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연회의 손님
리사는 황궁의 2기사단 단장으로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일그러진 얼굴로 말이다.
그녀의 기분이 매우 저조한 이유는 바로 세린의 문제였다.
드디어 한 가족이 되어 같은 이름을 받은 세린을 어제 저녁부터 오늘 출근 직전까지 얼굴이고 머리카락 한 올이고 마주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리사에게서 풍기는 어두운 기운에 기사단들의 훈련에 임하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걸리면 죽는다!’
나름 필사적인 생존본능이었다.
바로 그때, 살짝 삐끗한 기사를 향해 리사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똑바로 안 하나!!! 1기사단이 토벌훈련을 떠난 지금!!! 우리 2기사단이 황제폐하의 태양궁을 지켜야 하는데!!! 앙?!! 정신을 어디다 두고 온 거야!!!!”
“죄, 죄송합니다!!”
“100바퀴 추가한다!!!!”
“히익!!”
기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리사는 이를 갈았다.
‘제이 스페라도!! 죽여 버리겠어...!!’
리사는 제 가족을 향해 적의를 불태우며 이후를 기약했다.
퇴근하고는 그 분의 미소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
클로비스는 두 달 후에 있을 연회의 손님을 살피며 명단을 짜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연회가 될듯 싶어 조금 더 세밀하게 귀족들을 점검해야 했다.
테오는 그런 황후의 집무실에 들어서며 물었다.
“많이 바쁜가?”
“음? 아! 어서 와요.”
“바쁜데 내가 찾아왔나보군.”
“그 정도는 아니에요.”
클로비스가 나직이 웃자 테오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테오는 단단한 손을 뻗어 버릇처럼 그녀이 주황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클로비스가 '푸핫!' 하고 웃으며 말했다.
“세린에게 해주는 버릇이 아직도 있으니 어쩜 좋나요. 이제 우리 아가씨는 여기 없는데...”
“그건 여전히 화가 나지만... 이 버릇은 이제 당신에게만 해주는 것이니 고칠 필요는 없겠지.”
“재밌는 버릇이네요.”
“남편의 애정이라고 봐주면 좋겠군.”
“그 애정을 감사히 받겠어요.”
클로비스의 웃음기어린 초록빛 눈을 바라보다가 테오는 부드럽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따스한 햇살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게 빛났다.
테오는 부드럽게 입술을 떼며 말했다.
“바쁜데 방해하려고 온 것은 아니야.”
“이미 방해를 하고 있지만 봐줄게요.”
“흠... 그건 고맙군.”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클로비스의 질문에 테오가 제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었다.
서부의 문양이 그려진 고급스러운 봉투를 바라보며 클로비스의 입매가 천천히 굳어갔다.
그녀는 조용히 봉투를 받아들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부에서 온 건가요?”
“이번 연회에 당신의 여동생이 오려고 한다는 말이 쓰여 있더군.”
“.... 클로라가요.”
“손님을 추리는 것은 당신의 일이니 나는 상관치 않겠어. 뜻대로 해도 괜찮아.”
“.....”
클로비스는 약간 좁아진 미간으로 봉투를 받았다.
제 여동생이 동남북 제국으로 온다는 것이 반갑지 않아도 너무 반갑지 않았다.
‘로이드 세라 클로라’
서부제국의 3남매 중 2황녀이자 막내였고 그녀의 여동생이었던 아이.
동시에 아버지의 ‘사생아’였던 아이.
클로비스는 그녀를 생각하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시녀와의 실수로 태어난 그 아이를 황제는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다가 그 아이가 10살이 되어 나타나자 황족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다 황족으로 신분이 올라간 그 작은 아이는 탐욕적이었고 욕심이 많았으며 질투가 강했다.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소유욕으로 번뜩이는 눈으로 관심을 주다가 여우처럼 하나씩 뺏어오거나 망가트리기를 반복하며 즐거워하던 아이였다.
‘나, 난 그냥 언니랑 놀고 싶어서...’
제 검을 망설임 없이 던져 부러트려 놓은 아이가 남들의 앞에서 울며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참 우스웠었다.
상종을 해야 할 가치를 그 이후로 잃어버려 클로비스는 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기 시작했었다.
커서도 별로 달라진 모습을 보지 못해서 한심하다고 막 느낀 참이었다.
클로비스가 테오와 국혼을 올린다고 알렸을 때에도 질투로 그녀의 눈이 타올랐던 기억이 있었다.
클로비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는 겨우 하루지만 서부의 손님은 3일정도 머물게 할 생각이었다.
그 짧은 며칠 동안 그녀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클로비스는 그만큼 테오와 동남북 제국의 황족들을 잘 알고 있었다.
“3일 정도면 적당히 머물다가 가는 것이겠죠. 명부에 적어놓아야겠어요.”
“정말 괜찮겠나?”
“안 괜찮을 것이 뭐가 있겠어요. 당신도 있고 형제분들도 계시는데.”
“그것도 그렇군.”
테오는 피식 웃음 지으며 클로비스의 손을 잡았다.
클로비스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왜 이래요?”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테오의 태평한 대답에 클로비스가 그에게 잡힌 손을 흔들었다.
“이건 무엇을 위한 서막이에요?”
“흠...”
테오의 붉은 눈이 밝은 하늘 아래에서도 반짝였다.
