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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49화 (49/218)

49화. 제이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황제는 세린을 향해 다가가 동그란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잠시 일이 생겨서 다녀와야 할 듯싶어... 너는 연회를 즐기고 있거라.”

그러자 테오의 눈이 번뜩였다.

“그 일 입니까?”

“... 내가 갈 것이니 테오 너도 여기 있거라.”

“아버지께서 여기 계시고 제가 가겠습니다.”

“너는 얼마 전에 정찰을 마치고 왔으니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은 내가 가마.”

“아버지. 제가 시작했던 일입니다. 이 일은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

황제와 황태자의 눈에 묘한 기류가 흘렀고 세린은 당황하는 눈동자로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 다 왜 그러세요... 위험한 일은 아닌 거죠??”

걱정이 가득한 세린의 목소리에 테오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얼추 마무리 작업 중인 일이란다. 위험하지 않아. 오빠가 갔다 올 테니 아버지랑 연회를 즐기거라.”

그 말을 끝으로 테오는 황제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그를 지나쳤다. 세린은 그런 테오의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날, 테오는 병사들과 함께 말을 이끌고 황성을 나가 북쪽으로 향했다.

다음 날이 밝아지고 세린은 분주하게 일어나 푸른빛이 도는 훈련용 제복을 입었다. 그리고 서둘러 마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멜의 부름에 그 자리 그대로 멈춰버렸다.

“전하.”

“... 응?”

“편지가 왔습니다.”

“무슨 편지?”

멜은 조금 난처한 얼굴로 세린에게로 온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멜의 손에 있는 긴 쟁반을 가득 채울 정도의 편지들에 세린의 얼굴에 당황이 담겼다.

“이게 다 뭐야??”

“모두 어제 파티에 참석하신 귀족 영식들이십니다.”

“...... 아”

세린은 그 편지들을 바라보다가 편지에서 올라오는 남성향수에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멜... 이거 다 답장을 해줘야 하는 걸까?”

“황녀전하의 자유이십니다. 원하시면 답장을 하셔도, 하지 않으셔도 무관하십니다.”

“음..”

세린은 깊은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책상에 올려줘. 마력훈련만 하고 내가 다 읽어볼게!”

“네, 전하”

멜은 공손히 대답한 후 고개를 숙였고 세린은 다시 걸음을 옮겨 서둘러 마장을 향해 달려갔다. 얼른 훈련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씻은 후 편지 답장도 해줘야 하고 제이공자를 맞이할 준비도 해야 했다.

바쁜 하루일과에 세린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마장에 도착해 하얀 백마를 탄 세린은 허공에 마력을 집중시켜 마도구를 꺼냈다. 금색으로 장식된 긴 장총이 세린의 손에 잡혔고 세린은 바로 말을 몰아 마력을 조절하며 마력을 쏘았다.

탕! 탕! 탕!

쏘는 족족 과녁의 중앙을 뚫었고 허수아비의 머리를 뚫었다. 황궁의 궁수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이었다.

세린은 그러한 마력훈련을 끝내고 곧바로 자신의 궁으로 돌아와 깨끗이 씻고 편한 차림의 실내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서재 책상에 앉아 잔뜩 쌓여진 편지를 바라보며 인상을 쓰다가 이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멜은 그런 세린의 책상에 물 컵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전하. 편지를 읽으신 후에 꽃 한 송이만 보내드려도 좋을 듯합니다.”

“그래도...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제국에서 제일 높은 분께 받은 꽃 한 송이도 영광일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그게 좋을까나....?”

세린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멜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로베론 자작가가 파산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에? 로베론 자작이라면...”

로베론 자작이라면 어제 붉은 머리의 영애의 가문이 아니던가...?

세린은 물을 조금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멜은 자신이 들은 소식을 이어 전하였다.

“발을 들여놓은 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려 빚이 엄청난 액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름만 남은 자작이고 평민들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자작가의 장녀는 어제 저녁부터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행방불명??”

세린의 눈이 커졌다. 어제 그런 분한 얼굴로 사라지더니 어떻게 된 것일까?

똑똑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노크소리가 들려 세린은 고개를 돌렸다.

“스페라도 대공작의 후계자 제이 스페라도 공자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어서 열어드리렴!”

세린의 눈이 커다랗게 변하였으나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세린과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제이의 눈이 마주쳤고 제이는 근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제 밤에 보았던 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뵙습니다. 황녀전하.”

고개를 살짝 숙인 제이를 향해 세린이 맑게 웃으며 반겼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서 와서 앉아요!”

세린의 안내에 맞춰 서재의 창가 쪽에 마련된 하얀색의 티 테이블에 앉은 제이는 힐끔 세린의 책상을 가득 채운 편지들을 관찰했다. 지나갈 때 맡아진 냄새를 볼 때 모두 영식에게서 왔을 편지들이었다.

