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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01화 (101/218)
  • 101화. 독

    서둘러 그 상황을 중재하고 사과를 시킨 클로비스는 기사를 보내고 제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소중한 검이었나? 화를 좀 가라앉히는 것이 좋겠어.”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만.”

    “?”

    “그리고 소중한 검도 아닙니다. 수도에서 지나가다 필요할 것 같아서 우연히 사게 된 검일 뿐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 애를 죽일 듯이...

    클로비스는 의문이 섞인 얼굴로 제이를 바라보았고 제이는 아까 살기를 내뿜었다고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태평하게 말했다.

    “저를 귀하게 자란 막내 도련님으로 생각해서 자주 귀찮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심술을 냈던 것뿐입니다.”

    “......”

    “저런 녀석들은 한 번 자존심을 뭉그러트려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 행동했던 것이고요.”

    그게 심술이라고?

    클로비스의 어이없는 얼굴을 못 본척하며 제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클로비스는 그 태연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이 빠졌다.

    ‘무서운 새끼....’

    그렇게 클로비스의 회상이 끝났다.

    세린이 말하는 제이와 자신이 생각하는 제이가 동일 인물인 것일까?

    스페라도라고 한 것을 보면 맞는데...

    그런 애가 착하고 다정하다고?

    매일 같이 사랑한다고 표현도 한다고...?

    클로비스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세린의 수줍은 얼굴을 바라보던 클로비스가 이내 고개를 저어 표정을 풀었고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금방 돌아올 것입니다. 남부제국이 거의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들었거든요.”

    “정말요??”

    “네, 세린. 그이가 말한 것이니 사실이겠지요.”

    “...!!”

    세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바로 생기를 얻었다.

    붉게 달아오른 홍조와 반달처럼 휘어진 눈동자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클로비스는 다시 가슴을 부여잡았다.

    “느허....”

    “언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스런 황녀와 귀여운 황후의 시간은 햇살만큼 따뜻했다.

    날이 밝고 세린은 이엔과 정원을 걸어보며 푸른 장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푸른 장미네? 예쁘다!”

    세린의 미소에 이엔도 함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의 장미가 마치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들 정도로 푸르고 아름다웠다.

    세린과 이엔의 눈동자가 저절로 생각에 잠겼다.

    이엔은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속에서 짙은 그리움을 담았다.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그 분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것일까.

    세린과 이엔은 점점 잊혀져가는 그 목소리를 기억해보며 추억에 잠겨갔다.

    *

    로레인은 제 궁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시끄러운 통신석의 알람이 아니었다면 집중력은 지속되었을 것이었다.

    파바밧!

    “...?”

    남부로 떠난 스페라도 남매에게 건네준 통신석이었다. 푸른 마력의 빛들이 통신석을 밝게 비추었다.

    그는 눈을 찌푸리며 마력을 불어넣어 통신을 받았고 동그란 통신 구 안에서 매우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하

    “.... 무슨 일이지?”

    통신석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2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잔뜩 거칠어져 있었다.

    갈라진 목소리 속에는 분노가 보였고 참을 수 없는 고통마저 담겨 있었다.

    -기습이 있었습니다.

    “!!!”

    로레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반란군이 정리된 것이 아니었나?”

    -마지막으로 조사 중이던 지역에서 반란군들이 기습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공자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기습을 하였습니다...!

    “피해는?”

    -반란군 중에서 마스터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기사 두 명이 죽었고...

    그의 목소리에 끔찍한 공포가 실려 있었다.

    -리사 단장님께서 중상이십니다.

    “!!!!”

    로레인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과 동시에 부단장의 목소리가 힘없이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단장님을... 살려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로레인은 다급히 태양궁으로 워프했다.

    *

    같은 시각, 세린은 정원을 꽃을 바라보다가 다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황녀전하!!!”

    “멜?”

    허겁지겁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멜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린이 놀란 얼굴을 했다.

    언제나 차분한 멜을 알기에 그녀가 다급해하는 모습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멜, 진정해. 무슨 일이야??”

    “헉..! 헉..!! 전하!”

    “응?”

    멜이 턱까지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뱉은 후 세린을 향해 외쳤다.

    “리사경이 반란군의 기습으로 중상을 입으셨다고 합니다!!”

    “!!!!”

    “!!!!”

    세린의 얼굴이 단번에 창백해졌고 더 창백하게 질린 이엔이 다급히 물었다.

    “주, 중상을... 아니 어디를 어, 얼만큼 다치셨는지...!!!”

    “자세한 상황은 듣지 못하였으나 기습한 기사 중 마스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

    이엔의 얼굴이 보다 창백해졌다.

    입술을 꾹 깨문 세린은 서둘러 멜을 지나쳐 태양궁으로 달렸다.

    마스터와 마스터간의 전투가 서로의 목숨을 위협시킬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세린도 인지하고 있었다.

