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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31화 (130/218)
  • 131화. 가족

    테오와 에드윅은 트레일과 헤일리의 임신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이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그녀가 아이를 가지고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트레일을 닮아 마력을 소지하고 잉태되지 않았더라면 유산되었을지도 몰랐다고 하니... 천만다행이지요.”

    “하늘이 도왔군.”

    에드윅은 눈가를 쓸어내리며 테오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누가 담당했지.”

    “전 대공부인을 불렀습니다.”

    “메리 스페라도 인가...”

    에드윅의 눈이 가늘어지며 부드럽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녀를 부를 정도였다면 어지간히 제 막내들을 건드린 것이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자신 같아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서 에드윅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돌렸다.

    “그럼 이제 트레일도 결혼준비를 해야겠구나. 아니면 아이를 낳은 후에 해도 괜찮을 것이고 말이다.”

    “트레일과 그녀가 먼저 이야기해주겠지요. 일단 공녀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약을 지어 보내야겠습니다.”

    “벤에게 잘 이르도록.”

    “네.”

    에드윅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큰일을 겪었을 헤일리와 세린을 둘 다 찾아가고 싶었으나 헤일리는 회복중이라 자신이 방문하면 쉬지 못할 것 같아서 세린에게 가보기로 정한 것이었다.

    “아빠....!”

    방문을 열자마자 슬픈 표정으로 입술을 꾹 깨물며 팔을 벌리는 제 막내딸을 향해 에드윅이 서둘러 걸어갔다.

    제이는 부드럽게 자리를 비켜주며 세린의 뒤에 섰다.

    에드윅이 제 품을 안아주자마자 세린이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말했다.

    “아빠... 헤일리는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그죠?”

    “그래. 무사하다고 하는구나.”

    “흐... 다행이야...!”

    “그리고 뱃속의 아이도 무사하다고 했고 말이다.”

    “????”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고 제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에드윅은 부드럽게 웃으며 세린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세린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에드윅을 바라보다가 이내 나직이 되물었다.

    “.... 아이요?”

    “그래, 그녀가 아이를 가졌더구나.”

    “!!!!!!”

    세린의 눈이 더욱 더 커다랗게 변했고 다급히 제 입가를 가리며 외쳤다.

    “아, 아기도 무사한 거죠?!!!”

    “건강하다더구나.”

    “으윽!!! 헤일리이!!”

    세린이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참자 제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세린도 헤일리도 둘 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 대공의 말이 맞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마저 이야기를 하자꾸나.”

    “네에...”

    세린은 부들부들 떨리는 눈으로 눈물을 참으며 자리에 앉았다.

    에드윅은 그런 딸의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가 이내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모두 무사하고 모두 안정적이란다. 그러니 너도 더는 걱정하지 말거라.”

    “네!”

    “이제부터는 너도 헤일리도 아이에게만 집중 하여라.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해.”

    “아빠...”

    “다른 걱정은 우리가 대신 해결 해줄 테니까 말이다. 알겠니?”

    “네, 알겠어요...”

    세린은 에드윅의 손을 마주잡고 맑게 웃었다.

    그래, 모두 무사하니 이제 된 거야.

    정말 다행이야.

    세린의 가슴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

    헤일리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나한테 아이가 있다고...? 아니 그보다... 전하는 내가 임신한 걸 알고 있었어?’

    헤일리는 제 임신소식에 놀란 것은 자신뿐인 것 같아서 동그랗게 변한 눈으로 트레일을 관찰했다.

    헤일리의 시선에서 느낀 의문에 트레일이 난처하게 웃다가 이내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실은 어제... 헤일리의 뱃속에서부터 마력이 느껴져서 벤한테 물어봤었거든요... 대공이 이런 마력을 느끼고 세린이 아이를 가진 것을 눈치를 챘다고 들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했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왜 저한테 말을 안 했어요...!”

    “아니...!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거예요. 확실한 사실이 아니었으니까요.”

    트레일이 쩔쩔매며 서둘러 헤일리의 손을 꼭 잡고 웃었다.

    “그래도 이제는 말해줄 수 있네요. 헤일리.”

    “뭘요....”

    “고마워요.”

    “!!!!”

    “헤일리는 언제나 날 기쁘게 하네요.”

    “전하...”

    트레일은 부드럽게 헤일리의 손에 입을 맞추며 눈을 감고 말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어요. 마력이 있든 없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한다면 난 지금보다도 더 행복할 거예요.”

    “전하...”

    “몰론 헤일리도 건강해야 하는 것이 조건이고요.”

    헤일리의 눈가가 천천히 붉어졌다.

    트레일은 헤일리처럼 붉어지는 눈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이제 우리는 둘이 아니라 셋이 되었네요.”

    “..... 흑.”

    “이제 우린 '가족' 인거예요.”

    헤일리의 몸이 힘없이 트레일의 품에 기대었다.

    든든한 가슴에 고개를 기울이며 헤일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터트렸다.

    존재한지도 몰랐던 아이를 위험하게 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해졌다.

    ‘미안해 아가야.’

    그리고...

