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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55화 (55/218)
  • 55화. 마탑의 마법사

    제이와 이엔마저도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나누던 사내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면 황태자가 지금....”

    “저기...”

    고운 미성의 목소리가 사내의 말을 끊었다.

    사내들은 떠들던 목소리를 낮추고 시선을 위로 올려 자신들을 부른 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풍성한 남색머리카락과 남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창백한 얼굴의 아름다운 여인은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져 있었다.

    세린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꼭 쥐고 입을 열었다.

    “그... 북쪽에서 살아서 돌아온 분을... 뵙고 싶어요.”

    “예...?”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죠?”

    세린의 눈동자가 굳어가며 결국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사내들은 여인의 눈물에 당황하며 벌떡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아, 아니 왜 울고 그러나! 아는 사이인가??”

    “네... 제발 알려주세요... 어디 계시죠??”

    “그 녀석은 지금 달고개 2층에서 자고 있을 텐데... 무슨 일인가?”

    “감사합니다...”

    세린은 그 말을 끝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제이와 이엔도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몸을 옮겼다.

    ‘달고개... 달고개....!’

    “전하, 이쪽으로.”

    제이는 다급한 세린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그녀를 이끌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긴장으로 인해 피부가 창백해졌다.

    힘든 걸음을 옮겨 달고개에 도착하자마자 세린은 2층으로 이동했다.

    2층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방문을 두드리며 다급히 그를 불렀다.

    “저기요! 이야기를 여쭈어보러 왔어요! 북쪽에서... 북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방에서는 어떠한 소음도 없이 조용했다.

    세린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며 다시 물었다.

    “제가 그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해요... 제발요... 북쪽에서 황태자전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소리 없는 공백에 세린의 속이 뭉그러졌다.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세린은 울부짖었다.

    “대답을 해줘!! 황태자가 어떻게 됐냐고!!!!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전하.”

    이엔은 그런 세린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제이는 냉정히 문을 바라보며 긴 다리를 뻗었고 쾅!! 소리와 함께 방문이 날아갔다.

    그리고 텅 비어진 방 속에서 활짝 열려있는 창문을 발견했다.

    “창문으로 나갔나 보군요.”

    “..... 오빠.”

    이엔은 세린에게 다가가 말했다.

    “전하. 그 자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나도 같이 찾을 거야.”

    “하지만...”

    “서두르자...”

    세린은 그런 이엔을 지나쳐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제이는 그런 세린에게 말했다.

    “아까 그 자들에게 용모를 물어보니 녹색 머리카락에 밀짚 색 눈동자를 가졌다고 하더군요. 마른 체격의 30대 남성입니다.”

    “고마워요 제이.”

    세린은 다급히 창문 밖으로 뛰어 마법으로 안전히 바닥에 안착했다.

    제이와 이엔도 그런 세린의 뒤를 따라 바닥에 안착했다.

    세린은 그런 둘을 향해 말했다.

    “흩어져서 찾는 것이 효율적이겠지요?”

    “하지만 황녀전하를 혼자 둘 수 없음을 이해해주세요. 이엔과 함께 찾아보시고 전 반대 방향을 둘러보겠습니다.”

    “제이... 고마워요.”

    제이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후 세린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엔은 세린이 걸어가는 방향을 서둘러 따라 이동하며 녹색머리를 찾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머리카락 속에서 이 상태로 찾기 힘들다는 것을 인지한 이엔은 세린을 다급히 불렀다.

    “전하.”

    “....?”

    “잡으세요.”

    세린은 자신에게로 뻗은 이엔의 손을 바라보다가 망설임 없이 붙잡았다.

    이엔은 그 작고 따스한 손을 붙잡고 그림자 밑의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한 느낌에 놀란 세린은 이엔의 수려한 옆얼굴을 바라보며 이내 위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가며 얼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세린의 눈이 집중으로 인해 굳어갔다.

    그러던 중 작고 구석진 골목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이엔은 그 방향으로 어둠을 움직였다.

    멀리 시야에 보이는 한 사람의 머리카락이 녹색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이엔은 어둠 밖으로 세린의 손을 잡고 빠져나왔고 그 골목으로 몸을 움직여 앞장을 섰다.

    세린은 그의 넓은 등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를 관찰했다.

    그리고 이엔과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혼자가 아닐 뿐더러...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녹색의 머리카락 밑으로 진득한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괴상하게 뒤틀린 팔과 다리의 모습과 지독한 피비린내에 세린이 창백해지며 두 팔로 코와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그런 시신의 뒤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과 검은 색의 눈동자.

    하얀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그 여인은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세린과 이엔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길게 늘어지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세린의 팔에 소름이 돋았고 다급히 이엔의 팔을 잡았다.

    그의 팔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세린이 시선을 위로 올려 이엔을 바라보자 이엔의 창백해진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엔...?”

    “마를린.....”

    이엔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여인이 반갑게 말했다.

