤라를 바라보았다.

“앤젤라, 왜 그래?”

레기의 물음에 앤젤라는 씩씩거리는 얼굴로 의기소침하게 외쳤다.

“.... 앤젤라 그림이 곰이라고 했어!”

“웅? 누가??”

레기의 푸른 눈이 당황을 담으며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에 앉았던 에드도 주변을 얼른 둘러보았지만 역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에드는 앤젤라와 똑같이 빛나는 연두색 눈동자로 앤젤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앤젤라, 아무도 없는데?”

“아니야! 여기 앞에 있어!”

에드의 말에 앤젤라가 버럭 외치며 제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림액자 하나뿐이었다.

에드는 조금 고민을 하다가 레기를 향해 물었다.

“어..... 음.... 형아 보여?”

“..... 음... 아니...”

에드는 난처한 얼굴로 레기를 바라보았지만 레기 또한 난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레기는 부드럽게 앤젤라의 그림을 바라보며 이내 다정하게 말했다.

“앤젤라에게만 보이는 요정인가보다. 그런데 요정님이 이상해. 오빠가 봐도 이건 엄마고 이건 앤젤라가 맞는데.”

레기의 말에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레기를 향해 조금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물었다.

“.... 그치? 엄마랑 앤젤라 똑같이 그렸지?”

“응! 맞아! 너무 잘 그렸어 앤젤라.”

레기의 다정한 말에 점차 앤젤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제 그림과 건너편 허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레기는 그런 앤젤라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바라보았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기의 푸른 눈이 조금 의문을 담았지만 이내 앤젤라의 그림을 함께 색칠해주며 이야기했다.

“누가 자꾸 우리 앤젤라 괴롭히면 오빠한테 말해야 해? 오빠가 혼내줄게.”

“웅! 레기 오빠한테 다 이를 거야!”

“앤젤라, 오빠한테도 일러! 오빠도 혼내줄게!”

“웅! 오빠들한테 다 말 할 거야!”

에드와 레기의 말에 앤젤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던 그 때였다.

똑똑

누군가의 노크소리에 앤젤라가 퍼뜩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었다.

“레인 삼촌이다!”

“웅? 레인삼촌?”

“할아버지가 얼른 오신다고 했는데...?”

오빠들의 당황스런 물음에도 서둘러 문을 열은 앤젤라는 두꺼운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보라색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해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삼촌!!”

“앤젤라.”

부드럽게 휘어진 눈을 하고 로레인이 앤젤라를 안정적으로 안아 올렸다.

그의 제비꽃 색의 눈동자 속에서 애정이 가득했다.

“뭐 하고 있었어? 우리 공주님.”

“앤젤라 그림을 그렸어요! 엄마랑, 앤젤라 그렸는데! 어, 이제 아빠도 그려야 하고 오빠도 그려야 하고 할아버지랑 삼촌이랑...”

“우리 가족들을 모두 그리려는 것이구나?”

“네! 고모도 그리고 이엔도 그릴 거예요!”

“그러려면 종이크기가 부족하겠는데?”

로레인의 눈이 책상에 올려 진 종이를 담으며 나직이 웃었다.

그런 로레인을 향해 레기와 에드가 그의 다리를 붙잡으며 안겼다.

“삼촌! 할아버지도 온다고 했는데여?”

“할아버지가 지금 당장 오시기 힘드실 것 같아서 삼촌이 왔어. 외삼촌이랑 재밌게 놀자.”

“와아!!!”

“좋아여!!”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에 로레인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오스카랑 테리도 데리고 오자. 외삼촌이 엄마랑 트레일 삼촌과 테오 삼촌의 어릴 때를 보여줄게.”

“와!!!”

“엄마 아기 때에요??”

“음...”

로레인의 눈이 조금 슬프게 휘었다.

세린이 어렸을 때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제 친아비로 인해 잃어버리게 되었으니까.

로레인은 짙어지려는 죄책감을 애써 목뒤로 넘기며 밝게 웃었다.

“아기 때는 아니란다. 지금 테리 정도로 작았을 때의 모습이 있어.”

