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테오는 교활합니다.
제국에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세린은 깊은 잠에 빠진 후 겨우겨우 3일 만에 눈을 떴고 테오는 시간을 뒤로 돌린 것으로 인한 휴우증으로 재활훈련처럼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아직 몸이 뻐근하고 욱신거려서 테오의 미간을 펴질 줄을 몰랐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늦은 저녁까지 몸을 움직이려 애쓰는 테오의 모습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던 세린이었다.
세린은 테오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많이 아파요...?”
“아니, 괜찮단다.”
테오는 그런 여동생의 걱정에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세린은 그런 테오에게 모든 정성을 쏟으며 음식을 먹여주거나 체력훈련을 돕거나 몸을 부축해주든 등의 애정을 보였다.
트레일의 눈이 돌아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세린은 식사시간에 아예 테오의 옆에 자리하고 자신의 앞에 있는 스테이크를 썰어서 테오에게 건네주었다.
“오빠! 이거 먹어봐요! 정말 녹아요~!”
“고맙구나.”
아주 한 입 건네주고 한 입 먹어보고 난리였다.
트레일의 눈이 화르륵 불타오르며 소리치듯이 말했다.
“세린! 형님은 지금 다 나은 것 같은데 뭘 그리 챙겨드려...!”
그 말을 듣자마자 세린의 눈이 날카롭게 떠지며 트레일을 향해 외쳤다.
“트레일 오빠! 시간이 되돌아갔을 때 몸에 얼마나 많은 무리를 주는 것인지는 알아요??”
“아, 아니 그러니까 형님은 방금 아침만 해도 목검으로 날 아주 두드려 팼...”
“콜록콜록!!”
트레일의 말을 끊고 테오가 기침을 했다.
세린의 눈이 안타깝게 휘어지며 서둘러 테오의 단단한 팔을 붙잡고 그를 살펴보았다.
“오빠...! 괜찮아요?”
“그래. 괜찮다. 트레일의 말처럼 나는 다 나은 것 같구나.”
그 뱀 같은 테오의 말에 세린의 눈이 더 날카로워지며 트레일을 쏘아보았다.
“트레일 오빠! 정말 테오 오빠한테 왜 그래요?? 가뜩이나 테오 오빠는 저주에 풀린지도 얼마 안 지났는데...!!”
“아니 난... 세린! 그게 아니라...!”
트레일의 억울한 목소리가 나오기 전, 테오가 다시 부드럽게 세린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난 괜찮다. 세린 너는 네 몸을 챙겨야지.”
“오빠...”
테오의 걱정에 세린의 눈이 젖어갔다.
자기 몸도 챙기기 힘들 텐데 그 와중에 자신을 걱정하는 테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황제는 그런 테오의 교활함을 알았지만 이내 며칠은 양보하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팠던 아들에게 미안함도 많았기에 일부러 눈을 감아준 황제는 불쾌함을 얼굴에 가득 들어낸 로레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주 세린의 모든 것에 반응하는 것이 중증이었다.
몰론 그 중증이 본인도 포함된다는 것을 황제는 인식하지 못했다.
트레일은 어금니를 악물고 그런 테오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대련에서 자신을 아주 죽사발 때리듯이 목검으로 때린 기억이 떠오르니 아주 화가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로레인도 황제처럼 며칠은 눈을 감아주기로 했다.
세린을 고생시킨 것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그가 저주에 걸려서 죽을까봐 걱정을 했기도 했다.
‘하지만...’
다 나은 후에는 어디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냉정히 테오를 바라보았다.
테오는 세린의 온 관심을 받으며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더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걱정을 키우고 싶지는 않았기에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내일까지는 조금 비틀거리지만 올바른 걸음으로 걷고 그 다음 날부터는 정상적으로 걸어가면 괜찮겠군. 기침은 오늘부로 그만두고 호흡도 무난하게 내뱉으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 테오의 계산적인 모습을 모르는 세린은 얼른 테오가 나아지기를 빌며 그를 도왔다.
이엔은 세린의 뒤를 따라 이동하며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저녁이 다 되었는데 황궁의 정원으로 나온 세린은 주변을 애틋하게 둘러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밤에 보는 황궁의 정원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었다.
이엔은 그런 세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력의 한계를 무시하고 방대한 마력을 사용해버린 세린과 그런 세린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장면.
그리고 눈을 뜨지 않는 세린의 모습에 심장이 철렁거리는 그 감정까지 생각이 나버리자 이엔은 두 눈을 잠시 감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지금 제 앞에서 이리도 살아있다.
아름답게 웃으며 따스한 온기도 담고 있었다.
이엔은 그게 그리도 기뻤다.
그러던 중 트레일이 세린에게 다가왔다.
“세린~~!”
“.....”
세린은 트레일이 허겁지겁 제게 달려오자 입술을 쭉 내밀고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트레일은 그런 세린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테오 형님한테 안 그럴 테니까 화 풀어...”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믿을 수 없어서요...”
“뭐어?? 너무하네! 난 세린 널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데!”
세린은 트레일의 말에도 고개를 휙 돌리고 혀를 내밀었다.
