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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7화 (37/218)

37화. 마력의 위험신호

세린은 리사와 제이를 티 테이블로 안내했다.

하얀색의 아름다운 테이블에 앉은 제이와 리사는 테이블에 차려진 화려한 음식보다 사랑스러운 세린의 모습에 눈이 갔다.

세린은 둘의 시선을 받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아니요! 전하를 뵙지 못해서 잘 지내지 못 했습니다.”

리사는 바로 대꾸하며 울상을 지었다.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당황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보고 싶으셨다면 미리 편지를 주시지 그러셨어요.”

“아, 그걸 까먹었네요. 다음부터는 편지를 쓰고 오겠습니다.”

리사는 바로 수긍하며 세린과 편지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제이는 그런 상황을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세린과의 즐거운 티파티가 끝나고 제이와 리사는 마차를 타고 대공저로 돌아가려 마차를 기다렸다.

세린은 둘을 마중해주며 말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도 놀러와 주세요!”

그 환한 미소가 너무도 빛이 나서 제이는 입술을 곱게 휘어 웃었다.

“저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금방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바로 편지를 드리겠습니다.”

세린은 제이의 부드러운 말에 더욱 밝게 웃었다.

제이는 그 미소를 계속 바라보다가 스스로의 가슴 속에서 빨라지는 심장소리에 당황했다.

얼굴도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도 같았고 조금 손이 떨리는 것도 같았다.

그런 와중에 마차가 도착해버렸고 제이는 수줍어진 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세린을 마차의 창문으로 바라보았다.

노을의 빛 때문인 것인지 사랑스럽게만 여긴 귀여운 미소가 제이의 머릿속에 깊이 담겼다.

두근두근

빨라져가는 박동소리를 숨기며 제이는 손을 함께 마주 흔들었다.

세린의 밝은 미소와 밝은 인사를 받으며 만족스러운 마음과 묘한 감정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던 제이는 창밖의 세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침에 마주친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도 함께 발견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은 세린에게로 다가가고 있었고 무언의 약속처럼 그녀와 두, 세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멈췄다.

세린은 그런 그를 발견하자 반갑게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는데 입모양을 보니 '안녕'이라며 인사를 한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다음 장면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의 두 볼이 붉게 홍조가 올라온 것이었다.

금빛 눈동자 속에서... 아니 얼굴 전체에서 수줍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삽시간에 제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가 보아도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은 황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

제이는 맑게 웃는 세린과 부드러운 표정으로 수줍어하는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에 담았다.

그 장면이 계속 제이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마차에 기대자마자 세상모르게 잠든 리사를 바라본 제이는 리사가 저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 불행과 동시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발등 위로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어떤 것에서 쫓기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을 위기감이라고 하던가.

“.......”

대공저에 와서도 제이의 밤은 깊어만 갔다.

그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과 세린의 관계가 몹시도 궁금해졌고 몹시도 신경이 쓰였다.

제이는 침대에 누워 창문 밖의 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불쾌함과 이 위기감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몰랐다.

제이는 그런 고민을 하다가 다시 한 번 세린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 미소를 다시 한 번 마주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엔은 연무장에서 마주친 세린을 열심히 피해 다녔다.

작은 그 소녀만 보면 주체하지 못하고 붉어지는 얼굴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간단한 인사 한 번 제대로 할 자신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세린의 분홍빛 머리카락만 눈에 보여도 심장이 급하게 뛰어 바짝 긴장했고 세린의 싱그러운 연두색 눈동자와 마주치면 입술이 바짝 말라서 말을 내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그의 귀로 스페라도 대공이라는 대귀족 기문의 자녀들이 세린에게로 가는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대공의 공자와 둘이서 티파티도 한 적이 있다고도 들었다.

이엔은 가만히 세린의 궁을 멀리서 바라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때, 이엔의 옆을 지나치는 화려한 무늬의 마차가 그를 지나쳤고 이엔은 자연스럽게 마차 속 인물을 확인했다.

새하얀 백발이 달빛처럼 빛이 났고 푸른 눈동자는 시리도록 차가우나 깨끗하고 맑아 보였다.

그 푸른 눈동자 밑의 이목구비가 화사한 자기 또래의 남자아이의 모습에 이엔은 굳었다.

‘대공의 자녀들도 새하얀 백발과 푸른 눈이라고 했는데...’

그럼 저 아이는 스페라도 대공자?

저절로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멈춘 이엔은 한숨 같은 말을 내뱉으며 뒤를 돌았다.

“지금 가봐서 뭐하려고... 주제를 알아야지....”

입안이 쓰고 입술은 말라갔다.

그런 그의 고민을 알고 있던지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이엔은 씁쓸한 마음으로 연무장에서 수련을 이어하기 시작했다.

“좀 더 강하게!”

