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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72화 (72/218)

72화. 반하다의 정의란?

세린은 황궁에 돌아와서 정신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반했다고...??’

반하다? 반했다 당신에게?

세린의 눈이 떨리며 다급히 멜을 불렀다.

“멜!! 멜!!”

“네, 전하. 부르셨습니까?”

그리고 잔뜩 붉어진 얼굴로 더듬더듬 물었다.

“바, 반하다는 건 무슨 뜻이야...??!!”

그 물음과 동시에 멜이 웃는 얼굴로 굳었다.

‘반하다? 내가 아는 그 반하다의 정의를 물어보신 건가?’

그리고 멜에게도 함께 혼란이 왔다.

누가 전하께 반했다고 말을 했다는 것인가!

그럼 그 반하다는 것이 어떤 반함이지?

이성에게 느낀 그 반함?

“그... 그 전하... 사랑이라는 것을 반하다라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 그러니까 홀렸다는 표현을 해야 할까 그... 마음을 가져가 버렸다고 표현해야 할까...”

“그, 그렇구나....!”

세린은 멜과 함께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뻣뻣하게 굳었다.

아무 감정 없는 상대에게 들은 그 말이 너무도 경악스러워서 대답이고 뭐고 올바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생애 처음으로 들은 고백에 여린 소녀는 얼굴이 저절로 뜨거워지고 굳어갔다.

그런데... 사랑이라고?

세린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천천히 호흡했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사랑이라는 그런 애틋한 감정을 가족 이외의 사람... 즉 이성에게 느낀 적이 없었다.

이성에게 느끼는 사랑과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그 차이를 잘 몰라서 조금 난감해졌다.

확실한 것은 남부의 황태자 브론에게 놀라기는 했지만... 그에게 사랑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세린이 고민에 빠지며 멜에게 물었다.

“이성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것은 뭐야...?”

세린의 질문에 멜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빗겨주며 말했다.

“사랑에 정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사랑이 다르듯 내려지는 정의도 달라지지요.”

“멜은 사랑을 해 본적이 있어?”

“있답니다. 본의 아니게도 그 사랑을 쟁취해서 결혼까지 했지요.”

“뭐어...?!!”

이건 또 다른 큰 정보였다.

세린인 잔뜩 커진 눈동자로 멜을 바라보며 물었다.

“멜..!! 결혼이라니?? 어, 언제??”

“후후 10년도 지났답니다.”

“몰랐어....”

“그렇지요. 전하를 만나기 훨씬 전에 한 일이니까요”

멜은 세린의 놀란 눈을 다독이며 다시 머리를 빗겨주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제가 느꼈던 사랑에 정의를 내리자면... 욕심이었지요.”

“욕심?”

“그 사람이 너무도 좋아서 욕심이 생겼었거든요. 그 사람이 하는 행동, 읽던 책, 그가 관심을 가지는 무엇이든 부러워하고 그 사람만을 쫓아다녔지요. 제가 아마 귀찮았을 거예요.”

“멜은 적극적인 사람이었구나?”

“탐이 나면 욕심을 부리는 것이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 때는 정말 적극적이었다고 인정합니다.”

그렇게 멜은 그 사람을 욕심내어 끝까지 쫓아다닌 결과가 결혼이었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그냥 매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그 사람 생각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 그렇구나....”

세린은 그런 멜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다 천천히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세린에게는 조금 혼란이 가득한 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엔과 제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리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세린이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고 남부의 황족들도 머무는 손님의 별궁으로 이동했다.

제이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이엔은 그런 제이를 슬프게 바라보다가 이내 땅을 보며 굳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서 제이는 말했다.

“너나... 나나 꼴이 우스워.”

“......”

“그 한 마디를 내뱉기 힘들어서 몇 년 동안 주위를 맴돌기만 했는데... 모두 의미가 없던 일이었나 보군.”

“공자님...”

“위로 따위는 됐어. 넌 네 위로나 스스로 해.”

“........”

“난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포기할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어. 단지 내가 한 발 늦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스스로도 우스워서 화가 날 뿐이야.”

“.... 네.”

이엔의 그 대답에 제이의 미간이 왈칵 구겨졌다.

“넌....!!”

이엔의 슬픈 눈동자가 제이와 마주쳤다.

제이는 일그러진 눈을 잠시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말했다.

“넌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제이는 대공저로 돌아가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이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하루의 밤은 깊어만 갔다.

세린은 고민이 가득한 눈으로 잠을 설치다가 일어났다.

약간 피곤함이 남은 얼굴에 이엔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엇 때문에 잠을 설친 것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세린은 하품을 하다 나직이 웃으며 이엔에게 말했다.

“안녕 이엔! 잘 잤어?”

“... 네.”

이엔의 금빛눈동자가 이내 슬픈 감정을 감추고 부드럽게 웃었다.

