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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24화 (123/218)

124화. 신분상승

맑은 하늘 아래로 수많은 마차들이 줄을 서서 황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그 끝없는 마차의 줄에 세린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연회가 있는 날이면 항상 예전의 일이 떠올라 조금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세린의 등을 제이가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제이?”

“무서운 것입니까.”

“음... 몇 번 참여했던 연회지만... 익숙하지는 않네요.”

“그 분위기는 익숙해질 수 없지요.”

세린의 말에 제이는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는 불안해하는 그녀의 모습이 걱정스러워 천천히 그녀의 배를 쓸어주었다.

그러다 그녀의 뱃속에서부터 느껴지는 아주 작고 미세한 마력의 존재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가라앉았다가 이내 조금씩 생기를 머금었다.

그녀만큼이나 사랑스런 존재가 이 안에 있었다.

“세린, 그것을 압니까.”

“뭐가요?”

제이의 손이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세린의 배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당신의 뱃속에 세쌍둥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네에??!!!”

세린의 눈이 경악을 가득 담으며 눈에 띄게 당황하였다.

제이는 그런 세린의 배를 감싸주며 그녀의 진정을 도왔고 세린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뒤를 돌아 제이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 아직 한 달 하고도 몇 주 안 지났다고 했는데... 그게 보여요?”

“세 개의 마력이 아주 미세하게 느껴집니다. 먼지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아주 작은 마력이라 저도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선명해지더군요.”

“세상에...”

세린의 두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리다가 이내 제이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하나도 아니고 둘 도 아니고... 세 명이나...”

“세린, 저는 아이들로 인해서 세린이 위험하고 힘이 들까봐 걱정입니다.”

“음?”

제이의 걱정스런 어조에 세린이 다급히 고개를 들었고 이내 양손을 올려 제이의 볼을 부드럽게 감싸며 다정히 웃었다.

“제이.”

“.... 네.”

“여태 그 걱정을 하느라 잠도 못 자고 그랬던 거예요?”

“.....”

“으이그! 하여간... 제이도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에요!”

세린은 키득키득 웃으며 제이의 품에 기대어 말했다.

“난 걱정은 하나도 안 들어요! 나한테는 제이도 있고 아빠도 있고 오빠들도 있고 어머님, 아버님에....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곁에 있는 걸요.”

“세린.”

“그리고 우리 레인 오빠는 실력 있는 마법사라고요? 이렇게 날 안전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뭐가 걱정이겠어요.”

“..... 당신 말이 맞습니다.”

제이는 세린의 말에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뭐가 걱정이겠는가.

당신을 지켜줄 사람들은 차고 넘쳤고 당신은 안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불안했던 이유는 자신은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여인의 남자로 살아가는 것도, 그리고... 아버지가 되는 과정도 모두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었다.

“미리 아빠가 된 것을 축하해요 제이! 그것도 세 명이나요!”

행복하게 웃는 세린의 모습에 제이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사랑스런 이 사람의 미소가 불안했던 그의 마음을 씻어 내렸다.

그래, 우리에게 찾아온 이 세 명의 생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아끼고 사랑하도록 하자.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녀도,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 지켜 주리라.

제이는 견고해진 마음으로 세린을 품에 안았다.

그의 가슴에 따스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

황궁의 연회장 홀에는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울리며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클로라는 수많은 귀족들의 사이에서 인사를 나누며 제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주황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허리 아래로 찰랑였고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금색의 깃털로 장식된 머리핀이 고정되어 있었다.

약간 그을린 듯한 건강한 피부 위로 금색의 자수로 장식된 짙은 남색의 드레스가 입혀져 있었는데 가슴굴곡이 눈에 보일 정도로 깊게 파여져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 이국적이나 아름다운 외모의 클로라를 향해 남성 귀족들의 시선이 몰렸다.

클로라는 그 시선을 당연하게도 생각했고 말이다.

‘너희들 보라고 입고 온 드레스가 아니야.’

그렇다. 그녀의 목표는 두 사람이었으니까.

2황자와 3황자를 노리며 입고 온 드레스였으나 클로라는 어제 마주친 아름다운 그 사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하얀 은발과 푸른 눈동자를 다시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자 클로라는 고개를 휙 휙 저었다.

‘아냐, 정신 차려! 클로비스 그 계집애보다 못한 자리는 필요 없어!’

그녀의 두 눈이 질투로 타올랐다.

“황제폐하, 황후마마께옵서 입장하십니다!”

“...!!”

클로라의 두 눈이 서둘러 연회장의 문을 바라보았다.

웅장한 문이 스르륵 열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밝은 분홍빛의 머리카락이었고 그 다름으로 보이는 것은 저와 똑 닮은 주황빛의 머리카락이었다.

훤칠하고 무척이나 수려한 황제의 팔에 손을 끼우고 부드럽게 웃으며 등장한 클로비스의 모습에 클로라는 입안을 세게 깨물었다.

