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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09화 (108/218)

109화. 구혼서

이엔이 떠나가고 리사는 천천히 손님방 문을 열고 제 방으로 향하려 몸을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제 품으로 달려든 한 사람을 붙잡아 안았다.

덥석!!

“리사...!!!”

“.... 어머니?”

리사의 품에 뛰어든 사람은 바로 메리 스페라도였다.

메리부인은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리사의 얼굴부터 몸을 샅샅이 만지고 살펴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왔다면 왔다고 이야기를 했어야지!!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아, 아픈 곳은?? 더 아픈 곳은 없는 거야?? 다친 곳도??”

“없습니다. 진정하세요.”

“어떻게 진정을 하니?! 죽을 뻔했다며!!”

“어머ㄴ...”

“엄마라고 불러!! 이 와중에 무슨 어머니야?! 정말 이제 괜찮은 거야? 이리 와봐! 몸 좀 살펴봐야겠어!”

메리는 창백해진 낯으로 리사를 이끌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가지 않으려 힘을 주는 리사에게 메리는 모든 애교를 쏟아 부었고 딸을 질질 끌고 가는 것에 결국 성공했다.

그 후 메리는 방 안에서 한참을 리사의 몸을 관찰했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리사를 천천히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온통 상처투성이와 흉터로 범벅이 된 딸의 몸이 메리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마스터와 마스터간의 전투가 서로의 목숨을 위협시킬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메리도 인지하고 있었다.

승자가 팔이 없어지거나 다리가 없어지거나 많게는 서로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절망스러웠다.

너무도 가슴이 아팠고 마음이 무너졌다.

그녀는 사랑하는 딸의 그 처참한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메리는 눈물을 꾹 참으며 품에 안긴 리사를 향해 말했다.

“살았으니 됐어...”

“....”

“그거면 된 거야....”

“어머니.”

“네가 살아있으니까... 엄만 그거면 됐어...”

리사는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메리를 바라보며 이내 그녀를 두 팔을 뻗어 안아주었다.

“울지 마세요.”

“.... 놀라서 눈물이 난거야!”

“흉터는 내일 황자님께 간다면 나을 수 있는 것이라 들었어요. 걱정 마세요.”

“리사 너 정말!!”

메리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리사를 껴안았다.

“또 이렇게 다쳤단 봐라....! 매일매일 뽀뽀하고 안아주고 애교부릴 거야.”

“다시는 다쳐오지 않겠습니다.”

리사의 정색어린 대답에 작게 미소지은 메리는 한숨을 내뱉으며 리사의 은발을 쓰다듬었다.

힘도 권력도 강하면 강한 사람일수록 공격받고 상처를 받기 쉬운 위치가 된다.

아직 어린 딸이 그런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 못내 가슴이 미어졌다.

차라리 검술에 재능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제가 엄마라는 사람이라서 그렇게밖에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살아있으니 되었다고.

지금 제 품에 안겨있으니... 그것이면 만족한다고.

그리 생각하며 메리는 눈물을 삼켰다.

*

다음 날, 리사는 황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먼저 인사를 올렸다.

테오는 그런 리사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간 고생했다. 그대가 다친 것에는 우리 탓도 크지. 사죄할 기회를 주겠나.”

“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포상휴가를 주신다면 없던 일로 치겠습니다.”

“.......”

잠깐 말문이 막힌 테오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수락했다.

뭔가 말려든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저 그 기분을 넘겨버리고 나직이 말했다.

“지금 2황자 궁으로 가보도록. 그대의 흉터를 지워주고 싶은 것 같더군.”

“..... 네.”

“마차를 대기시켜놓았다. 내려가서 타고 이동하도록.”

테오의 말을 끝으로 리사는 고개를 숙인 후 이내 뒤를 돌아 태양궁을 빠져나왔다.

천천히 손을 들어 제 목을 감싼 리사는 마차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의 위험성은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아프지도 않은 이 상처를 위해서 황자가 그런 위험한 마법을 사용한다고?

그리고... 치료도 받을 틈 없이 죽어버린 제 기사들을 내버려두고 자신만 치료받고 살아남은 것 자체로도 이미 숨이 막힐 듯 제 스스로가 역겨웠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흉터를 지우라고?

리사의 푸른 눈이 점차 짙어졌다.

그런 그녀의 고민을 모르고 마차는 빠르게 2황자의 궁 앞으로 도착했다.

로레인은 마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궁 앞에서 서 있었다.

리사의 흉터를 지우기 위해서 사용해야하는 마력의 양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아 마음을 조금 긴장시키고 있었던 로레인이었다.

이윽고 마차에서 꾸물거리던 리사가 온전히 마차 밖으로 내렸다.

로레인은 고민이 가득해 보이는 리사의 표정을 발견하고 이내 입술을 꾹 닫았다.

그녀가 저런 표정으로 왜 그러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리사는 로레인을 향해 몸을 바로하며 버릇처럼 뒷짐을 지고 입을 열었다.

“2황자님을 뵙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군. 안으로 들어서지.”

“전하.”

그녀를 들이려는 로레인의 말에 리사가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어쩌면 그가 예상했던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리사는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흉터는... 제가 안고 가야할 그저 작은 자국일 뿐입니다. 2황자님을 위협시키면서까지 지우고 싶지 않고 굳이 지워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

로레인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어째 제 주변 사람들은 참 말을 안 듣는다고... 그리고 항상 슬픈 상황에 휘말려 있다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뱉은 후 리사를 올곧게 바라보았다.

