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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44화 (44/218)

44화. 리사공녀? 리사경?

그러나 그 행복 속에서 걱정과 짙은 외로움이 숨어있었다.

아무 소식이 없는 이엔이 걱정되었고 함께 소식이 없는 리사와 제이에게서 속상함을 느꼈다.

아카데미라는 곳이 원래 외부와 접촉을 차단하고 학업에 임하여 집중하는 공간임을 알아서 더욱 그 외로움은 배가 되었다.

뿐더러 마력을 다루는 것으로 인해 남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줄까 무서워 사교계 데뷔도 하지 못해서 세린은 그들 말고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때는 많은 이들 앞에 서기에 힘을 다루는 것도 하지 못했고 조절하는 법이 부족하여 그러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제 마력을 다룰 수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도 조절할 수 있었다.

이것은 거의 로레인 덕분이었다.

로레인이 선물로 만들어준 마력석 목걸이를 만지며 세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몇 개월 동안 잠을 포기하며 그가 만들어준 이 목걸이는 푸른색의 마력석이 박혀있는 진귀한 마법도구였다.

세린이 마력을 많이 사용할수록 목걸이의 마력석이 빛나는 것이었다.

세린은 그의 다정함과 걱정을 알기에 그 선물을 받고 너무도 기뻐서 지금까지 계속 착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세린은 황성에서 성인식을 치룬다.

황제의 공표 아래 제국민의 귀족과 백성들 모두가 성대하게 잔치를 할 수 있도록 커다란 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세린은 큰 파티가 조금 무서웠지만 많은 백성들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놀 수 있다고 하여 수락했다.

모두가 즐거우면 좋겠다는 것이 세린의 생각이었다.

그 전에 아카데미에 있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5년이 지났으니 지금으로부터 2년 뒤에 졸업하고 볼 수 있는 걸까?

세린은 그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고 너무나도 그리웠다.

함께 지냈던 시간들을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더욱 그리움이 커져서 세린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꿀꿀하니 마도구를 사용해서 훈련이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세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용 제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멜은 그런 세린을 따라 함께 이동하였고 세린은 땀을 흘려가며 훈련에 임했다.

세린은 그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외롭고 힘들었지만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하며 버티고 있었다.

‘편지가 곧 올거야, 졸업을 한다면 날 찾아올 거야.’

그런 마음으로 버티던 세린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세린은 평소처럼 황궁정원을 걸어보며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매일 바라보느라 너무도 익숙한 황궁 정원의 풍경에 지루해하는 세린을 위해서 로레인은 한 주마다 정원의 모든 꽃들을 마법으로 새롭게 피웠다.

어느 날은 빨간 장미였다면 다음 주에는 새하얀 백합이었고 어느 날은 분홍색의 초롱꽃이었다.

자주 바뀌는 정원의 꽃들에 세린은 늘 즐거운 마음으로 정원을 걸었다.

그의 세심한 배려가 세린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오늘은 제비꽃이네... 오빠 같다.”

이슬을 머금은 아름다운 제비꽃을 보며 세린은 로레인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의 눈동자와 꼭 닮은 색에 세린의 눈이 곱게 휘었다.

부스럭

“.....!”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애정이 가득한 손길로 제비꽃을 쓰다듬은 세린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음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세린의 눈이 커지며 천천히 다가오는 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원의 꽃 기둥 뒤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스르륵

그리고 세린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은빛 머리카락이 제일 먼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

은빛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가진 소녀는 푸른 눈을 돌리다가 이내 세린과 눈이 마주쳤다.

눈꼬리가 올라가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크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붉은 입술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 여성은 은색의 훈련용 기사 복을 입고 있었다.

기사복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유히 걸어가는 폼이 여간 여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세린보다 반 뼘 정도 작은 그 여성은 놀란 세린을 바라보며 같이 놀란 눈을 하더니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다급히 뺐다.

고운 미성으로 세린을 바라보며 입을 연 여성은 바로 리사 스페라도였다.

“화... 황녀전하....?”

“.... 리사공녀...?”

세린은 어린 소녀로만 기억된 리사의 성숙한 모습에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리사도 마찬가지였다.

리사는 예전에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오던 세린의 모습을 기억하다가 현재 더욱더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진 세린의 모습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린의 큰 눈동자 더 커지더니 다급히 리사에게 달려왔다.

“리사공녀!!”

“...?”

달려오며 휘날리는 분홍빛 머리카락과 다급한 저 표정마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아 연두색 눈동자가 더 아름다워 지셨어...’

세린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드레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었다.

‘세상에 얼마만큼 예뻐 지신거지?? 살아있는 사람이 맞는 거야??’

그런 리사의 생각을 모르고 세린은 손수건을 그녀의 코에 올리며 고운 눈썹을 슬프게 일그러트렸다.

“공녀...! 코피가.... 괜찮으신가요?”

“목소리도 아름다..... 코피요?”

눈을 살짝 내리자 자신의 코 위에 올려 진 하얀 손수건이 붉은 피로 점점 물들어가는 장면이 보였다.

