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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16화 (115/218)
  • 116화. 방해꾼

    “으으으...”

    세린의 신음과 함께 아침을 알리는 새의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몽롱한 얼굴로 눈을 뜬 세린은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고 몽롱하니 열려진 동공 안으로 보이는 단단한 가슴에 잠시 생각을 멈췄다.

    살짝 시선을 내리니 배에 자리 잡힌 근사한 근육들이 보였고 다시 시선을 올리니 햇빛보다 눈부신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천사가 이런 얼굴이 아닐까 싶어서 세린이 조심스럽게 그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고 이내 화사한 그 얼굴에 깊은 미소가 자리 잡았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스르륵

    “힉!”

    큰 손바닥이 세린의 맨 허리를 감쌌다.

    따뜻한 온기의 감촉에 놀란 세린이 기겁을 했으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실은 그가 바짝 그녀를 제 품에 안았다.

    어쩌다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은 세린은 동그란 눈을 올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 떠져있는 지 몰랐던 그의 푸른 눈동자가 온전히 자신을 담았다.

    참 잘생겼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세린의 볼이 천천히 달아올랐다.

    낮은 목소리로 제이가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몸이요?”

    “아픈 곳이 없는지요.”

    “아...”

    세린이 눈을 크게 뜨며 제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온통 울긋불긋한 마크들이 가득해서 다시 고개를 위로 올렸고 허리에서부터 다리에 나타나는 작은 통증에 눈가를 살짝 일그러트렸다.

    제이의 눈이 걱정을 담았다.

    “많이 아프십니까.”

    “아니... 괜찮아요! 그냥 조금 아려서...”

    “이런... 제가 너무 힘들게 했나봅니다.”

    “그... 그렇지는 않아요!”

    세린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짙은 홍조를 담았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제이의 욕구는 멈추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칠어졌었다.

    그러나 본인도 나쁘지 않았었기에 딱히 뭐라고 말도 못하고 그녀의 얼굴만 붉어져만 갔다.

    제이는 그런 세린의 수줍은 얼굴이 귀여워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탄식처럼 한숨을 내뱉었다.

    “후...”

    그녀를 힘들게 만들지 않기로 다짐한지 몇 분이 되었다고... 벌써부터 말썽인지.

    제이는 애써 시선을 돌린 후 세린을 제 품에 안아주며 말했다.

    “식사를 하셔야지요.”

    “네에~!”

    “그럼 식사 전에는 먼저 씻어야겠지요.”

    “음? 그렇죠?”

    세린의 긍정에 제이의 얼굴에 근사한 미소가 담겼다.

    눈은 짐승이 먹이를 포착했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뭐지...?

    “그럼 같이 씻을까요.”

    “... 느아...?!”

    “어차피 지금 세린 스스로 움직이기 힘이 들 겁니다.”

    “아, 아니.. 움직일 수 있어요!”

    벌떡

    다급히 세린이 몸을 일으키자마자 허리와 허벅지에 묵직한 고통이 휩쓸었다.

    “헉!!”

    “저런... 괜찮으십니까.”

    제이는 난처한 말투를 하고 조심스럽게 세린의 몸을 받아 안아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세린을 안고 방에 딸려 있는 욕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삐쭉 입술을 내밀었다.

    자신은 이리 아파서 힘든데 그는 멀쩡하게 잘만 일어나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시선에 닿는 아름다운 몸과 더 아름다운 얼굴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버렸다.

    누구의 남편인지 잘나도 너무 잘나서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세린의 흐뭇한 마음은 단 5분 만에 멈췄다.

    제이의 사랑은 욕실에서 역시 불타오를 것이라는 걸 세린은 뒤늦게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

    세린은 부드러운 이불에 감싸여 제이의 등에 기댄 자세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잔뜩 토라진 얼굴로 제이를 흘겨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제이 미워요...”

    제이는 난처하게 웃으며 세린의 앞으로 스프와 빵을 옮겨주었다.

    세린은 툴툴거리면서도 부드러운 빵과 스프를 먹으며 안정을 되찾아갔다.

    결국 제이와 목욕(?)을 하고 식당까지 내려갈 힘을 잃은 세린을 위해 방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제이의 품 안에서 빵을 먹으며 부드럽게 웃은 세린은 이내 빵을 뜯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제이! 아 해봐요.”

    “아.”

    세린의 이야기에 바로 입을 열은 제이는 세린이 뜯어준 빵을 받아서 먹으며 작게 웃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만 있고 싶은 욕심이 풀풀 올라왔으나 이내 그녀의 등에서부터 허리, 그리고 그 밑까지 제 자신이 물고 빨고 잘근거린 흔적들을 발견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만해야했다.

    그러나 그녀의 피부에 닿기만 해도 반응하는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까.

    지금 그 결심이 몇 번이나 무너졌던가.

    제이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세린의 작은 맨 어깨에 제 고개를 올렸다.

    달콤한 향기가 훅 끼쳐오자 제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또....’

    쉴 틈 없이 자신을 자극하는 세린의 존재에 제이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고 세린은 그저 맛있게 빵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제이의 고민을 알게 된다면 과연 그녀는 어떤 반응을 하려나.

    그러던 중이었다.

    똑똑

    “응?”

    “무슨 일이냐.”

    입에 가득 들어간 빵으로 인해 부풀어진 볼을 하고 문을 바라본 세린과 날카로운 눈을 한 제이가 차례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문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손님이 오셔서...”

