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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53화 (53/218)

53화. 축제의 시작

세린은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제이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축제를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편지 속의 그 내용에 제이의 입가가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곧 깃펜을 꺼내어 내일 데리러 가겠다는 내용과 함께 필요한 물품을 적었다.

세린은 그의 수려한 글씨체가 적힌 답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구나... 밖에서는 내 머리카락이 들키면 안 되지! 맞아... 옷도 수수한 원단을...”

집중하며 편지를 낭독하는 세린을 멀리서 지켜보던 이엔은 조금 굳은 얼굴로 눈을 내렸다.

제이의 말이 자꾸 이엔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렇다면 넌 여태껏 무엇을 위해 훈련한 거지?’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고뇌로 어두워졌다.

그의 눈가에 조금씩 흘러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이 그런 짙은 고민을 숨겨주었고 세린은 고개를 들어 그런 이엔을 바라보았다.

넓고 긴 체격에 딱 붙은 검은색의 제복은 이엔과 무척 잘 어울렸다.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금색의 눈동자와 날카로운 눈매가 그를 더욱 근사하게 만들었다.

세린은 수려한 이엔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엔, 이엔은 축제를 본 적이 있어?”

“..... 딱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구나! 어땠어?”

세린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이엔은 조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어릴 적의 일이었지만... 무척 활기찬 곳이었습니다.”

“응응!”

세린의 격한 반응에 이엔이 잠시 멈칫하였으나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거리에 가득 풍겼고 해가 진 하늘에는 태양모양의 등불을 올려 장식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점점 추억에 잠겨가는 이엔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기 올랐다.

그를 저리도 즐겁게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세린은 다정히 웃으며 이엔의 축제에 대해 들었다.

저 듬직한 모습에서 보이는 새로운 얼굴에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축제에서도 이엔이 저 추억을 떠올릴 때처럼 즐거워했으면 싶은 마음에 세린은 웃었다.

어쩌면 자신도 이엔만큼 설레고 신이 난 것일지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지고 세린은 멜의 도움을 받으며 남색의 무릎 아래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었다.

짙은 초록색의 로브까지 착용을 도운 멜은 문가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는 로레인을 발견하고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물러났다.

세린의 눈이 로레인을 발견하고 확 밝아졌다.

“레인오빠!”

“이제 준비가 다 되었나보구나.”

“네! 어때요?”

“여전히 예뻐서 곤란해. 이제 이걸 착용하면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겠구나.”

“음?”

로레인은 세린의 손가락에 딱 맞는 금색의 반지를 그녀의 두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스르륵

밝은 빛과 함께 세린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진한 남색으로 바뀌었고 세린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와....! 이게 뭐에요?”

“마법반지란다. 네 머리카락과 눈이 밖에서 띄면 큰일이라도 날까봐 준비했어.”

“오빠아....”

세린의 눈이 감동으로 휘어졌다.

로레인은 화사하게 웃으며 그런 여동생의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해주었다.

남색의 머리카락도 이리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조금 걱정이 들었다.

“세린, 밖에서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바로 이엔이나 제이공자의 뒤로 숨도록 하거라. 아니면 네가 마법으로 날려버려.”

“하하하 또 그 소리에요?”

“농담이 아닌데 말이지...”

“알겠어요, 그렇게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세린의 남색 눈동자가 곱게 휘었다.

이리도 사랑스러워서 어찌하면 좋을지 로레인은 진지하게 고민하며 세린의 옷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옷깃을 정리해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빠는 네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직 불안해.”

“오빠....”

“하지만, 다른 마음으로는 네가 어머니께서 지내셨던 그 공간에 대해서 스스로 보고 느끼고 마음껏 만끽하고 왔으면 하기도 해.”

“.....”

세린의 아름다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로레인이 추억에 젖었다.

“어머니는 평민이셨으니까... 오빠도 자주 어머니 무릎에 앉아서 백성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어. 그 때만큼 입으로 듣는 이야기가 재밌던 적은 없더구나.”

로레인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말했다.

세린의 코끝이 점점 시려왔다.

“황성에서 너를 너무 가두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까 네게 미안하다는 마음도 들었어. 하지만 그 선택은 널 지키고 싶었던 우리의 욕심이었단다. 그러니 세린.”

“..... 네.”

“우린 언제나 너의 행복과 안전이 최우선이야. 다치지 않고 어디 아프지 않고 재미있게 다녀오너라.”

“.... 오빠”

세린은 애틋하게 웃는 로레인의 품에 안기며 눈물을 감췄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황성에서 놓아줄 수 없었음을 알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 없이 자신을 위해 웃어주고 안아주는 가족들에게 세린은 언제나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자신이 성 밖을 나간다는데 얼마나 걱정을 할지 생각하면 마음이 막혔지만 자신을 위해 큰 용기를 내어준 가족이 너무도 애틋하고 감사해서 그저 울며 웃었다.