    “그 금색 눈동자... 이엔이구나? 당연히 죽은 줄만 알았는데...”

    이엔을 알고 있어...?

    세린은 눈을 크게 뜨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입술에서 작은 으르렁 소리가 났고 다급히 세린의 앞을 넓은 등으로 가로막았다.

    “마탑의 마법사입니다.....”

    “!!!!”

    “그리고 마탑에서 제일 정점에 서있는 미친 자입니다.”

    세린의 눈이 떨리며 붉디붉은 머리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마탑의 마법사....’

    마를린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이엔을 향해 다정히 말했다.

    “많이 컸구나 이엔! 자세히 보니까... 우리 마탑의 인장이 사라졌네?”

    “언제까지 너의 밑에서 기어 다닐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

    “평생 그렇게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다 정말...”

    마를린이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뱉었고 이엔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 남자는 왜 죽인 거냐”

    “보면 안 될 것을 봐버렸잖니... 민간인 주제에 우리 마탑의 일을 떠벌리고 다니면 곤란하거든”

    “그래서 제국민을 죽였다 이 말이냐!”

    이엔의 분노에 찬 외침에 마를린의 입가가 비틀렸다.

    “많이 변했구나? 이엔... 겨우 사람 한 명 가지고 왜 이래? 제국민을 제일 많이 죽인 건 너잖아?”

    “.....”

    이엔의 입술이 꾹 다물려지며 창백해졌다.

    세린은 둘의 대화를 듣다가 이내 이엔의 한 손을 작은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

    이엔의 눈이 세린에게로 돌려졌고 세린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마를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엔이 많은 사람을 죽였든 죽이지 않았든 지금은 당신이 죽인 그 사람에 대해서 묻고 있어요. 왜 그 사람을 죽인 거죠?”

    “예쁜 아가씨네...?”

    세린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한 마를린은 이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세린의 손가락에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아가씨야말로... 그 마법반지는 어디서 났어?”

    “!!!!”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거 마법사가 만든 건데?”

    세린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모르는 척하며 세린이 마를린을 곧게 바라보았다.

    마를린은 그런 세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다가 살포시 웃었고 동시에 거대한 마력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챙!

    그리고 동시에 이엔의 검이 세린의

    앞을 막아 그녀를 보호했고 거대한 마력을 튕겼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검 날에는 이엔의 눈동자 같은 금색의 마력이 둘러져 있었다.

    마를린의 눈이 빛났다.

    “어둠술사가 마력을 다뤄...? 이엔 너 정말 재밌어졌구나!”

    그 환한 미소에 세린은 소름이 돋았다.

    이엔은 날카로운 기세를 마구 내뿜으며 마를린을 향해 물었다.

    “지금 이 수도에서 마탑이 황태자를 죽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게 사실이냐.”

    “.......”

    세린은 긴장한 얼굴로 마를린을 바라보았다.

    부디 거짓이기를 바라며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지켜보았다.

    마를린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내가 너한테 그걸 말해줄 것 같니?”

    “말하지 않겠다면 널 죽이겠다.”

    “재밌네. 어디 한 번 해 보렴.”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붉은색의 마력이 요동치며 세린과 이엔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마력의 끝이 그들을 난도질할 것처럼 위협하며 다가왔고 이엔은 침착한 모습으로 마력을 두른 검을 휘둘러 요동치는 마력을 제지했다.

    검기와 마력이 닿은 파동으로 땅이 흔들리고 골목의 벽에 금이 갔다.

    그리고 동시에 이엔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마를린은 얼굴 가득 비웃음을 지으며 붉은 색의 마력으로 막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다.

    콰지직!!

    이엔의 검 날에 두른 금빛 마력과 충돌하며 마를린의 막이 깨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지며 얼굴 가득 호기심을 채웠다.

    “이엔... 너 정말... 신기한 아이네?”

    재미가 가득한 그 눈동자 속에서 세린은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 죄가 없는 시민을 죽여 놓은 것도 이엔을 장난감처럼 바라보는 시선에도 화가 났다.

    그리고 테오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 보이는 저 태도에서도 화가 나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세린은 고개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마를린은 그런 세린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눈동자를 크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흠... 예쁜 아가씨... 내가 아는 누구랑 닮은 것 같아.”

    “.....!!”

    “누구더라...? 그 네 눈매가 좀 많이 닮은 사람이었는데...”

    “.....”

    세린의 눈이 천천히 굳었다.

    세린의 굳은 표정을 바라보던 마를린은 달려드는 이엔을 마법으로 날아 피한 후 마력의 파편을 빠르게 세린을 향해 날렸다.

    정확히는 세린의 반지를 향해 말이다.

    작은 마력 일부를 막은 이엔은 하나의 마력파편을 잡지 못했고 작디작은 마력의 파편은 세린의 반지와 충돌하며 깨졌다.

    파사삭!!

    “.. 전하!!”

    반지가 금이 가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세린의 마법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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