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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33화 (132/218)

133화. 태어나다.

세린은 이엔과 함께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9개월에 가까이 접어든 커다란 배를 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세린의 모습이 넘어질 듯 아슬아슬해보여서 이엔은 세린에게 한 팔을 건네주었다.

“잡으시고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고마워!”

세린은 키득키득 웃으며 이엔의 팔에 제 손을 얹고 안정적으로 다시 걸어보기 시작했다.

“정말 산책을 나오셔도 괜찮은 것입니까.”

“응, 벤이 분수대까지만 이라면 정원을 나와서 산책해도 괜찮다고 했어!”

“그렇다면 다행이시지만 넘어지시면 안 되십니다.”

“이엔이 잘 잡아주겠지?”

“네, 잡아드리겠습니다.”

“고마워.”

단단한 이엔의 팔을 잡고 즐겁게 걷는 세린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엔은 그런 발걸음 속에서 힘겨워 보이는 얇은 그녀의 다리가 안쓰럽고 불안해서 몇 번 망설이다가 이내 나직이 그녀에게 물었다.

“전하,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산책은 여기까지 하시고 간식이라도 드시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가요? 제가 주방장에게 과일푸딩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과일푸딩....”

이엔의 솔깃한 제안에 세린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자신도 어차피 몸이 무거워 오래 걸어볼 생각은 없었기에 이내 밝게 웃으며 수긍했다.

“그래, 들어가자!”

“네!”

이엔의 표정이 화사하게 밝아졌고 부드럽게 세린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세린이 다급히 배를 감싸며 한 쪽 눈을 찡그렸다.

“아....”

“전하?”

“... 아, 아니야.”

이엔의 걱정에 세린이 고개를 저으며 난처하게 웃었다.

평소에도 가끔씩 있던 묵직한 느낌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세린은 이내 궁으로 돌아왔다.

“세린.”

“제이!”

침실로 들어오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제이의 모습에 세린의 표정이 밝게 빛났다.

햇빛을 받은 화사한 외모가 더욱 눈이 부셨다.

세린은 반갑게 그를 향해 두 손을 뻗었고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의 손을 잡아주며 그녀를 이끌었다.

이엔은 부드럽게 웃으며 “주방장에게 간식을 부탁드리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자리를 비켰다.

“산책을 다녀오셨습니까.”

“네! 제이는 일은 다 끝난 거예요?”

“네, 모두 마무리를 하고 온 것입니다. 일단 앉죠.”

“네에!”

세린의 표정이 너무도 행복하게 허물어졌다.

아침에도 이미 마주한 그였지만 이리 다시 만나니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서 세린이 제이의 손을 꼭 잡았다.

만삭의 세린의 귀여운 행동에 제이의 입기에 짙은 미소가 담겼다.

원래도 귀여운 사람이었지만 요 근래 더욱 귀여워진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아이들이 힘들게 하지는 않던가요.”

“아이들 태동이 그렇게 힘든 정도는 아닌 걸요! 오히려 태동이 없으면 위험하다고 벤이 그랬어요. 우리 아이들은 건강한 거겠죠.”

“다행이군요. 어디가 아프시다면 미리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네에!”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을 전용의자에 앉혔다.

배가 무거워져가는 세린과 헤일리를 위한 전용 의자는 긴 소파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무척이나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가졌다.

의자에 얌전히 앉은 세린의 이마에 입을 맞춘 제이는 그녀에게 물을 떠주기 위해 뒤를 돌았다.

미리 준비되어있는 컵에 물을 따르는 제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세린이 이내 생각이 난 듯 그를 부르기 위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주르륵

멈칫!

의자에서 내려오자마자 다리를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에 세린이 천천히 제 다리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그 무언가가 바닥을 적시고 있는 장면이 시선에 닿자 잠시 생각을 멈춘 세린은 이내 배에서부터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짓말...’

여태껏 겪었던 진통들은 모두 장난이었다는 듯이 거대한 고통이 세린에게로 휘몰아쳤다.

‘아직 한 달이 남았는데...?’

몰려오는 통증에 비틀거린 세린이 급하게 테이블을 잡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 진 꽃병과 책들이 바닥으로 처참하게 떨어졌다.

와장창!!

“세린?!”

제이가 다급히 뒤돌아 창백해진 낯으로 그녀에게 달려왔다.

“윽....”

제이보다 더욱 창백하게 질린 세린이 두 눈과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며 배를 감싸자 제이는 다급히 세린을 안아 올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구보다 빠른 반응속도였다.

“지금 당장 의원을 불러라!!”

그의 푸른 눈이 작게 일렁였다.

잔뜩 질린 얼굴로 땀을 흘리며 고통을 버티는 세린이 너무도 걱정이 되어 숨도 쉴 수 없었다.

세쌍둥이의 출산이 임박하였다.

제일 먼저 세린에게로 황궁의 의원 세 명과 다섯 명의 산파가 달려갔다는 소식을 접한 인물은 테오였다.

집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테오에게 시종이 발 빠르게 달려와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폐하!!”

“소란스럽구나. 무슨 일이지?”

“지, 지금 대공부인께서 양수가 터지시고 진진통이 오셨다고 합니다...! 곧 출산을 하...!”

쿠당탕탕!!

시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오는 집무실 책상을 날려버린 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에드윅도 같은 상황이었다.