    “손님?”

    “우웅?”

    빵을 삼키느라 바쁜 세린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제이가 묘한 눈빛을 했다.

    어쩌면 예상을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제이의 미간에 체념이 담겨갔다.

    시종이 난감하다는 듯 문 밖에서 입을 열었다.

    “제국의 3황자 전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

    “쿨럭!!”

    그래,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부부가 된 후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의 첫 날 아침부터 방문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제이는 놀란 세린의 등을 두드려주며 다정히 물었다.

    “움직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쿨럭...! 아, 아니... 네에..”

    그런데 오빠가 왜 갑자기...?

    세린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 것과 동시에 부드러운 동작으로 제이가 세린을 이끌었다.

    세린은 눈을 깜빡였을 뿐이었는데 제이의 손길에 실내 드레스로 갈아입혀졌고 부드러운 숄에 감싸여 있었다.

    세린은 놀란 눈으로 그런 제이를 바라보자 그가 곱게 웃으며 와이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그의 조각같이 눈부신 몸이 셔츠 속으로 사라졌고 단추 사이로 하얀 속살이 감춰지자 세린은 묘한 아쉬움을 느꼈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게 있던 몸이었던지라 더 그랬다.

    제이는 어느 새 검은 정장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었고 부드럽게 세린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이끌었다.

    허리와 다리가 쑤셨지만 이내 나긋한 그의 손길에서 배려가 느껴져 작은 고통에도 웃음이 나왔다.

    손님방에 도착한 제이와 세린이 열려진 문 사이로 들어섰다.

    트레일은 대공저의 창문 밖으로 정원을 관찰하며 서 있었다.

    커다란 키에 구불거리는 분홍빛 머리카락의 모습에 세린의 눈이 반짝였다.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너무도 반가운 그 뒷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빠!”

    “세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휙 고개를 돌린 트레일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세린과 제이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세린은 두 팔을 뻗어 트레일을 안아주었고 트레일은 부드럽게 세린의 등을 끌어 안아주며 물었다.

    “잘 지냈어?”

    “네에! 오빠는 밥 먹고 온 거예요?”

    “많이 먹었어!”

    “잘했어요!”

    붉게 달아오른 홍조가 귀여워 트레일이 눈빛이 맑게 빛났다.

    이윽고 제이가 부드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3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대공은 당연히 잘 지냈겠지.”

    “평소보다 더욱 잘 지내고 있습니다.”

    “.......”

    트레일의 미간이 좁아졌지만 이내 세린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말했다.

    “신혼 첫날부터 미안하지만 잔달 할 사항이 있어서.”

    “전달사항이요?”

    “응.”

    트레일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리사와 이엔에게 작위가 내려질 거야. 그간의 업적과 이번 반란군 토벌에서의 사건을 정리해서 그에 맞는 작위랑 영지를 고르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어.”

    “우와!!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그렇지.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연회를 열건데 너희도 미리 알아야 선물을 준비를 하니까! 평민이었던 이엔이랑 대귀족이었던 리사경에게 어떤 선물을 줄 지 생각보다 많은 귀족들 눈이 쏟아질 거라고?”

    “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에 세린의 눈에 걱정이 담겼다.

    귀족들의 시선보다도 어떤 선물을 해줘야 두 사람이 기뻐할지가 제일 걱정이 된 탓이었다.

    세린이 깊은 고민에 빠지자마자 제이가 트레일을 향해 물었다.

    “전하께서는 선물을 정하셨습니까.”

    “나는 이미 정했지! 검을 만들어 줄 생각이야.”

    둘 다 작위를 받는 기사들이니까 어쩌면 훌륭한 검을 만들어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은 생각이었다.

    제이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 다시 물었다.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방문해주신 겁니까.”

    “..... 말에 씨가 좀 있다?”

    “너무 감사하여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불쾌한 질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제이의 사과에 세린이 눈이 커졌다.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엥?! 아, 아니!! 왜 나한테만 그래 넌?!”

    “오빠가 삐뚤어지게 제이를 바라보니까 오해를 하는 거잖아요!”

    “야!! 아니거든?!”

    투닥이며 다투기 시작하는 남매의 모습에 제이가 부드럽게 세린을 말렸다.

    “전하, 다른 이들이 곡해하기 좋은 질문이었으니 제 실수입니다. 진정하세요.”

    “제이! 그렇지 않아요...!”

    트레일의 얼굴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허... 참... 웃겨 정말.. 야! 나도 오기 싫었거든? 훈련 가기 전에 잠깐 들린 것뿐이야!”

    “훈련이요?”

    “응. 한 달 정도 남부제국의 산길까지 행군도 해보고 토벌도 해야 해서. 연회는 두 달 뒤니까 그 안으로는 돌아올 것 같아.”

    “다, 다치지 마시고요...”

    순식간에 세린의 얼굴이 걱정으로 일그러졌다.

    트레일은 피식 웃으며 세린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내가 어디 가서 다치고 올 인간은 아니지 않냐?”

    “.... 이번에는 기사단들이랑 같이 오시고요!”

    “알았어. 너도 그동안 잘 지내고 있고.”

    “칫...”

    트레일은 동생의 투정에 개구지게 웃었고 제이를 향해 “잘 부탁한다.” 라고 말한 후 망설임 없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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