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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10화 (109/218)

110화. 테오와 클로비스

세린을 제외한 황족들이 모두 모여 중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테오는 자신의 앞으로 도착한 구혼서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그 사람이 맞았음에 그의 미간이 왈칵 좁아졌다.

에드윅이 그런 테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페라도 대공저에서 들어온 구혼서냐.”

“.... 그런 것 같습니다. 하아...”

“형님!! 찢어버려요!! 아니 태워버려요 그거!!”

트레일의 노발대발을 들으며 테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구혼서를 바라보며 이를 악 물었다.

결혼이라고?

누가 허락할 것 같으냐.

감히 누구를 데려가려고 수를 쓰는 것인지...

아직 자신들은 세린과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고 그녀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 같은 위기에 테오도 그리고 다른 가족들마저도 구겨진 미간이 펴지지 않았다.

똑똑

“누구냐.”

“아빠, 오빠.”

“!!!!”

세린의 갑작스런 등장에 허둥지둥 일어난 황족들은 서둘러 문을 열고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세린은 당황을 담은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조금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웃었다.

“제이공자에게서 온 건가요?”

“.... 그렇더구나.”

“아하하 이거 생각보다 엄청 부끄럽네요...”

세린은 두 볼에 홍조를 가득 안고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칼같이 약속을 지키려는 제이의 태도도 귀여웠고, 그런 저를 보내기 싫어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귀여워서 그저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여전히 모두에게 과분하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로레인이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

“저기... 세린.”

“네?”

“정말 결혼이 하고 싶니...?”

진짜? 정말로?

그의 질문에 잠시 눈을 굴린 세린이 이내 가족들을 온전히 담으며 맑은 웃음을 짓고 말했다.

“네! 하고 싶어요!”

쿠구궁

황족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트레일은 창백한 안색으로 세린을 향해 외쳤다.

“안 돼!!!”

“... 오빠?”

“아, 아직 어려!!! 너무 어려서 안 돼!!”

“... 저 성인인데요?”

“아버지!! 여성의 성인 나이 기준이 30세... 아니 50세로 바꿔버려요!!!”

“.....”

트레일의 고집 아닌 고집에 세린이 입을 쩍 벌리는가 하면 에드윅과 테오는 그 제안에 조금 솔깃해졌다.

그정도로 세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아직 더 안아주며 살고 싶었다.

그런 가족들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세린도 선뜻 허락을 해달라고 말할 할 수 없었다.

로레인은 세린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조금만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겠니?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가족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란다.”

세린은 시무룩해지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세린이라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 네 오빠.”

“세린, 우리 여자들끼리 담소라도 나눌까요?”

“언니...”

클로비스가 헤일리와 세린을 이끌고 부드럽게 밖을 향했다.

그러나 여인들이 나가고 나서도 그들의 회의는 결정이 나지 않았다.

클로비스는 황궁의 정원에 앉아 작은 티타임을 열었다.

제 앞으로 온 꽃차를 바라보며 세린이 조금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

로레인이 피운 꽃이 찻잔 속에서 예쁘게 피어났다.

헤일리는 그런 세린을 향해 다정히 웃으며 물었다.

“전하께서는 공자를 정말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힉!! 아... 그, 그게...”

세린의 두 볼이 확 붉어졌다.

며칠 전의 밤이 생각난 탓이었다.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키스하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그 시간이 참 달콤했었다.

세린은 수줍게 웃으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어머나...”

헤일리와 클로비스의 눈이 사르륵 녹아내리듯 휘었다.

사랑을 하고 있는 세린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세린은 두 사람의 애틋한 시선을 받으며 미소를 짓다가 이내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아빠랑 오빠들 말처럼 결혼은 아직 이를까요...?”

“음....”

세린의 물음에 클로비스와 헤일리가 침음을 삼켰다.

따지고 보면 절대 이른 건 아니었다.

이미 성인식을 치룬 17살, 혹은 18살의 나이에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는 영애들은 차고 넘쳤다.

그런 대부분의 예시에 비해 세린의 나이는 20살이었고 몇 개월 뒤면 21살이 된다.

이르다기보다는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클로비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른 것은 아닙니다. 단지 세린을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내기에 섭섭함을 느끼는 것일 테지요.”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저와 헤일리 같아도 이리 예쁜 세린을 보내기 싫은 것을요.”

“언니...”

세린은 클로비스의 말에 볼을 붉히며 맑게 웃었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클로비스를 향해 물었다.

“그럼 언니는 어떻게 테오 오빠와 결혼을 하게 된 거예요?”

“음?”

“줄곧 궁금했었어요! 두 분은 어디에서 만나 결혼을 결심하신 건가요?”

세린의 물음에 헤일리도 눈을 반짝이며 클로비스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던 두 여인들이었다.

클로비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그리도 궁금하셨나요?”

