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56화 (56/218)

56화. 아리엘과 북쪽

반짝이며 흐트러지는 구불거리는 분홍빛 머리카락과 싱그러운 연두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갸름한 하얀 얼굴 위에서 수려하게 빛나는 외모에 마를린의 눈이 커지며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서 너희가 황태자 행방을 알아내려 했구나?”

“.......”

“그 유명한 제국의 황녀가 바로 너였어....! 그 눈은 황후를 닮았구나. 역시.”

세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이엔은 다급히 세린을 등 뒤로 숨기며 앞을 지켰다.

마를린은 무척 재미있다는 얼굴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마음이 바뀌었어! 이야기해줄게.”

“.....”

“며칠 전에 황태자가 우리 마탑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고 있던 것은 몰랐지?”

“.....!”

마를린은 슬픈 얼굴로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 우리 마도구가 얼마나 많이 깨지고 귀한 우리 마법사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다고!”

“다 필요 없고 본론만 말해....! 오빠는 어디 있지?”

세린은 단호하게 마를린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깊게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온 몸에 오한이 들만큼 소름 돋는 미소였다.

“우리 마탑 지하에 있단다. 아가야... 그 녀석한테 마법을 퍼 부어서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질긴 놈이라 잘 안 죽더라고. 그래서 저주를 했어.”

“..!!!!!”

“원한다면 보여줄까?”

마를린의 손에서 하나의 구가 생겼다.

그 구 속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있는 테오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의 푸른 제복은 붉은 피로 인해서 이미 제 색깔을 잃었고 그의 길고 아름다웠던 굵은 손은 예전의 엄마의 손처럼 점차 썩어가고 있었다.

세린이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입 안을 깨물었다.

‘오빠...!!!!’

이엔은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황태자님께서는 너 정도의 마법사에게 당하실 분이 아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너무하네~ 그래도 뭐... 인정은 해. 그 녀석 정말 강하더라고.”

꺄르르 웃으며 마를린이 대답했고 이내 눈가를 휘며 말했다.

“재밌는 걸 하나 보여줬더니 빈틈을 보여서 마법에 순순히 관통을 당하더라? 엄청 웃겼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세린이 분노에 차서 한 걸음 나서자마자 마를린이 짙게 웃으며 한 손을 들었다.

“뭘 봤는지 궁금하지? 너도 한 번 볼래?”

그리고 마를린의 손에서부터 하나 두 개 씩 빛들이 모이더니 누군가가 워프해서 그녀의 뒤를 지켰다.

세린의 동공이 커지고 숨을 멈췄다.

푸른색의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싱그러운 연두 빛 눈동자, 하얀색의 로브를 걸친 그 사람은 세린의 엄마 아리엘이었다.

“어때, 너무 아름답지 않니?”

황홀하다는 듯이 아리엘을 바라보며 마를린이 한숨을 쉬었다.

“어... 어떻게.....”

세린의 목소리가 떨렸고 침이 말랐다.

“정말... 이걸 만들기 위해서 몇 년을 고생했는지 너희가 뭘 알겠니?”

마를린은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었고 세린은 쓰러질 듯 몸을 비틀거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마를린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황태자가 북쪽에 온 목적도 이것 때문인 것은 아니?”

“흡... 후... 후우....”

세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엔은 다급히 그런 세린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누구기에 그녀를 이리도 힘겹게 만든 것일까.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나는 연두색 눈동자가 아무 감정 없이 세린을 눈에 담았다.

입을 꾹 다물고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꼭 의지가 없는 인형 같았다.

마를린은 창백해져가는 세린이 재밌는지 키득키득 웃어가며 말했다.

“어쩜 황태자랑 똑같은 표정을 지을까!”

“너.....”

“맞아, 우리가 황후 유골을 가져왔어. 가져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다고~겨우겨우 구한 것을 엄청 열심히 실험해서 작품다운 작품을 완성했지 뭐니.”

털썩!

“전하!!”

세린의 다리에 힘이 풀리고 무릎이 땅에 닿았다.

이엔은 급히 뒤를 돌아보았으나 세린은 멍하니 아리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를 되찾고 싶니? 황태자도 돌려받고 싶어?”

“후.... 후욱...!”

세린은 급히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차오르는 분노와 충격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시야가 흐릿해져갔다.

마를린은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마탑으로 오렴. 아가야.”

마를린은 그 말을 끝으로 한 마디를 더 날렸다.

“빨리 오지 않으면 황태자 몸이 썩어가서 죽어버릴지도...”

“시끄럽군.”

마를린의 말을 끊어버린 한 남성의 목소리에 마를린이 뒤를 돌았다.

검은 그림자 위를 차근히 밟아가며 다가온 남자는 하얀 은발을 흐트러트리며 하얗게 빛나는 검을 들고 다가왔다.

어둠속에서 강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 사람은 바로 제이였다.

