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67화 (67/218)

67화. 형제들이 고른 드레스

몸의 라인에 자연스럽게 붙는 드레스 스타일은 여신의 의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은은한 분홍빛이 도는 것이 원단 자체에는 반짝이는 가루를 뿌린 듯 했고 목까지 올라오는 하얀 레이스 자수 밑으로 쇄골에서부터 소매까지 비단원단으로 덮여 있었다.

허리라인은 잡혀진 부근 없이 발끝까지 부드럽게 내려왔다.

그러한 드레스의 아름다운 모습에 세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세린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팔도 다리도 그 어떤 곳에도 노출된 부분은 없었다.

딱히 노출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의 보수적인 면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드레스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

“너무 예뻐요...”

붉게 달아오른 볼을 하고 뒤를 돌아본 세린은 이내 의기양양한 트레일의 모습에 또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손에는 붉은 색의 상자가 있었고 상자 속에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귀걸이와 티아라가 있었다.

아치형의 티아라는 보석으로 만든 꽃이 섬세하게 세공되어 있었고 은빛으로 반짝였다.

트레일은 그 악세사리를 세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드레스를 입고 나오면 머리에 장식해줄게. 얼른 입어봐.”

세린은 그런 트레일의 모습이 귀여워 맑게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천천히 드레스 룸으로 들어선 세린은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입어보았다.

“이 드레스에는 머리를 올려 묶는 것보다 아래쪽으로 반 묶음을 하시는 것이 더 아름다우실 것 같아요.”

“그래? 그렇다면 반 묶음으로 부탁해.”

“네, 전하.”

시녀들은 세린의 드레스를 서둘러 정돈하며 머리를 묶어주었다.

허리를 넘어서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정돈한 세린은 천천히 열리는 커튼 사이로 세 쌍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세 명 모두 동공이 커졌고 입도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나올 말들은 뻔했다.

“너무 예쁘구나...”

“정말 잘 어울린다!”

“예쁘군.”

그 뻔한 말들이 좋아서 세린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키득키득 웃는 그녀에게 다가간 트레일은 천천히 세린의 머리 위에 티아라를 올려 주었다.

반짝이는 티아라는 세린의 분홍빛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얼굴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트레일은 한숨 같은 말을 내뱉었다.

“후... 역시 얼굴을 모두 가릴 레이스가 필요했나...?”

“오빠... 내 얼굴을 다 가려버릴 생각이었어요?”

“응? 힉!!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럴 만큼 네가 예쁘다는 거야!”

당황이 가득한 그 말투를 바라보며 세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어찌 되었든 즐거운 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중 트레일이 “엇 잠깐만! 기다려봐!

“ 다급히 하나가 더 있다며 무언가를 꺼내러 이동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시녀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린은 시녀들의 반응에 당황하여 서둘러 트레일을 바라보았고 그가 꺼내온 겉옷을 바라보며 함께 창백해져갔다.

“히익!!”

로레인도 그 겉옷을 본 순간부터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목깃이 긴 그 털옷은 지금 세린이 입고 있는 드레스마저 삼켜버릴 정도로 두껍고 매우 길었다.

저 옷을 입고 연회에 갔다가는 파티장에서 굴러서 입장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트레일은 그런 세린의 심정을 모르는 척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떠니 세린! 예쁘지???”

“.... 오빠... 그걸 저보고 입고 연회에 가라는... 그런 거죠?”

“응! 맞아!”

저걸 입을 것이었다면 드레스는 왜 고른 것인가 싶었다.

어차피 드레스가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기에.

세린의 눈이 잔뜩 구겨지다가 꾹 참는 듯싶더니 결국에는 크게 소리쳤다.

“안 입어요!!!”

어쩐지 너무 정상인 드레스를 골랐다 싶었던 세린이었다.

순조로울 것 같은 드레스 정하기는 그렇게 약간 삐끗하게 넘어갔다.

*

그리고 그 날, 세린이 마력훈련을 위해 자리를 비운 시간.

황족들은 집무실 안쪽의 방 안으로 모두 모여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로레인은 황제를 향해 물었다.

“시작합니까?”

황제는 엄숙한 얼굴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 시작하거라.”

그 대답을 끝으로 테오도 트레일도 어두운 방의 한 쪽 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로레인의 손에서 푸른빛이 생기더니 이내 벽 하나를 채울 정도의 밝기를 만들었고 그 밝은 벽 앞에서 어떠한 영상구가 틀어졌다.

그 영상구 속에서는 레몬케이크를 포크로 집어서 얼굴에 잔뜩 묻히며 먹고 있는 세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황제는 사진을 보자마자 허물어지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뜻 깊군. 이게 딱 오늘 날짜의 5년 전이라는 것이지?”

황제의 물음에 같이 허물어져서 웃은 로레인이 대답했다.

“네, 처음으로 케이크를 먹어본 날이었습니다.”

트레일은 그저 사진을 바라보며 헤벌쭉 웃고 있을 뿐이었다.