    승자가 팔이 없어지거나 다리가 없어지거나 서로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휘몰아치는 공포가 그녀의 발걸음을 떨리게 만들었다.

    세린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낀 이엔은 서둘러 그녀의 팔을 잡아 부축해주며 뛰었다.

    이엔도 세린만큼 두려웠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그 감정을 숨겼다.

    어느 새 도착한 태양궁의 집무실 앞에서 기사를 지나쳐 다급히 문을 열어버린 세린은 긴 분홍빛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로레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세린이 그를 부르기도 전에 로레인은 어딘가로 워프했다.

    사라진 그의 건너편에 서 있던 테오만이 세린의 시선에 온전히 담겼다.

    “세린.”

    “오빠....”

    세린은 정처 없이 떨리는 발걸음을 옮겨 테오의 소매를 붙잡았다.

    흔들리는 연두 빛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리.. 리사경이 다쳤다고... 많이 다쳤다고...”

    “세린... 진정하거라.”

    “하지만 오빠...!!”

    “로레인이 경을 치료하기 위해서 간 거다. 진정해.”

    “레인 오빠가....”

    다급히 어깨를 붙잡아주며 테오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세린은 테오의 그 말에 천천히 가슴을 붙잡으며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붙잡아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천천히 진정한 세린의 어깨를 붙잡아주던 테오는 함께 굳어있는 이엔을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놀란 것이 분명한 두 어린 녀석들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테오도 리사의 중상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세린, 이엔. 로레인이 갔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궁으로 돌아가도록.”

    “오빠...!”

    “지금은 소식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따로 해야 할 일이나 방법이 없단다 세린.”

    “.....”

    “궁에서 기다리렴. 소식이 온다면 바로 너에게 알려주마.”

    세린은 작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한 연두색 눈동자가 너무도 안쓰러웠지만 로레인의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로레인은 테오에게 보고를 한 후 서둘러 남부로 워프했다.

    푸른 하늘 아래에 세워진 수많은 천막들 위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리사의 마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미약한 불꽃처럼 연약하게 흔들리는 리사의 마력에 로레인은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깨달았다.

    어두운 천막을 열어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간 로레인은 지독한 피비린내에 눈을 찌푸렸다.

    다급히 시선을 돌린 그는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리사를 발견했다.

    긴 하얀 은발이 침대 위에 어지럽게 흐트러졌고 생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 밑으로 피에 젖은 붕대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앞에 넓은 어깨를 무너트리며 서있는 부단장 또한 발견했다.

    로레인은 리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목에서부터 다친 건가? 어떻게 베인 거지?”

    “2황자전하!”

    로레인은 리사의 붕대를 마법으로 제거한 후 서둘러 상처를 살펴보았고 보라 빛으로 물들어진 깊은 상처에 얼굴이 굳었다.

    상처의 깊이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로레인은 서둘러 부단장을 시야에 담았다.

    그는 괴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 목을 먼저 베였고 어깨에서부터 허리 옆까지 길게 베인 것 같습니다. 반사 신경 때문인지 다행히 목은 성대도 무사하고 치명부위도 피했지만...”

    로레인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서둘러 리사의 상처 위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 마스터는?”

    “그도 심각한 중상이었습니다. 쓰러진 그 마스터가 땅에 끌려가듯이 제자리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놓쳤다는 이야기냐.”

    “죄송합니다...!”

    로레인은 시선을 돌려 리사의 상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마스터의 검은 가지고 있나?”

    “... 있습니다.”

    “그 검, 조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

    “독이 묻어 있는 것 같아.”

    “!!!!”

    부단장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었다.

    “도, 독이 왜...!”

    “어서 가져와.”

    그는 로레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로레인은 리사의 치료에 집중하며 다시 상처를 살폈다.

    독이 아니고서야 상처부위에 이런 보라색이 나올 수 없었다.

    거칠어진 리사의 호흡은 아주 천천히 안정적으로 변하였고 상처의 출혈도 멎어갔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어 가는 속도는 느렸다.

    “....”

    로레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젠장....”

    로레인의 마법으로 치료가 되어가는 상처 부위는 점차 깊은 흉터로 남아가면서 아물어졌다.

    로레인이 서둘러 마력을 거두고 치료를 멈췄다.

    리사의 회복되어가는 안색에 안심할 뻔 했지만 신체에 보라색으로 도드라진 상처들과 흉터를 볼 때 독이 안으로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로레인은 리사의 목에 남은 흉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베였던 자리의 피부가 죽었어. 내 마법으로도 본래의 피부로 재생이 안 된다고?’

    어떤 독이지?

    어떤 독이기에 이런 흉이 남는 거지?

    로레인은 미간을 구기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리사의 상처는 여전히 깊었으나 더는 치료를 할 수 없었다.

    스며들었을 독을 파악하고 서둘러 해독을 먼저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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