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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17화 (116/218)

117화. 다시 함께

트레일이 가고 침대에 앉아 계속 생각에 빠진 세린은 이엔과 리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기뻐할까.

뭘 선물하든 자신이 준 선물을 받고 기뻐할 두 사람을 알기에 보다 더 신경이 쓰였다.

제이는 그런 세린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으며 물었다.

“고르기 어렵습니까?”

“네에... 뭘 해줘야 둘 다 기뻐할까요?”

“세린이 주는 것이 어떤 것이든 기뻐할 겁니다.”

“그러니까 더 고민이에요...!”

‘으아’ 소리를 내며 제이의 가슴에 등을 기댄 세린은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

제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세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앞으로 두 달이나 남았으니 우리 둘 다 충분히 고민해보도록 하죠.”

“그래야겠죠??”

“네. 그리고 일어난 김에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까요.”

“헉!! 맞아요! 얼른 인사드려야죠!”

제이의 말에 다급히 일어선 세린은 허겁지겁 입고 있던 드레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제이를 올려보며 물었다.

“저 어때요?? 안 이상해요?”

“흠...”

제이의 수려한 얼굴에 잠시 고민이 담기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여 세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뜬금없는 입맞춤에 놀란 세린이 얼굴을 붉히자 제이가 근사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예뻐서 걱정입니다.”

“제이!”

“한 번만 더 입을 맞추는 것은 안 되겠습니까.”

“끄아!”

세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고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닿아온 입술에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고 저절로 아찔해진 느낌에 다리가 휘었다.

제이는 안정적으로 세린의 허리를 받쳐 안았고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세린은 그의 푸른 눈이 어제 밤처럼 짙어보였고 굉장히 거친 느낌을 받았다.

뻐끔 뻐끔 입술을 벌리다가 이내 확 하고 얼굴을 붉히며 제이의 품에 가만히 안겼다.

제이는 그런 세린의 반응이 귀여워 나직이 웃으며 그녀를 더 세게 감싸 안았다.

키 차이로 인해 저절로 그의 가슴에 기댄 세린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나만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만 당하는 기분이고...”

“하하하.”

제이의 입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린은 소리 내어 웃는 제이의 모습이 드물어서 신기한 눈으로 고개를 올렸다.

환하게 웃는 그 아름다운 미소가 세린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제이는 곱게 휘어진 눈매를 하고 말했다.

“제 심정을 아신다면 생각이 분명 바뀌실 겁니다.”

“.... 제이는 무슨 심정을 하고 있는데요?”

“흠....”

그가 말을 아낄 정도의 심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한 세린을 향해 제이가 세린의 귀에 가까이 입을 가져갔다.

속삭이는 제이의 목소리와 함께 세린의 얼굴이 미친 듯이 타올랐다.

“으악!!! 제이!!”

“그리 놀라시니 섭섭하네요. 아직 시작의 시작도 이야기하지 않았는걸요.”

“ㄴ, 네에에??!! 제이...!”

말문이 막힌 세린이 어버버 거리자 제이가 시원하게 웃었다.

“일단 갈까요.”

“그.. 으그... 네에...”

뭔가 당한 기분이지만 일단 그가 이끄는 손길에 맞춰 걸어가는 세린이었다.

세린이 대공부인으로서 시작하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

같은 시각, 이엔은 대공저의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후우...”

마음을 먹은 듯한 짙은 심호흡 뒤에는 다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은 침묵이 이어졌다.

검은 머리카락이 스르륵 그의 눈가를 간지럽혔다.

그러나 미동도 없는 금빛 눈동자는 무언가 깊은 고민으로 인해서 그 색이 짙어져 있었다.

대공저의 웅장한 문이 뚫릴 것만 같은 시선이었고 대공저의 문지기가 매우 난처해진 모양새였다.

이엔은 제 제복을 한 번 눈으로 살펴본 뒤 다시 깊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굳은 손길로 망설임 없이 대공저에 서 있는 문지기에게 말했다.

“황실 호위기사단 소속 이엔이 방문했다고 알려주십시오.”

문지기의 밝아지는 표정에서 ‘드디어’ 라는 말이 쓰여 있는 듯 했다.

“대공작님을 뵈러 오셨습니까?”

문지기의 질문에 이엔은 조금 민망한 모습으로 볼을 긁적였고 이내 부끄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대공작님과 대공부인께 인사를 드리고자 방문했습니다. 그리 전달해주시겠습니까.”

“네, 그리 전하겠습니다.”

문지기가 서둘러 대공저의 안으로 들어섰다.

*

제이와 세린은 아인과 메리를 향해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세린의 '아버님.', '어머님.' 호칭에 환한 미소를 담은 부부가 참 귀여워보여서 제이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며느리가 된 세린이 그리도 좋을까.

메리는 세린의 작은 손을 꼭 마주잡으며 햇살처럼 웃었다.

