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테오의 행방
제이는 세린과 이엔에게 꼬치를 하나씩 쥐여 주었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맛이 어떤지 물어보았고 세린은 굳은 얼굴로 닭고기를 한 입 뜯어서 먹어보았다.
“...!!!”
저절로 얼굴이 환해지며 크게 미소 지은 세린은 “맛있어!
“라고 말하며 제이와 이엔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예쁜 아가씨가 음식 맛을 아는구나!”
꼬치를 팔던 장수가 털털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세린이 두 볼을 붉히며 말했다.
“정말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면 하나를 더 서비스로 주지!”
“정말요??”
환하게 웃으며 꼬치 집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 세린을 바라본 이엔은 다정히 미소를 지었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아저씨가 호기심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세린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둘 중 누구야?”
“네? 뭐가요?”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고개를 갸웃하자 꼬치장수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담겼다.
“저 두 사람 중에 남자친구는 누구냐고?”
“헉!!!”
세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꼬치 장수는 턱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깊이 고민에 빠졌다.
“둘 다 인물이 훌륭한 정도가 아니네... 아가씨가 예뻐서 저런 인물들이 쫓아다니나봐?”
“아, 아저씨도 참! 친구들이에요!”
“세상에 여자 남자 사이에서는 친구란 없는 법이야 아가씨! 순진해서 누가 홀라당 잡아먹을까봐 벌써 걱정이네.”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 장수의 이야기에 세린의 얼굴이 더욱더 붉어졌다.
이엔도 붉어지기는 마찬가지였고 제이만 미소를 지으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다급한 세린의 손에 이끌려 다른 곳으로 온 일행은 광장의 큰 무대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을 발견했다.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얇은 옷감에는 소리를 내는 방울들이 잔뜩 달려있었고 여인들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반응하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우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고운 팔과 다리의 선이 너무도 아름다워 세린이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자 제이와 이엔도 그녀를 따라 그들을 관찰했다.
많은 남성들이 환호하며 아름다운 여인들을 응원했다.
그러니 제이는 무감정하니 그녀들을 바라보았고 이엔도 아무 생각 없이 무대를 구경할 뿐이었다.
그저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세린이 예뻐서 시선이 자꾸 내려가는 것이 문제였다.
남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도 참 잘 어울린다는 엉뚱한 생각들을 하다가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 고개를 돌렸다.
광장 속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이 세린과 일행들에게 모였다.
남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의 눈부신 외모에 한 번 감탄한 사내들은 그 소녀의 뒤를 보호하듯 서있는 두 남자의 모습에 기가 죽었다.
훤칠한 키와 넓은 어깨, 선이 매우 곱고 수려한 외모들은 눈이 부셨다.
한 남자가 꽃처럼 아름답고 잘생겼다면 한 남자는 날카롭게 잘생겼다.
많은 여인들은 그 두 사람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많은 남성들은 소녀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름다운 무희의 춤을 구경한 후 제이는 세린의 손에 분홍색의 구름 같은 것이 달린 막대를 건네주었다.
“구름 같아... 먹는 거에... 거야?”
아직도 어색한 그 말투에 웃음을 지으며 제이는 다정히 말했다.
“솜사탕이라고 하는 음식이지.”
“솜사탕....!”
‘이름도 맛있어 보여...!!’ 한 번 음식의 이름을 발음해 본 세린은 한 입 솜사탕을 가득 입에 넣었다.
스르륵 사라지는 그 식감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세린은 다급히 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입에서 녹아!”
맛있다면 다행이라고 부드럽게 웃은 제이는 꼭 솜사탕이 그녀와 닮아 보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엔도 같은 생각을 하며 다정히 웃었다.
그러다 그녀의 입가에 묻은 설탕을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하얀 그녀의 피부를 스치며 설탕을 닦아주었다.
“....!”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이엔은 서둘러 손을 뒤로 옮겨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옥체에 손을... 송구합...”
“고마워!”
“......?”
눈을 크게 뜬 이엔을 향해 아름답게 웃은 세린이 이어 말했다.
“닦아줘서 고마워 이엔.”
이엔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세린은 부끄러워하는 이엔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이내 어떠한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탕! 탕!
‘총소리....?’
이런 마을 한복판에서 들리는 총의 소음에 놀란 세린은 다급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창백해진 그녀를 따라 제이와 이엔이 재빠르게 달려갔다.
어느 순간 소음의 행방을 찾은 세린은 창백해진 낯을 조금씩 풀며 당황하였다.
소리의 근원지의 총은 진짜 총이 아닌 장난감 같은 총알을 쏘는 총이었다.
그리고 과녁은 멀리 떨어진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동그란 판이었고 그 뒤에는 수많은 인형들이 있었다.
이엔은 세린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게임입니다. 사격을 통해서 얻은 점수로 저기서 인형을 골라 가져갈 수 있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이엔 또 말이 길어졌네?”
“아.... 그.. 저기...”
“농담이야!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어.”
꺄르르 웃으며 이엔의 팔을 툭 친 세린은 이내 사격장으로 다가갔다.
