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정원사의 고민
트레일과 헤일리의 결혼식 이 후, 대가족이 모두 모인 황성의 식탁에는 근사한 저녁식사가 차려졌다.
상다리가 모두 휘일만큼 휘황찬란한 음식들의 향연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 빛이 났다.
트레일이 난처하게 웃으며 에드윅을 향해 말했다.
“아니... 뭘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셨어요? 다 못 먹겠네.”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였지 않느냐. 인원도 많은데 이정도로 기겁을 하면 미리 준비시킨 내가 섭섭하지.”
“통도 크시지... 우리 예쁜이들 많이 먹어야 해!!”
트레일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에드윅을 바라보다가 이내 밝은 모습으로 세쌍둥이와 오스카, 테리에게 말했다.
테리는 덤덤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오스카와 레기, 에드도 밝게 웃으며 “네!”라고 외쳤다.
앤젤라는 잔뜩 붉어진 볼로 한 손을 뻗어 레몬시럽 케이크를 가리켰다.
“우와...! 아빠! 케이크에여!! 케이크 주세여!!”
그 흥분한 목소리가 귀여워 제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앤젤라, 케이크는 식사가 끝난 후에 먹는 것이란다. 우선 밥을 먼저 먹거라.”
“아빠, 앤젤라는 케이크 먼저 먹고 싶어여...”
“케이크를 지금 먹게 된다면 입맛이 없어져서 식사를 이어 할 수 없단다. 네가 골고루 잘 먹고 나면 그때 아빠가 케이크를 주마.”
“우...”
제이의 부드러운 말에 앤젤라는 연두색 눈을 또르르 굴리며 입술을 삐쭉였다.
조금 투정을 부리는 앤젤라의 모습에 지켜보던 테오의 마음이 벌써 약해졌다.
그러나 세린이 주는 ‘받아주면 안 돼요!’ 같은 눈초리에 입술만 달싹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저런 모습을 보니 새삼 제 막내가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저 모습마저 늘 그랬듯 애틋하고 사랑스러웠고 말이다.
잔뜩 고민하는가 싶던 앤젤라가 이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꼬기랑 야채랑 다 먹고 케이크 먹을래여!!”
“멋진 생각이야 앤젤라! 많이 먹고 케이크도 많이 먹어!”
트레일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앤젤라가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앤젤라의 양 옆에 앉은 레기와 에드도 그런 앤젤라의 모습에 다정히 웃으며 제 근처에 있는 음식을 그녀의 그릇에 옮겨주었다.
“앤젤라, 이거 먹어봐! 맛있었어.”
“이것도 맛있어!”
“우와...!”
익숙하게 그릇에 음식을 옮기는 쌍둥이들의 모습에 세린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항상 제이가 제게 해주는 그 모습을 저리 따라하는 것이 귀여워서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제이도 그런 아이들을 무척이나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마음씨마저 고와. 가히 천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이런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화목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끝난 후 에드윅은 세린과 제이를 따로 집무실로 불렀다.
갑작스런 부름에 영문을 모르는 것은 제이도 마찬가지였다.
세린은 에드윅의 집무실에 들어서면서도 조금 의문이 생겨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
그런 작은 걱정을 하며 눈을 정면으로 돌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짙은 남색의 옷을 걸친 에드윅의 뒷모습이었다.
제 머리카락과 꼭 닮은 분홍색의 머리를 뒤로 넘긴 에드윅의 뒷모습은 어릴 때 마주했던 그때처럼 너무도 든든해보였다.
“아빠?”
“왔구나, 앉아 보거라.”
에드윅이 다정히 웃으며 세린과 제이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앞에 마주 앉은 부부는 에드윅이 건네주는 차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일은 없다. 단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이다.”
“물어볼 것이요?”
동그랗게 변한 세린의 눈동자를 다정히 바라보며 에드윅이 부드럽게 물었다.
“너희 다 결혼하고 둘 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지 않았느냐.”
“어.... 그렇... 지요.”
세린과 제이의 두 눈이 마주쳤다.
결혼하고 금방 아이들을 가졌고 임신하면서도 여러 일이 많았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세 명이었고 몸이 약한 앤젤라로 인해서 더욱 가족에게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과정도 아니었고 그저 함께이기 때문에 행복하게 지냈는데... 그의 말을 들으니 정말 둘만의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세린과 제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네요. 아이들이랑 지내다보니 너무 즐거워서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묻는 것이지만...”
“네?”
에드윅이 다정하게 세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금 늦은 시기이지만 너희 둘이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것은 어떠냐.”
“여행이요?”
“트레일과 헤일리도 보낼 생각이다. 아이들은 잠시 우리에게 맡겨두고 너희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놀다가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아빠...”
“아이들 걱정이라면 괜찮다. 로레인도 있고 나도 있지 않느냐.”
에드윅의 눈가가 곱게 휘었다.
세린은 자신들을 생각해주는 에드윅의 마음에 뭉클해지는 가슴을 느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제이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괜히 저희로 인해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폐라고 하면 섭섭하지. 가족끼리 이럴 때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정 미안하고 눈치가 보인다면 보답으로 자네와 세린에게 받고 싶은 내 소원을 하나 적어두고 있으마.”
