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트레일의 결혼식
황성의 성문에서 누군가가 바쁘게 주변을 맴돌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두 사람은 바로 로레인과 에드윅이었다.
“아이들이 힘들겠구나,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이냐.”
“곧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마차가 밀리나 봅니다.”
“수도가 바로 옆인데 이리 밀리다니... 아이들이 마차에서 오래 기다리면 힘이 들 것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출발한다는 말을 들은 지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는데요...’ 멀리서 시종의 난처한 생각은 속마음에서 흩어졌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도 그렇고 황녀전하께서 시집을 가셨을 때도 그렇고 참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질리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저 모습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런 시종의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는 말을 모르는 에드윅과 로레인은 황성에 다가오는 대공저의 마차에 얼굴이 환해졌다.
천천히 들어서는 마차 앞으로 다가서던 두 사람의 앞에 마차의 문이 열렸고 동시에 앤젤라가 날아오르듯 제 몸을 날려 에드윅의 품에 안겼다.
“할아버지이!!”
“앤젤라.”
작디작은 손녀를 품에 꼭 안아주며 에드윅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에드윅 옆에 있던 로레인에게는 레기와 에드가 제 몸을 던졌다.
“레인 삼촌!!”
“외삼촌!”
로레인은 단단한 품에 아이 둘을 안정적으로 받아 안아주며 화사하게 웃었다.
“아하하! 레기, 에드 어서 오렴. 오느라 힘들지는 않았니?”
“하나도 안 힘들었어여!”
“삼촌 보고 싶었어여!”
“삼촌도 너무 보고 싶었어.”
그런 행복한 상봉을 바라보다 세린이 나직이 아이들을 향해 걱정스럽게 말했다.
“얘들아! 할아버지랑 삼촌 힘들어!”
세린의 걱정스런 말에 에드윅이 앤젤라를 꼭 안아 올려주며 말했다.
“괜찮다. 이 정도에 힘들 정도로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어.”
“아빠...”
“너는 어땠느냐. 힘들지는 않았고?”
“저야 늘 잘 지내는 걸요. 아빠는요?”
“나도 늘 똑같구나. 너와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 말고는 별 다른 일은 없었다.”
“아빠도 참...”
에드윅의 장난스런 말에 세린이 부드럽게 웃었다.
제이는 그런 에드윅과 로레인을 향해 인사를 한 후 물었다.
“3황자 전하께서는 식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그래,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들도 미리 꽃잎을 뿌려주는 걸 연습해봐야겠구나.”
“지금 가봐야 하는 건가요.”
“식은 한참 남았으니 조금 쉬었다가 하도록 하지. 바로 가면 아이들이 힘들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
에드윅의 제안에 제이와 세린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가족은 함께 황성으로 들어섰다.
“테리랑 오스카는 어디 있어요?”
“테리는 지금 막 수업을 끝냈다고 들었다. 아마 여기로 오려고 하는 것 같던데...”
“오스카는요?”
“오스카는 옷을 입고 있더구나.”
“에구... 아이들도 많이 바쁘네요.”
“좋은 날이니만큼 바쁜 것이지. 너도 오기 전까지 바빴지 않느냐.”
에드윅의 자상한 걱정에 세린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언제나 제 걱정을 하느라 바쁜 그를 알기에 가슴이 뭉클해진 탓이었다.
그러던 그 때, 세린의 귀에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고모.”
세린의 시선이 저절로 돌아가며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테리~!”
분홍색의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한 6살이 된 테리였다.
테리는 붉은 눈동자를 하고 정중하게 세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법에 맞게 인사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 칼 같은 말과 선을 긋는 모습에 세린이 입술을 삐쭉이며 테리의 시선에 맞춰 몸을 숙였다.
“테리, 예법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고모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조금 더 반갑게 인사해주면 안 돼?”
“하지만...”
“그럼 고모가 먼저 반갑게 인사해줄게! 오랜만이야 테리~!”
“!”
테리의 대답을 듣기 전에 세린이 부드럽게 테리를 끌어안았다.
달콤한 향이 풍기는 그 품에서 테리의 붉은 눈동자를 잔뜩 흔들렸다.
사랑스런 조카의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워 세린이 키득키득 웃다가 이내 부드럽게 그를 놓아주며 말했다.
“우리들끼리만 있을 때는 이렇게 인사해주기야?”
“.... 네.”
“으구 귀여워.”
세린의 다정한 미소에 테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항상 사랑이 가득한 고모가 좋으면서도 그 사랑에 대답을 못하는 제 태도가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마저 귀여워하는 세린의 다정함에 어느 새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걷는 테리였다.
트레일과 헤일리의 결혼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황성의 별궁.
트레일과 헤일리의 하나뿐인 아들 오스카는 푸른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해주는 헤일리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헤일리는 어느 새 차려입은 고운 웨딩드레스 위로 오스카를 무릎에 앉혀 그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오스카는 그런 헤일리의 손길을 느끼며 앉아 있다가 이내 생각이 난 듯이 물었다.
“엄마! 결혼이 뭐에요?”
“결혼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약속을 나누는 거야. 앞으로 언제나 사랑을 하겠다는 약속.”
“아빠는 엄마랑 아빠랑 많이 사랑해서 오스카가 태어났다고 했는데... 어, 그러데 또 사랑하는 거예요?”
“그럼, 오스카도 아빠도 매일 매일 사랑할거야.”