“저기, 저도 참가해볼 수 있을까요?”
“아가씨가?”
사격장의 주인장인 노인은 하얀 눈썹을 들어올리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해봐“라고 하였다.
노골적인 무시였지만 세린은 그저 웃어넘겼다.
뒤에서 지켜보는 이엔과 제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는 것을 모른 세린은 총을 들고 사격을 하는 남성들의 사이로 섰다.
“아가씨, 장전이나 할 수 있겠어?”
옆 칸의 젊은 남성의 비웃음에 세린이 맑게 웃었다.
“의외로 제가 힘이 세요.”
그 맑은 웃음이 너무 아름다워 남자의 입이 벌어졌지만 세린은 무시하고 부드럽게 총을 장전하며 과녁을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이내 세린의 총에서 경쾌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탕! 탕! 탕! 탕!
주어진 10발의 총알이 날아가 과녁의 중앙을 뚫었다.
모든 10발이 중앙에 맞아버려 하얀 과녁 종이는 가운데만 처참하게 찢어졌다.
만족이 가득해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 세린은 모든 이들이 입을 벌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서 매우 당황했다.
“어... 저기... 상품은 뭐에요?”
서둘러 내뱉은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노인은 다급히 달려와 세린이 들고 있던 총을 살펴본 후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저기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가....”
“우와....!”
세린은 밝게 웃으며 제일 커다란 곰인형을 꼭 껴안고 제이와 이엔에게 달려왔다.
제이는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단해.”
“부끄럽네... 우리 이제 뭐 하러 갈까?”
이엔은 자연스럽게 세린의 품에서 곰 인형을 가져가 대신 들어주었다.
세린은 그런 이엔을 바라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고 제이는 그런 둘을 안내했다.
다양한 게임들과 먹거리는 세린을 즐겁게 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세린을 설레게 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서 세린은 두 눈을 반짝이며 축제를 즐겼고 하루의 해가 점점 저물어갔다.
제이는 일행을 이끌고 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는 수도에서 유명한 맥주집이라고 하더군. 안주도 훌륭하고 제국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지.”
“그렇구나! 맥주... 처음 먹어봐!”
“도수가 약하지만 엄연히 술이라서... 조금만 맛을 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좋아!”
처음으로 접하는 술에 세린이 긴장했다.
이엔은 그럼 세린을 보며 나직이 웃었다.
잠시 후 그녀의 테이블에는 닭을 양념하여 튀긴 음식과 큰 컵에 담긴 금빛의 맥주가 올려졌다.
제이는 맥주를 작은 컵에 따라 세린에게 건네주었고 세린은 긴장감이 넘치는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엔은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처음부터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야! 한 번 먹어보고 싶었어.”
세린은 그런 이엔에게 웃어주며 이내 컵에 따라진 맥주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미간을 가득 좁히며 말했다.
“으에... 술이 원래 이런 맛이야...?”
“큽.... 맥주는 원래 그 맛인데... 입맛에 맞지 않는 건가?”
“난 맥주랑은 아닌 것 같아.”
입술을 쭉 내밀고 컵을 밀어내니 이엔이 부드럽게 컵을 받아 멀리 올려두며 말했다.
“닭요리를 드셔보세요. 맛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응!”
세린은 튀긴 닭고기를 먹으며 감탄을 내뱉었고 제이와 이엔은 뭐든 신기해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식당 안은 붉은 등불로 인해서 노을처럼 빛났고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웃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 소란스러운 즐거움이 세린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모두 축제를 즐기고 있었고 모두 행복해보였다.
‘이곳이 엄마가 살았던 세상...’
세린의 눈이 점차 애틋해져갔다.
“이야 그 북쪽에서 살아 돌아온 녀석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그런데 애가 좀 이상해졌어.”
‘북쪽지역...?’ 세린의 귀가 저절로 열렸다.
테오한테서 온 편지나 연락이 아직 없어 그의 소식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이상해지다니? 뭔 소리야?”
“방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하더만. 충격적인 것을 봤다고 제국이 큰일이 날 것이라는 소리를 하면서.”
“제국이 왜?”
“마법사들이 무섭다나 뭐라나. 황태자 전하께서 죽을 거라나 뭐라나.”
세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엥? 마법사? 황태자? 다 무슨 소리야... 정신이라도 놓은 건가?”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그게 아닌 것 같다가도 정신이 나간 것 같다가도... 제가 마법사들한테 쫓겨 도망가다가 황태자를 발견했다고 하더군. 그 분홍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봤다고.”
세린의 눈이 점차 그 이야기를 나누는 자들에게로 향했다.
“얼마 전에 황태자전하께서 북쪽을 조사하러 갔다고 했으니 그 말은 믿게 되더군.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말인데 말이지.”
“뭔가? 응?”
“그 황태자 전하가 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하더만? 심지어 그 뭐냐... 손가락 끝이 보라색으로 변해서 썩어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쨍그랑!
세린의 손에서 포크가 처참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린의 눈동자가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얼굴이 시체마냥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