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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06화 (105/218)

106화. 재회 그리고 고백

로레인은 남부제국에 도착한 후 하늘에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에 혀를 찼다.

베여진 손가락의 고통보다도 리사의 행방과 달려오고 있을 트레일의 진군이 걱정되었다.

도착한 남부제국은 아직 평화로워 보였고 국민들도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이자 로레인은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다시 리사를 향해 워프하려 마력을 움직였다.

어마어마한 살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

로레인의 얼굴이 확 굳어버렸고 서둘러 짙은 살기가 풍기는 사람의 앞으로 워프했다.

이정도의 살기라면 제국민을 모두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워프된 공간에서 날카롭게 눈을 뜬 로레인은 이내 한 인영을 발견하자마자 제비꽃 색의 눈동자를 크게 떴다.

“공자?”

“.... 2황자 전하.”

살기의 주인은 제이 스페라도였다.

그의 비에 젖은 하얀 은발이 투명하게 빛났고 어두운 하늘 아래에 푸른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살벌한 기운을 잔뜩 풍기며 굳게 다물려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검은 붉은 피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로레인은 그런 제이의 얼굴과 몸을 천천히 살폈다.

반란군에 의해 실종되었던 그가 저주를 받은 곳이 있는지 상처가 났는지 살피는 것이었다.

제이는 그런 로레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멀쩡합니다만... 리사는 보셨습니까.”

“... 일단 그 살기부터 내리고 이야기하지.”

“.....”

제이는 숨이 막히듯 짙게 풍기던 살기를 억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로레인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리사는... 무사합니까.”

“반란군 속의 마스터를 상대하다 중상을 입었어. 목에 상처 하나와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상처가 있었다. 치료하기는 했으나 저주가 담긴 검 날에 베여서 완벽하게 치료하지 못했어.”

으드득

제이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지만 로레인은 이어 말했다.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야. 다만 의식을 찾자마자 리사경이 남부로 달려가 버렸다. 예상이기는 하나 너를 찾으러 간 것 같더군. 그녀를 찾는 중이니 너도 돕도록 해.”

“.....”

그 다친 몸으로 누구를 구하러 온 것이냐.

누가 누구를 구하겠다고.

제이의 눈가가 일그러졌고 깨끗한 푸른 눈동자 속에서 분노가 담겼다.

제이는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타오르는 분노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에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로레인은 그저 제이가 충동적인 마음을 누르고 진정하는 것을 기다렸다.

반란군과 부딪치며 리사에게 일어난 상황을 알게 된 것이 분명했다.

제이의 푸른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고 이내 붉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리사를 데리러 가야했다.

*

솨아아아!

리사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무시하고 그저 앞만 바라보며 달렸다.

마탑의 마법사가 살아 있다는 것도, 어둠술사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멀리서 느껴졌던 제이의 마력이 너무도 걱정이 되어 생각을 오래 할 수 없었다.

제발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달리던 리사는 다급히 제자리에서 멈췄다.

퍽!!

제 발 밑으로 깊게 꽂힌 화살촉을 바라보며 리사의 입매가 비틀렸다.

제이의 마력이 움직인 방향으로 쭉 가보기를 잘 한 것 같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리사는 자세를 천천히 바로잡았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화살촉들을 눈으로 관찰했다.

‘궁수는 7명. 이 녀석들을 베어내고 숲으로 들어가면 반란군의 기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저 죽이지 못한 그 마스터 또 한 존재하고 있을 것이었다.

리사의 눈이 날카로워지며 검 손잡이를 잡고 부드럽게 뽑아내었다.

화살이 더 빠를까. 제 검이 더 빠를까.

별로 흥미가 없는 질문을 짚어보며 리사는 그 자리에서 높이 점프했다.

서걱!!!

무서운 속도에 궁수들은 반응하지 못했고 날카로운 장검에 모두 목이 베였다.

후두둑 떨어지는 신체부위와 화살을 무시하고 리사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옷이 점차 붉게 물들어지기 시작했다.

출혈이 멈춘 상처가 터져서 다시 피가 세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온 몸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고통에 이를 악 물면서도 리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라버니!’

오직 그 생각 하나로 고통에서 버텨낸 리사는 이윽고 우왕좌왕하는 반란군의 기사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여전히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내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리사는 똑같이 창백한 안색으로 비웃음을 담았다.

“찾았다.”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견의 모습으로 리사는 망설임 없이 그들의 사이로 날아올랐다.

그녀가 장검에 마력을 두른 후 검을 휘둘렀고 그 자비 없는 손길에 대지가 갈라졌다.

콰과과광!!

차오르는 빗물이 갈라진 대지 속으로 흘렀고 천막들은 모두 무너졌다.

신음을 흘리던 기사들 사이를 냉정하게 지나치며 리사는 거칠게 내리는 빗방울을 맞고 사내에게 다가섰다.

사내는 깊은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가 생겼고 그런 그의 옆에는 벌벌 떨며 마법을 펼치려 마력을 모으는 마법사가 있었다.

