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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39화 (138/218)
  • 139화. 중요한 역할

    대공저의 성에 밝은 해가 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대공저의 정원에서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사내가 서둘러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는 굵은 목소리를 울려 애타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앤젤라님!!”

    그의 금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고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이 너무도 애처로웠다.

    정원에 피어난 붉은 장미를 서둘러 지나치며 누군가를 찾던 그 사내는 바로 이엔이었다.

    걱정스런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앤젤라를 찾던 이엔의 귀에 다정하고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웅? 앤젤라 눈 엄마 닮았눈데.”

    그 사랑스런 목소리에 이엔의 금빛 눈동자가 밝아졌다.

    그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고 이내 곧 앙증맞은 분홍빛 머리카락과 작은 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몸집이 무척 작은 아이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왔더요? 누가요?”

    “앤젤라님!”

    “움?”

    이엔의 애탄 부름에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뒤를 돌았다.

    고개를 돌린 작은 아이의 이목구비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동그랗고 큰 눈동자는 막 돋아난 새싹처럼 빛났고 작고 앙증맞은 입술의 양 옆으로 오동통한 볼이 눈에 띄었다.

    그 다정한 연두색 눈동자가 이엔을 시야에 담자마자 아이는 세상의 모든 빛을 끌어 모은 듯이 밝게 웃음 지었다.

    “이엔!”

    “앤젤라님. 이렇게 자꾸 혼자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웅?”

    “한참을 찾았습니다. 갑자기 없어지시는 바람에 제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십니까...”

    “.... 미안해애.”

    이엔의 단호한 말에 시무룩해진 앤젤라가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그리곤 천천히 이엔의 옷소매를 잡았다.

    이엔의 날카로운 눈매가 난처함과 사랑스럽다는 기색에 물들었다가 이내 할 수 없다는 듯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앤젤라를 안아 올렸다.

    안아 올리자마자 느껴지는 작은 몸집만큼이나 가벼운 무게에 조금 안타까워졌지만 밝게 웃으며 앤젤라를 향해 말했다.

    “다음부터는 저를 두고 가지 마시고 함께 가시죠.”

    “웅! 약쏙!”

    앤젤라의 동그란 눈매가 반달모양으로 휘었다.

    너무도 사랑스런 미소에 이엔의 눈도 함께 휘어졌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듯 뒤를 돌아보며 아까까지 앤젤라가 있던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앤젤라의 등을 두드려주며 물었다.

    “앤젤라님, 그보다 아깐 누구랑 이야기를 하던 중이셨습니까?”

    “웅?”

    “누구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이엔의 물음에 앤젤라의 눈이 데구르르 구르며 시선을 옆으로 돌리다가 이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앤젤라, 노래 불렀어.”

    “노래요.”

    “웅! 엄마한테 노래 해줄 거야!”

    “그렇군요...”

    약간 대답을 피하는 듯 보이는 기색에 이엔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의문이 커졌다.

    자주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거나 갑자기 눈을 돌린 틈에 사라지는 앤젤라가 걱정이 되었다.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갑자기 사라지는 그녀가 걱정되면서도 동시에 의문스러운 마음이었다.

    로레인이 자주 이야기하던 특별한 마력으로 인해 그녀에게 위험한 능력이 생겼다던가,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던지 등 그녀가 그런 상황에 처할까봐 걱정도 되었다.

    이번에 방문할 황성에서 한 번 로레인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엔은 앤젤라와 대공성으로 들어왔다.

    대공성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들의 귀를 자극하는 음성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이엔!! 앤젤라!!”

    그 다급한 귀여운 음성에 이엔의 눈이 커졌다.

    황급히 그에게 달려오는 작은 인영은 제이를 쏙 빼닮은 은발과 푸른 눈을 가진 레기 스페라도였다.

    이엔은 제게 달려오는 레기를 다른 한 팔로 안아 올리며 다정히 눈을 맞춰 물었다.

    “레기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헥...! 헥..! 힘들어어...”

    “저런... 걸어오시지 그러셨습니까.”

    “헤엑...! 이엔 우리 할아버지 보러가는 거야?”

    이엔의 걱정스런 얼굴을 붙잡으며 레기가 다급히 물었다.

    이엔은 작은 두 손에 잡힌 얼굴을 곱게 휘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뵈러 가는 날입니다.”

    그의 확고한 대답에 레기와 그 옆에 안겨있던 앤젤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앤젤라 할아버지 빨리 보고 싶어!!”

    “앤젤라, 오빠가 할아버지한테 데려다줄게! 같이 가자!”

    “웅!!”

    레기와 앤젤라의 귀여운 대화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이엔이 두 아이를 안고 대공성 안으로 들어섰다.

    힘든 기색 없이 아이들을 안고 걸어 다니는 이엔의 모습이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그러던 그때, 앤젤라가 이엔의 어깨를 붙잡고 뒤를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앤젤라 사랑해요.”

    “네?”

    “흥.”

    이엔의 의문스런 물음에 앤젤라는 두 볼을 부풀리며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이엔의 눈이 그런 앤젤라를 당황스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그에게 다가오는 한 인영에 얼굴을 밝게 폈다.

    옅은 분홍빛의 고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그 인영은 바로 세린 스페라도였다.

    “전하.”

    “이엔, 힘들게 아이 둘을 안고 있었어? 아이들이 스스로 걸을 수 있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안 힘들기는...! 애들이 커서 무거워졌을 텐데... 너희 이엔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엄마가 이야기했지?”

