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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9화 (39/218)
  • 39화. 아카데미의 시작

    이엔은 황제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녀를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심해야하는 것들이 있었다.

    마탑의 마법사들과 그녀의 마력

    어둠을 사용하는 제 능력이면 황녀가 굳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황궁으로 옮겨주는 것도 가능하며 마법사들이 흔적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그녀의 옆에 항시 대기하여 그녀를 보호하기도 수월하다.

    황녀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이엔이 빠르게 성장해야했다.

    그녀를 지키기에 이엔 만큼의 적임자가 없었다.

    마법사가 있었다면 세린을 지키기에는 그 마법사가 더 좋을 수 있었겠지만 마법사들은 귀했고 황궁의 마법사는 로레인 뿐이었다.

    그러나 로레인은 제국의 황족으로써 일이 많았고 황녀의 옆에만 있을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귀한 마법사들은 다 마탑의 소속으로 들어갔으니 이엔 말고는 적임자가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엔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수석졸업을 기다리마.”

    아카데미는 평민도 기본 지식과 능력, 혹은 돈이 된다면 입학할 수 있다.

    13살에 입학하여 7년 동안 생활하며 배우는 것이 원칙이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이 내려진 경우는 수석졸업이 된다.

    수석졸업을 하게 된다면 작위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곳이 아카데미였다.

    테오는 13살 무렵에 이미 지식과 능력이 뛰어나 아카데미에 가지 않아도 되었으나 평민들과의 소통을 원하고 아카데미의 삶이 궁금하여 입학을 하였었다.

    그리고 3년 만에 수석졸업을 하여 황궁으로 복귀했던 전적이 있었다.

    로레인과 트레일은 실력이 뛰어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본인들이 원치 않은 관계로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았었다.

    황족들은 그러하여도 괜찮았으나 다른 귀족가문의 여식들은 아카데미의 졸업장이 있어야 귀족의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

    이엔은 그런 귀족들이 섞인 아카데미에서 한낱 평민으로써 입학하고 졸업도 해야 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황녀님을 지킬 수 없어.’

    이엔은 이를 악 물고 방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황녀를 만날 수 없다.

    그의 눈가는 붉었고 눈물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반드시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라고.

    반드시 그녀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커져서 돌아오리라고 굳게 다짐하였다.

    트레일은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황성 입구에서 이엔을 기다렸다.

    가방을 들고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이엔을 관찰하다 이내 그에게로 다가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트레일에게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다정함에 이엔의 눈이 커졌다.

    트레일은 무심히 말했다.

    “평민의 신분으로 거기를 가면 각오해야 할 거야.”

    “.... 네”

    “귀족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녀석들을 굉장히 쓰레기 보듯 하거든.”

    알고 있는 정보였다.

    마탑의 마법사들도 같은 부류였으니까.

    “그러니까 거기에서 만약 누가 시비를 걸거든 이를 악물고 버티거나 아님 네 실력을 보여줘서 발라버려!”

    “......”

    이엔은 트레일다운 생각에 작게 웃었다.

    트레일은 잠을 자지 못해 어두워진 눈가를 문지르며 이내 다짐하듯이 말했다.

    “빨리 커져서 돌아와라. 이 트레일님께서 가르쳤으니 뭐 수석졸업이야 당연하지만!”

    “... 네.”

    “그럼... 가라.”

    “감사합니다.”

    이엔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준비되었던 마차에 올랐다.

    트레일은 코를 슥 문지르며 어색한 손짓으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마차가 사라지기 전까지 지켜봤다.

    작은 꼬맹이가 그런 곳에서 버틸 것을 생각하면 안쓰러웠지만 그건 스스로가 버텨내야 할 일이었다.

    트레일은 매번 강도 높은 훈련에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이엔을 꽤 좋게 바라봤다.

    ‘저 녀석이라면... 어디를 가든 잘 할지도...’

    그 생각을 끝으로 트레일은 세린을 향해 걸어갔다.

    이엔은 마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고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앞에 번쩍 빛이 생기더니 로레인이 나타났고 로레인은 피곤해 보이는 눈가로 그를 바라보며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2.. 2황자전하...?”

    “받아라.”

    로레인이 건네준 동그란 무언가를 받은 이엔은 어리둥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통신석이다. 네 능력이 이상해지거나 큰 일이 생겼을 때 연락을 하면 될 거야.”

    “...... 감사합니다.”

    “.... 조심해라.”

    그 말을 끝으로 로레인은 궁으로 돌아갔다.

    이엔은 멍하니 그가 쥐여 준 통신석을 바라보다 다시 창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던 황족들이 이리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에 솔직히 가슴이 간지러워진 이엔이었다.

    자신을 신뢰하는 모습에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믿음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한다.

    이엔은 그렇게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아카데미 입구 근처의 구석에 도착한 마부는 이엔에게 내리면 된다고 정중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황성의 마차를 타고 온다면 오해를 받을 수 있기에 황제가 명령한 일이었다.

    이엔은 마차에서 내리고 자연스럽게 교문을 들어섰다.

    귀족들도 다니는 학교라서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웅장했다.

    거대한 건물 밑의 공터로 들어서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엔에게로 몰렸다.

