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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5화 (35/218)

35화. 의원은 여전히 고생합니다.

세린은 얼마 전부터 예법에 능숙한 리사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컵을 드는 그 모습에서부터 의자에 앉거나 의자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걷는 모습마저도 리사는 반짝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세린은 항상 그런 리사를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예쁘게 잔을 들고 싶어...' 라는 생각을 하며 예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세린에게 메리부인의 등장은 너무도 반가운 기회였다.

황제는 환해진 딸의 모습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뭐든 세린만 즐거워하고 좋아한다면 상관이 없었다.

메리는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오는 세린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이들도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황녀는 그런 자신의 아이들보다도 더욱 사랑스러웠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순수한 호의와 설렘이 가득했다.

메리부인은 그런 세린을 향해 한 번 더 고개를 숙인 후 말했다.

“부족한 몸이지만 전하께서 예법에 대해 즐겁게 배워 가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린은 그런 메리부인을 향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아... 역시 사랑스러워....’ 허물어진 메리부인의 표정에 황제의 눈썹이 한 번 더 꿈틀거렸다.

표정관리를 좀 하라는 눈빛에 메리부인은 다시 흐르려는 침을 부드럽게 닦아내었다.

그렇게 다음 날부터 수업을 시작하겠다는 말을 듣자 세린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지 못했다.

자신이 리사처럼 부드럽게 컵을 잡는 것에서부터 아름답게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던 세린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키득거렸다.

생각만 했는데도 너무나 즐거웠다.

황제는 그런 세린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저렇게 좋아할 것을 알았더라면 미리 예법선생을 구했을 것이었다.

황제는 세린에게 다가가 물었다.

“세린, 예법을 그리도 배우고 싶었느냐.”

세린은 자연스럽게 황제의 품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

“네! 저도 메리부인처럼 멋지게 인사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요...!”

“이런... 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세린의 얼굴이 단번에 붉어졌다.

하지만 황제는 진심이었다.

아직도 이렇게 어리지만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뚜렷해서 아름답다는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런 딸이 예법을 배워서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는데...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졌다.

더 예뻐진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예뻐 보일 텐데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예뻐 보일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기대하는 세린의 모습에 그저 입술을 꾹 다물었던 황제였다.

세린만 좋다면 상관이 없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야 자신이 차단시켜버리면 그만이었다.

세린은 다음 날이 밝고 난 후 부터 매일 매일 메리부인과의 예법시간에 푹 빠졌다.

메리부인의 다정한 미소와 시범을 보여주는 그 아름다워 보이는 자태가 세린의 눈에는 너무도 신기했고 늘 새롭게 배워가는 예법이 즐거웠다.

“전하, 발바닥이 모두 땅에 닿으면서 걸으면 구두의 소리가 너무 커지기 때문에 발가락에서부터 천천히 땅에 닿는 느낌으로 걸으셔야 한답니다.”

“이렇게 걸어야 하는 건가요?”

“너무 잘 하고 계십니다.”

메리부인의 다정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세린은 용기를 얻어갔다.

그녀가 설명해주는 것도 듣기가 편했고 이해하기도 좋았다.

세린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예법에 능숙해져갔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테오는 세린을 향해 물었다.

“세린, 예법을 배우고 있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어떤 예법을 배우고 있느냐?”

테오의 물음에 세린이 붉어진 볼로 자신 있게 말했다.

“아! 보여드릴게요! 잘 보셔야 해요?”

테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라고 이야기하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고 황제와 로레인과 트레일은 흐뭇한 미소로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집중하는 눈동자를 하고 작은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컵의 손잡이를 잡았다.

검지와 중지, 엄지를 유연하게 움직여 컵을 들어본 세린의 작은 손은 이윽고 컵을 받침그릇에서 올리자마자 귀여운 새끼손가락을 짠! 하며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황족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을 내뱉었다.

“큭...”

치명타였다.

너무도 심장에 무리를 주는 치명타였다.

사랑스러운 그 치명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세린은 멈추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컵을 이끌고 입가로 가져온 세린은 새끼손가락을 야무지게 들며 홀짝 마셔보았고 다시 천천히 컵을 내려놓았다.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도 나지 않았음에 만족한 세린은 보다 환한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어때요? 어렵지만 이제 컵도 예쁘게 들 수 있어요!”

황족들은 스스로도 만족해하는 세린의 또 다른 귀여운 모습에 울면서 박수를 쳤다.

기특하다고, 너무 잘 한다고. 아름답다고.

칭찬의 연속에 세린의 볼이 붉어졌지만 이내 환하게 웃었다.

황제는 세린이 예법을 배워가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속으로 메리부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러다 세린이 보여주는 자랑과 예법의 모습을 로레인이 영상구로 기록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눈을 빛낸 황제는 무언의 눈짓으로 로레인과 소통을 했다.

로레인은 재빠르게 그 눈빛을 알아채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황제의 집무실에서 황족들의 협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시녀와 시종들은 고개를 조아렸다.

