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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63화 (63/218)
  • 63화. 엄마를 향해

    마를린은 울컥 피를 토하며 세린을 향해 소리쳤다.

    “체내에 마력 따위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어째서 너 따위가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지?!”

    세린은 입가에 흐르려는 핏줄기를 옷소매로 닦은 후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를 원래대로 돌려놔.”

    세린의 단호한 목소리에 마를린이 진득한 피가 잔뜩 묻은 얼굴로 씩 웃었다

    “원래대로...? 다시 엄마를 죽여 달라는 이야기니...?”

    “.......”

    세린의 눈매가 굳어갔다.

    마를린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정말 나쁜 딸이네. 엄마가 널 위해서 저주까지 대신 받아가며 희생했는데 다시 죽여 달라니...!”

    “......!!!”

    세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지..?”

    마를린은 눈까지 휘어가며 환하게 웃었다.

    “영혼을 잡아서 묶으려면 시체의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거든. 정말... 그 기억을 읽고 엄청 놀랐다고?”

    “.......”

    황제와 기사들의 마법사들을 베어내는 소리 사이로 세린은 마를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를린은 여전히 즐거운 듯이 웃으며 말했다.

    “너 말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알려줄까?”

    “.....”

    “네가 저주에 걸린 이유 말이야. 우리 마탑에서 어둠술사를 페르돈에게 보냈거든.”

    “...!!!!”

    “대마법사를 제국에서 소유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녀를 뺏고 싶었어. 우린 대마법사가 필요했거든.”

    그래서 황제와 황후를 견제하며 반란을 준비하는 황제의 형에게 어둠술사를 보냈다며 마를린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

    “아리엘이 그 후작의 성을 태우는 것도 너무 멋졌지 뭐니. 마력이 아름다운 푸른색이었어...!”

    황홀하다는 듯이 내뱉는 마를린의 말에 세린의 낯은 점점 괴롭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우리 마탑에서 제국민들에게 소문을 냈어. 네가 저주에 걸렸다고 우리에게 저주가 옮으면 온 몸이 썩어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무섭다고. 어쩌면 황후가 저주를 내린 마녀일지도 모른다고.”

    “....!!!”

    “당연히 사람들은 제 목숨이 중요해서 뭐든 하더라고. 바로 시위하고 돌을 던지고 너와 황후를 내치라고 하더라?”

    세린은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마력을 모으고 있는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역시 당연하게도 아리엘은 널 데리고 사라졌어. 이제 우리는 그녀를 찾아 마탑으로 데리고 오면 되었는데... 안 보이는 거야...!!”

    마를린이 분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세린은 여전히 아리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어가는 애새끼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을 다 찾아봤어. 숲 속부터 수도, 지방의 골목, 다른 나라까지 다 뒤져서 찾아보고 심지어 더러운 빈민가까지 들어가서 찾았는데 없었어...!”

    “.......”

    “그런데 세상에... 아하하하!! 저 시체기억을 읽으니까 창녀촌에 있었더라...!?? 나 너무 놀랐어! 대마법사인데 황후였는데 창녀가 되었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지 뭐니.”

    마를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이제는 상관없어졌어. 드디어 그녀를 얻었으니까.”

    아리엘의 마력은 아까 전의 마력구보다 훨씬 거대했다.

    저 마력에 맞으면 여기 있는 모든 생명체가 죽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크기였다.

    세린의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그런데 그녀를 얻어도 시체에 영혼이 자리를 잡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알아?... 아리엘의 영혼을 시체에 넣는 것은 성공했는데 그 묶은 영혼이 중간마다 자꾸 사라지는 거야.”

    “......!”

    “사라진 영혼이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불안정했어. 뭐 횟수가 점점 줄어서 이제는 잘 흐트러지지 않아졌지. 성공한 거야, 내가!”

    세린의 눈이 느리게 감겼다가 떠졌다.

    ‘엄마를 버려줘....!’

    그 슬픈 외침이 이런 이야기였나.

    엄마의 묶여진 영혼은 그 때마다 내게로 와서 자신을 버려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었나.

    그 부탁이 이리도 잔인한 것이었나.

    세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얼마나 더 엄마를 죽여야 해?

    엄마는 얼마나 더 괴로워해야 해?

    세린은 서둘러 제 곁에 선 이엔에게 말했다.

    “이엔...”

    “네 전하”

    “이 여자...”

    세린의 눈이 무감정하게 마를린을 바라보았다.

    “저주로 죽여 버려.”

    “...!!!!”

    “네.”

    이엔은 망설이지 않고 마를린에게로 다가갔다.

    마를린은 다급히 도망치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익...!! 이익...!!”

    세린이 마력으로 그녀의 몸을 묶었기 때문이었다.

    세린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냉정히 말했다.

    “너도 어디 한 번 똑같이 죽어봐.”

    그리고 이엔의 손은 망설임 없이 마를린의 손을 붙잡았다.

    “아아아아악!!!!! 아악!!!!”

    마를린의 손가락 끝은 검은 재로 변해가며 하늘 위로 흩어졌다.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마를린을 냉정히 바라본 이엔은 가만히 그녀의 최후를 바라보았다.