    윤기가 나는 검은 흑발과 금가루를 뿌린 듯한 아름다운 눈동자.

    크고 날카로운 눈매 밑의 코도 오똑하니 수려했다.

    굳게 다물어진 입을 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이엔의 모습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반짝였다.

    푸른 색 드레스를 입은 영애가 조심스럽게 이엔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귀티가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얼굴을 붉힌 붉은 머리의 소녀는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실례합니다. 저는 로베론 자작의 첫 째딸 에리스 로베론이라고 해요. 어느 가문의 누구신지 너무 여쭙고 싶어서...”

    이엔의 얼굴에 난처함이 생겼다.

    이런 경우는 생각도 해보지 못해서 머뭇거린 이엔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후 말했다.

    “존대를 거두어주세요. 저는 이엔이라고 합니다. 성이 없는 평민이라...”

    “평민?!”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소녀의 비명 같은 외침에 그의 말이 끊어졌다.

    소녀의 뒤에 서 있던 영애들도 수근 거리기 바빴다.

    붉은 머리의 소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위, 아래로 쳐다 본 후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에... 저 얼굴로 평민이라니...”

    “.....”

    경멸받는 것은 익숙했던 이엔이었으나 요즘 황성에서는 그러한 시선을 받지 않아서 면역이 떨어졌었다.

    이엔은 조금 상처가 생겼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참나... 평민이 아카데미에 왜 왔담...? 어디 교육을 잘 받아서 취직하려는 거야?”

    “.....”

    취직은 맞겠지. 제국의 단 한 분밖에 없는 황녀를 지켜야 하니까.

    이엔은 수긍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작은 동작에도 아름다워 보이는 얼굴에 붉은 머리의 소녀도 그 뒤의 영애들도 얼굴을 붉혔다.

    소녀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눈가가 찌푸려지며 말했다.

    “취직이 시급하면 내가 알아봐주지. 우리 자작가에서 내 시종으로 오는 것은 어떠냐? 돈은 넉넉히 주마”

    사교계에서는 예쁜 시녀나 수려한 시종을 많이 거느릴수록 그만큼 능력 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시선이 있다.

    그런 세계에서 이엔의 외모는 아주 훌륭한 도구로 쓰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만만한 얼굴은 이내 이엔의 말 한마디로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저는 따로 정한 곳이 있어서...”

    “... 지금 평민주제에 내 제의를... 거절한 거야??”

    붉게 얼굴을 물들이며 수치스러워하는 소녀를 난감하게 바라본 이엔은 망설였다.

    뭘 해도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소녀의 손이 번쩍 올라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엔은 생각했다.

    마탑에서도 그러하듯이 귀족들도 똑같다고.

    손을 쉽게 올리는 것으로 자기를 위로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한 대 맞아주고 끝나는 것이라면 그게 더 편할지도 몰라 이엔은 다가오는 날카로운 손톱과 손바닥을 피하지 않았다.

    턱!

    다가오는 고통이 없어 눈을 다시 뜬 이엔은 소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하얀 장갑을 발견했다.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리자 보이는 것은 새하얀 머리카락이었고 푸른 하늘처럼 빛나는 깨끗한 눈동자였다.

    이엔의 눈이 커졌다.

    ‘스페라도 대공자...?’

    제이는 그런 이엔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신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는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 머리의 소녀는 이엔 만큼 아름다운 소년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기 바빴다.

    자신의 행동을 제지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막은 인물이 너무도 아름다워 할 말을 잊어버렸다.

    하얀색의 머리카락 밑의 푸른 눈동자가 올곧게 그녀를 바라보자 심장이 철렁였다.

    깊고 커다란 눈매가 화사했고 입가에 고여 있는 미미한 미소가 너무도 빛이 났다.

    제이는 그런 소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고 말했다.

    “아카데미 입학식에서 소란은 자제해야 할 듯 하군요.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 ㄴ.... 네....?”

    “그럼.”

    제이는 냉정히 소녀의 손을 놓고 이엔을 바라보았다.

    “넌 나를 좀 보지..”

    “......”

    그 말을 끝으로 제이는 뒤를 돌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엔은 그런 제이의 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를 따랐다.

    아카데미 공터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사라지자마자 소녀들은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다.

    붉은 머리의 자작가 소녀도 한숨 같은 아쉬움을 내뱉으며 말했다.

    “저 공자는 누구지... 하....”

    “레이디 에리스. 저 분은 스페라도 대공가의 공자 같습니다. 저 은발과 푸른 눈은 대공작 에서만 나오는 색이라고 들었어요!”

    “뭐어?? 대공자?!!”

    생각도 못했던 대귀족의 등장에 소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동시에 자작가의 소녀 에리스는 욕심이 생겼다.

    저 수려한 평민도 아름다운 공자도 모두 가지고 싶었다.

    이엔을 데리고 건물 내 구석에 들어온 제이는 냉정한 얼굴로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린 후 이엔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매 밑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관찰한 제이는 이내 이엔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황궁에서 널 본 적이 있어. 황녀전하와 인사도 나누는 것을 보았지.”

    “.....”

    “넌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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