여러모로 행복한 분위기의 황성이었다.

그러나 대공가에서 메리부인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아들의 사랑을 응원하러 갔다가 본인이 황녀에게 반하고 온 메리부인은 난처해졌다.

‘어떡하지... 황녀전하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만... 제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자꾸 까먹어...’

그런 메리부인의 고민은 깊어져갔다.

매일 세린을 만나기 전에는 '황녀전하께 은근슬쩍 제이의 이야기를 흘리는 거야!'라고 다짐을 하고 갔으나 예법시간이 끝나고 나면 그저 '오늘도 황녀전하는 사랑스러웠다...'라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집으로 귀가했다.

이런 식이라면 아들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메리부인은 다시 다짐을 해보고 암기를 하듯이 머리로 외워가며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메리부인은 매일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다행스럽게도 제이의 무소식이 세린과의 재회에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 날, 세린은 코코아가 담긴 컵을 양 손으로 잡으며 홀짝 홀짝 마시고 있었다.

조금 우울해지면 항상 달콤한 것을 먹으며 생각에 잠기는 세린을 알기에 시녀 멜은 걱정했다.

‘무슨 일이시지...?’

세린은 멜의 걱정처럼 조금 우울했다.

황궁으로 놀러올 때 편지를 주기로 했던 제이에게서 계속 편지가 오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역시... 내가 황녀라서 그냥 예의상 했던 말이었을까...?’

시무룩한 표정으로 코코아 위로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세린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자연스럽게 우울해진 두 번째 이유로 생각이 넘어갔다.

저번 인사를 나누었던 그 후부터 이엔이 자신을 노골적으로 피하고 있었다는 것이 우울한 두 번째 이유였다.

‘이엔도 아직 내가 싫은 걸까...?’

심지어 기사단의 기사들도 황궁의 시녀, 시종들도 자신을 보면 슬금슬금 피했다.

모두 다 세린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세린의 기분은 우울 그 자체였다.

“우리 막내가 왜 한숨일까?”

“레인 오빠!”

로레인은 제비꽃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을 곱게 휘어 웃으며 세린을 안았다.

로레인의 품에 안긴 세린이 작게 웃으며 넓은 가슴에 기대자 로레인의 입가가 허물어졌다.

“세린. 왜 슬픈지 오빠가 물어도 괜찮을까?”

세린은 로레인의 물음에 작게 움찔하며 몸을 떨다가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로레인을 올려 보았다.

“오빠....”

세린의 눈물에 로레인이 굳었다.

바위처럼 굳어버린 로레인은 당황이 가득한 눈으로 세린의 등을 두드려주며 물었다.

“아니... 세린 왜 그러니?? 무슨 일이야?”

“흑...”

세린은 차오르는 서러움에 로레인의 목을 감싸며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았다.

“세린...”

“오빠... 다들 날 싫어해요...”

“뭐??”

“히끅.. 흐잉....”

딸꾹질까지 해가며 서럽게 우는 세린의 모습에 로레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당황이 가득한 눈으로 세린을 바라본 로레인은 눈물을 멈추지 않는 세린의 모습에 다급히 의원의 의료실로 워프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던 의원의 앞으로 로레인이 강한 빛과 함께 허공에서 나타났다.

후두두둑

워프의 여파로 나타난 마력의 진동 때문에 열심히 정리한 약품 관리서와 결제 내역, 진료기록들이 바닥으로 처참하게 섞여가며 떨어졌고 의원의 도시락도 처참하게 날아갔다.

‘한 입밖에 안 먹었는데....’

의원의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 로레인은 세린을 그의 건너편 의자에 조심스럽게 올려 앉히며 말했다.

“세린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데... 멈추게 하는 약이라도 있나?”

“... 그런 약은 어.. 없습니다. 황자전하...”

“그럼 아이가 우는데 어찌해야 하는 건가!”

“아니 저는.....”

병이나 다친 곳을 치료하는 의사인데....

마음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의원의 억울함이 느껴졌다.

로레인은 그런 의원의 앞에서 허둥지둥 세린을 달래며 땀을 흘리다가 이내 금방 다시 오겠다고 말을 한 후 어딘가로 워프했다.

“......”

“히끅... 흑... 흐윽.”

아니... 난....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데...

뭔가 속이 상해진 의원은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세린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황녀전하. 미천한 몸이지만 황녀전하의 고민을 물어보아도 관찮을지요?”

“... 흑... 의원님은 내가 안 싫어요?...”

“..... 네?”

세린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눈물을 닦으며 애처롭게 말했다.

작고 앙증맞은 얼굴에서 나오는 눈물은 의원의 마음을 함께 슬퍼지도록 만들었다.

“시녀들도.. 시종들도 기사들도 모두 다 나를 싫어해요... 내가 보이기만 하면 다 날 피하고 제이공자는 나한테 편지를 보내기로 했는데 안 보내고 이엔은 자꾸 날 피하고... 다들 날 싫어해요....”

“으에.....”

의원의 입이 저절로 벌어지며 괴상한 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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