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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14화 (113/218)

114화. 고백 그리고 새로운 시작

세린과 제이의 결혼식의 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고 있던 이엔의 옆에 리사가 섰다.

이엔의 시선이 저절로 내려가며 이내 환한 미소를 담았다.

“리사님.”

“짜증나...”

“예?”

“우리 전하가 행복해 보여서 너무 기쁜데 제이 새끼도 행복해 보여서 짜증나아아!!”

“아하하...”

단순한 질투였다.

세린의 옆에 당당하게 선 제이가 부럽기도 했고 얄미워 보이기도 했으나 일단 둘이 같이 행복해 보이니 안심하기도 했다.

그런 싱숭생숭한 마음의 리사가 귀여워서 이엔은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두 분이 행복해 보이시니 다행이지요.”

“......”

리사는 입술을 삐죽이며 제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리사는 제이의 가족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식의 경호 기사로서 참여한지라 기사단 제복을 입고 있었기에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이 가능했다.

이엔은 제복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리사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이 행복한 날에 내가 고백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이엔은 생각을 마치자마자 입을 열었다.

“좋아합니다.”

“!!!!”

리사의 놀란 푸른 눈동자가 이엔을 담았다.

빳빳하게 굳어버린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던 리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휙 고개를 돌렸다.

약간 붉어진 볼을 하고 말을 아끼는 리사의 모습이 그저 귀엽게 느껴져서 이엔은 나직이 웃었다.

대답을 바라며 한 질문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리려는 의도였기에 이엔은 다시 시선을 올려 눈물을 쏟으며 우는 세린을 눈에 담았다.

이런... 그만 울고 이제 웃어주셨으면...

이엔의 눈에 웃음기가 담긴 그 때였다.

“난...”

“....?”

이엔의 금빛 눈동자가 커졌고 천천히 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제 어깨에 닿을 듯 작은 여인은 굳게 선 자세로 말을 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이나 사랑이나... 그런거 난 잘 몰라.”

“.....”

“하지만 네 마음이 진심이라는 건 잘 알겠어.”

바람에 실린 꽃잎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감쌌다.

이엔의 깊고 어두운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렸고 리사의 긴 은발도 아름답게 찰랑이며 흔들렸다.

이엔이 그토록 좋아했던 굳건한 푸른 눈동자가 이엔을 다시 담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 말이야.”

“.... 리사님?”

“그 대상이 너라면...”

“.....”

“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이엔의 금빛 눈동자가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리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담이야 멍청아.”

“.... 리사님.”

“내가 생각을 깊게 안 해서 답답할 때가 있을지도 몰라. 아는 게 없어서 너무 느릴지도 모르고 늦어질지도 몰라.”

“.....”

“그래도 기다려줄 수 있겠냐?”

이엔의 귀가 천천히 붉어졌다.

예상치도 못한 두근거림이 그의 가슴을 지배했다.

이엔은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는 그 행동이 우스워서 피식 웃다가 말했다.

“서투른 사람들끼리 잘 지내보자.”

“정말... 정말인가요...”

“그래. 진담이야. 난 농담할 줄 몰라.”

“.... 세상에.”

이엔의 큰 손이 천천히 제 얼굴을 감쌌다.

덩치에 안 맞는 앙증맞은 모습이 웃겨서 리사는 유쾌하게 웃었다.

곰같이 둔하고 강한 여인과 토끼 같은 남자의 인연이 닿았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많은 사람들은 오늘 행복을 느꼈다.

*

세린은 식이 끝난 후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드레스 룸에서 나왔다.

그리고 제 방으로 돌아와 천천히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안에 가득한 추억과 기억들이 그녀의 가슴을 슬프게 두드렸다.

어릴 적, 제 침대에 앉아 제 머리를 땋아주던 테오와 로레인의 모습.

각 방을 사용하게 된 후 항상 밤마다 책을 읽어주며 자신을 재워주던 황제였던 에드윅.

방문 밑으로 편지를 주고 받아가며 마음을 전하던 트레일과의 일상.

항상 저를 챙겨주며 엄마처럼 자신을 아껴주던 멜.

방 문 앞이나 밖이나 그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주던 이엔.

자신이 힘겨울 때마다 창문 밖에서 나타나 저를 안아주던 제이.

이제는 이 애틋한 곳을 떠나야했다.

세린의 가슴에 씁쓸함과 슬픔이 천천히 차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뒤에서부터 단단한 품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따뜻한 온기가 등 뒤에서부터 느껴지고 그토록 좋아했던 시원한 향기가 그녀를 덮쳤다.

세린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담겼다.

“제이.”

“세린.”

이제는 세린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제 호칭에 세린의 얼굴에 짙은 홍조가 생겼다.

제이는 근사한 미소를 지으며 세린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폭 안긴 그의 품이 따뜻해서 세린은 웃었다.

“슬픈가요?”

“음... 너무너무 기쁜데... 떠나려니 슬퍼지네요.”

“당연한 겁니다. 충분히 슬플 수 있지요.”

“제이...”

세린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의 눈을 닦아주며 나직이 말했다.

“울지 마세요.”

“나도 울기 싫은데 계속 눈물이 나요.”

“세린, 당신이 황성을 나온다고 이 곳과 인연이 끊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언제든 이 곳으로 들어올 수 있고 보고 싶을 때마다 달려올 수 있어요.”