리사의 푸른 눈이 감정 없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까 말했지.”

“.....”

“네가 날 죽일 수 나 있냐고.”

사내의 얼굴이 고통과 함께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리사는 빗물에 젖은 얼굴로 근사하게 웃으며 검을 들어 사내의 목에 가져갔다.

“오라버니 어디 있어.”

사내의 검은 눈동자가 비웃음을 담았다.

“내가 쉽게 입을 열 것 같더냐.”

“입이 찢어지고 싶은가보지? 말하지 않으면 죽는 거야, 너.”

“죽여라. 남부의 전사로 태어나서 제국에 수치를 안길 수 없다.”

리사는 가늘어진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서걱!

망설임이 없는 검은 사내를 그대로 그어냈다.

사내의 몸은 빗물에 젖은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졌다.

“히익!!”

마법사의 얼굴이 보다 창백하게 질려갔다.

리사는 섬뜩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오라버니 어디 있어.”

“......”

“너도 대답 안 하면 죽는 거야.”

마법사의 이가 부딪히며 주저앉은 모습으로 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나, 난 몰라!”

“모르면 죽인다고 했어.”

“으악!!!”

하얀 로브가 흙투성이로 변하였지만 마법사는 공포로 인해 신경을 쓰지 못했다.

죽음이라는 문턱 아래에서 발을 걸친 느낌이 마법사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고귀하다고 스스로 콧대를 세우던 마법사의 그 처참한 모습이 우스워서 리사는 얼굴 가득 비웃음을 담았다.

벌어진 상처에서 지독한 고통이 사라진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리사는 검을 들었다.

마법사가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고 동시에 마법사의 등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았다.

리사의 푸른 눈이 올라가고 마법사의 눈동자도 스르륵 올라갔다.

빗물에 젖은 검은 색의 머리카락 밑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검은색 제복이 빗물에 젖어 탄탄한 그의 몸을 부각시켰고 건장한 체격을 강조시켰다.

리사의 푸른 눈이 커졌다.

“이엔?”

“.....”

수려한 눈동자가 리사의 푸른 눈을 담았고 이엔은 작게 흔들리는 동공을 다시 마법사에게 돌렸다.

그리곤 곧바로 마법사의 멱살을 거칠게 잡았다.

덥석!

“컥!!!!”

빨려들어 가듯이 마법사를 잡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이엔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 리사는 허겁지겁 그 그림자로 다가갔다.

“이엔!”

소리쳐도 어둠속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그때 깊은 물웅덩이가 한 번 출렁였고 천천히 이엔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손에 들린 검에는 이미 붉은 피가 가득했다.

리사는 동그랗게 변한 눈으로 그런 이엔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가 가끔씩 짓던 평소의 슬픈 감정이 담긴 눈매가 말을 걸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고통을 담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엔의 표정이 리사의 말문을 막았다.

“야, 너 왜 그래?”

“.....”

빗물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스르륵 눈가로 내려왔다.

이엔은 애틋한 표정으로 곱게 웃었다.

“이제야....”

“??”

“이제 서야 다시 만났네요.”

이엔의 발이 천천히 리사에게 다가갔다.

이 푸른 눈동자를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 어떤 시간을 버텼던가.

어떤 감정으로 제 마음을 헤아려가며 가슴을 졸였던가.

지금 당장 무너질 것처럼 아픈 마음이 리사의 푸른 눈을 마주한 순간 따뜻한 온기가 담겼다.

차가운 빗물을 뒤집어쓰고 이엔은 천천히 리사를 제 품에 안았다.

“!!!! 야!!”

“무사하셔서...”

“.....!”

“다행입니다.”

이엔의 굵은 팔이 리사의 가느다란 등을 감쌌고 그의 고개가 힘없이 리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차갑게 내리는 빗방울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리사는 그 차가운 품에서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밀쳐야 하나?

날려버려야 하나?

푸른 눈동자가 당황을 품을 때 이엔은 나직이 말했다.

“좋아합니다.”

“!!!!!”

천천히 이엔은 리사를 제 품에서 떼어낸 후 다시 그녀의 푸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합니다.”

“..... 너...”

“정말... 좋아합니다.”

“....”

이엔의 눈가에 고인 물기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리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고운 두 입술을 벌리며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추운 바람이 불고 차가운 비가 내리는 반란군의 전쟁터에서 이엔은 제 마음을 고백했고 동시에 제 발목을 붙잡던 괴로운 과거를 털었다.

이엔은 이제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려했다.

리사는 그런 이엔을 가만히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였다.

“너...”

“리사!”

“!!!”

뒤에서 리사를 찾는 그 굵은 음성에 리사의 푸른 눈동자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제 눈과 똑같은 푸른 눈동자를 발견한 순간 차오르는 안도감에 리사는 동공을 크게 떴고 동시에 제 팔을 잡던 이엔을 날려버린 후 제이에게 달려갔다.

“오라버니, 야 이 XX놈아!!!!”

버릇처럼 내뱉는 거친 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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