“......”

그런 리사의 시선이 점점 얇고 긴 고운 손가락으로 향했고 고운 손가락을 넘어 걱정이 가득한 세린의 얼굴로 옮겨졌다.

‘아름다워.’

정말 리사의 시선에서 세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꺅!!! 공녀 피가 너무 많이 나와요! 의, 의원한테 가야겠어요!!”

세린은 코피가 터진 리사를 데리고 서둘러 벤을 찾아갔다.

리사는 양 콧구멍에 두꺼운 의약품용 솜을 끼고 세린과 마주 앉았다.

세린은 안도한 눈으로 반갑게 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금방 멈추는 코피라서...”

“걱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전하.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더욱 아름다워지신 것 같습니다.”

“아하하 리사공녀는 어릴 적에도 늘 볼 때마다 그 말을 해주셨죠.”

세린은 머리 위로 떠오르는 기억들에 청량하게 웃었다.

리사는 그저 홀린 듯 세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구불거리는 긴 분홍빛 머리카락 사이의 작은 얼굴은 갸름했고 다정한 빛이 가득한 눈동자는 보다 깊은 감정을 품고 있어 보였다.

오똑하니 작은 코와 도톰하고 사랑스러운 입술이 리사의 코를 또 자극했다.

리사는 조용히 마력을 움직여 코에서 흐르는 피를 막았다.

‘이럴 때를 위한 마력이었어.’

이러려고 배운 마력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린은 이제는 완전히 숙녀로 변한 리사를 관찰하다가 다정하게 웃었다.

이제는 키도, 외모도, 가지고 있는 본래의 분위기도 그 때의 그 아이 같지 않았다.

한 명의 숙녀 같은 리사의 모습에 세린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리사공녀! 공녀가 더 예뻐진 것 같아요...! 어릴 적에도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벌떡!! 쿠당탕탕!

세린의 말이 끝나기 전에 리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황녀전하! 전하께서 더 예쁘십니다...!!!”

“... 아 고마워요! 하지만 리사공녀도 예...”

“정말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

‘말투도 기사처럼 변했구나...’세린은 난처하게 웃으며 리사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에 부드럽게 눈을 휘며 웃은 세린은 멜을 불러 홍차를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자리에 착석한 리사를 향해 말했다.

“옛날 생각이 자꾸 나네요... 리사 공녀와도 늘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 저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리사공녀 옷이... 기사들이 입는 옷이군요?”

세린의 놀란 눈동자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기사복을 바라본 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린에게 말했다.

“몇 개월 전부터 황실의 제 2기사단 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네에?????”

“작년 말쯤에 마스터의 경지에 입문해서... 마침 황실의 제 2기사단 단장이 퇴직하겠다고 하여 이리 부족한 몸이지만 입단하였습니다.”

“대.. 대단해요 리사공녀!! 아니... 그럼 이제는 리사경이라고 해야겠네요!”

마스터의 경지란 손가락으로도 마력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검기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높은 경지였다.

밝은 얼굴로 박수를 치며 볼을 붉히는 세린을 다정히 바라본 리사는 입 꼬리를 부드럽게 올려 웃으며 말했다.

“황녀전하의 앞에 멋있게 나타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했습니다.”

세린은 리사의 근사하고 아름다운 미소에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웃었다.

두 콧구멍에 솜을 끼고 이야기해봤자 귀여울 뿐이었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고마워요! 말씀만으로도 정말 기뻐요.”

“말뿐이 아니라 정말입니다만... 저는 황녀전하와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 황실 기사단으로 입단한 것입니다.”

세린은 굳은 얼굴로 다짐하는 듯 말하는 리사를 보며 따뜻하게 웃었다.

조심스럽게 뻗은 세린의 두 손은 리사의 거친 손을 다정히 감쌌다.

“그렇다면 정말 더욱 더 고마워요. 리사경.”

“아 아름다워....”

“네?”

“아닙니다.”

세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졸업하자마자 황실로 온 건가요? 이 시기에 리사경이 황실에 입단한 것은 조기졸업을 한 것 같은데...”

“작년에 졸업하고 근 3개월을 북쪽지역의 일을 도운 후 바로 황실 기사단으로 입단했습니다.”

“북쪽지역이요?”

“북쪽의 지역에는 중립구역이 있기 때문에 그 구역에서 사건이나 사고, 전쟁이 빈번해서 항상 일손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대단해요! 그 나이에 벌써 아카데미도 조기졸업하고 제국의 일에 충실하다니! 그럼 제이공자는 언제 졸업을 할 예정인거죠??”

세린의 물음에 리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오라버니는 이미 졸업했습니다만...”

“... 네?”

“3학년 때... 그러니까 2년 전에 졸업했습니다.”

제이가 졸업을 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이야기에 세린의 기분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럼 2년 동안 자신을 찾지 않은 것은 제이에게 자신은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의미 같아서 세린의 입술이 말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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