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세린 사라지다.
마부가 잡아준 여관의 제일 꼭대기로 올라간 세린은 리사와 함께 방을 쓰기로 했다.
어쩌다보니 트레일은 혼자, 제이와 이엔은 함께 방을 쓰기로 되어서 세린과 리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똥을 씹은 듯 한 얼굴로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트레일은 한숨처럼 말했다.
“일단, 오늘은 저녁을 먹고 나서 각자 방에서 자고 아침에 출발하자.”
“네.”
세린은 트레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곧 리사와 함께 방으로 올라가 옷을 단정히 장리하기 시작했다.
리사는 세린의 손에 마법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
“여기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니 분홍색 머리카락은 위험합니다. 저녁을 먹을 동안만 불편하시더라도 반지를 착용해주세요.”
“이거 로레인 오빠가 부탁한 거죠?”
“... 네.”
“그럴 줄 알았어요.”
세린은 리사의 당황스러운 표정에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리사경 덕분에 제가 안심하고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네요.”
“큭...!”
치명타에 가까운 미소에 리사는 다시 마력을 운용하여 코를 막았다.
세린과 함께 할수록 작은 데미지에도 출혈이 생겨 난감했다.
세린은 남색의 머리카락으로 변한 제 모습을 한 번 둘러보며 리사의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트레일도 어느 새 세린과 똑같은 머리카락 색으로 변하여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엔은 마법반지를 착용하지 않았고 제이와 리사는 진한 녹 빛으로 머리카락과 눈이 변화되어 있었다.
다 같이 여관의 1층 식당으로 도착한 일행은 저녁을 주문하고 이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상태로 가다보면 예정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을 5곳을 들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기서 한 세 곳만 더 들리면 금방 남부의 입구거든.”
“우와... 빠르네요?”
“운이 좋은 건지... 막히는 것 없이 길이 뚫려 있어서 그런 거야. 일단 내일 아침에 조금 여유 있게 출발할 테니까 푹 자도록 해.”
“네에!”
트레일의 말에 세린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엔은 그런 세린의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제이를 바라보았다.
제이는 한 구석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같이 시선은 돌린 이엔은 멀리서 세린과 리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성들의 무리에 눈매를 찌푸렸다.
‘곧 일이 터질지도...’
그런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의 사내 한명이 세린과 리사가 앉은 의자 쪽에 다가왔다.
“저기...”
휙!
그리고 이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내는 사라졌다.
같은 일행이었던 사내들도 당황했고 세린도 눈을 크게 떴지만 자연스럽게 리사가 세린의 시야를 막으며 음식을 건네주었다.
“이걸 드셔보세요, 너무 맛있어 보입니다.”
“어, 고마워요.”
사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정답은 트레일이 알 것이다.
트레일은 누구보다 빠르게 사내를 데리고 여관 뒷골목으로 향했다.
거대한 덩치에서부터 날카로운 인상에서부터 밀린 사내는 몸을 잔뜩 웅크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창백한 낯이 볼만했다.
트레일은 으르렁 거리는 듯이 이를 갈며 말했다.
“야...”
“히익!! ㄴ.. 네!!”
“우리 애한테 볼일이라도 있어?”
사내는 고개를 강하게 휘저으며 말했다.
“어.. 어, 없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어야 할 거야... 알았지?”
“ㄴ, 네!!”
그 대답이 만족했는지 트레일은 “일행한테도 똑같이 전해.”라고 말하며 사내를 풀어줬다.
시작부터 아주 열불이 났다.
가는 길이 이래서는 험난할 것이라 생각한 트레일은 정신을 바짝 차리기 시작했고 시간은 금방 흘러 저녁이 되었다.
세린은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누운 리사를 관찰했다.
하얀색의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이 참 아름다웠고 오밀조밀 이목구비도 예뻤다.
15살의 나이답지 않은 신체도 인상도 신기했지만 대단하다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검술도 신기했다.
리사는 동생 같으면서도 언니 같은 느낌을 동시에 주는 귀여운 아이였다.
그런 리사가 그저 귀여워서 세린은 베시시 웃다가 이내 스르륵 잠이 들었다.
동시에 리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주무시는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리사는 곱게 잠든 세린의 이불을 정리해준 후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세린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리고 천천히 손을 올려 제 코를 막았다.
주르륵 피가 흘러내리고 리사는 마력을 운용하여 출혈을 막았다.
인생은 살만하다고 만족을 느끼며 리사도 천천히 행복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고 세린과 일행은 다시 남부를 향해 마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을 하나를 더 넘어가고 해가 지고 해가 뜨고를 또 마을을 들어서는 일상을 반복해갈 무렵,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이번 밤이 지나면 곧 도착하겠지?’
세린이 이런 생각에 빠질 무렵 밖에서 작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말들이 놀란 몸짓으로 이리 저리 발을 헛디디기 시작한 것이다.
“!!”
트레일과 제이, 이엔과 리사가 동시에 밖을 향해 경계했다.
*
같은 시각, 남부에서는 황태자 브론은 창문 밖의 노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헤일리는 이내 그런 브론을 향해 물었다.
“오라버니... 동북제국의 황녀에게 왜... 아니 무슨 일을 계획하고 계시나요?”