로레인은 따스한 손길로 세린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예쁜 얼굴에 눈물은 어울리지 않구나. 여자의 무기가 눈물이라는데 이건 흉기인걸...? 오빠 마음을 여기서 더 아프게 하지 말고 이제 그쳤으면 해.”

“정말....”

달콤한 말을 하며 화사하게 웃는 로레인에 결국 세린이 웃었다.

로레인은 그런 세린을 품에 한 번 꼭 안아주며 조심하라는 말을 한 후 워프를 하여 마차 앞에 내려주었다.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있던 제이와 짙은 회색상의에 검은 바지를 입은 이엔이 마차 옆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도 마법반지를 착용했는지 환한 은발의 머리카락이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푸른 눈동자는 초록색으로 변해있었다.

세린의 남색 머리카락과 눈을 바라본 이엔의 눈이 조금 커지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마차의 문이 열었다.

그의 귀 끝이 붉어져 있었다.

제이는 부드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세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세린은 밝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고 다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로레인을 향해 말했다.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하렴.”

“네!”

그렇게 세린이 탄 마차의 문이 닫히고 세린은 제국민들의 품으로 걸어 나갔다.

로레인은 그런 여동생의 뒷모습이 없어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아직 어리게만 느껴진 동생이 자신의 품을 떠나버린 기분에 로레인의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다.

그러다 곧 다시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되었든 세린이 성장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부디 즐겁게, 그리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추억을 많이 만들고 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차 밖의 풍경이 점차 바뀌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배경으로 색색별의 천막들이 가득했고 이엔이 설명해주었던 태양 모양의 등불이 하늘 위를 장식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웃으며 먹고 마시고 떠들었고 거리에서 파는 음식들도 재밌는 모양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윽고 마을 구석에서 마차가 멈추었고 제이와 세린, 이엔이 차례로 내렸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세린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제이는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다정히 말했다.

“전하. 먼저 식사부터 하겠습니까?”

“네에....!”

그러던 중 세린은 문득 이런 대화가 이루어지다간 신분이 노출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다급히 이엔과 제이를 멈추도록 제지했다.

“공자! 이엔!”

“네”

“네, 말씀하세요.”

“우리 호칭도 말투도 맞춰야할 것 같아요!”

“..... 네?”

제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세린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날 세린이라고 불러요! 이엔 너도!”

“........”

“.......”

두 남자들이 침묵했다.

하지만 세린은 그런 둘을 향해 다시 말했다.

“계속 날 전하라고 부르면 위험하다고요! 알았죠? 공자? 이엔?”

“.... 네.”

“높임말도 그만!”

“하지만....”

“이엔때문에 축제를 제대로 못 즐기면 원망할거야....!”

“.....”

이엔의 입이 꾹 다물었다.

제이는 그런 이엔을 바라보다가 세린을 바라보았고 이내 근사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하루만 그리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네!”

살짝 상체를 기울여 세린의 눈과 시선을 맞춘 제이는 고운 눈가를 곱게 휘며 말했다.

“세린.”

“.... 느에!”

세린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놀란 마음에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아름다운 얼굴에 지은 더 아름다운 미소도 마음을 쿵하게 만드는데 나직하고 듣기 좋은 굵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제이가 무척 낯설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다급히 앞장을 섰다.

“ㅈ.. 자! 이제 뭐든 먹으러 가 봐요!”

긴장한 기색이 가득한 세린의 뒷모습에 제이가 웃었다.

이엔은 여전히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반말을... 어떻게 이름을...’

기회가 다가왔지만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이엔도 세린만큼 긴장한 기색으로 둘을 따라 걸어갔다.

거리로 나서자마자 세린의 눈을 강탈한 것은 튀긴 것 같은 고기를 긴 나무꼬치에 끼운 음식이었다.

고기에서 윤기가 나는 듯 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세린은 제이에게 물었다.

“공자, 저게 뭐지요?”

“세린도 호칭을 정정해주겠어? 제이라고 불러줘.”

“헙..!!”

다정히 웃으며 하는 그 말에 세린이 얼음처럼 굳었다.

반말의 파급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얼굴이 붉어져가는 세린이 조심조심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제이! 저건 뭐, 뭐야?”

“저건 튀긴 닭 꼬치라고 하지. 꼬치에 끼운 닭의 살코기를 기름에 튀겨서 먹는 음식이야.”

부드러운 어투가 꼭 로레인을 보는 것 같아서 세린이 뻐끔뻐끔 제이를 관찰했다.

반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세린의 말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 내가 적응을 잘 못하는 걸까? 아니면 제이공자가 적응을 너무 잘 하는 걸까?...’

둘 다 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엔 마저도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 제이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세린의 안전하고 즐거운 하루를 위해서는 자신도 존대를 잠시 내려놓아야 함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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