둘은 여전히 달빛 아래에서 티격태격 이었다.
같은 시각, 황제는 집무실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마탑의 일과 밀려있던 업무들의 행진에 생각보다 집무실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황제는 서류들을 한 장씩 넘기며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종이가 넘겨지는 소리와 펜이 종이 위를 휘갈기며 써지는 소리가 그의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황제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다가 이내 그 동작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깃펜을 내려놓은 후 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거칠게 쓸었다.
“후....”
깊은 한숨과 함께 의자에 등을 기대어 창문을 바라본 황제는 힘없이 창문에 비치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짙은 고독이 담긴 그의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다.
그런 황제의 눈이 황궁정원이 보이는 창문으로 향했다.
멀리서 나풀거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이 보여 황제의 입가는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달빛을 받아도 아름다운 세린의 옆에는 트레일이 있었다.
점심때처럼 투닥거리는 듯한 두 사람의 표정과 입모양에 황제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웃었다.
그 귀여운 남매를 가만히 바라보던 황제는 다시 즐거운 미소를 입에 담고 뒤를 돌았다.
업무를 빨리 정리하고 가족들과 담소라도 나누고 싶었다.
집무실에는 다시 깃펜의 소리와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로 가득 찼지만 따스한 온기가 풍겨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은 금방 밝았다.
세린은 로레인과 팔짱을 끼며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함께 아침을 먹자며 문 밖에서 기다려준 로레인에게 환히 웃은 세린은 열심히 어제 저녁 트레일의 만행에 다해 투덜거리며 이야기하기 바빴다.
로레인은 그런 세린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린. 마탑과 관련된 일이 끝나면 황성에서 연회를 연다고 하는 구나.”
“연회요??”
“그래. 마탑의 진실이 밝혀졌고 이제 그런 마탑이 섬멸되었으니 제국끼리 축배를 든다던데...”
“아...! 그러면 다른 제국에서도 손님이 오는 건가요?”
“그렇겠지. 남부제국에서는 황태자와 2황녀가 온다고 하는구나.”
“황녀와 황태자까지요?”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3개의 제국 중에서 남부 쪽 제국의 황태자가 다른 제국의 일을 축하해주러 온다는 것은 엄청 큰 연회가 될 것이라는 일이었다.
세린의 눈이 조금 걱정으로 물들었다.
“큰 일이 끝나자마자 아빠가 너무 무리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로레인은 피식 웃으며 세린에게 말했다.
“그런 일을 걱정하는 것은 너밖에 없단다. 아버지는 흩어진 나라를 통일해서 제국을 만드신 분이야.”
“그렇지만...”
로레인은 그런 세린이 그저 기특했다.
남을 생각하는 것부터 어쩜 그리 다정한지 몰랐다.
그렇게 식당에 도착한 둘은 먼저 와서 기다리던 황제의 곁에 앉으며 인사했다.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황제는 그런 둘의 말에 다정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잘 잤단다. 고맙구나.”
“그런데 오빠들은 아직 안 왔네요?”
“오늘은 따로 먹을 것 같구나. 둘이 지금 협의를 하고 있거든.”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협의요...?”
황제는 그저 웃으면서 세린의 물음을 넘겼다.
로레인도 묘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세린은 그 둘의 모습에 수상함을 느꼈지만 이내 별 생각 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트레일과 테오는 드레스 룸에서 다양한 드레스들을 체크하고 리스트를 짜고 있었다.
“형님, 이건 팔의 살결이 다 보이는 것인데요?”
“기각한다. 레이스로 짜인 소매가 아니었으면 좋겠군.”
트레일은 다양한 여성 드레스를 한 번씩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형님, 아무래도 세린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깔부터 정해야 디자인을 고르기가 쉬울 것 같아요. 양이 너무 많아서 이거야 원...”
그런 트레일의 말에 테오가 냉정히 대답했다.
“멍청하기는. 세린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다시 보는 눈을 키울 필요가 있어 보이는구나. 학업에 열중하고 오거라.”
그런 쌀쌀맞은 대답에도 트레일은 “아 맞다.”라고 하며 수긍했을 뿐이었다.
트레일은 미간을 왈칵 좁히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어렵네요. 색은 둘째 치고 디자인도 뭐 하나씩 다 파여 있잖아요.”
“그러니 잘 찾아봐야지. 세린에게서 보이는 피부는 얼굴까지만 허락하겠다.”
“아니 얼굴이 제일 위험할지도 몰라요. 숨이 막히게 예쁘잖아요!”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레이스가 있는지도 찾아보는 것이 좋겠군...”
그런 진부하면서도 어이없는 대화에 주변에 대기하던 시녀들이 고개를 숙였다.
아침부터 드레스 룸에 들어와서는 아직 잡히지도 않은 연회의 일정을 위해 황녀전하의 드레스를 손수 고르는 모습이 여간 황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 대화만 들어보면 황녀전하는 연회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에 꽁꽁 둘러져 등장하는 것이 최고라는 듯 한 느낌이었다.
‘황녀전하... 죄송합니다...’
저희의 불찰은 아니지만... 이번 연회는 틀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