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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87화 (87/218)

87화. 로레인의 실수

제이가 대공저로 돌아가고 칼을 갈았던 로레인은 일절 대공저에게 소식을 끊도록 손을 썼다. 세린의 제이에게 하는 행동이나 눈치를 볼 때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세린에 한해서 항상 예민한 로레인 이었기에 그 작은 기색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동안 점점 시무룩해지는 세린이 신경 쓰였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제이도 신경 쓰였다.

“.......”

한숨만 푹푹 내쉬는 세린이 안쓰러워 로레인은 결국 10분이라는 금 같은 시간을 제이에게 건네주었다. 제이는 아주 공손히 감사하다는 표현을 했고 말이다.

그것이 못내 얄미워서 황궁의 정원에 숨어들어 세린과 제이의 모습을 관찰했다. 손끝이라도 스치면 태워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는 도중 점점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얼굴이 붉어져갔다.

“.....?”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세린이 멀리서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제가 공자를 사랑하나 봐요!!!”

“.........”

로레인은 그대로 딱딱한 돌이 되어 굳어버렸다.

아니, '얼굴만 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돌아가라.'라는 마음으로 제이를 보냈더니.... 사랑...?

로레인의 가슴이 갑작스럽게 무너졌고 밀려오는 충격에 로레인의 입술이 닫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이는 조심스럽게 세린을 품에 가뒀다. 크고 넓은 제이의 품에서 세린이 너무도 작아보였다.

그 모습에 부들부들 떨던 로레인은 결국 차오르는 분노와 충격에 서둘러 제이를 워프 시켰다. 로레인은 두고두고 그 날을 후회했다.

세린에게는 설레던 로레인에게는 후회가 가득했던 하루의 저녁이었다.

*

다음 날, 아침이 밝고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정한 황가의 가족 속에는 헤일리도 함께였다.

홀로 방에서 밥을 먹게 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 요즘 함께 식사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세린은 어색해 하지만 부드러운 몸짓으로 밥을 먹는 헤일리의 모습에 다정하게 웃음을 지었다. 헤일리의 진심이 가족들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에 이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세린과 헤일리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치고 두 여인은 수줍게 웃었다.

그러던 중 황제가 하루사이에 핼쑥해진 로레인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로레인, 무슨 일이 있느냐. 안색이 좋지 않구나.”

그러자 약간 초췌한 안색의 로레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힘없는 미소로 “아닙니다. 잠을 좀 설쳐서....” 라고 말하며 따뜻한 스프를 스푼으로 휘저었다. 테오의 눈에도 정말 로레인의 안색이 좋지 않았던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력이 아직 회복이 덜 되었느냐.”

“마력은 회복했습니다. 형님 걱정은 넣어 두세요..”

미미한 미소 속에서 피곤함과 불안함이 모두 보였다. 세린은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황제는 로레인이 질문을 피하고 싶은 기색을 읽고 서둘러 세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린, 너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냐.”

“네...?”

황제의 물음에 세린의 볼에 홍조가 짙게 올라왔다. 황제의 눈썹이 슬쩍 올라가고 세린은 붉어진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이내 황제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기... 아빠...”

“음?”

“그...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챙그랑!!! 후두두둑!!

질문이 끝나자마자 화려한 식탁 위로 수저들과 음식들이 널브러졌다.

황제의 표정은 '이런, 내 귀가 드디어 기능성을 잃었군. 내가 잘못들은 거지?'라는 순진한 얼굴로 세린을 바라보았고 테오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로레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침묵했고 트레일은 혀를 깨물었는지 피가 줄줄 흐르는 얼굴로 기괴하게 세린을 바라보았다. 헤일리는 예상이 가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풋풋한 미소를 지으며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가족들의 반응에 스스로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아, 아니에요! 말이 잘못 나왔네요...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뜨거워진 얼굴을 가리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섰다. 그 수줍어 보이는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 때리던 황족들의 머릿속은 모두 똑같았다.

(비상!!!!!!)

비상 중에서도 특급비상이었다.

식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황족들은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어쩌다 헤일리도 참석한 가족회의는 생각이상으로 진중하고 엄숙했으며 살벌했다.

헤일리는 그 속에서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세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누군지 예상이 가지만 그 사랑을 꼭꼭 잘 숨겨서 만나기를 바랄게요...

세린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황궁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 나의 사랑-

-너는 내 연인-

-작가와 독자의 금지된 연애(베스트셀러)-

황궁에 있는 모든 연애소설을 꺼내어 천천히 읽기 시작한 세린은 매우 집중하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그러나 점점 붉어지는 얼굴에서부터 세린은 참았던 숨을 몰아서 뱉었다.