테오도 한 쪽 팔로 고개를 받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뭘 해도 예쁘고 귀여웠던 때가 저 때였지.

지금도 몰론 예쁘고 귀엽지만 이제는 저 아기 같은 모습이 없어 묘한 아쉬움을 느낀 황족들이었다.

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서 함께 세린의 영상구를 돌아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는 애틋한 눈으로 세린의 영상을 감상하다가 말했다.

“로레인 네가 수고가 많았구나.”

“제 일이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로레인은 황제의 격려에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었으니 힘든 것도 수고도 아니었다.

황족들의 팔불출은 해를 거듭할수록 광범위해졌다.

“엣취!!”

세린의 기침에 이엔이 서둘러 달려왔다.

“몸이 안 좋으십니까?”

“킁... 아니... 괜찮아. 그냥 오한이 들어서.”

“그렇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쉬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래야 겠다... 가자!”

세린인 갑자기 든 오한에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 하며 궁으로 돌아갔다.

이엔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마력은... 여전하십니까?”

“응...”

세린은 조금 난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리엘을 향해 엄청난 양의 마력을 사용한 후 세린은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평소의 양과 비교했을 때 마력의 사용량이 10배는 줄어든 것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하지만 세린은 아쉽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이제는 마탑도 없고 마를린도 없었다.

마력을 사용할 일도 없었고 마력이 자신을 위협할 일도 없어서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연회의 날은 다가왔다.

푸른 하늘 아래에 이동하는 금빛이 나는 마차 안에서는 남부제국의 황태자와 2황녀가 타고 있었다.

황태자는 푸른 하늘색의 머리카락에 남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황녀도 같은 머리와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황태자는 하얀색 제복 밑으로 뻗은 긴 다리와 그려놓은 듯 아름다운 얼굴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2황녀는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며 몸에 딱 붙는 남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황태자만큼 아름다운 얼굴로 그를 바라본 황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북제국에는 황자가 세 분 황녀가 한 분이고 하더군요. 황녀는 워낙 황제와 황족들이 귀하게 생각하고 아껴서 올 해에 처음으로 성인식 겸 사교계에 데뷔했다고 합니다.”

황태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사랑이군.”

“그런데 이번 마탑의 일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그 황녀라고 합니다.”

“흠?”

황태자의 눈썹이 살짝 들려 올라갔다.

귀하게만 자란 황녀가 마탑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다는 말인가?

“황녀가 마탑과의 전쟁에 참여했다는 건가?”

황태자의 물음에 황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제일 선두에서 대마법사의 마력을 막았다고 합니다.”

“흠....”

황태자는 턱을 쓸어보며 창문 밖에 보이기 시작한 동북제국의 수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황녀의 존재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연회에서 볼 것이 분명하니 황태자는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린은 결국 드레스의 겉옷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테오는 조금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예상했던 결과였고 트레일은 그저 절망했다.

“아니 왜애애애애!!”

“오빠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몰라아아! 그 옷이 딱 그 옷이었는데!”

“절대 안 입을 거예요!!”

버럭 소리치며 싸우는 남매가 참 귀여웠다.

트레일과 세린은 한참을 저러다가도 이내 다시 꼭 붙어서 의지하며 장난치기를 반복하는 귀여운 사이였다.

로레인은 그런 둘의 모습이 예뻐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세린을 달래며 말했다.

“세린, 이제 갈 시간이란다. 연회가 시작하겠어.”

“벌써요??”

세린의 눈이 커지며 서둘러 나가려는 준비를 하자 트레일이 다급히 세린의 티아라를 챙겨 머리에 조심스럽게 올려주었다.

세린은 그의 손길에 티아라를 착용하며 이내 피식 웃었다.

“이것 봐...! 결국 이럴 거면서... 맨날 저 놀리는 거죠?”

“봐주는 것뿐이야! 내가 골라준 걸 입어준다고 약속했으면서...”

“웃겨 정말... 그걸 어떻게 입고 연회에 가요! 남부제국의 황족들도 오신다는데 실례에요!”

“실례는 무슨... 내 알 바는 아니잖아.”

“아우 정말!”

“흥”

트레일은 결국 고개를 휙 돌리고 토라진 듯 앞서 걸어갔다.

세린은 로레인의 팔에 제 팔을 끼우며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반대쪽 팔을 뻗었다.

“오빠아~~저 에스코트 안 해줄 거예요???”

“레인형님이 있잖아...!”

“난 트레일 오빠도 같이 잡아주는 줄 알았는데... 정말 너무해요...”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시무룩한 말투가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었다.

트레일은 세린의 장난을 알았지만 이내 찌릿 세린을 째려보다가 성큼성큼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손이 많이 간다니까 정말!”

“아하하하하!!”

세린은 그런 트레일의 모습이 대형견 같은 느낌이라서 크게 웃었다.

로레인도 밝게 웃으며 그 둘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즐거운 마음으로 형제들과 함께 연회의 입장을 위해 이동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