“오라버니 일을 궁금해 하다니... 무슨 바람이 불었느냐.”
“말씀해주세요. 여기서 더 일을 키우시면 위험합니다. 서부와 동북도 저희 제국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우습구나. 자신들이 이제 와서 뭘 어찌할 것이라고.”
브론은 천천히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제 시간이 얼추 맞을 것이야.”
“오라버니...?”
브론은 와인 잔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세린은 마차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을 무렵 트레일이 다급히 소리쳤다.
“... 세린 여기서 기다려!!”
트레일이 밖으로 뛰쳐나가자마자 마차의 근처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콰과광!!!
“꺅!! 오빠!!!”
이엔은 그런 트레일을 따라 다급히 문 밖을 향해 뛰쳐나갔고 제이는 서둘러 세린을 품에 안고 반대쪽 문을 열었다.
리사는 그런 제이의 등을 지키며 마차에서 내리려 했고 동시에 마차 반대쪽에서 트레일의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젠장!! 세린!! 피해!!!”
“오빠??”
세린이 마차에 내리려는 동작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리사가 다급히 외쳤다.
“마법이야!!!”
제이와 세린은 리사의 말에 급히 마차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고 마차를 향해 빠른 속도로 불덩어리가 날아오는 장면을 발견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세린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과 동시에 리사와 제이가 재빠르게 세린의 등을 가렸다.
그리고 대지가 뒤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마차를 강타했다.
콰과과과광!!!
“세린!!!”
“전하!!!”
*
동시의 남부의 성에서 브론이 밝게 웃으며 외쳤다.
“그래! 바로 지금이야!”
“오라버니...?”
브론의 눈이 반짝였다.
*
트레일은 폭발하는 마차를 향해 달려가려다 이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검은 사람들을 향해 검을 뽑았다.
“... XX 너희 뭐야!!”
어느 새 이엔의 앞에도 검은 사람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암살자...’
암살자가 왜 이 시점에서 나타난 것이지?
이엔은 힐끔 부서져가는 마차를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세린이 무사한 지를 알아야한다.
서둘러 이들을 정리해야 했음을 깨달은 이엔과 트레일은 재빠르게 암살자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신음소리를 내지도 않는 암살자를 질린 얼굴로 바라본 트레일은 암살자의 검을 피해내며 그들을 도륙했다.
압도적인 실력에 암살자들이 뒤로 이동하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도망갈 계획인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저들을 도망가게 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트레일은 도망갈 기운이 가득한 암살자를 부라리며 이엔에게 말했다.
“이엔, 저 새끼들이 튀면 내가 쫓을 테니까 넌 바로 마차로 달려가.”
“혼자서 위험하십니다!”
“저런 것들한테 당하면 단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사치야. 알겠어? 넌 지금 세린 먼저 찾아!”
“......”
이엔은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때는 금방 다가왔다.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는 암살자들의 행동에 트레일이 재빠르게 앞으로 박차고 달려 나갔다.
이엔은 그런 트레일과 동시에 마차의 방향으로 달렸다.
챙!챙!
이엔에게 달려드는 단검을 트레일이 마력을 두른 검으로 쳐내며 암살자들을 향해 달려갔다.
숲 안으로 트레일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이엔은 마차에 도착했다.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마차 안으로는 그 누구의 시체도 보이지 않음에 이엔은 안도했다.
그러나 마차의 반대편으로 누군가의 피가 떨어져 있었고 이엔은 창백해진 눈동자로 서둘러 그 피를 따라 트레일이 사라진 반대쪽 숲으로 들어갔다.
‘설마 전하가...? 아니야, 제이공자님과 리사님은 그 정도의 실력이 아니다.’
이엔은 부지런히 움직여 숲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부스럭
휙!!!
바로 옆 덤불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엔의 눈이 날카로워지며 검을 들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이엔의 목에도 날카로운 검이 들어왔다.
“이엔?”
“.... 하아.”
리사였다.
“리사님... 무사하셨군요.”
그의 안도가 섞인 얼굴에 리사가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도 않다고.”
“... 리사님?”
비틀 거리며 리사가 앞으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리사님!!!”
이엔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지며 리사의 등에 팔을 올리며 부축을 도왔다.
그리고 손에서부터 느껴지는 미끄러운 느낌에 살며시 손을 들어보자 그의 손을 가득 적신 피가 보였다.
이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리사님!!”
“안 죽어. 조용히 해...”
약간 힘없는 눈으로 말한 리사는 이엔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차가 폭발하기 전, 세린과 제이의 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등을 보호하다가 당한 상처였다.
리사가 땀을 닦으며 물었다.
“황녀전하는... 오다가 못 만났지?”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엔의 창백한 물음에 리사가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마차폭발 후에 암살자들이 왔어. 그 새끼들을 처리하고 찾아봤는데... 제이 이 새끼도 전하도 아무 흔적도 없어.”
“.....”
“애초에 마차 폭발 직전부터 두 사람 마력이 안 느껴졌다고.”
“... 그렇다는 것은...”
“사라진 거야.”
리사의 단호한 음성과 함께 이엔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황녀와 대공자의 실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