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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13화 (112/218)

113화. 행복하거라

하늘은 너무도 맑았고 제국은 평소보다 더 활기찼다.

수도의 거리에서 풍기는 맛있는 음식들의 냄새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즐거워보였다.

그런 수도의 소리와 국민들의 시선이 보이는 경계의 계단에는 붉은 장미의 꽃잎들이 뿌려져 있었다.

곧 한 여인이 걸어갈 그 계단은 에드윅의 간절히 소망했던 것처럼 향기로운 꽃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부디 꽃길이기를 바라는 에드윅의 마음이 그 계단에서부터 느껴졌다.

그렇다. 오늘은 세린과 제이의 결혼식이었다.

황궁은 그런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로 바빴다.

별궁에 있던 트레일은 검은 색의 정장을 입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고 말이다.

'나 불만 있어요.' 라는 기색이 가득한 그 표정에 헤일리가 나직이 웃었다.

“전하. 아직 속상하세요?”

“.... 속상해요!! 정말 정말로!!”

“풋... 뭐가 그리 속상하신 거예요?”

“모두 다요!! 저어어언부 다 속상해요!!”

트레일은 제 정장의 옷깃을 정리하는 헤일리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세린의 결혼식을 겨우 그 장소에서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세린이 오늘부터 황궁이 아니라 대공저가 집이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이름도 이제 바뀐다는 것도 짜증나고, 이런 날마저도 걔는 너무 예뻐서 화가 난다고요!!”

“아하하하.”

결국 트레일의 투정에 헤일리가 맑게 웃었다.

트레일은 덩치에 맞지 않게 오리 입을 하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헤일리... 헤일리는 내가 속상한 게 즐거워요?”

“큽..! 흠흠... 전하.”

헤일리는 겨우겨우 웃음을 멈추고 트레일의 넥타이를 부드럽게 정리하며 말했다.

“세린 전하께서 결혼을 하시게 되셔도 가족이시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을요. 그리고 제 예상이지만 세린 전하께서 가족분들을 만나러 자주 놀러 오실 것 같아요.”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그리고 보고 싶으시다면 우리가 놀러 가면 되지 않을까요.”

“!!”

트레일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 정 보고 싶다면 자신이 대공저로 놀러 가면 되는 부분이었다.

저절로 표정이 밝아지는 트레일이 귀여워서 헤일리는 다정히 웃었다.

이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 분의 결혼이 시작될 것이었다.

테오와 클로비스는 황제와 황후로서 식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먼저 계단으로 향했고 로레인과 에드윅은 세린의 신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짙은 남색의 정장을 입은 로레인이 약간 걱정이 담긴 눈으로 대기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도 예쁜 그 아이가 오늘은 얼마나 더 예뻐 보일까.

그런 로레인의 옆에 있던 에드윅도 로레인만큼 걱정스런 얼굴로 대기실을 바라보았다.

세린의 걱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걱정이었다.

오늘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받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딸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궁상맞게 눈물이라도 나면 어찌하나.

딸의 행복한 날에 눈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내 한숨을 삼킨 에드윅은 대기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얀 피부에 입혀진 너무도 아름다운 웨딩드레스가 제일 먼저 눈에 보였고 천천히 눈을 올리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세린의 미소가 보였다.

수줍게 올라온 홍조와 생기를 가득 담은 입술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빛나는 눈동자가 곱게 휘어져 있었다.

레이스로 짜인 면사포가 그녀의 풍성한 분홍색 머리카락과 어우러지며 아래로 흘러내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숨이 막힐 듯 아름다워서 에드윅도 로레인도 말을 잃었다.

“아빠, 오빠! 저 어때요?”

세린의 물음에 잠시 침묵이 생겼으나 곧이어 에드윅이 먼저 대답했다.

“...... 너무 예쁘구나.”

“세린. 정말 너무 예쁜걸...”

“아하하하“

두 남자의 칭찬에 세린이 맑게 웃었다.

황성을 울리던 이 웃음소리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에드윅의 가슴을 스쳤다.

그의 시선이 점점 애틋해져만 갔다.

세린은 부드럽게 손을 뻗어오는 로레인과 에드윅의 팔을 잡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녀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늦춘 두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떠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너무도 가볍고 작기만 했던 여린 아이가 어느 새 이리도 아름답게 자라서 결혼을 하는 것인지...

가족들의 마음이 점차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간절함을 담았다.

부디 그녀의 새로운 시작이 행복이기를 바랄뿐이었다.

*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하늘에 꽃잎이 뿌려지며 식의 시작을 알렸다.

황제 테오가 한 팔을 뻗어 주위를 집중시킨 후 말했다.

“오늘은 우리 제국의 단 한 명뿐인 황녀 세린 레이빈 레바스찬과 제이 스페라도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이 경사스러운 날에 자리를 빛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두 사람의 앞날에 행복을 기도해주기를 바란다.”

그의 인사를 끝으로 수많은 귀족들과 계단 밑에서 지켜보던 제국민들이 박수를 쳤다.

