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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80화 (80/218)

80화. 헤일리의 진심

헤일리는 제이가 소란을 피운 틈을 타 서둘러 달궁의 위로 올라갔다.

지금 브론의 이목이 1층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한 다음 그가 1층으로 이동하면 동북제국에 연락을 넣을 참이었다.

헤일리는 서둘러 브론이 있을 그 방을 향해 달렸다.

달려 올라가는 헤일리의 뒤로 제이가 따라 붙었다.

“공자??”

“녀석이 내려온 것을 확인한 다음 그녀를 데리고 나갈 것이다.”

잔뜩 날이 선 대답에 헤일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앞을 향해 달렸다.

그러던 중 창문 밖을 관찰하다 서둘러 달려오는 기사들의 저 너머로 보이는 한 인영에 걸음을 멈췄다.

달빛을 받은 분홍색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는 헤일리의 가슴에 남아있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운 그 사람은 황성의 벽을 넘고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달려들어 오고 있었다.

‘안 돼...!!’

1층에는 황성의 기사들이 몰렸고 이제 곧 브론도 내려올 것이다.

헤일리의 얼굴이 저절로 창백해지며 자리에서 멈추자 제이도 따라 멈췄다.

“뭐냐.”

“.... 계획을 변경하겠습니다. 제가 이목을 끌어볼 테니 황녀를 구하세요.”

“무슨 수작이냐.”

“지금 3황자 저하께서 이리로 달려오고 계십니다!”

“.....!!”

제이의 푸른 눈이 바로 창문 밖의 트레일을 찾아냈다.

그의 푸른 눈에 안도가 가득 묻었고 이내 굳은 얼굴로 헤일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3황자 전하를 위험하게 만드는 행동을 한다면 내가 네 목을 직접 수거하겠다.”

헤일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제이를 등지고 트레일에게로 달려갔다.

달리는 발걸음에서는 망설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제이는 그런 헤일리의 반대편으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1층에는 공기 중에 휘날리던 먼지가 내려가고 온통 피바다가 된 바닥이 보였다.

보기 흉하게 갈라진 바닥의 대리석과 그 사이를 붉게 물들인 시체의 행진에 헤일리의 안색이 창백해졌으나 이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헤일리는 호통을 치며 머뭇거리는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뭣들 하느냐! 당장 범인을 찾아라! 인원을 나누어 지하에서부터 위층까지 모두 샅샅이 뒤져라!!”

“예!!”

기사들의 고함 같은 대답과 함께 빠르게 기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헤일리는 흩어지는 기사들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뒤를 돌아 트레일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황궁의 구석에서 나온 트레일을 발견한 헤일리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멈췄다.

그의 뒤를 살펴보니 트레일은 이미 남부제국의 기사단들을 베어내고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의 손은 이미 붉은 피가 가득했고 그가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황성에 왔음을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헤일리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트레일은 멀리서 보이는 헤일리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달려갔다.

한 손에는 붉은 피가 가득한 검을 든 채로.

그녀의 앞에 선 트레일은 거대한 몸에서부터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이를 갈고 말했다.

“황녀 헤일리... 여기서 더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신가요.”

그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의 말투에 헤일리의 가슴이 소리도 없이 무너졌다.

헤일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황녀도 공자도 무사하십니다. 지금 공자가 황녀를 데리러... 올라갔어요.”

“.......”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하께서 저희를 백번 죽이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헤일리의 창백한 그 말에 트레일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내 앞에 선 이유는 무엇인가요. 죽여 달라는 의미인가요.”

“....!”

헤일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에 담긴 매서운 분노가 헤일리를 향했다.

헤일리는 입술을 꾹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브론의 추악한 행동을 못 들은 척하며 넘긴 제 잘못이 컸다.

방관의 죄는 헤일리를 무섭게 압박하며 그녀를 죽이고 있었다.

“... 전... 저는 그저....”

헤일리의 머뭇거리는 말투에 트레일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 세린이 있는 곳을 안내하시면 당장은 베어내지 않겠습니다.”

“......”

헤일리의 눈동자가 눈물을 가득 담고 트레일을 바라보았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신의 손에서 죽는 내가 너무 비참할 것 같아서 눈물을 날 뿐이었다.

헤일리는 떨리는 눈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이고 트레일을 데리고 서둘러 황궁의 뒤로 이동했다.

‘오라버니가 1층으로 왔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기사단들에게도 들켜서는 안 돼.’

황궁의 뒤편에 대기해서 제이와 세린의 도주를 돕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트레일과 황태자랑 마주치면 그의 승산이 어떨지 전혀 모르기에 헤일리는 고심했다.

트레일은 그런 헤일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암살자들을 쫓아 그들의 입을 열기 위해서 수많은 고문을 했다.

스스로 죽기 위한 독도 제거를 해서 온전히 고문의 고통을 겪은 암살자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지만 단 한 명만은 고통에 항복하고 입을 열었다.

황태자가 세린을 제외하고 모두 죽일 계획이었다는 것과 세린을 마법으로 이동시켰다는 것.