“테리오빠만큼 작았을 때?”

“그래, 우리 앤젤라와 똑 닮았지.”

“!!”

로레인의 말에 앤젤라의 눈이 기대감으로 잔뜩 흔들렸다.

로레인은 에드와 레기, 앤젤라를 데리고 워프하여 그의 궁으로 왔다.

몰론 오스카와 테리도 함께 말이다.

다섯 명의 조카들을 데리고 궁의 침실에 앉은 로레인은 마법으로 조명을 어둡게 만든 후 넓은 벽면에 영상구를 띄었다.

영상 속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15살 때의 트레일이었고 그런 트레일의 어깨 위에 앉아 목마를 타고 있는 세린이었다.

‘아하하하!!’

아름답게 피어난 봄꽃을 배경으로 맑게 웃는 두 남매의 모습이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로레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와! 엄마예요?”

“오스카 아빠예요?”

앤젤라와 오스카의 질문에 로레인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스카의 아빠랑 우리 레기, 에드, 앤젤라의 엄마란다. 어때? 귀엽지?”

“귀여워요!”

“네!!”

아이들의 힘찬 대답 속에서 테리도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목마를 타고 있는 제 고모의 모습과 지금 제 옆에 앉아 눈을 반짝이는 앤젤라가 똑 닮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반응이 귀여워 나직이 웃던 로레인은 이내 다음 영상구를 틀었다.

그것은 19살이었던 테오와 말을 함께 타고 있는 어린 세린의 모습이었다.

테리의 눈이 커졌다.

지금도 무척이나 근사하고 멋이 가득한 아버지였지만 저만큼 어린 아버지도 또 다른 멋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 기분에 테리의 붉은 눈이 잔뜩 흔들렸다.

영상구는 계속 새로운 장면을 눈에 보여주었다.

황제였던 에드윅의 모습.

가족들과 케이크를 먹는 세린의 모습.

트레일이 기사단 훈련에 임하는 모습.

남부 제국의 무역관련 서류를 살피며 일에 집중하는 테오의 모습, 로레인이 가족들의 어릴 적 일상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추억에 젖어 들어갈 때 에드가 로레인을 향해 물었다.

“삼촌, 그런데 이상해요.”

“뭐가 말이니?”

로레인의 되물음에 에드가 당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저기에는 왜 레인 삼촌만 없어요?”

“...!!!!”

“난 레인 삼촌도 보고 싶어요.”

“......”

로레인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이들을 찍어주느라 스스로를 못 찍었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핑계였다.

로레인은 조금 눈을 굴리다가 이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삼촌이 우리 가족들을 찍어주느라 깜빡 잊고 삼촌을 못 찍었나봐. 삼촌의 영상구는 없단다.”

“힝... 보고 싶었는데...”

“미안하구나.”

사과를 하면서도 로레인의 눈가는 짙어져갔다.

스스로를 저런 추억 속에 남기지 못한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한 이유면서도 복잡했다.

그는 제 자신이 싫었다.

제 몸에 흐르는 반란군의 피부터 겉 외양까지 모두 말이다.

얼마 전부터 테오와 에드윅에게 번갈아 듣는 결혼과 연애의 질문과 문제도 결국은 같은 답이었다.

제 몸속에는 제국과 황제를 배신한 반란군의 피가 적어봐야 제 몸의 반을 차지했다.

이 끔찍한 피를 이은 자식을 사랑하는 이의 사이에서 낳으라고 한다면?

결단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제 스스로도 극도로 싫어하는 반란군의 피를 자식에게 이어준다니... 그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었다.

로레인의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원망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진행이 되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을 상처였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가슴 속에 묻어주며 로레인은 부드럽게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너희들 배고프겠다. 우리 맛있는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앤젤라 배고파여.”

“에드도...!”

“하하하, 그래. 얼른 먹으러 가야겠다. 다들 이리오렴.”

로레인은 맑게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의 제 품에 모두 감쌌다.

그리고 황성의 식당을 향해 워프했다.

그의 복잡하고 가슴 아픈 고민은 여전히 품 안으로 남긴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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