황제의 눈에도 애정이 묻어나있자 그 질투는 배가 되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황제 부부의 뒤를 이어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입장을 한 것이었다.

분홍색의 긴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은 한 사내는 화려한 이목구비가 무척이나 도드라져 보석 같은 느낌을 주었고 이어 들어온 키가 무척 큰 사람은 날카롭지만 섬세하게 세공된 것처럼 눈부신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날카로운 미남은 푸른 머리카락의 한 여인과 함께 입장했다는 것이었다.

클로라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그런 그들의 뒤로 세 인영이 또 입장했다.

지금의 황제와 닮은 한 사람은 조금씩 잡힌 눈가의 주름이 근사했고 입가에 담긴 미소가 너무도 애틋한 미중년이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구불거리는 연한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는데 맑게 웃는 미소가 참 잘 어울릴 정도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남은 한 인영을 관찰한 클로라는 가슴이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붉은 입술을 벌렸다.

그 사랑스런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사내는 어제 마주친 그 아름다운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클로라의 눈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악혼자? 아니면 정혼자?

그런 클로라의 귀에 중년의 귀부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황녀전하께서는 이제는 대공부인이라고 불리셔야 하겠네요! 그보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아름다우시니 큰일이네요. 제 아들도 두 달 전에 전하의 결혼소식을 듣고 얼마나 한숨을 내뱉었는지 몰라요.”

“안 그런 사내가 어디 있겠어요.”

뭐야! 유부남이었어?!

그것도 결혼을 한 지 두 달 밖에 안 지난 신혼?!

클로라는 입안을 깨물며 이내 시선을 휙 돌렸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금 이 상황과 차오르는 불쾌함이 그녀의 인내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 화를 어디에다 표출해야 제 심신에 안정이 올 지 고만하던 그 때였다.

홀의 음악이 멈추고 황제의 굳건한 음성이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 이 자리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지금 이 연회의 자리는 모두 알다시피 우리 제국을 위해 수많은 공로를 인정받은 기사에게 작위를 주는 날이다. 그들의 축하와 함께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우리 제국 남부의 땅에 평화를 기원하며 식을 시작하겠다.”

연회장에 가득히 박수가 울렸고 테오는 다시 입을 열어 외쳤다.

“기사 리사 스페라도와 이엔은 짐의 앞으로 나오도록!”

그의 외침과 동시에 웅성거리는 귀족들 사이로 두 인영이 나타났다.

둘 다 검은 색의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 명은 그림자를 닮은 흑발을 가진 너무도 수려한 사내였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 있던 귀족영애들이 신음을 흘리며 그를 관찰했다.

근사한 사내의 등장과 함께 한 여인도 등장했는데 그 여인을 발견한 클로라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하얀 은발을 높이 올려 묶은 그녀는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래, 어제 자신을 능멸하고 간 그 기사가 맞았다.

클로라의 입가에 이를 가는 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분노에 떨 때, 이엔과 리사가 테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테오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두 기사들은 5년 전부터 북쪽 중립지역의 전쟁에 참여하여 북쪽 제국민들을 지켰으며 3년 전, 마탑과의 전쟁에서도 황녀와 짐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 역할이 컸다. 뿐더러 남부제국과의 전쟁 속에서 황녀를 지킨 그 노력과 피와 땀을 높이 사고 있다. 짐은 우리 제국의 검이라고 칭해진 이 두 기사에게 작위를 내리려 한다. 이 점에 대해 이의가 있는가.”

“.....”

귀족들은 침묵했다.

황제와 황녀를 지켰다는데 반대를 할 리가 없었다.

테오는 긍정하는 귀족들의 모습에 한 번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이엔과 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이의가 없으니 작위를 내리겠다.”

테오는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연회장을 크게 울릴 정도로 선명하게 외쳤다.

“리사 스페라도에게 짐이 직접 새로운 성을 하사하여 리사 도베로만 이라고 칭하겠으며 백작위를 하사하겠다. 이엔에게도 새로운 성을 하사하여 이엔 프레제 라고 칭하겠으며...”

귀족들의 눈이 커졌다.

“마찬가지로 백작위를 하사하겠다.”

“!!!!”

“이의는 없다고 미리 들었으니 더 이상의 작위에 대한 언급은 일절 듣지 않겠다.”

테오가 냉정하게 선을 그으며 말하자 귀족들의 얼굴이 파리해짐과 동시에 경악하였다.

아무리 제국의 황제와 황녀를 지켰다지만 평민이었던 그가 한순간에 백작이 되다니?

귀족들의 경악 속에서 이엔도 마찬가지로 당황을 한껏 담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정도로 높은 신분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기에 더욱 그 당황은 배가 되었다.

일개 평민이었던 이엔은 백작이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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