에드윅의 농담 같은 말에 세린이 두 눈을 휘며 웃었다.
“그래서 저희한테 황성에 더 머물라고 말씀해주신 거예요?”
“늙은이의 주책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빠! 그런 말씀하시면 저도 섭섭한 거 아시죠?”
“그래, 알겠다.”
세린의 투덜거림에 에드윅이 나직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너무 오래 부부를 붙잡을 수는 없지. 여행계획은 너희의 자유다. 실컷 즐기고 놀다가 오거라.”
“고마워요 아빠.”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인사는 넣어두고.”
에드윅의 짙은 미소에 세린과 제이도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배려가 너무도 고마웠다.
*
같은 시각, 세쌍둥이는 이엔과 리사와 함께 정원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몸이 약한 앤젤라만이 조금 느긋한 걸음으로 이엔과 걸어가고 있었고 리사는 레기와 에드를 데리고 숨이 찰 만큼 뛰어다녔다.
마스터인 리사의 숨이 아닌 아이들의 숨이 찰 때까지 말이다.
아이들이라고 봐주는 것은 없었다.
“고모가 더 빠르지?”
“으아! 고모 빨라여...!”
“고모 빠르다아!”
약간 지친 얼굴로 레기와 에드가 리사의 양 발을 붙잡았다.
그리곤 커다란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멋있어여!”
“나도 고모처럼 빨리 달리고 싶어여!”
“....... 큭..”
철푸덕!!
“웅?”
“고모?”
쌍둥이의 트리플 애교에 제국 최초 여성 마스터의 무릎이 꺾였다.
리사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신음처럼 말을 내뱉었다.
“내... 내가 졌다....”
그래, 완벽한 패배였다.
무척이나 치명적인 아이들의 눈빛을 리사는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것이었다.
이엔은 그런 리사의 모습에 나직이 웃었다.
아이들도 귀엽지만 리사의 모습도 무척이나 귀여웠던 탓이었다.
앤젤라는 그런 이엔의 손을 잡고 입술을 삐죽였다.
“앤젤라님?”
“.... 앤젤라도 뛰고 싶어...”
“아...”
본래 체력보다 조금만 더 뛰어도 금방 다시 호흡을 내뱉기 힘들어하는 앤젤라를 알기에 이엔의 눈이 걱정스럽게 휘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엔은 이내 앤젤라를 번쩍 안아 올렸다.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고 이엔은 그 귀여운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같이 뛸까요?”
“같이?”
“네, 고모를 이기려면 서둘러야 하겠네요.”
“와아!!”
앤젤라의 동그란 눈이 환하게 휘었다.
싱그러운 새싹이 자라듯 무척이나 사랑스런 웃음에 이엔의 눈도 곱게 휘었다.
“꽉 잡으셔야 합니다.”
“웅!!”
앤젤라의 작은 손이 이엔의 목에 팔을 두르자 이엔은 부드럽게 웃운 후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
그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앤젤라는 환하게 웃었다.
그런 이엔과 앤젤라가 빠르게 리사를 지나쳤다.
그러한 둘의 모습에 리사의 두 푸른 눈이 번쩍 뜨이더니 재빠르게 에드와 레기를 들어올려 안으며 이엔을 향해 돌진했다.
미친 승부욕이 발동된 리사의 푸른 눈이 불타올랐다.
“질 수 없다!!!”
“하하하하하!!”
“고모 이겨라!!”
승자가 없는 즐거운 승부 속에서 에드와 레기도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보아도 즐거워하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사랑스런 분위기의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정원사의 눈이 곱게 휘었다.
다정한 분위기의 가족들이 참 귀엽다는 생각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담겨졌다.
그러나... 그런 미소도 잠시였다.
“.......”
달리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안겨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행복하기만한데 달리는 속도는 전혀 그런 귀여운 모습이 아니었다.
저 어마 무시한 속도로 정원을 휘저어 다니는 두 기사들 덕분에 정리된 낙엽과 나뭇잎들이 모두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정원이 아니라 숲으로 변하고 있네...’
태초의 정글로 변해가는 정원을 눈물이 고인 눈으로 지켜보던 정원사는 이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저 무지막지한 달리기를 선보이는 두 사람을 멈춰 세워야 하는 것이 먼저일지, 아니면 그저 이해하며 넘겨야 하는 것이 맞을 지... 정원사의 고민이 깊어져만 갔다.
“이엔! 너무 재밌어!”
“하하하하!!”
“고모 멋져여!”
꺄르르 웃음 짓는 그 맑고 앙증맞은 목소리에 정원사는 결국 할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말해 뭐하겠어.
저리 즐거워들 하시는데...
정원이야 다시 정리를 하면 되는 것이지만 저런 추억은 정리정돈처럼 쉽게 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황성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소음이 햇살만큼 따스했다.
정원사는 빗자루를 들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정히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울었다.
흐트러지는 나뭇잎들의 수가 오늘 그녀의 퇴근을 오랫동안 붙잡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힘내자...’
여담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나가는 로레인 덕분에 낙엽이 금방 정리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