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66화 (66/218)
  • 66화. 세린의 드레스

    제이는 마탑의 일이 모두 해결이 되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고 리사는 기사단장이라서 여전히 황궁으로 출근을 했다.

    제이는 창문 밖에서 출근을 준비하는 리사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이번 마탑에서는 리사의 공이 생각보다 컸다.

    마탑의 숲 주변에 목이 썰린 마법사의 시체가 몇 구인지 그 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전달을 받았었다. 만약 숲 주변의 마법사들의 목을 베지 않고 해결했다면 시체들을 되살렸을 시기에 큰 위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빠지던 제이는 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리사는 그런 제이를 멍하니 바라보가가 고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부드럽게 흔들었다.

    제이는 그저 아름다운 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줄 뿐이었다. 리사의 표정이 붉어지며 분노로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이는 리사를 파악하는 것을 이미 완료한지가 오래였다.

    리사는 창문 밖에서 뭐라고 소리쳤지만 방음이 너무 잘 되어서 그저 새가 지저귀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제이가 다시 한 번 웃어주자 리사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휙 고개를 돌리며 마차에 올랐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리사는 참 솔직한 모습이 매력인 귀여운 아이었다. 제이는 리사의 마차가 사라지는 것을 살펴보다가 이내 황성의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멀리서 보이는 황궁의 자태를 유심히 보던 제이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을 베어내고 나와서 보인 첫 풍경은 제이를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그토록 보고 싶던 아름다운 분홍빛 머리카락이었고 그 분홍빛 머리카락을 적신 붉은 피였다.

    그 고운 입술 위에서 나오는 붉은 피의 양에 제이의 머리는 하얗게 굳어버렸고 생기라고는 없는 피부에 한 번 더 백지가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다는 공포가 이리도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제이는 그 기억을 다시 짚어보다가 이내 그녀는 무사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참았던 숨을 다시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책상에 앉았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종이와 펜을 꺼낸 제이는 수려한 글씨체로 편지를 써내려갔다. 세린에게 보낼 편지였다.

    *

    세린은 은쟁반 위에 있는 하얀 봉투의 편지에 눈을 빛냈다. 제이에게서 온 편지를 조심스럽게 들어 봉투를 열었다. 편지에는 세린에 대한 걱정이 잔뜩 묻어나왔다.

    세린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담겼다. 세린은 깃펜을 들고 답장을 보내기 위해 편지를 썼다. 이엔은 그런 세린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마탑의 마법사들도 없고 세린은 안전하다. 그런데도 자신이 그런 그녀의 옆에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엔의 그런 고민을 모른 세린은 제이에게 써 내린 답장을 한 번 읽어본 후 미소를 지으며 멜에게 건네주었다. 멜은 공손히 그 편지를 받아 보내기 위해 자리를 떴다.

    세린은 그런 멜을 바라보다가 문가에 서서 조금 외로워 보이는 이엔을 발견했다.

    “이엔, 무슨 일이야? 어떤 걱정이라도 있어?”

    “.... 아닙니다.”

    “표정이 안 좋은걸...?”

    세린은 다급히 이엔에게로 다가갔다. 세린이 다가오자 훅 끼치는 달콤한 향기에 이엔이 금빛 눈동자가 떨렸다.

    세린은 그 아름다운 연두색 눈동자를 요리 조리 굴리며 이엔의 얼굴을 살폈다. 이엔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저, 전하 아픈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창백한 걸? 정말 아프지 않은 거 맞아?”

    세린은 까치발을 들고 천천히 손을 뻗어 이엔의 이마를 만졌다. 붉게 달아오른 볼이 열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이엔은 이마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다급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더듬더듬 말했다.

    “아,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저?”

    “.....”

    이엔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하.”

    “응 이엔.”

    세린은 올곧은 연두 빛 눈동자로 이엔을 담았다. 그 망설임 없는 대답과 부드러운 미소에 이엔의 마음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전하... 이제 전하를 위험하게 만들 마탑도 없고 마법사들도 없습니다.”

    세린은 이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엔은 조금 슬퍼 보이는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제가 황녀전하의 곁에 남아 있어도 괜찮은 건가요?”

    “....?”

    “어쩌면 이제 제국에 남은 위험한 요소는 저일지도 모릅니다. 어둠술사이며 저주를...”

    “이엔!”

    이엔은 세린의 단호한 음성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내렸다. 세린은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인상을 왈칵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이엔은 내가 싫은 거야?”

    “예...? 아닙니다!”

    “그럼 왜 자꾸 떠나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 거야?”

    이엔의 눈동자가 커졌다.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전하께 해가 될까봐...”