세린은 그런 이엔과 나란히 걸어가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거절을 해야 하는 걸까?... 애초에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혼란스러울 거야.’

오늘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세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굳은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주친 남색의 눈동자에 다시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세린, 잘 잤느냐.”

황제의 물음에 세린이 빳빳한 표정을 서둘러 풀고 황제의 옆에 앉았다.

“네, 아빠는 잘 주무셨나요?”

“그래. 너는 잠을 조금 설친 모양이구나.”

“아... 조금... 하하 황태자님과 황녀님은 편하게 잘 보내셨나요?”

세린이 난처해서 다급히 브론과 헤일리를 향해 물었고 헤일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긍정을 표했다.

브론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평안하게 잘 잤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녀.”

“아... 아니에요!”

세린이 딱딱한 몸짓과 표정에 황제와 테오, 로레인과 트레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한 태도였다.

어색한 식사가 끝나고 세린은 서둘러 황궁의 정원으로 향했다.

갑갑한 마음을 풀을 때에는 정원에서 로레인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꽃들을 보는 것이 최고였다.

여전히 싱그러운 장미를 바라보며 세린은 심호흡을 했다.

“후... 어렵다아...”

“무엇이 말입니까?”

“끄악!!!”

뒤에서 들리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에 세린이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브론이었다.

브론은 세린을 바라보며 미미한 웃음을 담고 있었다.

세린이 저절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이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 저기... 그냥....”

말하는 본인과 말을 기다리는 자신까지 어색하게 만드는 말투였다.

그런 말투마저 귀엽게 느껴진 브론은 이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제 고백이 그리도 신경이 쓰이셨습니까?”

“헉!!! 아, 아니요!!”

다급히 대답하는 말투도 웃겨서 브론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다.

세린의 얼굴이 가득 붉어졌다.

세린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했다.

“그... 대답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편하신 상태로 가실 것 같아서....”

“대답은 원치 않습니다.”

“네에...?”

“대답을 원해서 드린 말씀도 아닐 뿐더러...”

브론의 눈이 곱게 휘었다.

“어차피 대답을 들어도 소용이 없거든요.”

“...??”

세린은 그의 말을 잘 몰라서 눈을 크게 떴다.

아름다운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곱게 휘날리며 남색의 눈동자가 빛났다.

자신도 모르게 뒤로 걸은 세린은 눈을 찌푸리며 외쳤다.

“아야!”

“... 괜찮으십니까?”

브론이 서둘러 다가왔고 세린은 갑작스러운 손등의 통증에 서둘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하얀 색의 손등에는 약간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피가 약간 나오는 정도의 상처였다.

“다치셨군요. 장미에 긁히신 모양입니다.”

브론이 그녀의 손등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눈을 수그렸다.

세린은 그 눈 속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고 동시에 이엔이 세린을 불렀다.

“전하.”

“.... 이엔?”

세린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든든하게 그녀의 뒤에 바짝 붙은 이엔이 무표정한 얼굴로 브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이 대공자님께서 오셨습니다.”

“... 제이공자가?”

언뜻 세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작은 밝아진 기색을 읽은 브론은 미미한 웃음을 담으며 세린을 바라보았다.

자 밝은 기색도 눈동자도 모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세린은 다정히 웃으며 브론에게 인사를 한 후 뒤를 돌아 손님방으로 향했다.

브론은 세린의 서두르는 발걸음도 나풀거리는 분홍빛 머리카락도 천천히 눈에 담아갔다.

헤일리는 멀리서 그런 브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헤일리의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

세린은 다급히 도착한 손님방 문을 열었다.

열리자마자 보이는 하얀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에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굳은 발걸음으로 제이에게 다가갔다.

수려하고 빛나는 그 얼굴로 세린을 바라본 제이는 천천히 입술에 미소를 담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전하.”

“네에...! 제이 공자는 어제는 잘 들어갔나요?”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대답에 세린이 수줍게 웃었다.

저번의 그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제이의 눈은 여전히 다정해보였다.

제이는 그런 세린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

“네 공자.”

“......”

제이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러나 이내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셨는지요.”

“아... 나쁜 꿈이라도 꿨는지 조금 뒤척였어요.”

세린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웃자 제이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볼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잡았다.

“...!!”

제이의 커다란 손이 세린의 손등 위로 부드럽게 올려지자 세린이 굳어버렸다.

두근 하면서 커다랗게 울리는 듯 한 심장소리도 인식하지 못하고 멍하니 제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세린은 제이가 천천히 자신의 손을 가져가 바라보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공자?!”

그의 푸른 눈이 그녀의 손을 향해 내려지고 그의 커다란 키가 그녀의 시선에 맞춰 숙여졌다.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다치셨습니다.”

“... 다쳐요?”

세린이 서둘러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자 그녀의 손등에 길게 긁힌 자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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