“신랑이 먼저 입장하겠다.”

테오의 한 마디가 끝나자 계단에 펼쳐진 레드카펫 위로 하얀 턱시도를 입은 제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은발이 단정히 정리된 제이는 화사한 이목구비가 평소보다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세공된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눈동자와 다부진 몸에 딱 맞는 턱시도가 굉장히 잘 어울렸다.

긴 다리로 성큼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많은 영애들이 자신의 가슴을 감싸며 탄식을 내뱉었다.

“어쩜...”

“정말 근사하네요...”

“황녀전하께서는 참 좋으시겠어요..”

수군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제이는 테오의 앞에 섰다.

테오는 천천히 손을 뻗어 제이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잘 부탁하지.”

“늘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약속이 평생 지켜져야 할 거다. 우리 아이의 눈에 눈물이라도 난다면 용서는 없어.”

“제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제이의 굳은 대답에 테오는 인상을 천천히 피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다정히 계단 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무도 애틋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부가 입장하겠다.”

뿌려지는 꽃잎들 사이로 세린이 에드윅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향해 입장했다.

제이의 가슴이 아파질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로 다가가는 세린은 눈부셨다.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오직 세린밖에 보이지 않았다.

에드윅은 햇살처럼 웃는 세린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는 제 딸은 참 행복해보였다.

“아빠.”

그래, 내가 너의 아빠지.

너는 내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고 말이다.

“사랑해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 말투 속에서 저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음에 에드윅의 눈가가 슬프게 휘었다.

에드윅은 세린의 손을 꼭 잡고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나도 사랑한단다.”

어느 새 그녀의 고운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에드윅이 다정히 속삭였다.

“행복하렴.”

“행복할 게요.”

테오의 앞으로 도착한 에드윅을 향해 제이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에드윅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천천히 세린의 손을 제이에게로 넘겼다.

하얗고 고운 손이 자신에게서 떨어지고 이내 제이의 단단한 손에 천천히 감싸였다.

텅 비어버린 손을 말아 쥐며 에드윅은 쓰게... 동시에 따뜻하게 웃었다.

세린은 그런 에드윅을 바라보며 울컥하는 모습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머뭇머뭇 움직이던 그녀가 결국 에드윅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발견하고 눈물이 터진 얼굴로 다급히 뒤를 돌아 그의 품에 달려들었다.

“아빠!”

“... 세린?”

“정말 정말 사랑해요!”

“... 세린.”

“사랑해요...!”

딸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에드윅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제 품에서 놓아주며 말했다.

“아빠도 그렇단다.”

“흑...”

“널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어.”

그의 붉은 눈동자가 반달모양으로 휘어졌다.

“네 행복이 아빠의 행복이니까... 항상 행복해야한다.”

“.... 아빠.”

“어서 가보렴. 널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지 않느냐.”

“!!”

에드윅은 부드러운 자태로 세린의 뒤를 돌려 제이에게로 보냈다.

눈물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애틋하게 바라본 제이는 에드윅에게 다시 깊게 고개를 숙인 후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에드윅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로레인이 앉아있는 의자 옆에 자리했다.

테오는 마주 선 두 연인을 향해 말했다.

“평생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외치고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약속하겠느냐.”

“약속합니다.”

“약속합니다.”

“그럼 맹세의 키....”

술술 내뱉어진 테오의 말이 멈칫했고 세린과 제이의 눈이 살짝 동그랗게 변했다.

테오는 가늘어진 눈으로 종이를 내려다보다 이내 종이를 구기며 말했다.

“맹세의 포옹이 있겠다.”

“......”

제이는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테오의 뻔뻔해 보이는 자태에 아무 말도 못하다가 이내 체념하듯 웃으며 세린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무도 행복하게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곧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세린의 얼굴이 그 웃음의 원인이었고 말이다.

제이는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세린의 눈가를 닦아주며 맑게 웃었다.

“울지 마세요.”

“흐엉... 큽! 하지만... 기쁜데.. 너무 슬퍼요..!!”

“자주 황성으로 놀러 가도록 하죠.”

“흐으으... 네에.”

“이리와요.”

제이는 부드럽게 세린을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따스한 온기가 맞닿고 세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기대었다.

“두 사람이 지금 이 시간부로 부부가 되었음을 공표하겠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 아래에서 두 사람의 포옹을 끝으로 박수갈채가 끝없이 이어졌다.

세린은 눈물로 범벅이 된... 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이와 부부가 되었다.

로레인은 마력을 사용해 세린과 제이의 머리 위로 꽃잎들을 날렸다.

나부끼는 꽃잎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게 빛났고 에드윅은 그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작고 여렸던 자신의 막내딸은 이제 한 명의 여인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부부가 되었다.

떠나간 자식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생겼다.

아리엘도 어쩌면 같은 마음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지도 몰랐다.

에드윅은 미소를 지으며 가슴 속으로 말했다.

‘행복하거라.’

결혼식은 화려한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트레일의 얼굴도 화려한 모습으로 눈물을 쏟았다는 여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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