정원을 걸어가는 도중 다급히 달려온 시종이 그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대공부인께서 지금 막 진진통이 오셨다고 합니다! 출산준비를 위해 산파와 의원이...!”

“!!!”

한 순간에 창백해진 낯을 한 에드윅은 누구보다 빠르게 정원에서 뛰쳐나왔다.

‘아직 예정일에서 한 달이나 남지 않았나?!’

그와 같은 생각을 하던 로레인도 서둘러 세린의 소식에 그 자리에서 워프했다.

그가 워프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침대에서 생기가 없어진 얼굴로 땀을 흘리며 고통을 견디는 세린이었고 그녀의 뱃속에서부터 곧 태어날듯이 휘몰아치는 작은 마력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같이 생기 없는 얼굴로 불안하게 앉아있는 제이까지 시선에 닿자 로레인의 안색이 단번에 파리해졌다.

“세린!”

의원과 산파는 세린의 출산을 위해 이미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제이는 분만을 시작하는 세린의 손을 꽉 잡고 그녀의 고통을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속이 타들어갔다.

“으윽....”

‘신음도 내뱉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것인가.’ 그의 눈에 죄책감과 함께 짙은 고통이 엿보였다.

로레인은 세린의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불어넣어주며 최대한 그녀의 고통을 덜고 아이들의 분만을 도왔다.

그의 마력을 시점으로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한 발돋움이 시작되었다.

산파가 외쳤다.

“첫 번째 아기씨의 머리가 나옵니다!”

“!!”

제이의 눈이 커지고 로레인의 눈도 커졌다.

세린은 제이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제이는 거칠게 입술을 깨무는 세린이 혹시 다치기라도 할까봐 그녀의 입 안으로 제 손을 밀어 넣었다.

억세게 그녀가 그의 손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어버리자 우렁찬 소리가 침실을 가득 울렸다.

“응애애애애애!!”

복도에서 불안하게 뛰어 돌아다니던 에드윅과 테오, 트레일이 그 자리에서 멈췄고 헤일리와 클로비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제이와 로레인도 천천히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것은 핏덩이같이 정말 작은 아이였고 붉은 피가 조금씩 묻어진 밝은 은발이었다.

산파가 외쳤다.

“왕자님이십니다!”

첫째 아들의 탄생이었다.

그의 탄생에 기뻐하기도 전에 세린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두 번째 아기씨께서도 머리가 보입니다!”

그 소리에 로레인은 마력을 멈추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며 열심히 세린의 땀을 닦아 내렸다.

“조금만 더 힘내라, 세린.”

“흐윽.....!”

로레인의 마법덕분에 고통을 조금씩 덜고 빠르게 분만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진통은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놓을 수 없었다.

세린이 거칠게 제이의 손을 다시 깨물며 눈을 질끈감자 다시 한 번 침실을 가득 울리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애애애앵!!!”

“두 번째 아기씨께서도 건강한 왕자님이십니다!”

핏물이 묻은 은발이 제이의 눈앞에서 살랑거렸다.

둘째 아들의 탄생에 제이의 가슴이 천천히 감동이 차올랐다.

이윽고 막내의 탄생을 위해 세린이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로레인은 막내에게로 집중하며 그녀를 받을 준비를 했다.

작고 약하고 불안정하기까지 한 그 여린 아이가 건강하게 나올 수 있도록 그의 눈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빠져나온 아이들보다 더 커다란 마력을 지닌 작은 아이가 천천히 제 몸을 밖으로 밀어 넣었다.

힘이 다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세린의 손아귀에 제이가 다급히 외쳤다.

“세린!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으....”

“세린.”

“윽....”

세린의 눈이 잔뜩 일그러지며 이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곤 남은 힘을 쥐어짜내어 이를 악 물었고 첫 째와 둘째보다 우렁차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침실을 울렸다.

“으애애앵!”

너무도 여린 그 소리를 향해 눈물과 땀으로 젖은 얼굴로 시선을 돌린 세린은 로레인의 마력구 안에 둘러진 너무나도 작은 아이를 마주했다.

산파가 외쳤다.

“셋 째 아기씨께서는 공주님이십니다!”

셋째 딸의 탄생이었다.

복도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던 황족들을 향해 의원이 문을 열어주며 입을 열었다.

“모두 건강하십니다.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

에드윅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지며 안으로 들어갔고 클로비스와 헤일리, 테오와 트레일도 밝은 기색으로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힘없는 모습이지만 너무도 행복하게 웃으며 작은 은발의 아기를 안고 있는 세린이었고 그런 그녀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며 또 다른 은발의 아이를 안고 있는 제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가족을 향해 나직이 웃고 있는 로레인은 제 품에 있는 구를 에드윅에게로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에드윅의 품에 쏙 들어온 구 안에서 눈을 꼭 감고 있는 작은 아기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 손바닥만큼 작은 아기는 옅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 아이들의 건강은?”

“모두 건강합니다. 막내가 많이 작고 체중도 적지만 금방 나아질 겁니다.”

“세린은.”

“아빠, 저도 괜찮아요.”

거칠어진 목소리로 웃으며 말하는 세린을 향해 에드윅이 천천히 다가갔다.

“다행이구나.”

“네...”

“고생했어.”

“아빠...”

“정말 고생 많았어...”

세린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네...”

대가족의 탄생이 있던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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