    “이엔 너는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지 나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잖아...!”

    세린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이엔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미 이엔은 내 기사가 되기로 했었어! 이제는 필요 없다고 내가 널 내치기라도 할까봐 그래??”

    이엔은 정곡을 찔린 마음에 시선을 부르르 떨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린의 목에 핏대가 섰다.

    “정말...!! 이엔!!”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너 또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정말 내칠 거야!!”

    세린의 단호한 말에 이엔의 마음에는 다시 온기가 찾아왔다. 떠나지 않아도 된다.

    그녀의 곁에 서서 그녀를 지키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음에 이엔은 안도하며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남한테 받은 신뢰만큼 값진 것은 없다.

    이엔은 세린의 신뢰를 가슴 깊이 남기며 붉어진 볼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세린은 그런 이엔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부드럽게 웃었다.

    “고마워. 이엔 덕분에 오빠를 구할 수 있었어.”

    이엔은 그런 세린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황태자 전하는 황녀전하께서 구하신 겁니다.”

    “하지만 제이공자나 리사 공녀나 이엔이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어. 이건 진짜니까! 정말 고마워 이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이엔의 눈이 흔들렸다. 여기서 더 반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더는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면 안 된다.

    이엔은 잔뜩 붉어져가는 얼굴을 고개를 숙이며 가린 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감사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황제는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제국의 무사와 평안을 위한 연회 날짜가 잡혔다. 초대 손님으로 남부제국의 황태자와 2황녀가 온다고 하는구나.”

    세린은 이미 로레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린을 바라본 황제는 세린을 부드럽게 바라보다가 그녀의 접시에 스테이크를 올려주며 말했다.

    “테오와 트레일이 너의 드레스를 직접 골라주고 싶다고 하는구나. 네가 허락했다고 이야기하던데...”

    “아! 맞다, 맞아요! 제 드레스를 골라 주시기로 했지요?”

    세린의 얼굴이 환하게 변하며 테오와 트레일을 바라보았다. 테오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나름 열심히 고르기는 했지만... 네 마음에 들어야 성공한 것이겠지...”

    “뭐든 오빠들이 열심히 골라준 것이니까 좋아요! 고맙습니다!”

    벌써 그들이 골라준 드레스가 기대된다며 두 볼을 붉히는 세린을 바라보며 트레일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두 팔로 팔짱을 끼며 턱을 치켜들고 웃었다.

    “형님과 고생을 좀 했지만 분명 네 마음에 들 거야. 아직은 장신구를 고르는 중이라서 기다려야겠지만.”

    “장신구도 골라주시는 거예요?”

    세린의 눈이 커졌다. 드레스만 골라주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극적인 두 사람의 모습에 세린은 기분이 좋아졌다.

    ‘나랑 어울리는 드레스...!’

    오빠들의 눈에는 자신과 어떤 드레스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해진 세린은 밝게 웃으며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로레인은 의기양양한 두 형제를 바라보다가 세린을 바라보며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애를 원단으로 얼굴까지 가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들만큼 둘의 모습이 불안했던 로레인이었다. 몰론 자신도 세린의 피부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은 싫지만 저 두 사람이 고르는 드레스는 많이 걱정스러웠다.

    ‘드레스가 아니라 이불일지도...’

    세린은 그 날 저녁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이번 연회는 따지고 보면 두 번째로 참여해보는 귀족들과의 파티였다. 처음 데뷔해본 사교계에서 당했던 그 모욕과 무서운 눈빛을 기억하는 세린은 조금 겁이 났다. 이번에도 그러한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세린은 눈을 데굴데굴 굴려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수도는 늦은 밤인데도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저 빛들 사이로 백성들은 활기차게 웃고 떠들고 생기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세린은 이내 배시시 웃었다. 예전에 멜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웃고 떠들고 사랑을 하다보면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던가.

    그 말이 맞았다.

    그런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사랑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 연회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신뢰하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세린은 먼 창문 밖의 제국민들의 마을을 지켜보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연회의 날짜는 금방 다가왔다.

    세린은 연회가 시작되기 전 날, 트레일과 테오의 손에 이끌려 미리 옷을 입어보기 위해 드레스 룸에 들어섰다. 세린의 두 볼은 이미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들이 골라준 드레스가 어떤 것일지 궁금했던 탓에 계속 잠을 못 잤던 세린이었다. 세린은 드레스 룸의 메인 커튼이 열리고 열려진 커튼 사이로 보이는 드레스의 자태에 눈을 크게 떴다.

    테오와 트레일이 걱정이 되어 따라온 로레인 마저도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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