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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8화 (38/218)
  • 38화. 의식불명과 아카데미 입학

    “아빠....”

    황제는 세린의 물음에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세린의 다리와 손, 발 그리고 신체의 모든 부위들이 본래 세린의 나이의 아이처럼 변했다.

    조금 더 길어진 다리와 손, 작았던 손바닥도 조금 더 커보였다.

    작고 동그란 얼굴이 섬세해졌으며 젖살도 조금 빠져보였다.

    그저 12살인 세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신체의 나이가 커진 세린을 당황스럽게 바라본 황제는 떨리는 입을 열어 정황을 물어보려했다.

    “세린... 너 설마...”

    “욱!”

    세린이 급하게 두 손으로 입을 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린...?”

    “우우욱!!!!”

    삽시간에 창백해진 세린이 황제의 품에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로레인이 다급히 세린의 등에 손을 올리며 세린의 얼굴을 관찰하려 하자마자 세린의 손 사이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

    로레인과 황제의 얼굴은 시체마냥 창백해졌다.

    “세린!!!”

    “전하!!!!”

    “우우욱!!!!”

    세린이 두 손을 입가에서 놓자마자 피가 후두둑 떨어져 황제의 옷을 가득 적셨다.

    하얀 제복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황제는 다급히 세린을 고쳐 안으며 세린의 배 위로 손을 올렸다.

    내성보다 더 많은 양의 마력사용으로 인한 내상이 분명했다.

    황제는 피가 멈추지 않는 세린을 안으며 로레인을 향해 물었다.

    “설마 시간을 돌리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젠장!!”

    시간을 앞으로 돌리거나 뒤로 돌리는 마법은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가진 이들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사용해야 하는 마력의 양부터 위험한 수준이었고 사용한 후에도 그 휴우증과 피해가 더욱 위험한 마법이었다.

    로레인은 다급히 '힐'을 외치며 세린의 내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로레인은 창백해진 낯으로 세린의 내상을 치료하였다.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많은 양의 마력에 땀이 그의 이마에서 툭툭 떨어졌다.

    황제는 굳은 얼굴로 그런 로레인을 바라보았다.

    로레인이 저만큼 힘들게 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세린이 그만큼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고통으로 인해 기절한 듯 잠이든 세린에게 천천히 혈색이 돌아왔다.

    로레인의 얼굴은 반대로 창백해져 갔으나 그의 치료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로레인의 손이 세린에게서 떨어지자 세린의 숨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황제는 땀을 닦아내는 로레인의 어깨를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은 것이냐...”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로레인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이 지금 신체의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자란 것 같은데... 일어났을 때 고통이 상당할 것 같아요. 뼈대와 관절이 무리하게 급히 성장해서...”

    “그렇겠지...”

    황제는 세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주며 슬프게 얼굴을 구겼다.

    조절하지 못한 마력으로 인해 벌어진 이 일이 잘못하면 세린을 죽음으로 끌어당길 뻔했다.

    어쩌다 마법이 사용된 것인지 세린이 일어나고 다 나아지면 물어보아야 했다.

    황제의 가슴은 세린의 비명을 들은 그 순간부터 굳어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을 긴장과 불안감에 사고가 정지된 느낌이었다.

    두 번 다시 딸을 잃을 순 없었다.

    황제에게는 세린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세린이 쓰러진 후 황궁의 분위기는 더 어두워질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열흘이 지났음에도 깨어나지 않는 세린의 모습에 테오는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로레인을 찾아가기 바빴다.

    하지만 로레인도 마찬가지로 불안하였다.

    눈을 뜨지 않는 세린의 모습이 그의 가슴을 무섭게 만들었다.

    트레일도 하루에 몇 번을 세린을 찾아오는지 몰랐다.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어주고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빗겨주며 어서 일어나라고 다정히 속삭이는 트레일은 눈물이 그렁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황제도 매일 밤을 세린의 궁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다정한 손길로 세린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황제는 나직이 말했다.

    “이제 일어나야지 세린.”

    세린의 눈은 열리지 않았다.

    작디작은 딸의 싱그러운 눈동자가 보고 싶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 미소가 다시 보고 싶었다.

    아빠라고 하며 달려오는 그 작은 아이를 가슴 깊이 품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수줍게 붉어지는 그 홍조와 그 다정한 말투가 너무도 그리워서 황제는 두 눈을 감았다.

    언제 일어나든 상관이 없으니 부디 다시 눈을 떠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황족들의 가슴은 하루하루 타들어갔다.

