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마법사들과의 전쟁
“..... 세린.”
테오였다.
테오는 보라색으로 썩어가면서도 여전히 근사하게 웃었다.
그의 초점 없는 붉은 눈동자 곱게 휘었다.
“여전히 예쁘구나...”
“오빠.....”
세린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이내 웃으며 물었다.
“저를 믿나요...?”
“.... 너를?”
“응....”
세린의 물음에 테오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답할 가치가 없구나.”
“.......”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줄 수 있을 정도로 믿는다.”
“정말... 바보 같네요....”
세린이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잠시 죽어주세요... 오빠.”
세린의 말에 잠시 멈칫한 테오는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 그러마.”
“... 왜 그런지는 묻지 않으시나요...?”
“네가 죽으라고 하면 이유가 있던 것이겠지. 아까 말했지 않느냐... 널 믿는다고.”
세린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안 그러면 차오르는 슬픔으로 우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테오는 시야가 흐릿한 눈으로 세린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네 탓이 아니란 것을 기억하려무나.”
그 말을 끝으로 테오의 손에서 천천히 힘이 풀렸다.
세린은 천천히 두 손을 테오의 심장에 올렸고 이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살아주세요... 오빠....”
세린의 손 위로 강한 빛이 터졌고 방 안을 모두 하얗게 만들 정도로 빛은 눈부셨다.
환한 빛을 터트린 마력은 점차 테오의 심장을 압박하며 박동을 천천히 멈춰 세웠다.
세린은 땀을 흘려가며 테오의 심장 속에 붙은 어둠을 마력을 통해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떨어져...! 제발 떨어지란 말이야...!’
천천히 밀려진 어둠은 테오의 심장박동이 느려지자 작은 움직임이 생겼고 그의 심장은 완전히 멈췄다.
테오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창백해져갔다.
세린의 땀방울이 그의 옷에 떨어졌다.
‘제발.....!’
동시에 어둠이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다.
‘지금이야...!’
세린은 다시 입술을 깨물고 테오의 심장에 집중시킨 마력을 빼내었다.
그의 심장이 다시 뛸 수 있도록 박동에 자극을 주자 천천히 그가 다시 호흡을 시작했다.
그의 긴 속눈썹은 열리지 않았지만 훨씬 평온해진 숨소리에 세린의 눈이 안도했고 이내 목걸이를 꼭 쥔 후 숨을 들이켰다.
그의 썩어가는 신체의 시간을 뒤로 보낼 생각이었다.
세린은 심호흡을 한 후 바로 망설임 없이 테오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지나가버린 그의 시간을 뒤로 돌렸다.
세린과 같은 연두색의 빛들이 강하게 테오를 향해 몰아쳤고 세린의 풍성한 분홍빛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휘날렸다.
“윽....!!”
세린의 이가 악 물렸다.
입술을 깨물고 버틴 세린의 입가에는 한 줄의 피가 흘렀지만 세린은 마력을 멈추지 않았다.
로레인의 푸른 마력석 목걸이도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테오의 썩은 신체가 점점 본래의 아름다운 피부로 돌아갔다.
세린의 몰아치는 마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테오는 살아나고 있었다.
‘저를 믿나요...?’
다짜고짜 물어본 그 말에 테오는 망설이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구나.’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줄 수 있을 정도로 믿는다.’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눈과 손과 행동으로 보여주던 그에게 세린은 항상 의지했다.
든든한 지원군이자 든든한 자신의 사람.
그런 테오가 살 수 있다면 이 정도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린은 간절히 기도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거칠게 내뱉은 말 속에서 피가 섞였다.
앞으로 돌린 시간보다 뒤로 돌리는 시간이 사용하는 마력의 두 배였다.
세린의 몸은 의지를 잃어갔다.
그러나 빛들이 흩어지고 세린의 눈앞에는 어느 새 매끄러운 아름다운 얼굴을 자랑하는 테오가 편안하게 숨을 쉬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큭... 후... 오빠....?”
거친 숨을 내뱉으며 테오를 향해 손을 뻗은 세린은 파르르 천천히 올라간 속눈썹 안으로 마주친 아름다운 루비 같은 눈동자에 눈물을 쏟았다.
“오빠아아아아아....!!”
그의 따스한 온기를 품은 상체에 기대어 펑펑 눈물을 쏟은 세린을 조심스럽게 안아준 테오는 거친 목소리지만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세린”
“으아아아아아아..!!!”
세린은 행복하면서도 너무도 무서웠다.
테오는 울고 있는 여동생을 품에서 부드럽게 두드려주며 말했다.
“울지 말거라.”
“오빠아...! 무서웠어요....! 흐어어엉”
“미안하구나...”
테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머니에 대한 망설임 때문에 자신이 죽을 뻔한 것을 안다.
하지만 여동생의 눈물을 보니 그저 후회가 남았을 뿐이었다.
세린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테오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의 몸 구석을 잘 살펴보며 그의 몸에 더 이상 보라색의 반점도 썩어가는 부위도 없다는 것에 잔뜩 안도했다.
테오는 그런 세린의 얼굴에 눈물을 닦아주며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우는 모습마저 예쁘고 그저 기특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들어 너무나도 미안해졌다.
세린은 그런 테오의 품에 안겨 다시 펑펑 울었다.