“.... 후아!!”

잔뜩 상기된 두 볼을 하고서 조심스럽게 책을 덮은 세린은 책의 표지를 힐끔 바라 보다 이내 볼을 더 붉히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도도 또 어디론가 달려가는 세린의 뒤를 지키며 이엔은 씁쓸하지만 그래도 기쁘게 웃었다. 그녀가 행복해 한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했다. 욕심을 부린 적이 없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런 이엔을 향해 제이가 말한 적이 있었다.

‘넌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엔은 그저 제 상황과 과거와 능력이 세린을 괴롭게 할까봐 무서워 다가가려는 것도 진심을 전하는 것도 스스로 가둬버렸다. 말 한마디에 그녀를 낭떠러지로 떨어트릴까봐 지신 스스로가 무서워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다가갈 용기를 내기도 전에 멈춰버린 자신에게 제이가 무척 화를 냈던 것도 기억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엔은 이미 이 작은 일상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햇빛에 비춰지는 밝은 분홍색의 머리카락이 이엔의 눈앞에서 찰랑였다. 여전히 자신의 빛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자신의 빛일 주군은 행복해 보였다. 그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이엔은 따스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름ㄷ...’

“아름다워....”

“???!!!”

바로 옆에서 들리는 탄식 같은 말투에 옆을 돌아본 이엔은 무언가에 제대로 홀린 것 같은 눈빛의 리사를 발견했다. 리사는 언제부터인지 전혀 모르겠으나 제 옆에서 세린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리사님...?”

“아, 너도 있었지. 그럼 닥치고 조용히 있어... 뒤 돌아보시면 저 예쁜 뒷모습이 끝나잖아.”

“..... 예...”

“하.... 왜 이렇게 예쁘시지....”

리사의 푸른 눈이 이성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이엔은 불안한 눈동자로 리사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라 세린을 바라보았다.

이엔과 한 스토커(?)의 따스한 오후였다. 세린은 그렇게 사랑의 이목을 받으며 서재에 도착했다. 서재에서 세린의 차를 내오던 멜이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

“책을 더 읽고 오시는 줄 알았어요, 차를 방금 내와서 뜨거운데...”

“차는 괜찮아! 고마워 멜.”

그리곤 서둘러 서재의 책상에 앉은 세린이었다. 세린은 자리에 앉아 깃펜을 신중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린을 닮은 귀여운 글씨가 편지지를 천천히 채워나갔다.

세린의 얼굴이 점차 홍조가 올랐지만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울 정도로 즐거워보였다.

“전하, 폐하께옵서 부르십니다.”

“아빠가?”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다 이내 서둘러 다 쓴 편지를 봉투에 넣어 봉하고 멜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스페라도 대공가에 공자의 이름으로 보내줘.”

“네, 알겠습니다.”

세린은 그 후 빠르게 황제가 있을 태양궁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황제는 세린이 오기 전부터 불안한 기색으로 창가로 왔다가 갔다가를 반복했다.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 사랑하는 이가 생겼다는 그 소식이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고 이렇게 금방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내 자식이 연애를...?

자신이 아리엘에게 했던 것처럼 서로 사랑을 하며 마주 웃고 떠들고 안고 손잡고.... 그것을 세린이?

다른 남자와?

황제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형제들의 눈도 화르륵 불타올랐다.

세린은 절대 못 보내!

우리가 그 늑대에게서 지켜줘야 해!!

집무실의 분위기는 아주 가관이었다. 그런 궁 안의 상황을 전혀 모른 세린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에 의해 두 눈을 크게 떴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들이었다.

“.... 왜 그러세요....?”

“세린.”

황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답지 않은 신중함과 단호함이었다. 세린은 그런 황제와 형제들의 표정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그 조용함 속에서 황제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네에.”

“그....”

“....?”

세린의 동그란 눈매가 궁금함을 담아 황제를 올려 보았다. 아리엘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매에 황제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침착하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냐.”

“...!!!”

그 질문이 끝나자마자 세린의 입이 벌어지며 얼굴이 확 붉어졌고 황제와 형제들은 소리 없이 절망했다.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아주 예전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다가온 이 상황이 낯설고 질투도 났으며 아직 세린을 놓아주기에는 무리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눈에 세린은 여전히 작아보였고 보호가 필요해 보였다.

황제와 오빠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세린은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아빠... 오빠들.”

“.... 그래.”

“저도 처음이라서... 이게 사랑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머뭇거리면서도 천천히 말을 이어가는 세린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매일 보고 싶고... 매일 생각이 나요. 없으면 허전하고... 그리고...”

“......”

황제의 얼굴이 조금씩 씁쓸하게 변했다. 자신의 딸은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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