    “제가 원해서 안아 드린 것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이엔도 참... 아이들을 너무 예뻐만 해선 안 돼~!”

    세린이 툴툴 거리는 목소리로 이엔을 바라보며 이야기했으나 이엔은 그저 난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꼭 안아줄 뿐이었다.

    세린의 세쌍둥이들은 대공저에서도 황성에서도 어디에서도 무척이나 사랑을 받고 수많은 관심을 받는 존재였다.

    리사와 메리, 아인은 말 할 것도 없이 아이들을 열광적으로 예뻐했고 이엔과 황성의 가족들은 더 표현할 필요 없이 아이들을 사랑했다.

    제이가 그나마 제일 이성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아이들의 애교에 순식간에 넘어가는 모습이 있었다.

    세린은 그런 아이들이 혹시라도 어디 가서 실수를 하지 않을 까 걱정이 되어 윗사람과 가족을 대하는 예의를 단호하게 가르치는 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쌍둥이들은 세린의 소망처럼 예의바르고 착한 모습으로 자라는 중이었고 말이다.

    “어머니!”

    “엄마!”

    레기와 앤젤라가 서둘러 이엔의 품에서 내려와 세린의 드레스를 붙잡았다.

    “엄마! 앤젤라가 오늘 노래 불러줄 거예요!”

    “노래?”

    “웅! 노래 부를 거예요!”

    “어떤 노래를 불러줄 건지 벌써 기대가 되는 걸?”

    앤젤라의 이야기가 귀여워 다정히 웃은 세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세린은 앤젤라와 레기의 손을 꼭 잡고 이엔과 걸어가기 시작했다.

    레기는 세린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할아버지네 왜 가요??”

    “음? 아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거든.”

    “특별한 날?”

    “응, 트레일 삼촌 있지??”

    “네!”

    익숙한 이름에 레기의 눈이 밝게 빛났다.

    세린은 그런 레기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이내 다정히 말했다.

    “오늘 삼촌이 결혼을 하는 날이거든. 우리가 축하해주러 얼른 가야해.”

    “결혼?”

    “그래, 헤일리 외숙모랑 서로 사랑한다고 모두에게 자랑하는 날이란다. 우리가 얼른 박수도 쳐주고 축하해주자.”

    “네!!”

    레기의 힘찬 대답에 옆에서 함께 걷던 앤젤라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맑게 웃은 세린은 천천히 아이들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러던 그 때, 밝은 햇빛을 받은 복도의 창문 앞으로 푸른 제복을 입은 제이가 앤젤라의 눈에 띄었다.

    앤젤라의 두 눈이 밝게 빛나며 이내 세린의 손을 놓고 서둘러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빠아!!”

    “앤젤라.”

    양 팔을 쭉 뻗고 달려 나가는 앤젤라의 모습에 살짝 파리해진 안색으로 다급히 그녀를 안아 올린 제이는 이내 부드러운 손짓으로 앤젤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뛰면 위험해 앤젤라. 넘어지면 어쩌려고.”

    “헤헤헤 아빠 보고 싶었어여!”

    “같은 마음이었구나. 아빠도 네가 보고 싶었단다.”

    앤젤라의 사랑스런 미소에 제이의 입매가 허물어졌다.

    그의 넓은 가슴에 제 얼굴을 마구 비비며 꺄르르 웃는 앤젤라가 너무도 귀여워서 제이는 나직이 웃다가 제게 다가오는 세린의 허리를 한 팔로 잡아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세린이 다정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일찍 왔네요, 제이!”

    “오늘은 당신에게도 특별한 날이니까요. 레기도 함께 였구나. 이리오렴.”

    “아버지다!”

    제이의 부드러운 물음에 레기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제이는 그런 레기를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세린의 품에 앤젤라를 안겨주었다.

    “아빠는 오빠들의 옷을 입혀 줄테니 앤젤라 너도 엄마와 예쁜 옷을 입고 오거라.”

    “예쁜 옷??”

    “오늘은 너와 오빠들의 역할이 중요하거든.”

    “우웅??”

    앤젤라와 레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다 제이의 손에 이끌려 레기는 제 의상실로 향했고 앤젤라 또한 세린과 함께 의상실로 이동했다.

    리사의 품에서 신나게 놀던 에드도 어느 새 제이와 함께 의상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렇다.

    제국에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트레일과 헤일리의 결혼식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세쌍둥이들과 트레일과 헤일리의 아들 오스카는 오늘 그의 결혼식에서 한가지의 역할을 맡았다.

    신부와 신랑의 앞에서 꽃을 뿌리며 함께 행진하는 것이었다.

    그 막중한 임무를 부디 아이들이 잘 해결하기를 바라며 세린과 제이는 아이들의 옷을 단정히 입혀주었다.

    앤젤라는 옅은 분홍빛이 도는 드레스를 입고 세린과 함께 의상실을 나왔다.

    그리곤 자신과 비슷한 색의 제복을 입고 있는 에드와 레기를 발견하고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달려 나갔다.

    “오빠! 앤젤라랑 옷 색깔 똑같아!”

    그녀의 즐거운 물음에 레기가 다정히 웃으며 앤젤라의 드레스를 잡고 말했다.

    “똑같네! 그런데 앤젤라가 더 예뻐.”

    옆에 서 있던 에드도 연두색 눈을 빛내며 앤젤라를 향해 말했다.

    “맞아, 앤젤라가 더 예뻐.”

    “오빠들은 멋져!”

    다정한 오누이의 대화에 세린과 제이가 따스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직 의문이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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