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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79화 (79/218)

79화. 제이의 분노

브론은 세린에게 쟁반 위의 음식을 건네주었다.

세린은 그런 브론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휙 돌리고 고개를 숙였다.

“... 그대는 너무 말랐어. 조금이라도 먹도록 하지.”

“여기서 살 바에는... 굶어서 죽는 게 나아요...!”

“말을 안 듣는군.”

브론은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세린의 턱을 강하게 쥐었다.

“... 윽!”

세린의 눈이 저절로 찌푸려지며 떨리는 눈동자로 브론을 바라보았다.

브론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널 상처내고 싶지는 않아.”

“날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줘요...!”

브론이 차갑게 웃었다.

“어림도 없다. 그럴 거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널 데리고 오지도 않았어.”

세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은 세린을 바라보던 브론이 피식 웃으며 손에서 마력을 모았다.

“....!!”

짙은 남색의 마력 빛들이 모여 철장 안에서 쓰러져있는 하나의 인물을 비췄다.

세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제이 공자...!!”

마력의 안에서 비춰진 것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있는 제이였다.

세린이 다급해지자 브론이 밝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만 건져올 수 있도록 포털을 열었는데... 저 녀석도 딸려와 버렸어. 이제 저 녀석의 목숨은 그대가 하는 행동에 달려있다.”

세린이 차오르는 분노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세린의 머릿속에서 헤일리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버텨주세요...’

영상구를 향해 눈을 올린 세린은 제이의 상태를 천천히 관찰했다.

상처가 없으나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세린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제이공자....’

숨이 막힌 것처럼 괴로워졌다.

테오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고통이 세린을 덮쳤다.

세린은 눈을 꾹 감고 이내 입술을 열었다.

“먹을 테니까... 제이공자를 풀어줘요....”

“.... 풀어주는 건 좀 더 나중에. 일단 지금은 먹도록 하지.”

브론은 다시 세린을 향해 음식을 건넸다.

세린은 듣기 싫은 쇳소리가 나는 족쇄를 차고 천천히 빵을 입에 넣었다.

‘제이공자....’

제이를 바라보며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고 세린은 우걱우걱 빵을 삼켰다.

브론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오빠... 리사... 이엔....!’

세린은 울고 있었다.

‘아빠...!’

*

제이는 마차가 불덩어리에 닿기 직전, 다급히 세린의 등을 감쌌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등을 리사가 감쌌다.

“리사!!”

리사의 그 행동에 제이는 커다랗게 변한 제 눈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녀에게로 다급히 손을 뻗었다.

리사도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를 제 뒤로 넘기려 했었다.

그러나 리사에게 닿기도 전에 뒤에서부터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제이는 기절하기 직전 리사의 굳건한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고 그 후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지금 이 상황이었다.

주변을 가득 채운 악취와 굳게 잠겨있는 철장.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감옥의 내부는 제이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감옥 속에 있었을 생명체들은 이미 시체로 변해 바닥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

제이는 천천히 상황을 유추하기 시작했다.

남부에 도착하기 전에 발생한 암살자들과 마법.

그리고 감옥에 들어와 있는 자신과 사라진 세린.

제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컹

“.....”

그리고 제 행동범위를 막는 족쇄와 쇠사슬을 묵묵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력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족쇄였다.

‘이런 것이 여기에 있다는 것과 사고가 발생한 근처에서 이런 마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남부제국의 수도 귀족가, 혹은 황실뿐이다. 그것도 아니면 아까 그 암살자들의 공간인가?’

제이는 천천히 시야를 돌렸다.

주변에 빛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감옥을 둘러보다 여기가 지하에 만들어진 것을 알아냈다.

‘들리는 숨소리는 없다. 세린은 여기에 없어.’

같은 공간에는 없으나 이 위에도 과연 그녀가 없을까?

일단 여기서 나가 저 위를 모두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제이는 두 손을 뻗어 감옥의 문을 만졌다.

철컹!

족쇄와 철장이 부딪히며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들었으나 제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냥 압력만 가하면 부서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제이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가며 철장의 끝에 그려져 있는 문양을 바라보았다.

‘부수는 즉시 감옥이 터지도록 마력을 담은 것인가.’

생각보다 철저하게 죄인취급을 해주자 제이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지금 당장 세린을 찾고 리사의 무사도 확인해야 했다.

그 폭발을 정면에서 받았다면 리사가 제 아무리 마스터라고 한들 상처가 없을 수는 없었다.

제이가 철장을 쥔 두 손에 힘을 가하려고 할 때였다.

“기다리세요.”

멈칫

제이의 눈이 천천히 올라갔다.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올곧게 담고 있는 남색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헤일리였다.

헤일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 천천히 제이가 들어가 있는 감옥으로 다가갔다.

남부의 황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여기가 남부제국의 황성이라는 이야기였다.

단번에 황태자가 세린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 수를 쓴 것이라는 생각이 제이의 머리를 스쳤다.

저절로 힘을 준 이 사이로 피 맛이 났다.

헤일리는 그런 제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지금 공자를 풀어드리겠습니다.”