    그러나 세린의 의식불명의 소식에 타들어가는 가슴을 가진 이들은 황족들만이 아니었다.

    이엔은 세린의 소식을 들은 후 매일같이 바쁘게 움직였다.

    로레인에게 배운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이엔은 황성의 도서관으로 달려가 매일 마법과 의료에 관한 책을 읽으며 그녀가 깨어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바빴다.

    ‘마법때문에 다치셨다고?’

    트레일의 이야기로 알게 된 황녀가 깨어나지 못한 이유를 듣고 이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녀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엔은 피가 바짝 마르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책을 넘기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그녀를 지켜야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녀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

    로레인이 넌 너무 약하고 아는 것이 적어 지금은 지킬 자격이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이엔의 눈가는 붉어졌다.

    작은 소녀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더 강해지고 더 커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 이엔의 어깨를 잡은 커다란 손에 의해 이엔은 고개를 들었다.

    연무장에서 함께 훈련에 임하고 있는 1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폐하께서 부르신다. 이엔.”

    “폐하께서요...?”

    “가보거라.”

    이엔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황제가 있을 태양궁으로 향했다.

    황제의 집무실 문이 열리자 크고 넓은 한 남자의 등이 보였다.

    검은색 제복에 달린 금빛자수들과 붉은 망토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반짝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이 그의 눈썹을 살짝 덮었고 붉은 보석 같은 눈동자가 날카롭지만 슬프게 빛났다.

    섬세한 이목구비는 황태자 테오를 떠오르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황제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엔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트레일에게서 들었다. 성장속도가 빠르고 재능이 있다고...”

    “분에 넘치는 말씀입니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로레인의 말로는 이제 스스로 어둠을 조절할 능력이 잡혀간다는군...”

    이엔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스스로 판단하기는 이르나...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그래....”

    황제는 가만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무심한 동작으로 들고 있던 편지봉투를 이엔을 향해 뻗어 건네주었다.

    이엔은 어리둥절한 동작으로 황제에게서 받은 편지봉투를 바라보았다.

    (아카데미 입학서)

    “.....?”

    이엔은 커진 눈동자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걸 자신에게 왜...?

    황제는 그런 이엔을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황녀를 지킬 예정이라지?”

    “...... 네.”

    “내 딸을 지킬 사람은 서투른 지식도 서투른 능력도 가질 필요가 없다.”

    “.....”

    “어중간한 능력으로 내 딸을 지킬 수 있게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야. 누구보다 강한 사람으로,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으로 배치시킬 생각이다.”

    “.....”

    황제는 기다란 팔을 바지의 주머니에 넣어 책상에 기대며 이엔을 곧게 바라보았다.

    이엔은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제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시선이란 저리도 날카로운 것일까.

    황제는 그런 이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트레일에게서 들었겠지만 황녀는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난 그런 그 애를 확실하게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해. 그 아이의 옆을 지키면서 그 아이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을 말릴 수 있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지. 애초에 마법을 사용할 일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 답이겠군.”

    황제는 긴 다리를 일으켜 창가로 다가가며 이어 말했다.

    “만약 세린이 황궁 안이던 밖이던 그 어느 곳에서 마법을 사용해 다쳤을 시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들키지 않게 그 아이를 우리에게로 바로 옮겨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한 능력의 두 번째다.”

    “......”

    “그 아이가 황성에서만 산다면 나야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야.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친구가 생길 것이고 보고 싶을 또 다른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지. 여러 초대장을 받고 티타임과 파티를 즐기고 싶을 지도 모르지도...”

    “......”

    “그런 그 아이가 즐거운 모습으로 안전하게 나갔다가 온전하게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내 마음이다.”

    황제의 말 속에서 황녀를 향한 온건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엔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황제는 그런 이엔을 바라보다가 날카롭게 말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네 실력을 증명해라. 입증하고 돌아온다면 황궁의 기사로써 너를 황녀의 소속으로 들이겠다. 그 아이를 지켜라.”

    “.....!!!”

    “만약 어중간하게 졸업했다가는 그 아이의 곁으로는 갈 수 없을 것이야.”

    “... 폐하...!”

    “어둠술사의 능력이면 내 딸도 마법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옮기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기사로써 지금의 네 실력을 발전시켜서 아카데미에서 입증하면 세린을 보호할 기사들을 한 명 한 명 체크해서 선발할 필요가 없어 더 효율적이겠지.”

    “.....”

    “거기서 네가 황녀를 지킬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오거라. 다른 기사들이 네가 황족을 지킬 수 있는 녀석이라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황제의 눈이 굳은 결심을 담고 이엔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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