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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46화 (46/218)
  • 46화. 트레일의 노력

    세린은 맑은 얼굴로 그저 황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걸어 나갔다.

    그러다 황제가 머뭇거리더니 자리에서 멈추었고 세린은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그 동그랗게 변한 눈도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서 황제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붙잡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린... 드레스가....”

    ‘아버지 힘내세요!’

    ‘말리셔야 합니다....!’

    ‘부디 다른 드레스로...’

    아들들의 응원에 힘을 입고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드레스가 너무...”

    “그쵸! 예쁘죠??”

    “...... 그....”

    세린의 볼이 잔뜩 붉어지며 수줍게 웃었다.

    “저번에 드레스 디자인을 설명해드리기는 했는데 이야기로 듣는 것이랑 보는 것이랑 차이가 크죠?”

    “아...”

    그런 설명을 해주었던 기억이 드문드문 있다.

    설레어 하는 세린의 표정이 귀여워 집중을 못했었는데 설마... 그 때도 이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던가?

    ‘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드레스라서... 막 반짝이고 아래도 풍성하고... 등 쪽에는 원단을 붙이지 않은 디자인이더라고요! 그래서 등에다가 반짝이는 가루를 뿌리면서 입어야하는 것이라는데 한 번쯤은 입어보고 싶었어요..!’

    ‘네가 원한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런 대화가 있던 것도 같았다..

    황족들은 이제 와서 바꿔 입으라고 말할 자격을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잃어버렸고 더욱 창백해진 낯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세린을 보느라 집중하지 못한 자신들의 실책이었다.

    “경비를 뒤에 서 있도록 하는 것은 기각하고 바로 앞이나 옆을 지키도록 해야겠구나.”

    “의견에 동의합니다.”

    로레인과 트레일도 고개를 비장하게 끄덕였다.

    불안함과 걱정이 가득이었다.

    아무래도 계속 자신들이 그녀의 등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듯싶었다.

    황제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이동하는 세린의 드레스가 부드럽게 나풀거렸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듬직하게도 그녀의 오빠들이 세린의 뒤(등)를 보호하며 발에 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세린은 부끄러운 이 상황 속에서도 너무도 기뻐서 고개를 숙이며 수줍게 웃었다.

    황제의 눈이 그런 세린의 모습을 담으며 다정하게 웃었다.

    작고 마르고 연약했던 제 딸은 어느 새 자신의 품에서 천천히 자라 이리 성년이 되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날이었지만 조금의 씁쓸함도 존재했다.

    조금 더 천천히 자라주었어도 괜찮았다는 그런 씁쓸함과 이리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음에 감사함을 동시에 느꼈다.

    거대하고 웅장한 붉은 문으로 세린이 다가갔다.

    “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

    우렁찬 기사의 고함과 함께

    “2황자 전하! 3황자 전하!”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이 불렸다.

    “황녀전하께서 입장하시겠습니다!”

    굳게 닫힌 문이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고 세린은 황제의 손을 꼭 마주잡으며 입장했다.

    그런 세린의 뒷모습이 너무도 빛나서 테오도 로레인도 트레일 마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참 가슴이 저릿한 날이었다.

    귀족들은 세린이 연회장에 발을 들인 모습을 본 후 입만 크게 벌리며 다물지 못했다.

    보석마냥 빛나는 싱그러운 눈동자와 갸름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왔다.

    깊고 동그란 눈매 위의 부드러운 분홍빛 머리카락이 너무도 아름다웠고 하얀색의 고운 드레스와 다이아몬드 핀이 여간 잘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 날에 맞춰 함께 성인식을 치루기 위해 하얀색의 드레스를 입고 온 영애들이 볼을 붉힐 정도로 세린은 이 홀에서 가장 빛났다.

    홀의 수많은 영애들은 그런 세린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황족들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황제와 꼭 닮은 날카로운 미남의 황태자를 보며 눈을 번뜩이는 영애도 많았다.

    황태자의 눈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 여성은 제국에서 제일 높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미래의 황후가 아니던가?

    충분히 눈이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욕심은 테오뿐만이 아닌 로레인과 트레일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그간에 닫혀있던 황궁의 문 덕분에 황족들을 처음 보는 영애들이 무수히 많아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로레인과 세공된 보석마냥 빛나는 트레일의 모습에 가슴을 붙잡고 한탄을 내뱉었다.

    그런 수줍은 시선들은 저절로 세린에게로 향했다.

    황족들의 시선을 잠깐만 집중해서 보기만 해도 그녀가 그들에게 넘치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꿀이 흐른다는 느낌의 눈빛이 분명한 눈으로 세린을 다정히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영애들은 강한 질투를 느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이 몹시도 부러웠다.

