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삼자대면
“이엔!”
“괜찮으십니까?”
이엔은 다급히 세린의 이마를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고 세린은 눈을 환히 접으며 웃었다.
“괜찮아! 이엔이 이제부터 내 곁에 있기로 했었지 참!”
세린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엔이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럼 난 이제 마력훈련을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
“알겠습니다.”
세린은 분홍색의 머리를 높이 올려 묶으며 앞으로 걸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걸음을 옮기던 이엔은 빛이 나는 듯이 아름다워진 세린의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아래로 돌렸다.
그리고 조금 걱정이 생겼다.
저 얇은 팔과 다리로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엔에게는 안타까움을 담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녀가 힘든 것들을 할 필요가 없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자신이 여기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 이엔의 굳은 마음을 모르고 세린은 밝은 얼굴로 말했다.
“마침 오늘은 로레인 오빠가 큰 기술을 써도 된다고 했거든! 매일 작은 힘으로만 마력을 조절하면 체내에 스트레스가 쌓여질 수 있다더라고”
“그렇군요.”
“황궁 뒤편의 숲으로 가자! 잡아 이엔!”
“네?”
세린은 이엔을 향해 작고 고운 손을 뻗었다.
이엔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그런 그녀의 하얀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얼른 가야해. 오후에는 약속이 있거든! 잡아 이엔.”
“....”
이엔은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세린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턱!
“...!!”
그 행동이 답답했던 세린은 망설임 없이 이엔의 손을 먼저 잡았고 포털을 열었다.
세린의 눈동자를 닮은 연두색의 빛이 그녀의 주변에 몰렸고 동시에 이엔과 함께 세린은 황궁 뒷편의 공터로 이동했다.
이엔은 순간적으로 바뀐 주변의 환경에 놀라 굳어 있었다.
세린은 이엔의 손을 놓아준 후 말했다.
“이엔, 내 뒤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 네”
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엔의 수려한 얼굴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연두색 빛과 함께 허공에서 긴 장총이 떨어지며 그녀의 손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세린은 망설임 없이 익숙한 모습으로 빈 숲을 향해 총을 조준하였고 세린의 마력들이 총구의 끝에 몰렸다.
타아앙!!!!!
커다란 총의 소음과 함께 거대한 폭풍이 총 끝에서부터 몰아쳤다.
어마어마한 폭풍이 생성되었고 주변 나무들을 휩쓸며 작은 돌과 나무 조각들이 날아다녔다.
그러나 세린의 주변에 생성된 연두색의 막으로 인해 작은 조각들은 그와 그녀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엔은 아무 말 없이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이어 세린은 다시 한 번 총을 조준하여 연속으로 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세린이 쏘는 족족 허공에서 떨어지는 돌과 나무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저 먼 거리까지 닿는 뭉쳐진 마력에 이엔의 입은 다물 수 없었다.
한참을 그리 쏘던 세린이 총을 내렸다.
“후... 이정도면 스트레스는 다 날린 것 같아!”
“.... 대단하십니다.”
“음? 아하하 이엔은 처음보지?”
세린은 밝게 웃으며 자신의 총을 보여주었다.
“레인 오빠가 만들어준 마도구야. 내 마력을 뭉쳐서 쏘는 식인데 나랑 너무 잘 맞더라고”
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다 세린이 자신의 목걸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도 레인 오빠가 만들어 준거야. 지금 잘 봐! 밝게 빛나고 있지?”
“네.”
이엔은 세린의 말을 들으며 그녀가 착용한 푸른 보석을 품은 목걸이를 관찰했다.
목걸이의 보석은 푸른색의 빛을 가득 내뿜고 있었다.
“이만큼 빛이 났다는 건 내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을 대부분 사용했다는 거야. 여기서 더 쓰면 여기에서부터 내상을 입을지도 몰...”
세린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자신의 복부를 가리켰다.
이엔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다급히 그런 세린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전하! 그렇다면 이리 한계까지 마력을 사용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위험해요!”
“응??”
이엔의 걱정에 세린이 당황하며 자신의 어깨에 올라온 그의 굳은살이 박힌 큰 손과 잔뜩 일그러진 수려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아름다운 모습에 세린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이게 지금 이만큼 사용했다고 당장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할 수 있다는...”
“전하!”
“아, 알겠어!! 여기서 더 사용하지 않을 거야! 약속!”
당황한 세린이 난처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올렸다.
이엔은 고운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천천히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을 걸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해주세요... 마력을 사용하실 때 그 목걸이가 더 빛나지 않도록 조절하시겠다고요.”
“알겠어! 약속할 테니까 표정 풀어 이엔~!”
세린이 생글 웃으며 말하자 이엔의 얼굴이 스르륵 풀렸다.
그녀의 웃음은 이길 수 없었다.
이엔은 작게 미소지으며 함께 웃었고 세린은 이내 다시 손을 올려 이엔에게 뻗었다.
“돌아가자! 잡아 이엔.”
어릴 적에 했던 약속 같은 다짐이 이루어졌다.