“흑... 맞는 말이지만...”

“이런...”

제이는 결국 눈물이 터져버린 세린을 향해 낮게 웃으며 천천히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행복한 날일 줄 알았는데... 세린이 우니까 저도 슬퍼지는군요.”

“킁! 나 안 울 거예요...!”

세린은 제이의 말에 다급히 눈물을 닦으며 그의 품에 기대었다.

제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

“내일 출발해도 괜찮아요. 무리해서 오늘 대공저로 갈 필요는 없어요.”

“아니에요! 무리한 것이 아니니까... 얼른 가요.”

세린은 그의 큰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끼이익

닫혀가는 방문으로 세린의 시선이 떠나지 못했다.

애틋한 시선 속에서 세린은 제이의 팔을 단단히 잡았고 이내 밝게 미소를 지었다.

수 없이 많은 추억과 행복은 방 문 안으로 가둬진 것이 아닌 꽁꽁 숨겨둔 것이라고... 그리 생각했다.

언제든 찾아와 보물 상자를 열어보듯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그때마다 다시 그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리 생각하며 세린은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걸어 나갔다.

이제 자신은 새로운 행복을 찾아내었고 새로운 시작을 할 때였다.

황성의 문 앞에는 가족 모두가 모여 있었고 성의 시녀와 시종, 정원사와 기사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엄청난 인원이 황성의 앞을 꽉꽉 채웠고 그 무리 앞에서 세린은 당황한 눈동자로 웃었다.

“아니... 다들 여기까지... 왜...”

“다들 네가 가는 모습에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는구나.”

“네??”

세린의 눈이 커진 것과 동시에 세린이 그토록 의지했던 의원 '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황녀전하께서 황성으로 돌아온 이후로 황성의 정원에는 매일 아름다운 꽃이 피어납니다. 폐하와 다른 전하 분들께서도 따뜻한 온기를 가지실 수 있었고 식사도 꼬박 꼬박 챙겨서 드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사단의 무거운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황성에는 생기가 가득해졌습니다.”

“벤...”

“다 전하 덕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전하덕분에 늘 행복했습니다.”

“......”

“늙은이의 주책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알아주십시오.”

세린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벤은 주름진 눈가를 곱게 접어 웃으며 다정히 말했다.

“저희 모두가 황녀전하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전하.”

“벤... 모두들....”

“결혼... 축하드립니다.”

세린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린은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수많은 또 다른 가족들을 바라보며 맑게 웃었다.

작고 여린 귀여운 황녀전하께서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황성을 떠난다니 아쉬움이 배가 되었던 시종, 시녀들이었다.

부디 그녀가 가는 길이 꽃길이기를 바라며 그들은 세린을 향해 다정히 웃었다.

세린은 그런 그들을 향해 햇살만큼 따뜻하게 웃었다.

“다들 정말 고마워요.”

그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보던 에드윅은 작은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그녀를 제 품에 가두었다.

“행복하렴.”

“네, 아빠.”

“사랑한단다.”

“저도 너무 너무 사랑해요.”

테오는 클로비스와 함께 다가가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오빠는 아버지보다 더 널 사랑하고 있단다. 생각나면 언제든 오거라. 기다리고 있으마.”

“세린, 테리랑 저도 기다릴게요.”

“아하하 오빠... 언니! 테리도 제가 정말 사랑하고 있어요...!”

로레인도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마력이 이상해지거나 그러면 바로 연락하렴.”

“네..!”

“세린... 네가 내 동생이라서 오빠는 정말 행복해. 사랑한단다.”

“레인오빠... 저도 정말 사랑하는 걸요..”

트레일과 헤일리가 다가오자 세린은 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트레일의 얼굴이 눈물로 인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꿋꿋하게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세린!! 사랑해...!!! 오빠가 놀러갈게!!”

“전하, 축하드려요. 행복하세요.”

“아하하 오빠도 헤일리도 정말 고마워요!”

세린은 제이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눈물이 잔뜩 고인 얼굴로 맑게 웃으며 소리쳤다.

“다들... 정말 사랑해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황성에서의 추억을 남겨두고 세린의 마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세린은 떠나가는 마차 안에서 제이의 품에 안겨 펑펑 눈물을 흘렸다.

세린의 마차가 사라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황성 문에서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벌써부터 떠나간 그 사람이 그리웠고 그 미소가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황성의 문은 그 사람을 위해 열려 있을 것이었다.

*

제이는 세린의 얼굴에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의 볼에 임을 맞췄다.

“오늘 많이 울어서 피곤할 것 같군요.”

“흑... 미안해요. 행복한 날인데 울기만 하고...”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하께서 슬퍼하시는 건 당연하지요.”

“흐아... 또 눈물이 나려고 해요...!”

세린의 슬프게 일그러진 얼굴에 제이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감쌌다.

“그럼 이제 그쳐야겠군요. 여기서 더 눈물을 흘리시면 쓰러지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계속 나와요...”

“방법이 있지요.”

그 말을 끝으로 제이는 세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세린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스르륵 감겨지고 그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제이는 세린의 입 안으로 들어가 달콤함을 맛보고 하얀 치아를 훑었다.

늘 그러하듯 역시 오늘 마저도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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