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내기
3황자이자 제국의 첫 번째 검이라 칭해지는 트레일의 결혼식의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푸른 하늘 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바람은 따스한 온기를 담아 불었다.
예식장의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과 수많은 귀족들 사이에서 테오는 단상에 섰다.
“지금부터 이 제국의 검, 1기사단의 단장 트레일 레바스찬과 헤일리 레바스찬의 결혼식을 시작하겠다.”
테오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레드카펫의 끝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결혼식은 특별히 신부와 신랑이 함께 입장하겠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입장할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도록. 신랑, 신부 입장!”
부모와 가족을 잃어 함께 입장을 할 사람이 없는 헤일리를 위한 배려였다.
테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많은 인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레드카펫에 제일 먼저 발을 올린 것은 분홍색의 드레스와 제복을 입은 3~4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들이었다.
붉은 장미꽃잎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는 작은 아이들은 잔뜩 상기된 볼을 하고 꽃잎을 열심히 뿌리며 입장을 했는데 그 앙증맞은 모습이 귀여워 사람들의 입가가 저절로 허물어졌다.
“어머나...”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시지...”
“꺅! 귀여워라!”
레기와 에드, 앤젤라, 오스카의 귀여운 행진에 테오와 에드윅, 클로비스 역시 허물어진 눈으로 그들을 관찰했고 로레인은 영상구로 이를 찍어놓으며 맑게 웃었다.
사랑스런 아이들의 행진 뒤로 오늘의 주인공들이 입장을 시작했다.
하얀 드레스가 레드카펫과 뿌려지는 꽃잎에 장식되어 아름답게 출렁였다.
레이스 자수가 달린 면사포 사이로 폭포수처럼 아름답게 쏟아진 푸른 머리카락과 밤하늘을 닮은 남색의 눈동자가 곱게 빛났다.
단단한 팔을 붙잡으며 입장하는 신부 헤일리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세린의 볼에 저절로 홍조가 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헤일리의 팔을 든든하게 잡아주며 입장하는 신랑 트레일은 건장한 체격에 맞는 검은 턱시도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턱시도만큼이나 근사한 미소를 입에 담으며 헤일리와 입장하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멋져보였다.
에드윅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담겼다.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막내아들이 이제는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는 것이 새삼 가슴에 와 닿은 탓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 입장하는 선남선녀의 모습에 사람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휘날려주는 아름다운 꽃잎과 부드러운 음악의 선율이 참으로 잘 어울렸다.
그러던 그때, 꽃잎을 날리던 오스카의 다리가 꼬여버렸고 누군가 잡아주지 못할 만큼 빠르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푸덕!
“오스카!”
세린과 에드윅, 로레인이 잔뜩 파리해진 얼굴로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으....”
“오스카, 괜찮아?”
“아파?”
“벤 할아버지 부르자!”
약간 울먹이며 주저앉은 오스카에게 허겁지겁 달려간 레기와 에드, 앤젤라는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이내 자연스러운 한 팔이 그런 오스카를 안아 올렸다.
트레일이었다.
트레일은 헤일리를 잡지 않은 한 팔로 오스카를 안아 올리며 밝게 웃음 지었다.
“울면 남자라고 불릴 수 없지! 우리 오스카는 씩씩하니까 안 울 거지만.”
“아빠...”
“자, 가보자! 약속을 나누러.”
로레인은 그런 트레일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으로 앤젤라, 레기, 에드를 데려왔고 자연스럽게 오스카와 함께 입장을 하기 시작한 헤일리와 트레일은 단상 앞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테오는 그런 세 식구를 부드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다정히 웃음 지으며 말했다.
“입장하는 주인공이 한 명 더 생겼으니 내용을 바꿔서 맹약을 물어야겠군.”
“그럼 더 감사하지요.”
“그럼 묻겠다. 세 사람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히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기를 약속하겠느냐.”
“약속합니다.”
“약속합니다.”
“오스카는 약속을 하겠느냐?”
헤일리와 트레일의 대답을 유심히 보던 오스카가 이내 테오가 자신을 바라보며 묻자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약속함미다!”
“멋지구나.”
테오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담겼다.
그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나 서로를 믿고 신뢰하며, 상대방을 늘 존중하고 사랑하겠느냐.”
“네.”
“네.”
“네에!”
“그렇다면 되었다. 이 시간부로 이 세 사람을 ‘가족’ 이라는 이름 아래에 영원히 함께 할 것에 대한 맹약을 하였고 그 맹약의 증인으로 짐의 이름을 적었다. 두 사람은 이제 부부이며, 동시에 세 사람은 가족임을 허락하겠다. 행복 하여라.”
테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환호성이 들리는 박수가 주변에 가득 채워졌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1기사단의 기사들과 함께 세린과 가족들도 뭉클한 가슴을 끌어안고 박수를 쳤다.