그리고 황태자가 마탑의 실험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던 후원자였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트레일은 그 후에 분노에 차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베어내고 남부제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헤일리를 마주했다.

그 황태자 새끼와 똑같은 녀석일 것이라 생각하고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속에서는 죄책감이 깊이 담겨 있었다.

‘한패가 아니었나...?’

하지만 여전히 의심이 갔고 트레일은 그 의심을 내비치며 헤일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가족을 버리고 저를 도우려는 것부터 의문이었다.

트레일은 헤일리가 하는 행동을 면밀하게 살펴보며 침묵했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고 동시에 헤일리가 서둘러 트레일을 덮쳤다.

쿵!!! 쿵쿵!!!

날카로운 얼음기둥이 방금까지 트레일이 서 있던 자리에 박혀있었다.

트레일은 놀란 얼굴로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저를 덮친 헤일리를 바라보았다.

“... 황녀!”

헤일리는 창백해진 얼굴로 뒤를 돌았다.

헤일리의 배 옆쪽에 부서진 얼음의 조각이 깊이 박혀있었다.

붉은 피가 바닥을 천천히 적시기 시작했다.

제 옆구리에 박힌 얼음조각을 떨리는 손으로 잡은 헤일리는 천천히 고개를 위로 올렸다.

“역시나 구나.”

브론이었다.

허공에서 자리한 브론은 비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말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 오라버니.”

헤일리는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붙잡고 브론을 바라보았다.

브론은 그런 헤일리의 상처를 보며 픽 웃었다.

“어리석기는... 자업자득이다.”

그리고 손을 높이 들은 브론은 마력을 모아 다시 얼음기둥을 만들었다.

끝이 날카로운 얼음의 조각들을 바라본 헤일리는 뒤에 있을 트레일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트레일은 헤일리의 상처를 살펴보다가 브론을 바라보며 울컥 차오르는 화를 참았다.

‘이게 가족이야...?’

검의 손잡이를 꽉 쥔 트레일은 곧 날아올 얼음기둥을 바라보며 천천히 헤일리를 제 품으로 끌어당기고 검을 들었다.

“....!!”

헤일리가 놀란 것보다 브론의 마력이 더 빨랐다.

그리고 그런 브론의 마력보다 트레일의 검이 더 빨랐다.

챙!!!!

트레일의 마력이 담긴 검이 얼음기둥을 베어냈고 얼음은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브론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흐음...”

고민에 잠긴 브론은 이내 경악한 얼굴로 시선을 옮겨 성 위를 바라보았다.

“!!!”

세린이 있는 방향이었다.

제이가 무사히 세린과 마주한 것이 분명했다.

헤일리의 표정이 환해지고 브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브론이 다급한 눈으로 헤일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도 네년의 짓이냐....!”

“.... 이제야 아셨나요.”

“가족이라고 봐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턱!

헤일리는 브론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트레일을 밀었다.

“.....??”

트레일은 헤일리의 다급한 손짓에 맞춰 몸을 뒤로 했고 동시에 브론의 손이 허공을 휘갈기자마자 헤일리의 등에서부터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펑!!!!!

“....!!!!!”

트레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절로 자신에게로 쓰러지는 헤일리를 붙잡은 트레일은 이미 허공에서 브론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트레일은 떨리는 눈으로 피범벅이 된 헤일리를 바라보았다.

‘제 동생한테... 마법인장을 새긴 거야? 이 미친 새끼가...!!’

“커흑...!!”

“... 황녀!”

고통에 가득찬 기침을 내뱉으며 헤일리가 초점 없는 시야로 트레일을 담았다.

붉은 눈동자 속에 담긴 제 모습이 참 초라하고 비참해보였다.

헤일리는 생기를 잃어가는 입술을 열어 말했다.

“... 왜... 당신의 앞에 섰냐고... 물었지요...”

“황녀?”

“왜... 가족을 버리고 당신을 도우려는 것인지... 궁금하시겠지요...”

“....”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당신에게 반해서... 그랬습니다...”

트레일의 얼굴이 굳었다.

헤일리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입가로 작게 미소 지었다.

“우습지요... 첫 눈에 반한 다는 것도... 그 갑작스런 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제 자신도... 우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했었고 진심으로 그를 구하고 싶었다.

헤일리의 미소가 힘을 잃어갔다.

힘없는 그 말투에 트레일이 헤일리의 손을 잡았다.

트레일은 헤일리의 초점이 흐려진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웃기지 않습니다.”

“.....”

“하나도 우습지 않습니다.”

“......”

헤일리는 트레일의 그 말을 끝으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부디....”

헤일리의 눈이 천천히 감겨갔다.

‘부디... 다치지 마시기를...’

결국 그 말을 내뱉지 못하고 헤일리의 생명은 힘을 잃어갔다.

만약 오라버니의 죄를 묵과하지 않았다면 난 이 끔찍한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당신을 향해 떳떳하게 내 마음을 고백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의 단 한 번의 웃음이 나의 빛이 되었었다.

그 미소가 나를 구원하고 나를 홀렸다.

바람같이 다가온 미소에 금방 사랑에 빠진 나는 그 사랑을 위해서 선택한 내 인생의 끝을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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