제이의 입가가 비틀렸으나 이내 마주치는 연두색 눈동자에 다시 부드러운 온기를 담아 웃었다. 누구보다 빠른 표정변화였다.

“제이공자는 그러면 이제 북쪽지역의 일을 끝내신 건가요?”

“아직은 완벽히 마무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빈번하게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라...”

“힘들겠어요...”

세린의 미간이 슬프게 좁아졌고 제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전하를 뵙고 오히려 힘이 납니다.”

그의 다정한 미소가 너무도 오랜만이라 세린의 볼이 붉어졌다. 맞다. 제이는 너무도 다정했었다.

제이는 어렸던 그 시절부터 그녀를 이해해주고 알아주며 그녀를 편안하게 해줬었던 다정한 사람이었다. 세린은 그런 제이와의 티타임도 너무 즐거웠고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다정한 제이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북쪽은 많이 위험한가요?”

“음..”

제이는 짙은 침음을 내뱉은 후 조금 난처하게 웃었다.

“많이 위험하지요.”

세린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의 말에 집중했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듯 보여서 제이는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북쪽은 제국에 소속되지 않은 중립구역이 존재해서 그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제국의 시선을 받지 않지요. 그러다보니 여러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나 도망을 다니는 자들이 숨어 살기에 좋은 지역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리고 그런 출신의 사람들은 마탑의 실험용으로 잡혀가지요.”

“...!!!”

“대부분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다들 신비롭고 깨끗한 줄 아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곳만큼 뒤가 끔찍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세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이야기에 세린이 긴장했다. 그런 지역에 테오가 달려갔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침이 바짝 말랐다.

“저기... 제이 공자. 혹시 마탑이 제국민이나 귀족들을 건드리거나 공격을 하지는 않나요?”

“그런 적은 제국이 통일된 이후 1번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마법사이신 황후폐하께서 제국의 황제폐하와 국혼을 올리신다고 했을 때라고 하더군요.”

테오에게 들어 세린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실상 제국의 귀족들이나 국민들을 다치게 한다면 후회하는 곳은 마탑일 것입니다.”

“...?”

제이는 하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부드럽게 말했다.

“마탑에는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의 마법사가 없기 때문에 병력의 차이에서 제국에게 밀리지요. 제국에는 마력을 잘 다루는 훌륭한 검사들과 마스터들이 많으니까요. 그렇기에 보다 강한 힘을 추구하여 황후폐하를 그리 욕심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혼을 그리도 반대했다고 했지요.”

“그렇군요...”

“그러다보니 그런 마탑이 제국을 공격했다가는 외려 당하겠지요. 일단은 2황자 전하부터 대마법사의 칭호를 얻어도 되실 정도로 높은 실력의 마법사시니까요.”

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로레인도 훌륭하지만 트레일과 테오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높은 실력의 마스터였다. 그리고 황족들뿐만이 아니라 기사단들의 실력 모두 훌륭하다는 것을 알기에 왜 제국을 건들지 못하는지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그 후 세린은 제이와 차를 마셔가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세린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서로 물어보고 알아가며 나누는 이야기에서 세린은 즐거움을 느꼈다.

붉게 달아오르는 그녀의 홍조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본 제이는 이내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린은 아쉬움을 듬뿍 담아서 울상을 지으며 제이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즐거웠어요... 그런데...”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세린의 모습이 제이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제이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도 찾아뵙고 싶은데...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세린의 얼굴이 바로 환해졌다.

“언제든 괜찮아요! 제이공자야말로 바쁜 것은 아닌가요?”

“이제는 한가해졌습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덜컥!!

세린의 미소를 바라본 후 제이는 뒤를 돌다가 세린의 책상에 팔을 부딪쳤다. 그의 팔과 부딪친 동시에 책상에 올려 졌던 물 컵이 모아진 편지들 위로 모두 쏟아졌다.

제이는 다급히 물 컵을 들었으나 편지들은 이미 물에 푹 젖어 잉크가 번져 있었고 글씨의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이런... 송구합니다. 전하.”

제이의 속상한 침음에 세린이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중요한 편지는 없었거든요!”

세린이 방긋 웃으며 괜찮다고 하자 제이는 고운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다시 한 번 사과했다.

“그래도... 이젠 편지를 읽을 수 없는 것을요.... 송구합니다.”

“음... 뭐 필요한 사람이 또 편지를 주겠지요! 제이 공자는 옷이 젖지는 않았나요??”

“전 괜찮습니다.”

“그럼 됐어요. 편지는 정말 괜찮으니까 얼른 가요!”

세린이 제이를 이끌고 밖으로 향하자 제이의 입가에는 미미한 웃음이 담겼다. 제이는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세린을 따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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