    “안돼!! 아아악!!! 사, 살려줘!!!”

    손에서부터 팔까지... 팔에서부터 어깨로 이어지는 저주는 점점 마를린의 생명을 갉아먹었고 재로 만들어갔다.

    이엔은 말했다.

    “내 저주가 널 갉아먹는 것이 몇 초나 걸리는지... 지켜봐주마.”

    “꺄아아아아아아악!!!!!”

    마를린의 머리카락과 발끝까지 재로 만들어지는 것에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를린의 모든 것들이 재로 만들어져 흩어지자 이엔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그 장면을 바라본 후 다급히 하늘 위에 떠 있는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마력구의 크기가 더 커졌다.

    세린은 푸른 마력석의 목걸이를 꼭 쥐며 생각했다.

    ‘막아야해....!’

    세린은 아리엘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세린을 놀란 눈으로 다급히 붙잡은 이엔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전하. 전하는 이미 마력이... 한계이십니다!”

    “이엔, 놔줘.”

    “전하께서 위험합니다...!”

    세린은 슬픈 눈동자로 이엔을 바라보았다.

    “그럼 여기서 모두를 잃으라는 것이니?”

    “...... 전하!”

    “이엔!!”

    세린의 외침에 이엔이 굳었다.

    세린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고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죽을지도 몰라. 내 가족도 내 친구도 우리 제국의 기사들도...”

    세린은 망설임 없는 얼굴로 이엔에게 말했다.

    “난 다시는 누군가가 죽거나 잃는 걸 보고 싶지 않아.”

    “.....”

    이엔의 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제는 부상을 입은 기사들을 보호하며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기사단들은 필사적으로 적을 베어내며 버티고 있었다.

    숲에서 내려온 리사는 순식간에 마탑 안으로 들어가 제이를 도와 적을 베고 있었고 아리엘황후는 하늘 위에서 그런 그들을 무감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마력구가 내려쳐지면 황녀도 자신도 기사단들까지도 모두 죽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엔에게는 세린이 너무도 소중했다.

    “전하... 정말...”

    “이엔! 미안해..!”

    세린은 다급히 이엔의 팔을 뿌리치고 달렸다.

    “전하!!”

    그가 부르는 소리도 무시하며 앞으로 전진한 세린은 아리엘에게 도달했다.

    ‘세린.’

    아름답게 웃는 그 미소와 푸른 하늘을 닮은 머리카락.

    새싹이 막 돋아난 듯이 싱그러운 연두색 눈동자는 세린의 기억 속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울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일그러지지도 않은 평온한 얼굴로 울고 있었다.

    그 무감정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아리엘의 모습에 세린은 함께 울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들을 버리고 희생한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다.

    ‘엄마를 버려달라고...?’

    세린의 총구가 아리엘을 행해 천천히 올라갔다.

    ‘그런 말을 나한테 하면 어떡해...?’

    아리엘에게 향한 총구의 끝에 연두색의 마력이 모아지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엄마를 버려....’

    세린은 잔뜩 붉어진 눈가를 소매로 닦았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아리엘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황제는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창백해졌다.

    사랑하는 딸이 저런 상황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리엘의 일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 하나뿐인 딸은 그저 안전한 곳에서 좋은 것만 바라보고 좋은 음식만 먹으며 행복했으면 했다.

    황제는 서둘러 세린을 향해 달려갔다.

    세린의 목에 걸린 마력석에는 빛이 밖으로 세어나갈 정도로 넘쳤고 서서히 마력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 윽!”

    세린의 눈가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테오의 시간을 돌리고 난 후 마도구를 많이 사용해서 이미 내상이 상당했다.

    그러나 총구의 마력은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

    “세린...!!!”

    ‘아빠....’ 세린은 눈을 돌리지 않아도 알고 있는 그 목소리에 눈물을 삼켰다.

    아빠가 자신에게 엄마의 유골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세상은 언제나 엄마였으니까. 딸이 마음속에서 엄마를 놓아주지 못했음을 아빠도 알고 있었기에 그 소식이 딸의 마음을 무너트릴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맞는 말이면서도 틀렸다.

    엄마를 마음속에서 놓아주지 못했음은 맞는 말이었다.

    드문드문 엄마와 함께 지냈던 그 기억이 눈에 밟혀 허공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세상이 엄마라는 것은 틀렸다.

    세린의 행복과 세린의 세상은 이제 엄마가 아니었으니까.

    아리엘의 들고 있는 거대한 마력구와 세린의 총구에 모인 마력의 양이 점차 방대해졌다.

    세린은 입가에 주르륵 흘리는 피를 무시하고 마력을 더 모았다.

    거대한 마력의 증폭에 대지가 흔들렸다.

    황제는 세린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세린!!!”

    ‘아빠...! 오지 마세요...!’ 세린은 총구에 마력을 모으면서 재빨리 황제와 기사들의 앞에 연두색의 푸른 막을 형성했다.

    쿵!!

    황제는 세린이 가로막은 막에 의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세린!! 아빠가 하마!! 이제 그만 멈추거라!!”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세린은 죄책감을 가졌다.

    그에게도 이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세린은 엄마에게 겨눈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아빠에게 이런 잔인한 일을 맡으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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