    그런 영애들과 달리 영식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녀는 눈부시게 빛나는 외모도 외모지만 황족들의 철통보안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등과 길고 가는 목에서부터 쇄골까지... 빛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주치지도 않은 그녀의 눈동자가 아름다워 보여서 어떻게든 눈을 한 번 맞춰보려 고개를 이리저리 숙이는 영식들은 황제를 향해 부드럽게 눈을 휘며 웃는 황녀의 환한 미소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은 미소와 함박웃음의 차이는 컸고 세린의 환한 웃음에 영식들은 굳었다.

    그러나 영식들은 모를 것이다.

    입을 벌리며 세린을 뜯어 관찰하는 귀족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머릿속에 기억하는 황족들을 말이다.

    ‘저 백작영식 죽여 버려야겠군.’

    ‘눈이 더러워.’

    ‘재밌는 얼굴로 누굴 감히 바라보는 것인지.’

    속으로 천만 개의 욕을 내뱉으면서도 세린을 향한 눈동자는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황제는 자연스럽게 세린을 황족들의 자리인 금으로 만들어진 옥좌에 그녀를 안내했다.

    그리고 숙연한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제국의 황녀가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자리이지만 올 해 또 다른 영애들도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해주는 자리다. 모두 연회를 즐기도록.”

    그 말을 끝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하얀색의 옷을 입은 성년이 된 영애들은 다가오는 영식들의 손을 마주잡고 수줍게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성년식을 맞이하여 성년이 된 영애들이 댄스홀에서 첫 춤을 추는 것이 관례였다.

    세린은 배운 예법에 맞춰 춤을 추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세린이 일어나자마자 황제가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아빠...?”

    “특별한 날이니... 아빠와 첫 춤을 추지 않겠느냐.”

    근사하게 웃는 황제의 모습에 세린이 밝게 웃으며 황제의 커다란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좋아요!”

    세린은 성년식의 첫 춤을 제국의 황제와 추게 되었다.

    황제는 딸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무대로 들어섰다.

    다 커버린 딸의 고운 얼굴을 기특하게 바라보며 황제는 나직이 웃었다.

    너무나도 예쁜 아이라서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너무 예쁘구나.”

    세린은 두 볼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아빠는 멋지세요.”

    “넌 더 예쁘고 말이지.”

    “아빠는 더 멋지고 말이죠!”

    황제와 세린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짧은 음악 속에서 세린은 황제와 즐거운 모습으로 춤을 췄다.

    차가운 눈이 내리던 그 날의 슬픈 겨울

    따스한 품에서 마주친 붉은 눈동자와 운명

    오빠와 아빠에게서 받는 넘치는 사랑

    호화로운 황궁의 생활과 달콤해져가는 일상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만남들까지

    세린은 가슴 속에서 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고 음미하며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기쁘게 웃었다.

    이리 행복해지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자신의 행복은 곧 엄마였지만 이제는 그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

    이제 세린의 행복은 살아있는 자신의 가족들의 행복이었다.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아빠와 오빠들이 행복하다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세린은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황제와 함께 춤을 마치자마자 세린은 테오와 춤을 췄다.

    세린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며 미미하게 미소지은 테오의 얼굴을 보며 세린은 함께 웃었다.

    “즐거운지 물어보려 했는데... 물어볼 필요가 없겠구나.”

    세린은 그의 말에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물어봐주세요.”

    테오는 근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즐거운 것이냐.”

    “너무너무요!”

    세린은 밝게 대답하며 테오의 품에 기대어 춤을 추었다.

    테오는 여전히 작게 느껴지는 막내를 받아 안아주며 그녀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이 예쁜 아이를 내 손에서 놓아줄 때가 올지도 모르는데...

    테오는 절대 놔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이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테오의 순서가 끝나고 세린은 로레인과 춤을 추었다.

    그의 다정한 제비꽃 색의 눈동자와 찰랑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은 오늘따라 더욱 근사해보여서 세린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로레인은 그런 세린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세린.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해.”

    “고마워요 오빠.”

    “언제나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로레인의 그 한 마디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담겼다.

    세린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도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요!”

    따뜻한 대화 속에서 서로를 향한 강한 신뢰와 애정을 느꼈다.

    그것이 그리도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그 후 트레일과 춤을 춘 세린은 함께 춤을 추던 트레일의 조심스러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춥지는 않고?”

    “황궁은 따뜻한걸요.”

    “불편하지는 않고??”

    “원단이 너무 부드러워서 편해요.”

    “드레스에 뭐 묻은 것은 없고???”

    “이제 막 입장했는걸요... 없어요...”

    “찢어진 곳은?? 불량이 난 부분도 없어??”

    “오빠....”

    세린의 얼굴이 묘하게 질려지기 시작했다.

    트레일이 무언가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는 것을 세린은 몰랐을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세린은 눈을 굴려 그의 행동에 원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멀리서 황족들은 그런 트레일을 보며 속으로 응원을 시작했다.

    적어도 세린의 드레스 위에 겉옷이라도 입혀놓을 수 있도록 대답을 잘 유도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트레일은 말재주가 없어 그 유도방법을 몰랐다.

    이런 저런 질문으로 유도를 해보려 노력하던 트레일은 결국 유도질문을 다 포기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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