    무사히 그 좁은 곳에서 악착같이 버텨준 아이가 미친 듯이 사랑스러웠다.

    헤일리의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

    제국의 황성에서는 이제 따스한 봄바람이 불었다.

    연회가 끝나고 모든 사건이 정리된 후 헤일리와 세린은 마주하자마자 서로의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서로의 기쁜 소식과 다행스런 소식에 격려하며 눈물 콧물이 쏙 빠져라 울고 또 울었다.

    제이와 트레일이 부드럽게 여인을 이끌고 거리를 벌리지 않았더라면 울음은 지속되었을 것이었다.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지나갔다.

    제이는 천천히 어두운 밤에 눈을 떴다.

    하늘에는 아직 둥근 달이 떠올라있었고 방은 어둠이 가득했다.

    달빛을 받은 푸른 눈이 스르륵 시선을 옮겨 제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세린을 담았다.

    그러자 애틋한 미소가 천천히 그의 입가에 떠올랐고 그는 버릇처럼 손을 올려 세린의 배에 얹었다.

    5개월을 채운 세린의 배는 볼록하니 조금 크게 앞으로 나와 있었다.

    아이가 세 명이라 5개월 만에 이리 커진 것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남은 5개월 동안 더 커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했다.

    걸어 다닐 수 없을 것 같은데...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의 다리를 주무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이 얇은 다리로 뱃속의 세 아이를 이고 어떻게 걸어 다니는지... 그저 신기했다.

    그러다 세린의 발이 조금 부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직이 한숨을 내쉰 제이는 그녀의 발바닥을 마사지를 하듯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안고 다녀야겠어.

    그런 그가 세린의 발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발가락이 한 번 움찔 하더니 세린이 번뜩 눈을 떴다.

    제이가 놀랄 만큼 순식간에 눈을 뜬 세린이 다급히 제 배를 잡았다.

    “세린?”

    “제... 제이...”

    “세린, 왜 그럽니까. 어디 아픈가요?”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물어보는 제이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던 세린이 이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천천히 그의 손을 제 배 위에 얹었다.

    “?”

    “제이, 자.. 잘 봐요! 알았죠?”

    “네.”

    세린이 약간 상기된 볼로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점차 제이의 시선도 그녀의 배로 향했다.

    이윽고 제이의 푸른 눈이 커졌다.

    “!!!”

    세린만큼이나 놀란 눈으로 그녀의 배를 바라본 제이의 눈동자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애정이 짙게 묻어나왔다.

    첫 태동이었다.

    아이들은 이 작은 곳에서 쑥쑥 잘 커가고 있는 것이었다.

    세린은 다정한 눈으로 제 배를 쓸어보는 제이를 관찰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어때요?”

    “신기합니다.”

    “그죠?? 저도 그래요!!”

    “아프지는 않습니까.”

    “아하하 안 아파요! 걱정 말아요 제이.”

    세린의 대답에 안심한 제이가 천천히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압니다.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전혀 힘들지 않아요. 아이들이 제이를 닮았나 봐요! 엄청 얌전하게 있어주는걸요.”

    “음...”

    ‘날 닮은 것이라면 곤란한데...’ 하는 마음을 숨기며 제이가 난처하게 웃었다.

    그래, 자신을 닮으면 어떠하겠는가.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세린과 제이가 따뜻하게 시간을 보내는 이 곳은 여전히 황성이었다.

    세린이 출산을 할 때까지 황성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되기까지에는 메리의 도움이 컸다.

    *

    몇 개월 전.

    “세 쌍둥이는 한명 임신을 한 것보다 더 손이 많이 가고 몸이 예민해져. 먹는 것도 걷는 것도 모두 몇 배는 조심할 것투성이야.”

    메리의 말에 제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어쩌면 새아가에게는 익숙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모습으로 아이를 낳는 것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싶어.”

    “... 그 말씀은.”

    “출산을 할 때까지 황성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새아가의 마음에도 안정적일 것 아니겠니. 그리고 아무리 대공저에 유능한 의원이나 주방장이 있다고 한들 황성만 하겠니.”

    “어머님....”

    메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세린을 향해 다정히 말했다.

    “우리에게도 아가 네 건강이 중요해. 우리가 네가 보고 싶거든 여기로 찾아올 테니까 황성에서 아이에게 집중하렴.”

    세린의 눈에 살짝 물기가 생겼다.

    자신을 배려하고 신경 쓰려 노력하는 메리의 마음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제이마저도 메리의 의견에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까?”

    “아가가 임신한 후부터. 아무래도 산모에게 익숙하고 심적으로 따뜻한 곳이 출산에도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여기에는 믿음직스러운 사람들이 많잖니.”

    메리의 말에 세린이 메리의 품에 기대며 나직이 말했다.

    “어머님... 정말 감사해요...”

    “어머나? 감사할 것은 없지. 우린 가족이니까.”

    그렇다.

    이제 우리들은 가족이었다.

    세린은 다정히 웃는 메리의 품에서 행복하게 웃었다.

    이렇게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태어날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도 행복할 것 같아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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