트레일의 목소리를 들으며 목검을 휘두르는 이엔은 땀이 가득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작디작은 소녀의 얼굴이 그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자신 같은 이보다 대공자 처럼 아름답고 높은 신분의 사람이 황녀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 번을 먼저 인사해보지 못했고

단 한 번을 먼저 다가가는 것도 해보지 못했다.

멀어지겠다고 마음먹은 주제에 황녀의 주변을 맴돌고 기웃거리는 자신이 싫었다.

서걱!!!

이엔의 목검이 휘둘러지고 강하게 내리치는 파동에 목표하던 단단한 인형을 깨끗한 단면으로 베어냈다.

트레일은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성장속도가 어마무시하구만? 벌써 베어낸 단면이 깨끗해... 이 정도면 마스터가 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감탄한 속을 숨기며 묘하게 입 꼬리를 올린 트레일은 이엔을 향해 말을 걸려 하였다.

“생각보다 잘...”

“죄송합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깔끔하게 먹어버린 트레일의 말을 뒤로 넘겨버리고 이엔은 서둘러 다시 세린의 궁으로 향했다.

트레일은 화를 내는 것도 잊어버리고 멍하니 사라지는 이엔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저 자식이 저렇게 급한 거지?’

이엔은 멀리서 보이는 세린의 궁 입구와 그 궁 앞에 서 있는 대공의 자녀들, 그리고 세린을 발견했다.

세린은 수줍게 웃고 있었고 공녀도 호쾌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공자는 부드럽게 세린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애정이 가득 담겨있는 시선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따스한 눈빛에 이엔의 몸이 굳어갔다.

이엔은 천천히 떠나가는 마차를 뒤로하고 세린에게로 다가갔다.

세린은 그를 발견하고 정말 반갑게 웃어주었다.

그간 피해 다니는 제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약속한 두, 세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세린도 올곧게 그를 바라보았다.

많은 것을 바라고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안녕 이엔!”

이엔은 그저...

“안녕하십니까.”

인사라도 먼저 걸어보고 싶었다.

이엔은 그 인사를 한 후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그게 그리도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그 날 밤, 세린은 침대에 앉아 멜이 따라준 꽃차를 마시고 있었다.

따듯한 차의 온기에 세린이 만족해하며 웃었고 멜은 그런 세린을 다정히 바라보았다.

작고 귀엽고 마음마저 다정한 이 황녀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이 멜에게는 행복이자 행운이었다.

“맛있다!”

세린은 밝은 모습으로 차를 마시며 기분이 좋아졌다.

제이공자와 리사공녀와도 즐겁게 놀았고 오늘은 이엔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해줬다.

벤의 말처럼 자신이 먼저 다가가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바뀌어갔다.

행복한 기분으로 차를 바라보았던 세린은 차 위로 비치는 자신의 얼굴로 시선이 옮겨졌다.

12살의 나이가 본래 자신의 나이지만 지금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은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모습이었다.

엄마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시간을 되돌려 어린 아기로 만들었다는데... 그러면 반대로 시간을 앞으로 재생시키면 본래의 나이처럼 커지지 않을까?

세린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큰 키를 욕심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 나이보다 작은 신체가 조금 원망스러운 적이 있었다.

올 해 10살인 리사공녀보다 작은 자신의 모습이 그리도 민망할 수 없었다.

내가 언니인데....

그리고 이어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보며 무심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시간을 5년만 더 앞으로 돌렸으면....”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욕망에 주변 마력에서 파동이 일어났다.

파지직

“어...?”

“전하!!!!”

스파크처럼 튀는 마력의 파동이 세린을 중심으로 몰아 터졌고 눈에 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력이 덩어리로 변하여 세린을 감쌌다.

쨍그랑!!

“전하!!!”

멜은 들고 있던 주전자를 떨어트리며 세린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세린의 주변을 감싸버린 마력으로 인해 달려오는 멜이 튕겨져 나갔고 바닥을 강하게 굴러 벽에 부딪혔다.

“멜!!”

다급히 멜을 부른 세린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강한 마력의 스파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강하고 빠르게 뛰어갔으며 다가오는 무서움에 눈물이 났다.

온 몸이 쑤셔지는 듯한 통증에 세린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전하!!”

그녀의 찢어질 듯한 비명에 밖의 경비병들과 세린을 보러 온 황제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고 동시에 허공에서 로레인도 나타났다.

“세린!!!!”

저절로 창백해진 황제와 로레인은 다급히 세린에게로 달려갔다.

세린에게로 달려가는 그 짧은 사이 날뛰어가는 마력들이 파스스 소리를 내며 흩어져버렸고 황제는 세린을 간단히 받아낼 수 있었다.

멜도 경비병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겨우 일어났다.

세린을 받아낸 황제와 로레인은 얼굴이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세린은 고통에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굳어있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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