“세린, 밤에는 잠자리가 편했나요?”

“네! 너무 따뜻하고 편하게 잤어요. 창문에서 보이는 정원도 너무 예쁘더라고요.”

“세린의 눈에 예쁘다니 다행이에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는 두 여인들이 참 다정해보였다.

아인은 차를 입가에 대며 작게 미소를 지었고 제이도 부드럽게 웃으며 세린을 바라보았다.

“그럼 세린, 아이는 몇 명 정도 낳고 싶나요?”

“푸웁!!!!”

“......”

메리의 급작스런 질문에 아인은 차를 내뿜을 위기에 처했고 제이의 미소는 굳어버렸다.

세린은 커다란 눈으로 메리의 말을 인지하려고 했고 천천히 얼굴이 빨갛게 익어갔다.

“어... 어...! 저, 저기...”

“세린.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요.”

제이는 얼굴 가득 당황을 담으며 어버버 거리는 세린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며 말했다.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니 둘이서 산책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세린은 제이의 손에 이끌리면서도 착실하게 붉어진 얼굴로 아인과 메리를 향해 인사를 했고 정원으로 나섰다.

아인은 나가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세린에게 웃어주다 메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며느리를 놀리는 재미에 빠지면 곤란해. 제이 성격을 알지 않나?”

“후후... 세린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할걸요? 믿을 수 있는 방패가 있으니 제이도 놀리기 쉽다고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죠!”

“흠...”

일리는 있는 말이기에 아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오랜만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말리려다가도 멈칫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아인에게 메리는 하나뿐인 여인이자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

제이는 세린의 손을 잡고 정원의 장미를 구경하고 있었다.

세린은 손에서부터 느껴지는 제이의 온기에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메리 부인은 여전하세요. 예전에도 늘 생각도 못했던 일로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같이 살다보면 세린도 익숙해지겠지요.”

자신은 아직 태어난 후 21년 동안 익숙해지지 않아서 문제지만 말이다.

세린은 제이의 말에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제이는 아이를 좋아하나요?”

“아이라...”

제이의 푸른 눈이 기대로 가득한 세린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제 주먹만큼 작은 얼굴과 살랑거리는 분홍빛 머리카락에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작은 인영을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동그란 눈동자를 하고 작은 손가락을 펼쳐 제게 달려온 그 작고 연약한 생명체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아빠.'

그리곤 환히 미소를 지으며 제 품에 안길 것이다.

제이의 눈이 다정하게 빛났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녀와 자신의 아이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울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러던 중 세린이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제이를 닮은 아들도 너무 귀여울 것 같아요!”

‘나를 닮은 아이?’ 제이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제이의 머릿속에 은발에 푸른 눈을 가진 작은 인영이 나타났다.

그 작은 아이는 얼굴에 미미한 비웃음을 띄우며 자신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저를 먼저 안아주실 테지요.’

그리곤 티 없이 맑은 웃음으로 세린의 품에 안겼다.

제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제이?”

“.... 세린.”

“네!”

“당신을 닮은 딸이 예쁠 것 같습니다.”

“!!”

세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제이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도 좋지만 역시 당신을 닮은 딸이 보고 싶습니다.”

“제, 제이...”

부끄러워하는 세린이 귀엽다는 생각과 동시에 제이는 깊은 고민에 빠져갔다.

아들이 태어난다고 해도 부디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공작님.”

“?”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 제이가 뒤를 돌아보았고 시종이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황실 호위기사단 소속 이엔경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이엔이?”

“이제 왔나보군.”

세린의 얼굴에 놀라움이 묻어났지만 이내 반가운 미소가 자리 잡혔다.

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방으로 안내하도록. 우리도 바로 가겠다.”고 일렀다.

시종의 발 빠른 준비로 손님방에 도착한 이엔은 곧바로 세린과 제이를 만날 수 있었다.

세린이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이엔!”

“잘 지내셨습니까.”

“응! 이엔은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 이후로 못 본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형식적인 의미 같았지만 하루를 떨어져서 지낸 적이 없는 둘이기에 제이는 저 인사의 진심을 이해했다.

제이는 세린을 향해 다정히 말했다.

“제가 일하는 동안은 이엔이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황실이나 북부와 남부제국으로 근무를 떠날 날이 많아 그가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느꼈거든요.”

“네에?!”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엔이 먼저 수락을 원한 일이었습니다.”

“이엔??”

세린의 커진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엔이 미소를 지었다.

“부디 이번에도 전하를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이엔....”

세린의 눈이 애틋한 감정에 감싸였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려 노력한 그를 알기에 더욱 애틋했다.

세린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이엔을 향해 말했다.

“잘 부탁해.”

“감사합니다. 언제나 전하를 지키는 기사로서 맹세하겠습니다.”

부디 그녀의 행복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며 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이엔도 대공저의 가족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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