“넌... 대공작의 아들이구나?”

“네까짓 것에게 내가 알려졌다고 좋아할 듯싶나? 꺼져라.”

제이는 날카롭게 웃으며 마를린을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철푸덕!

“......”

그녀의 앞에 쓰러진 것은 하얀 로브를 입은 두 사람이었다.

그 둘은 몸 여기저기가 상처와 피로 너덜거리는 것이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마를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제이는 얼굴 가득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국에 불필요한 것들을 처단했을 뿐이다. 가져라. 더러워서 난 더는 들고 있기가 불쾌하군.”

“너.....”

마를린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음성이 이엔과 세린의 귀를 자극했다.

제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태평하게 말했다.

“제국에 더 머물고 싶다면 시신으로 남는 것은 어떠냐.”

“.....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황녀 기다리고 있겠어.”

마를린은 붉은 입술을 깨물며 시체를 마법으로 들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세린은 함께 뒤를 돌아 사라지려는 아리엘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어.. 엄마..!!”

“......”

아리엘은 무감정한 눈으로 세린을 바라본 후 망설임 없이 워프하여 눈앞에서 사라졌다.

세린은 소리 없이 절망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이는 그런 세린을 향해 달려왔고 이엔도 창백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세린이 힘없이 그 둘의 사이에 쓰러졌고 둘은 창백한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전하!”

“황녀전하!”

세린의 감긴 눈은 떠지지 않았다.

세린이 다시 눈을 뜨고 보이는 것은 넓은 세린의 방의 천장이었고 이미 어두워진 밤하늘이었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고개를 살며시 돌리자 보이는 것은 문 가까이에서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는 이엔이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세린은 이내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고 천천히 실내화를 신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리에 일어난 세린은 이엔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엔... 아빠한테 가자...”

다급히 세린을 부축해주던 이엔이 조금 굳은 몸짓으로 천천히 그녀를 이끌었다.

이엔의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 세린은 이윽고 황제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황제가 놀란 눈으로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

다급히 세린을 부축해주며 그녀를 슬프게 바라보던 황제는 세린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하는 한 줄의 질문에 딱딱하게 굳었다.

“아빠... 엄마 유골... 마탑이 가져간 건가요?”

“.... 그걸 어찌....”

“언제부터였나요...?”

“......”

황제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세린은 눈물을 쏟으며 다시 물었다.

“언제부터였나요!”

“..... 5년 전이었다”

“...!!!!”

세린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물었다.

“테오 오빠의 소식을... 들었나요?”

“제이공자를 통해 들었다... 아빠가 오빠를 데리고 오마...”

“아빠!!!”

세린은 다급히 황제의 손을 붙잡고 외쳤다.

“마탑에게서 위험한 건 저 뿐만이 아니었잖아요!! 오빠도... 아빠도 모두 위험한 것이었잖아요!! 왜 그런 곳에 오빠를 보냈어요??”

“세린...”

“왜 나한테 엄마를 끅...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말을 해주지 않았냐고요!!”

황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엄마를 찾겠다고 오빠가 죽어가고 있잖아요!! 테오 오빠가 죽어간다고요!”

황제의 죄책감이 섞인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세린이 입을 꾹 다물고 황제의 품에 기대었다.

“아빠... 제발... 제발요.....”

황제는 작은 딸을 품에 안아주며 가슴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난...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해요....”

황제는 다시 쓰러지듯 우는 세린을 달래며 그녀를 방으로 안내했다.

황제는 아들을 찾기 위해서 제국 부대의 기사들을 소집하여 전쟁을 준비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마탑을 향해서 진군을 할 예정이었고 테오를 무사히 찾아온 후 마탑을 섬멸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오가 필요했다.

다시 되살아난 아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식이 우선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을 살리고 말겠다는 의지로 황제는 겨우겨우 자리에 굳게 서있었다.

황제의 뒷모습은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세린은 방문을 굳게 닫고 절망했다.

“아아아아아아!!!!”

테오의 죽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을 도배했고 세린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아아아아아!!!”

죽은 엄마를 되살린 그 모습이 한 번 더 그녀를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자신의 엄마를 인형처럼 다루는 마를린 때문에 차오르는 화가 세린을 괴롭게 만들었다.

세린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크게 소리쳤다.

테오를 이대로 잃을 수는 없었다.

‘그를 살려야 해. 구해야 해.’

세린의 머리가 터질 듯이 아려왔고 세린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비명을 삼켰다.

‘살려야 해!!!’

어두운 밤,

똑똑

“세린... 문 좀 열어보렴.”

세린은 문을 두드리는 로레인과 트레일의 말에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엔은 그런 세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불도 켜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던 세린은 시선을 창밖으로 향하며 이엔에게 물었다.

“마탑으로 갈 거야...”

“.... 전하!!”

“이엔 너도 나를 말릴 거니...?”

“...... 전하.”

세린의 목소리는 무감정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