“오빠... 정말 다행이에요...!”
“미안하다.”
그러다 문득 따스한 품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괴롭게 일그러진 황제의 슬픈 얼굴이 세린의 머리에 들어왔다.
'제국의 황제폐하께옵서 황태자 전하를 되찾고 마탑의 섬멸을 위해 군대를 출격하였습니다.'
리사의 그 말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황제의 걱정이 가득해졌다.
마탑에는 아직 마를린이 있었고 이엔은 마지막에 마를린과 대치하고 있었다.
리사와 제이도 무사한 것인지 세린은 알지 못해 보다 창백해진 얼굴로 굳어갔다.
“세린...?”
세린의 얼굴을 보며 함께 놀란 테오가 세린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를 불렀다.
세린은 다급히 테오의 어깨를 잡아준 후 외쳤다.
“오빠! 저 다시 마탑에 가봐야 해요....!”
“...!”
테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네 상태로 또 어디를 간다는 것이냐...”
세린은 그의 일그러진 미간을 부드럽게 쓸어준 후 말했다.
“마탑으로 아빠가 군대를 이끌고 가셨어요... 마탑에 제 친구들도... 모두 구해야 해요.”
“그렇다면 나도 함께 가마.”
“오빠....”
테오는 세린의 손을 꽉 붙잡으며 천천히 상체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시간을 뒤로 넘긴 신체를 바로 움직이기에 무리가 있어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테오는 그런 몸을 억지로 움직여 세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세린. 마탑의 어머니는 영혼이 붙잡혀 시신에 담겨있다고 했다. 그래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일단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맞다. 그건 대마법사의 마력이었으니까.”
세린의 고개가 숙여졌다.
‘엄마를 버려줘...!’
이상하게도 그 꿈과 지금 이 상황이 무언가 연결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세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더더욱 빨리 마탑으로 향해야 했다.
세린의 눈이 괴롭게 일그러지며 테오를 향해 말했다.
“오빠 다녀올게요...!!”
“세린...!!”
“미안해요...!”
“세린!!!”
“오빠를 데리고 갈 수는 없어요!”
테오는 다급히 세린을 붙잡았으나 세린은 굳은 얼굴로 테오를 두고 워프했다.
테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이엔은 세린이 사라지자마자 부딪혀오는 마력의 덩어리를 겨우겨우 피했다.
몸을 앞으로 굴러 피한 이엔은 지하에서 썩어가는 많은 시신들을 둘러보며 이내 괴로운 얼굴로 웃었다.
“마탑은 정말... 지옥이야.”
“이제는 네 지옥으로 만들어주마! 이엔!!”
마를린은 이를 갈며 날카롭게 마법을 뿌렸다.
거대한 얼음의 창이 이엔의 주변에 나타났고 이엔은 서둘러 금빛 마력을 자신의 몸에 둘러 앞으로 치고 나갔다.
콰과광!!!
아슬아슬하게 얼음 창을 피하며 마를린에게 달려간 이엔은 마를린의 뒤로 나타난 한 명의 어둠술사의 등장에 자리에서 바로 멈췄다.
“.......”
그 어둠술사는 어릴 적 이엔을 고문하고 능력을 끄집어내는 곳에 힘을 실은 술사였다.
이엔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를린은 비웃음을 가득 지으며 말했다.
“황제가 군사를 끌고 온다고 했지?”
“.......”
“그래 좋아. 그렇다면 난 황제를 대마법사로 날려 버리겠어...”
“.......!”
이엔의 얼굴이 굳은 것과 동시에 마를린은 그 자리에서 워프했다.
“마를린!!!”
챙!!
마를린을 따라가려던 이엔의 앞에 그 어둠술사가 검을 들고 길을 막았다.
이엔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감옥의 바닥에 뚝뚝 떨어졌고 이엔은 상대방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손에 닿으면 끝이야... 집중하는 거야.’
잠깐의 정적 끝에 이엔과 어둠술사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쿵!!
지하에서부터 올라오는 검기의 진동에 제이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러나 마법사들을 베는 손 갈에는 자비가 없었다.
서걱!!
“끄아아아악!!!”
‘검끼리 부딪혔다고...? 마탑에 검을 쓰는 인간이 있었나보군.’ 생각에 잠긴 제이를 향해 마법을 날리던 마법사들은 그들의 중심으로 몰리는 마력에 얼굴이 환해졌다.
“마를린이야!!”
제이의 눈이 날카로워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건너편에 마를린이 붉은 빛과 함께 나타났다.
마를린의 붉은 머리카락을 바라본 제이는 비웃음을 가득 지으며 말했다.
“또 더러운 것이 나타났군.”
“제국놈들은 모두 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구나. 뜯어 죽여 버리고 싶게...”
마를린의 붉은 입술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유심히 보며 제이는 한숨을 쉬었다.
“너같이 더러운 것에게 물리면 광견병에 죽겠군. 억울해서 그대로는 못 죽어 주겠어.”
“이....!!!”
화가 치민 얼굴로 울컥한 마를린이 이내 나직이 한숨을 내뱉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눈을 휘며 말했다.
“아니 됐어... 쓸 때 없는 이야기는 여기서 관두지.”
“흠...”
무슨 꿍꿍이가 있기에 저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