“우와....”
‘멋지다...’ 라고 중얼거리며 감탄하는 오스카의 순진한 모습이 귀여워 헤일리가 작게 웃었다.
“엄마,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죠?”
“그럼. 약속은 꼭 지켜야지.”
“그럼 오스카도 엄마랑 결혼 할래요!”
“응? 아하하하하!”
헤일리는 오스카의 엉뚱한 말에 맑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내 그의 볼에 다정히 입을 맞췄다.
“그래, 오스카가 더 커서 엄마 지켜줄 수 있게 되면 결혼하자.”
“나 아빠보다 힘이 세질 거예요!”
“그럼! 오스카는 씩씩하니까.”
다정한 모자의 대화 속에서 닫혀있던 문이 스르륵 열렸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트레일이 붉은 장미다발을 들고 들어섰다.
“전하.”
“헤일리, 진짜진짜 엄청 예쁜데요?”
“아하하, 전하도 오늘 정말 멋져요.”
“흠흠... 당연하죠. 오늘을 위해서 내가 힘을 좀 줬다고요.”
“오스카 어떠니? 아빠 정말 멋지지?”
헤일리가 다정히 품에 안긴 오스카를 향해 물었다.
오스카는 두 눈이 반짝이는 얼굴로 트레일을 바라보다가 이내 붉은 눈동자를 고이 접으며 환히 웃었다.
“아빠 엄청 멋져요!”
“크으...!!”
오스카의 환한 대답에 잠시 어깨를 떨던 트레일이 이내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우리 아들!! 오스카 이리와! 아빠가 안아줄게!!”
“아하하하하!”
트레일이 행복한 얼굴로 환히 웃으며 작은 아들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마주 얼굴을 부비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트레일의 모습에 꺄르르 웃음을 터트린 오스카는 붉은 눈동자를 올려 트레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나도 엄마랑 약속했어요.”
“응? 무슨 약속?”
“내가 쑥쑥 커서 아빠보다 힘이 세지면 엄마랑 결혼할거예요!”
“뭐...?!”
트레일의 눈이 커지며 이내 오스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급히 외쳤다.
“안 돼! 엄마는 아빠 꺼야!”
“응? 엄마는 힘이 세지면 결혼해도 된다고 했는데...”
“뭐어?! 헤일리!!”
“아하하하하!”
트레일의 원망스런 외침에 헤일리는 결국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트레일은 그런 헤일리를 밉지 않게 흘기다가 이내 부드럽게 그녀의 품에 장미를 안겨주었다.
“어머... 장미가 너무 예쁘네요.”
“헤일리와 잘 어울려서 가져왔어요. 장미의 꽃말도 사랑이니까... 내 진심이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워하는 트레일의 모습이 귀여워 헤일리는 맑게 웃었다.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마워요.”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네요.”
“나한테도 행복한 날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오늘부터 우리는 진짜 부부가 되는 거니까.”
“부부....”
헤일리의 눈에 조금씩 눈물이 고였다.
험난하기만 했던 그와의 사랑이 이제야 결실을 맺고 부부라는 이름 아래에 연을 맺게 되었다.
이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벅차서 저절로 코가 시큰해졌다.
트레일은 울먹이는 헤일리를 다정히 안아주며 말했다.
“왜 울고 그래요? 울면 슬픈 날인줄 알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너무 기뻐서...”
“나도 기뻐요. 기쁠 때는 웃어야 하는 거 알죠? 눈물 그치고 얼른 웃어줘요.”
트레일의 다정한 말에 헤일리는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이내 환하게 미소 지었다.
트레일은 그런 헤일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이거 봐, 웃으니까 훨씬 더 예쁘네.”
“놀리는 거 아니죠?”
“나 농담이나 놀리는 거 잘 못하는 걸 알잖아요. 헤일리 정말 예뻐요.”
“.... 전하.”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요. 지금까지 기다려준 것도 고맙고 우리 오스카를 만나게 해줘서 더 고마워요.”
“전하....”
“사랑해요.”
트레일의 수줍은 고백에 헤일리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푸핫!”
하며 트레일이 개구지게 웃음을 지었고 다시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울지 말라니까요.”
“이건 전하께서 울리는 거예요...”
“이제는 남 탓까지?”
“..... 몰라요.”
“헤일리, 날 봐요.”
헤일리의 밤하늘 같은 눈동자가 트레일의 붉은 눈동자를 담았다.
트레일은 올곧은 눈동자를 곱게 휘어 웃음 지으며 말했다.
“언제나 웃게 해줄게요.”
“.....”
“머리가 완전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요.”
“.... 전하...”
“오스카도 헤일리도 모두 지켜줄 테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요.”
헤일리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트레일은 그런 헤일리의 볼에 입을 맞춰주며 다시 말했다.
“사랑해요.”
“저도... 사랑해요 전하.”
헤일리의 부드러운 대답에 옆에서 오스카가 다급히 외쳤다.
“나도 엄마 사랑하는데!”
“그렇지 아들? 그러니까 오스카, 이제 엄마 그만 울라고 하자!”
“엄마 그만 울어요.”
“들었죠? 이제 그만 울고 가요.”
“정말....”
두 부자의 응석을 들으며 헤일리는 밝게 웃었다.
사랑스런 이 존재들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것이 너무도 기뻐서 헤일리의 눈물이 금방 마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