“그대의 마음은 알겠어. 그런데 그 흉터를 바라보며 늘 힘들어 할 아인대공과 대공부인은 생각을 하고 말하는 부분인가?”

“....!!”

“그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이 경 자네일 것인데... 경에게는 중요치 않은 부분인 건가?”

“.....”

리사의 귀에 환청처럼 메리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살아있으니 되었다고.

그것이면 되었다고.

리사의 푸른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기적으로 생각한 자신이 멍청해 보였고 흉터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갔다.

로레인은 이내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세린마저도 그 흉터를 본다면... 내가 오빠라서 장담하지만 그 아이는 널 볼 때마다 늘 슬퍼할 것이다.”

“......”

사랑이 많고 정이 많은 여린 그 분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었다.

리사는 그 여린 사람의 앞에 서기 위해서 기사가 되었고 그런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기사단에 입단했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의 흉터는 지워지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흉터를 지우러 가는 그녀의 발걸음에서 죄책감의 무게가 느껴졌다.

로레인은 그런 그녀를 위해서 마력을 쏟아 부었고 이내 그녀의 하얀 피부를 되돌릴 수 있었다.

매우 지친 기색이 가득한 로레인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리사는 곧바로 마차에 올랐다.

목적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마차는 부드럽게 그녀를 이끌었다.

리사의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고 이내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마차의 창문에 기대었다.

‘기사단장 자리를 내려와야 하나...’

그저 그런 고민을 하는 그녀의 눈이 노을을 받아 참 슬퍼보였다.

어느 순간 마차가 멈추고 그녀가 타고 있던 마차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리사는 피곤에 젖은 푸른 눈을 돌려 도착한 목적지를 살폈고 이내 커다란 눈동자를 하고 다급히 마차 밖으로 내렸다.

노을의 따스함을 한껏 담은 분홍빛 머리카락이 구불거리며 허리 아래로 찰랑거렸고 다정한 연두색 눈동자가 곱게 휘어진 그 사람은 리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사는 마차 밖으로 내려 그런 그녀의 앞에 섰고 이내 소리쳤다.

“황녀전하...!”

“리사경...”

세린의 눈가가 붉어졌다.

세린은 천천히 리사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

달콤한 향기가 리사의 코를 자극했다.

세린은 자신보다 키가 큰 리사를 있는 힘껏 안아주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전하...”

“정말 정말 진짜로!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

자신의 무사를 위해 그녀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 지 알 것 같았다.

리사는 푸른 눈동자로 세린을 두 눈에 담았다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슬프게 미소를 짓는 이엔을 바라보았다.

내가 뭐라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이리 걱정하는 것인지.

도대체 내가 뭐라고.

리사는 천천히 손을 뻗어 세린을 마주 안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요 리사...! 이제 다치지 말아요!”

“네.”

“아픈 것도 안 돼요! 알았죠??”

“네, 전하.”

세린의 투정 같은 말에 리사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담겼다.

이 여리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위해 이제는 다치면 안 되겠다는 조금 우스운 생각을 하며 리사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이제야 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살아 있기에 사랑하는 이도, 사랑하는 가족도, 의지하는 동료들도 다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엔의 금가루를 뿌린 듯한 눈동자가 리사의 시선에 닿았다.

자신의 인생에 미묘하게 바뀐 인연과 새로운 관계로 다시 나타난 저 녀석에 대해서 천천히 알아가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리사의 가슴 속에 휘몰아쳤다.

제 품에 안긴 한없이 작고 따뜻한 그녀를 꼭 안아주며 리사는 평온을 되찾은 얼굴로 웃었다.

살아있기에 다행이라고.

제국에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안도를 느꼈다.

*

제국에 다시 평온한 바람이 불어온 것과 동시에 묵직한 슬픔도 함께 불었다.

반란군에 의한 기사들의 사망소식이 제국에 들려왔고 곧이어 그들을 위한 장례식과 추모행진이 일주일동안 진행되었다.

리사는 그 추모행진에 앞장서서 그들이 떠나가는 길에 슬퍼하며 2기사단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황족들도 그들의 장례식에 방문하여 모두를 놀라게 만든 사건도 있었지만 평온한 분위기에서 그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며칠 후.

“머!! 모모! 부무모!”

“그렇지 테리야! 고모~고모~!!”

“꺄르르”

황족들이 모두 모인 식탁에서 세린은 테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하루 하루 빨리 커가는 조카가 사랑스러워 세린의 미소는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테리와 세린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도 곱게 휘어져 있었다.

똑똑

식당의 문을 두드린 시종의 부름에 에드윅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테오도 같은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라하라.”

시종이 헐레벌떡 열려진 문 사이로 들어와 창백한 안색으로 머뭇거렸다.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는 그의 행동에 테오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말하라. 무슨 일이냐.”

“폐, 폐하...! 크, 큰일이 났습니다!!”

“...?”

클로비스의 미간도 좁아졌다.

무슨 일이기에 그가 저리도 당황하는 것인가?

이윽고 시종의 입이 열리고 전쟁의 서막에 불이 붙었다.

“황녀전하께 구혼서가 도착했습니다!!!!”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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