“... 꺼져라. 네까짓 것들의 도움 따위 필요 없다.”

거침없는 말 속에서 느껴지는 비웃음에 헤일리는 고개를 숙였다.

이 상황이 마치 자신의 탓 같아서 헤일리는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사람도 이렇게 날 바라볼지도 몰라... 하지만....’

헤일리는 망설이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녀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나가게 되거든 네 목부터 꺾을 텐데... 말을 할 수는 있겠나?”

“그럼 꺾이기 전에 여기서 말씀을 드리지요.”

“....”

제이의 눈가가 좁아졌다.

어디 한 번 더 말해보라는 의미 같아서 헤일리는 말했다.

“오라버니는 남부의 마법사이십니다. 황녀의 피를 얻어서 그녀를 여기로 옮긴 듯해요. 남부로 오던 마차를 습격했으니 동북에서는 산적의 피해로 인해 황녀와 일행이 죽었다고 알려...”

“그녀가 남부의 품에 없다는 것을 알리려는 행동이군.”

“.... 네. 그렇지만 지금 그녀는 무사합니다. 황제폐하께서 계시는 달궁 바로 위층에 안전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것은 뭐지?”

제이는 헤일리를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물었다.

헤일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제이를 바라보았다.

“세린을 데리고 일행들을 찾아서 동북으로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오라버니를 죄인으로서 구속시켜주세요.”

“죄인?”

“마탑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금전적 지원이 누구 덕분인 것 같나요?”

“.....!!”

“저희 오라버니가 마탑의 연구비용을 일체 부담하여 지원했습니다. 어둠술사에 대해서도 생체실험에 대해서도 아끼지 않았지요. 이정도면... 오라버니를 구속할 수 있지 않은가요?”

제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주먹이 차오르는 분노로 감옥의 벽을 내리쳤다.

퍽!!!

그가 내리친 벽에 금이 가고 붉은 피가 떨어졌지만 헤일리는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넌... 그걸 알면서도 동북에 그 놈을 데리고 온 것이냐?”

헤일리는 침묵했다.

그래, 방관하는 것만큼 끔찍한 죄는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었다.

“.... 거기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하....”

제이는 깊은 숨을 내뱉으며 헤일리를 내려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열어라.”

“.....”

헤일리는 열쇠를 사용해서 제이의 감옥 문을 열었고 제이의 족쇄를 풀었다.

챙그랑!!

제이는 풀린 족쇄를 발로 걷어차며 제 손목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단검을 건네주는 헤일리를 향해 말했다.

“네 계획은?”

“.... 저는 동북의 황성에 연락을 해서 이 상황을 먼저 알릴 것입니다. 그동안 당신은 황녀를 구하고 빠져나가세요.”

“빠져나가는 것에 있어서 주의해야할 것.”

“암살자들이 항시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오라버니도 강한 마법사시며...”

“그것뿐이냐.”

“..... 네.”

제이는 망설임 없이 바로 뒤를 돌았고 헤일리는 다급히 말했다.

“공자!”

“....”

“황성이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다. 부디...”

“처음부터 그딴 건 내게 상관없었다. 신경 끄도록.”

제이는 냉정히 말하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헤일리는 순식간에 사라진 제이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고 자리를 떴다.

붉은 루비 같은 눈동자와 아름다운 분홍빛 머리카락.

그의 웃음이 아직도 헤일리에게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신을 위해서 내 가족을 버렸다는 것을 알면 당신은 날 경멸할까?

하지만... 당신이 날 경멸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사랑만을 위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저... 이제 더 이상 우리 가족들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이들은 없었으면 했다.

‘우린 이미 황족이라는 지위를 잃은 거야... 우린 그저 죄인입니다. 오라버니.’

밝혀지는 진실 속에서 추억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버린 그가 자신을 끔찍하게 여기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젠 멈출 수 없었다.

*

제이는 감옥에서 올라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밖은 깜깜한 어둠이었고 창문 밖의 기사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 장면을 관찰하던 제이는 이내 양손에 쥔 단검에 마력을 흘려 넣어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광!!!!

거대한 마력의 증폭에 황성의 바닥이 갈라졌고 기사들의 다급한 발걸음이 들렸다.

제이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휘날리는 먼지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무슨 일이냐! 이게 무슨 소란인 거...!”

다급한 음성으로 달려온 한 명의 성기사가 고개를 휙 돌리자마자 먼지들 속으로 사라졌다.

뒤따라온 병사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단장!” “단장님!”하고 그를 찾았으나 뿌연 먼지들로 인해서 그의 인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발에 닿은 거대한 덩어리에 놀란 병사가 서둘러 그 덩어리를 확인하였다.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단장의 존재를 확인한 병사가 얼굴이 단번에 창백해지며 소리쳤다.

“비상!! 비상이다!! 암살자가 왔...!!!”

소리치는 병사도 먼지들 사이로 사라졌다.

붉은 핏물이 그들의 발을 가득 적시는 것도 모르고 병사들은 비상을 외쳤다.

황성의 1층이 소란이 일어났고 제이는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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