트레일와 헤일리가 부부로서 하나가 된... 오스카와 가족이 된 행복하고 특별한 하루였다.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환호하는 많은 사람들 뒤로 이엔과 리사도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트레일의 품에 안긴 오스카도 밝게 웃고 있었고 그의 팔에 안겨 있는 헤일리 또한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이엔의 가슴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어릴 적, 자신을 경계하는 것과 동시에 챙겨주려 노력한 트레일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지라 보다 이 날의 그가 행복해 보이는 것에 안심을 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하며 누구보다 굳센 사람이니 가족들을 모두 지키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 이엔을 힐끔 바라 본 리사는 이내 다시 트레일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여러 고민이 오가는 표정으로 입술을 꾹 다문 리사의 모습에 이엔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리사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음....”
“리사님?”
“고민이네.”
“고민이요?”
이엔의 되물음에 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몸을 돌리고 물었다.
“내가 곧 23살이 될 것이고 넌 곧 26살이 될 것이잖아?”
“... 그렇겠지요.”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가지고 있는 성을...”
“컥!! 콜록!! 콜록!!”
“.... 뭐냐 너?”
“큭!! 자, 잠시만...!! 쿨럭!”
얼마나 놀랐는지 몰려오는 기침을 내뱉으며 이엔이 진정하기 시작했고 이내 잔뜩 붉어진 얼굴로 리사를 바라보며 이엔이 천천히 되물었다.
“겨... 결혼이요...?”
“어. 너 나랑 결혼 안 할 거였어?”
“아, 아닙니다! 단지 너무 갑작스러운 말씀에 놀라서...!”
“그래서 뭐 나랑 결혼할거야 말거야? 확실히 말 안 해?!”
“그....!”
이엔의 금빛 눈동자가 이내 리사를 확고히 바라보는 가 싶더니 이내 스르륵 시선을 내리며 대답했다.
“하고 싶습니다....”
잔뜩 붉어진 귓가가 참 귀여웠다.
5년을 연애하는 중이었는데도 여전히 설레어 하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리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단 말이지?”
“문제요...?”
“그래, 그것도 좀 큰 문제야.”
“무슨....”
이엔의 눈에 궁금증이 피어오르자 리사는 제 턱을 쓸며 이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장가를 내게 올지, 내가 시집을 네게 갈지 말이야.”
“컥!!! 쿨럭!!”
다시 목이 막힌 이엔이었다.
“리, 리사님?”
“왜 놀라고 그래? 그거 진짜 큰 고민이야.”
그래, 어쩌면 정말 심각한 고민이었다.
둘 다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황제가 직접 하사해준 성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결혼을 한다고 한다면 어느 한 쪽이 황제가 하사한 성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기에 더욱 고민스런 일이었다.
이엔도 그 말을 듣자 조금 심각한 눈을 하더니 이내 부드럽게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요. 폐하께서 직접 주신 성이니만큼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흠.... 어쩜 좋을까나.”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리사의 모습에 이엔의 두 볼이 점차 더욱 붉어지기 시작했다.
자신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리사의 모습에 부끄러움과 함께 기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저 고민 또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인지라 더욱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어떤 선책을 하게 되든 리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생겼다.
이엔과 리사의 고민이 깊어질 무렵 아인의 푸른 눈이 몰래 그 두 사람을 시선에 담았다.
“......”
다정하게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아인은 옆에 앉아 있는 메리를 향해 말했다.
“우리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나보군.”
“응?? 뜬끔 없이 무슨 소리에요?”
“잘 살아서 그런지 복을 받은 거지.”
“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리사를 저리도 포용할 수 있는 사내가 나타날 리가 없지 않겠나?”
“아! 이엔을 말하는 거예요?”
아인의 말에 메리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았다.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의 모습에 저절로 눈가가 휘어졌다.
아인의 말처럼 사납고 조금 포악한 리사를 저리도 포용해주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두 부부의 고민은 리사의 시집에 대한 것 뿐 이었다.
워낙 성격이 드세고 힘도 억센 리사를 누가 받아줄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던 부부에게 이엔의 존재는 가히 기적이었다.
“그러게요. 저 두 사람은 언제 결혼을 하려나?”
“흠... 빠를수록 좋을 텐데 말이지.”
“청혼은 누가 먼저 하려나요?”
“그거야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겠나.”
“무슨 소리람, 이 양반이? 우리 리사가 먼저 청혼할 가능성도 있는 것을요.”
“리사가...?”
“리사는 다른 여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아이니까요. 자기 마음에 가는대로 행동하고 표현하는 애인데 청혼 그것을 기다리기만 할 것 같나요?”
“그것도 그렇군.”
“에고 벌써 내가 다 설레네! 우리 내기 해볼래요?”
“누가 먼저 청혼할지 말인가?”
“네!”
아인의 주름이 잡혀가는 근사한 얼굴에 짙은 미소가 담겼다.
“난 이엔에게 걸지.”
“좋아요, 난 리사에게 걸게요.”
작가도 리사에게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