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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41화 (41/218)
  • 41화. 리사의 재능

    세린은 멜의 도움을 받으며 천천히 재활훈련을 하는 것처럼 앞으로 걸었다.

    갑작스러운 성장으로 온 몸이 마비가 되었던 것처럼 떨려 걷는 것부터가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레인에게서 마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고 배워가며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스스로 마력을 다루지 못한다면 이번과 같은 피해가 또 다시 생길 것이다.

    모두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식은 자연스럽게 이엔에게로 들어왔다.

    이엔은 통신석을 통해 들은 세린이 무사히 깨어났음과 건강해졌음을 듣고 안도했다.

    금빛 눈동자가 몰려오는 안도감에 다정하게 휘어졌고 철렁이는 가슴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엔은 소식을 전해준 로레인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다음 수업을 위해 책을 챙기고 일어섰다.

    기숙사를 빠져나가자마자 이엔은 그의 앞을 막아버린 소년들을 발견했다.

    입고 온 옷에서부터 귀한 가문의 자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복잡해져가는 상황에 미간이 좁아졌다.

    수석합격을 위해서는 지각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년들은 그런 이엔을 바라보며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천한 평민들이 이런 아카데미에 온 것 자체가 기적일 텐데... 누구에게 빌붙어서 온 것이냐?”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의 비웃음과 동시에 뒤에 서 있던 소년들도 함께 웃었다.

    이엔은 그저 묵묵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녹색머리의 소년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담으며 말했다.

    “왜 그러지? 너무 귀한 귀족가문의 사람을 따라서 온 것이라 입 밖으로도 내뱉지 못하겠어??”

    하긴... 황족들의 도움으로 들어온 것이니 너무 귀한 신분이시라 내뱉을 수 없었다.

    이엔은 마음속으로 수긍하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소년은 그런 이엔의 날카로운 눈매를 움찔하며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천한 평민주제에 감히 귀족을 똑바로 쳐다봐??!”

    주먹을 번쩍 들은 소년은 이엔의 얼굴을 향해 날카롭게 주먹을 내질렀다.

    아니, 정확히는 주먹을 들자마자 한 목소리로 인해 멈추게 되었지만 말이다.

    “야.”

    멈칫!

    그 자리에서 멈춘 소년은 자신을 제지한 미성의 주인공을 향해 눈을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찰랑이는 하얀 머리카락을 가졌고 머리를 장식한 금백조의 머리띠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푸른색의 레이스가 달린 하얀 드레스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날카로운 인상의 아름다운 소녀는 푸른 눈동자를 보다 앙칼지게 치켜뜨며 녹색의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백발의 푸른 눈은 스페라도 대공의 자녀...!

    소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리사는 그런 소년을 바라보다가 비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으며 말했다.

    “넌 뭔데 내 앞에서 알짱거려?”

    “대.. 대공작의 공녀는 10살이라고 들었는데... 왜 아카데미에...?!”

    주변에서 숙덕거리는 소음을 들은 리사는 소음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뭐!!! 똑바로 말 안 해??!! 내가 아카데미를 다니는 게 불만이야 뭐야??!!”

    “히익!!!”

    “그리고 내가 너네한테 물어봤어?! 물어봤냐고!”

    학생들은 겁에 질려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엔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황녀를 너무도 좋아하던 공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는 13살부터 다닐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이 소녀가...?

    리사는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녹색머리를 향해 말했다.

    “야 너!”

    “... 네...?”

    “넌 어디 가문의 누군데 내 앞에서 눈 똑바로 치켜떠???”

    “.... ㅈ.... 제코 남작가 입니다.... 도벤 제코라고 불러주시면...!”

    “아 시끄러! 누가 네 이름따위가 궁금하다고 했어?!”

    리사는 인상을 왈칵 찡그리며 이어 소리쳤다.

    “이제부터 내 앞에서 이딴 일이 벌어지면 다 죽여 버린다!!”

    그 말을 끝으로 리사는 이엔을 스쳐지나갔다.

    씩씩거리며 이엔을 지나치던 리사는 잠깐 자리에서 멈추더니 이엔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검지손가락을 까딱였다.

    “넌 나 좀 따라 와봐!”

    “....?”

    이엔은 천천히 리사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아카데미 건물의 기둥에서 멈춘 리사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

    “... 네.”

    “넌 뭔데 저런 말을 듣고 멍 때려??”

    “..... 네?”

    이엔은 놀란 눈으로 다시 물었다.

    리사는 화난 눈으로 소리치며 말했다.

    “바보야?? 말 못하는 멍청이야???”

    “.....”

    “저런 식의 말을 들었으면 배로 갚아 주는 게 이득이야 바보야! 평민이라서 말하기가 좀 그래???”

    “.....”

    “그런데 아카데미는 신분제가 통하지 않아! 여기는 실력으로 평가하는 자리라고. 모든 학생을 공평하게 판단하는 장소니까 네 할 말은 하고 살아!!”

    “....... 감사합니다.”

    “나야 뭐... 아니... 넌 나랑 경우가 다르니 좀 그런가? 난 아카데미에서 조기입학 추천을 받아서 빨리 졸업하려고 온 것이라 막 살아도 괜찮거든.”