클로비스의 등에 식은땀이 생길 것만 같은 위험한 눈빛이었다.
당황한 그녀를 무시하고 테오가 더욱 그녀에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럼 먼저 물어보지.”
“???”
“부부에게서 일어날 서막은 무엇인 것 같나.”
“!!!!”
“궁금하지 않더라도 대답해주고 싶군.”
“아니!! 그..!”
클로비스의 입술이 더 열리기 전에 테오의 입술이 먼저 닿았다.
황실의 부부의 오후도 평화로웠다.
*
에드윅은 테리를 안고 정원을 걸어가고 있었다.
“부우!!”
“그래, 이게 안개꽃이라고 하는 꽃이란다.”
“무무!! 부야!!”
“그래, 안개꽃의 꽃말은 맑은 마음이란다. 그 아이도 이 꽃처럼 맑고 순수한 아이였지...”
“모모!! 무!”
“그래, 네 고모도 정원에 핀 꽃들을 참 좋아했었단다.”
“꾸우브!!”
점점 우울해 보이는 에드윅을 향해 테리의 옹알이는 폭발했다.
그런 손자를 안아주며 사랑하는 딸이 시집을 간지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 에드윅은 다시 슬픔이 담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다 마주친 테리의 붉은 눈동자에 점차 미소가 담겼다.
어쩜 자기 자신을 꼭 닮은 아들을 낳았는지 새삼스럽게 신기해졌다.
“부디!! 하마!!”
“그래, 할아버지라고 하면 좋겠구나.”
“부디!!!”
“할아버지.”
에드윅의 눈가가 곱게 휘었다.
이제 자신이 벌써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것이 묘하게 가슴을 아리게 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기분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제 자식들도 지금의 테리처럼 작았을 때가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똑 닮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신기한 마음도 있었다.
어제 결혼한 세린도 저를 닮은 딸을 낳는 것은 아닐까?
‘할아부디!’
저절로 상상이 가는 혀 짧은 소리와 아장아장 걷는 작은 발.
나풀거리는 분홍빛 머리카락과 홍조를 상상하자마자 그의 입가가 허물어졌다.
더 상상했다가는 심장이 아파질 얼굴이었다.
에드윅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테리를 고쳐 안았고 이내 행복한 발걸음으로 정원을 이어 걸어갔다.
“뿌바아아으!!”
“그래.”
“땨!!”
덥석!
테리의 고사리같이 작은 손이 에드윅의 머리카락을 꽉 잡았다.
에드윅의 얼굴이 살짝 빳빳해졌지만 그저 손자의 재롱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땨뱌뱌!!”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것은 너 뿐일 것 이란다 테리.”
에드윅의 웃음소리가 정원을 울렸고 테리의 옹알이도 함께 정원을 울렸다.
*
같은 시각, 서부제국.
주황색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한 여인이 약간 그을린 건강한 피부의 제 손을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여인은 손가락 마디마다 끼여 있는 금반지를 바라보며 흥얼흥얼 웃음을 지었고 노란색의 눈동자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초대를 수락했다고?”
“네.”
“황후가 되었다고 이제 날 무시하네.”
그녀의 노란 눈동자에 섬뜩한 기운이 담겼다.
“두 달 뒤라고 했지?”
“네, 전하.”
“그럼 가는 길이 기니까 미리 손톱도 머리도 정돈해야겠지. 드레스를 고르러 가자꾸나.”
“네.”
부드럽게 침대에서 일어난 여인은 금색의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밖으로 향했다.
그녀의 이름은 '로이드 세라 클로라'서부제국의 2황녀이자 동남북 제국 황후의 여동생.
그녀는 곱게 휘어진 두 눈가에 서늘한 한기를 담았다.
누구보다 욕심이 났던 자리에 쉽게 올라간 제 언니를 미치도록 싫어하는 클로라는 이번 동남북 제국의 연회를 기회로 삼아 그 제국 황자들의 눈에 띄려는 계획을 가졌다.
꽃이나 보석과 견줄 수 없을 만큼 화사한 미남의 마법사 2황자.
출중한 실력으로 제국에서 제일 강한 기사라 칭해지는 수려한 3황자.
두 사람 중 하나의 눈에 띄기만 한다면 이 지긋지긋한 서부고 떠날 수 있고 클로비스를 위협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고르는 드레스는 특별하고 더 특별해야 했다.
클로라의 한기가 드레스 룸에서부터 자욱하게 올라왔고 시녀는 고개를 숙였다.
“아 참.”
클로라가 두 눈을 깜빡이며 제 개인시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가져와야 할 것이 있어.”
“하명해주시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란다. 주의하고 또 주의해서 가져오렴.”
클로라는 시녀의 턱을 강하게 쥔 후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인간이 먹으면 죽는 독.”
“!!!”
“아주 강한 것으로.”
“... 전하...!”
“난 그게 필요해.”
시녀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며 클로라가 말했다.
“네 혀를 자르는 것이 좋은가보지? 아니면 목을 자르길 원하니?”
“!!!!”
“이건 명령이란다. 네가 찾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좋아.”
“....”
시녀의 눈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라는 그 수긍의 모습에 밝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말을 잘 듣는구나.”
“......”
클로라의 노란색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고 천천히 다시 드레스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남북 제국으로 가는 날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어보였고 드레스를 고르는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