5년 전, 당신에게서 멀어지려 노력하는 날 곧게 바라보는 당신과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
‘그럼 이제부터 이엔이 위험하지 않을 때까지 이 거리에서 이야기하자!’
나를 향해 웃어주던 그 다정한 미소.
‘이엔이 스스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면 그때는 네가 나한테 다가오는 거야! 어때?’
분홍색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었다.
그 바람과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고 소리도 소문도 없이 이엔의 마음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때까지는 이 정도 거리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고 그러자! 그러면 함께 있을 수 있잖아!’
그녀의 햇살 같은 미소가 눈부셨고 나부끼는 머리카락도 아름다웠다.
작은 입술에서 나오는 그 다정한 말도 따스했던 기억에 이엔은 짙은 그리움과 애틋함이 담긴 얼굴로 미소 지었다.
이제는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당신이 내게로 손을 뻗을 수 있었다.
그 작은 변화가 이엔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다.
이엔은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 네.”
두 사람의 손이 닿았고 세린은 그대로 햇살처럼 웃으며 워프했다.
이제는 이엔이 돌아갈 장소로 말이다.
이엔과 함께 궁으로 돌아온 세린은 바로 멜과 함께 이동하여 몸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풍성한 머리를 정리한 후 옅은 분홍색의 드레스를 입고 서재로 들어왔다.
이엔은 서재의 한 쪽에 서서 그런 세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녀전하. 편지가 왔습니다.”
“음?? 또??”
세린의 얼굴에 당황이 담겼고 멜이 건네준 쟁반 위에 잔뜩 쌓여진 편지를 보자마자 기가 죽었다.
“또 영식들에게서 온거야...?”
그 말을 들은 이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확인을 해보니 영애들께도 온 편지가 있었습니다.”
“정말??”
세린의 눈이 반짝였다.
멜은 다정히 웃으며 책상 위에 올려진 3장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영애분들께 온 편지는 따로 분류하여 올려놓았습니다. 쟁반 위의 것들은 다 귀족가의 영식들께 온 것이라... 전하께서 확인하시고 답장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알겠어!”
세린은 밝아진 얼굴로 쟁반을 지나쳐 책상 위의 영애들 편지를 살폈다.
세린의 표정이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이엔은 편지에 집중하는 세린을 바라보다가 이내 남성향수를 풀풀 풍기는 쟁반 위의 편지들을 관찰했다.
미간이 잔뜩 좁아져서는 화가 난 듯 한 기색에 멜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세린은 그런 이엔을 모르고 편지를 읽으며 밝게 웃었다.
저번에 세린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영애들의 편지였다.
연회에서의 무례를 사과한다고 사죄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만나 뵙고 싶다는 내용에 세린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곧 답장을 쓸 준비를 하였다.
세린이 편지에 집중하는 동안 이엔은 유심히 세린에게로 온 남성들의 편지에 집중했다.
편지에 쓰여 있는 이름들을 모두 머리에 집어넣던 이엔은 싸늘해진 금빛눈동자를 돌려 온기를 담아 세린을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연두색 눈동자와 분홍빛으로 빛나는 구불거리는 머리카락갸름한 얼굴 속에는 사랑스러운 기색이 뚝뚝 묻어 나오는 이목구비가 시선을 끌었다.
너무도 아름다워져서 이리 많은 남자들을 설레게 하는 모습에 이엔은 긴장했다.
‘이런 것에서부터 지켜드려야....’
그런 엉뚱한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세린은 이내 보낼 답장을 완성한 후 밝게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멜에게 건네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엔은 그런 그녀의 곁에서 등 뒤로 손을 모아 곧게 서 있었다.
세린은 그런 이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엔, 이엔도 케이크 먹을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 칼같은 대답을 듣자 세린의 표정이 불퉁해졌고 이엔은 그런 세린의 모습에 당황했다.
“이엔은 무심해.”
“... 예?”
“어렸을 때는 날 싫어하는 줄만 알았어.”
“오해십니다!”
찰랑이는 검은 색 머리카락 아래로 날카로운 금색의 눈동자가 당황을 가득 품었다.
“그치만... 이엔은 내가 조금만 다가가면 다 거절하고 뒤로 가버렸잖아? 아니면 도망가거나.”
“그건....”
그건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었다.
필사적으로 그 감정에서부터 외면했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는 그녀가 제게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선을 그어버리는 것이 그때는 최선이었다.
이엔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갔다.
반면 세린은 그런 이엔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알아, 이엔이 그 때 나한테 말해줬었잖아. 내가 위험해질까봐 그랬다며. 네가 어둠을 잘 다룰 수 있을 때 나한테 네가 다가오기로 약속도 나눴었지?”
그럼 이엔은 약속을 지켜준 것이라며 밝게 웃는 세린의 모습에 이엔은 가슴이 덜컹거렸다.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세린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이야기에 이엔은 그저 조금 슬프게 웃어버렸다.
그 때 서재의 문이 두드려지고 세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벌써 오셨나봐! 열어주렴.”
이엔은 세린의 시선을 따라 열리는 문 앞의 주인을 바라보았고 그대로 푸른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