    그렇다. 리사는 10살의 나이에 아카데미의 추천장을 받을 정도로 영재였고 스페라도 대공만큼이나 검술이 매우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천재였다.

    그 어린 나이에 검술의 성장속도가 너무도 빨라 적어도 15살 이전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난무했으며 제국 최초의 마스터 경지에 오를 여기사가 될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참고로 제국의 통일을 위한 전장에서 활약한 스페라도 대공은 18살의 나이에 마스터라는 높은 검술의 경지에 올랐으니 리사의 잠재능력은 말을 더 할 필요가 없었다.

    조기입학까지 추진하며 리사에게 입학을 권유한 아카데미는 겨우겨우 오랜 제의 끝에 리사의 수락을 얻었고 리사는 그렇게 아카데미에 이른 입학을 했다.

    정말 의외였다.

    “뭐 난 이야기를 했으니까 참아서 병나도 내 책임은 아니다?”

    리사는 이 후 이엔에게 몇 마디 더 날린 후 수업을 들으러 이동하였고 이엔도 멍하니 서 있다가 수업을 들으러 이동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만남은 빠르게 지나갔다.

    실은 리사는 아카데미의 제의를 이번에도 거절하려했다.

    황녀가 쓰러지고 너무도 힘들어하던 리사는 제이가 아카데미로 간다는 말을 하자마자 자신도 가겠다고 제의서를 수락했다.

    몇 년 동안 황녀전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슬프고 힘들겠지만 제이보다 빨리 졸업하여 황녀와 매일 붙어 다닐 생각을 하며 수락한 것이었다.

    자신이 13살에 입학했다가는 꼼짝없이 제이보다 늦게 졸업하는 것이 뻔했기에 황녀를 뺏길 수 없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조기입학을 하였다.

    엄청난 열정의 애정이었다.

    세린은 그러한 리사공녀의 소식을 들으며 리사 마저도 아카데미로 갔다는 생각에 너무도 쓸쓸했다.

    모두와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도 속상했고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는 것도 속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멜은 그런 세린을 다정히 감싸 안아주며 말했다.

    “황녀전하.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갑니다. 서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빠르게 스쳐서 지나가지요.”

    “.....”

    “가족과 함께 사랑하면서 그리고 황녀전하를 위해 스스로 열심히 마력훈련을 하시면서 지내시다 보면은 몇 년은 금방 지나갑니다.”

    “.....”

    세린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렇게 기운 없이 있을 시간에 그들만큼 노력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세린은 로레인이 알려준 마력운용을 위해 자세를 잡았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공허한 가슴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마력을 느껴보기 시작했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시작해보자!’

    세린의 하루는 길었고 황제의 하루도 똑같이 길었다.

    황제는 잃어버린 황후의 유골을 찾아가느라 하루하루 괴로워했다.

    고통스러운 죄책감을 애써 가슴에 품고 황성을 나서서 그녀를 찾는 황제의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웠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는 그 뒷모습에 로레인은 황제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버지.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 무엇이 말이냐...”

    “어머니는... 잊어버리세요...”

    “로레인...!”

    황제는 슬프게 일그러진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슬픔이 가득한 아들의 표정에 말을 더 하지 못했다.

    로레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를 찾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어머니를 잠시라도 잊어버리시고 세린에게만 집중해주세요.”

    “.....”

    “세린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어머니는 제가 무슨 일이 있든 찾아낼 테니 제발... 제발 그만 하시고 궁으로 돌아가세요. 아버지!”

    “로레인...”

    “그 어이없는 죄책감도 다 내버리고 가세요! 그 아이 앞에서는 그저 다 잊고 사랑만 주세요...”

    황제는 울 것처럼 일그러진 아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머니의 유골을 누가 가져간 것도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란이라는 말이 붙더라도 아버지를 한 대 쳐야겠습니다!”

    “... 로레인 너도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농담이 아닙니다. 죽은 어머니의 유골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세린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입니다. 그러니 여기는 제게 맡기시고 아버지는 세린에게로 돌아가세요.”

    스윽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로레인.”

    황제와 로레인은 자신들의 옆에 자연스럽게 다가온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테오는 붉은 색의 눈동자로 로레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사건은 내가 맡지. 로레인 너는 세린이 안전하게 마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에 임하거라.”

    “형님!”

    “더 이상의 말대답은 허락하지 않겠다. 네가 외려 이 사건에 대해 잊고 세린에게 집중했으면 하는구나.”

    “......”

    테오의 냉정한 말투에서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보였다.

    어머니의 일에는 항상 예민해지는 로레인을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황제도 이를 알기에 테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십니다. 세린의 안전을 책임지신 분이 아버지시니 지금 당장은 세린을 지켜주시지요. 이 일은 제가 조사하겠습니다.”

    “후.....”

    황제는 좁아지는 미간을 한 손으로 감쌌다.

    테오는 그런 황제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둘 다 돌아가십시오.”

    테오는 넓은 등에 달린 푸른 망토를 펄럭이며 정찰을 나섰다.

    그의 뒤를 따라 기사 두 명이 붙었다.

    황제는 테오의 마음을 알기에 그를 붙잡지 못했다.

    이 사건이 그를 저리도 분노하게 만들었으니까.

    지금은 정말 그의 말처럼 세린을 위해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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