“네!! 너무너무요!!”

“하하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니 너무 기대는 말고 들어주세요.”

테오와 그녀가 만난 날은 클로비스가 제이를 마주하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북쪽 지역의 경계와 전투 대비를 위해 남부에서 전사라는 이름으로 도착한 클로비스는 동북제국의 황태자 테오를 처음 만났다.

햇빛을 머금은 화려한 분홍빛 머리카락과 그 밑으로 자리한 날카로운 분위기의 무척이나 수려한 이목구비가 시선을 끌었다.

제복이 잘 어울리는 건장한 체격과 큰 키의 그 사람은 말에서 부드럽게 내린 그녀의 앞에 한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동북제국의 황태자 테오 위르실 레바스찬 입니다.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를 전합니다.”

“로이드 리빈 클로비스입니다. 제국에 평화를 기원합니다.”

딱딱한 인사를 건넨 사람치고는 악수하며 잡아오는 손길이 부드러운 사내였다.

붉은 눈동자 속에 담긴 제 모습을 바라보며 클로비스는 이내 손을 놓았다.

테오는 그런 그녀를 에스코트하듯 이끌며 북쪽의 상태와 지금 문제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다.

키가 큰 자신보다도 훨씬 키가 커서 고개를 들고 봐야하는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 날카롭고 딱딱한 사람이라는 것도 제외하면 말이다.

그 후, 북쪽 지역으로 내려온 죄인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과 산적, 도적들을 정리해 나가며 클로비스는 테오와 자주 붙어있었다.

그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지원요청에 응한 것이라 당연한 일이었지만 테오는 생각보다 그녀를 꼼꼼히 챙겼다.

하지만 조금씩 미묘하게 그의 세심함이 선명해진 것은 클로비스가 동북의 기사에게 막말을 퍼부어내던 제 제국의 기사를 죽여라 패버린 후부터였다.

그녀의 식사, 사무, 휴식시간 등 자신을 세심히 챙기기 시작하는가 하면 그녀의 휴식시간마다 자주 찾아와 작은 담소를 나누고 가는 일이 잦아진 점이었다.

“클로비스.”

이렇게 제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모습도 조금 낯설었다.

멍하니 테오를 바라보는 클로비스를 향해 테오가 다시 이름을 불렀다.

“클로비스.”

“네?”

“듣고 있는 게 맞나요?”

“아... 잠시 딴 생각을 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약혼자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느에...”

저절로 괴상한 소리를 내뱉은 클로비스가 당황을 가득 담은 눈으로 테로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물어봐?

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클로비스는 착실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결혼생각을 아직 해보지도 않았고요.”

“흠.”

테오는 그런 클로비스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의 미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근사해서 클로비스의 눈이 커졌다.

테오는 그런 클로비스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안을 하나 하고 싶군요.”

“... 제안이요?”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 웃음기가 서렸다.

“이제 곧 그대는 서부로 돌아가겠지요.”

“아, 네.”

“추후에 다시 우리가 마주할 때에도 그대가 약혼자가 없고 나도 없다면 동북 제국의 황후가 되어주세요.”

“느에에에에??”

“큽”

클로비스의 소음 같은 괴상한 소리를 들으며 테오가 웃음을 참았다.

커다란 손으로 제 입가를 가린 테오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클로비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테오의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왜 저한테...? 아니, 전 결혼에 대해서도 약혼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테오는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두 팔을 꼬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되겠군. 그리고 왜 그대에게 이 제안을 하냐고 한다면...”

그가 클로비스에게 다가왔다.

클로비스의 고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고 테오의 고개는 조금씩 내려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 닿았다.

“내가 원했던 사람이 그대라서다.”

갑작스러운 반말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가 반말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클로비스는 그의 붉은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유쾌함을 읽었다.

“여태껏 황후로 적합할 인물의 이미지를 그렸던 것이 무색해질 만큼 그대는 색깔이 강해.”

“.....”

“그리고 난 그런 사람을 원했다.”

“.....”

테오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를 올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대답은 내일 오전 중으로 듣고 싶군.”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벙 찐 것은 클로비스 한 명 뿐이었다.

클로비스는 오랜 고민 끝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에 언제 만날 줄 알고?

동북과 서부가 만날 접점은 생각보다 거의 없었기에 클로비스는 조금 시원해진 가슴으로 테오에게 말했다.

그러마, 하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서부로 떠난 클로비스는 단 며칠 만에 아무 생각이 없던 제 머리를 원망했다.

북쪽지역 경계의 지원군을 보내준 서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황태자가 직. 접. 방문한 것이었다.

테오는 근사하게 웃으며 클로비스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군. 한... 일주일 만이던가?”

“..... 저.. 저... 전하..??!!”

“보고 싶었다. 내 약혼자를 말이야.”

“끼악!!!!”

독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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