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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4화 (34/218)
  • 34화. 예법선생님 메리 스페라도

    메리부인은 빙긋빙긋 웃으며 저돌적으로 애교를 부렸다.

    “쩨이이이이~! 이이잉! 마마는 톡탕해!”

    점점 발음이 강해지고 높아져가는 애교의 행진에 제이의 얼굴이 굳어져갔다.

    안색이 창백해지는 과정이 대공부인의 웃음을 짙게 만들었다.

    누굴 닮아 굳어지는 낯도 얼마나 예쁜지 몰랐다.

    “쪠이~~~마마눈~”

    “어머니....”

    “웅웅!!”

    다급히 대공부인의 입을 막은 제이는 굳어진 얼굴로 천천히 말했다.

    “실은....”

    “그래그래!!”

    “.....”

    말해? 말아?

    말했다가 놀리는 개월 수가 얼마나 늘어나려나?

    막상 입을 열어보려고 하니 걱정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바로 잡은 제이였다.

    이 문제의 해결방안이 어머니일지도 몰랐다.

    제이는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

    “말해 어서! 빨리 빨리!”

    “실은....”

    “실은 뭐어어어!!???”

    “제가...”

    “빠알리이이이!!!”

    (그 와중에 말꼬리를 늘리며 작은 복수를 하는 제이였다.)

    제이는 그 예쁜 얼굴로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녀전하를 뵙고 싶어요.”

    “엥??”

    두 눈을 깜빡이며 동그랗게 뜬 대공부인은 잠시 동작을 멈췄다.

    제이는 다시 한 번 말했다.

    “황녀전하를 뵙고 싶어요.”

    대공부인은 굳은 자세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제이를 향해 길고 고운 손가락을 뻗었고 제이의 양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랑이구나!!!!!”

    제이의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 뵙고 싶다는 말이 그렇게 왜곡이 되기도 하네요.”

    “사랑이야!!!!”

    “재밌는 농담은 그만하세요...”

    “진실한 사랑은 그렇게 갑작스러운 법이지!!!”

    “......”

    제이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생겼다.

    대공부인은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이며 설렘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황성에서 만나지 못하게 출입을 막았다지???”

    “.... 네.”

    “금지된 사랑!!! 사랑의 방해꾼!! 아름다운 이야기야!”

    “....”

    스스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한 걸까.

    왜 그녀에게 이 말을 내뱉었는지 후회를 하는 제이였다.

    그런 고민을 할 무렵 대공 부인이 고고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윤기가 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아들의 사랑을 위해 이 엄마가 도와야겠구나.”

    “....?”

    “엄마만 믿으렴. 황녀님을 뵐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눈가를 고이 접으며 아름답게 미소 지은 메리는 아까의 애교가 무색하게 고귀한 걸음으로 제이의 방에서 걸어 나갔다.

    그 눈부신 뒷모습에 제이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음 날, 황궁의 집무실

    황제는 기분이 조금 묘한 상태였다.

    아침부터 황궁으로 보내진 편지의 내용이 그의 미간을 구겨지도록 만들었다.

    스페라도 대공 부인이 세린의 사교계 데뷔를 위해 예법 선생을 자처한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데뷔를 할 때 세린의 뒤에 서며 함께 하며 세린을 보호하려 한다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 좋은 제안이었다.

    그게 메리 스페라도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

    그녀의 끔찍한 애교를 세린에게도 주입시키려는 것은 아니려나...

    그렇다.

    메리부인은 황제에게도 황족들에게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애교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돌아오는 반응이 재미있으니까.’

    이유는 항상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편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생각에 잠겼다.

    메리 스페라도처럼 세린이 애교를 부린다...?

    집중하는 모습으로 상상의 나라로 떠난 황제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황제의 인장을 찍어 메리 부인을 세린의 예법선생으로 지정했다.

    사심이 가득한 선택이었다.

    “아자!! 역시 내가 예쁜 탓 인가봐!”

    황제의 수락이 담긴 편지에 메리가 주먹을 불끈 쥐고 호쾌하게 웃었다.

    아인대공은 그런 부인의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황녀전하의 예법선생이라... 무슨 일로 그 일을 자처한 건가?”

    “여보야! 세상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것이 있어...”

    “흠?”

    대공의 잘생긴 눈가가 가늘어졌다.

    메리는 키득키득 웃으며 대공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이건 정말 비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거든!”

    “당신이 내게 비밀을 만드는 일도 다 있군.”

    “비밀은 여인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법이지.”

    대공은 피식 웃으며 대공 부인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래서 내 부인이 여전히 아름다운 건가.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군.”

    “웃겨 정말...”

    메리는 난처하게 웃었지만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대공은 그저 소녀 같은 메리를 바라보며 웃었다.

    언제나 아름답고 한결같은 여인이었다.

    같은 시각 스페라도 대공성에서는 리사 또한 기분이 저조했다.

    오빠한테 말로 맞은 상처가 아직 아팠고 무엇보다 황궁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소식이 리사의 마음을 무너트렸다.

    “죽여 버리겠어...”

    그런데 누구를?

    누굴 물어 죽여야 리사의 마음이 좋아질까?

    그래. 오빠한테 가자.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리라.

    리사는 허겁지겁 제이의 방으로 향했다.

    시녀와 시종의 만류에도 제이의 방문을 벌컥 열어버린 리사는 하얀 은발을 이마 위로 쓸어 넘기는 제이를 발견했다.

    깊은 눈매 사이로 긴 속눈썹과 푸른 눈동자가 냉정히 리사를 바라보았다.

    리사는 눈을 부릅뜨며 제이를 향해 말했다.

    “오라버니! 황궁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출입이 금지를 당한 거죠?! 그것도 나까지 말이죠!!”

    제이는 고양이 같은 리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리사.”

    “뭐요!! 왜요!!”

    “리사.”

    “아, 왜!!!!!

    황녀를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에 리사는 억울해졌다.

    눈물이 핑 돌만큼 그 사실이 속상했던 리사였다.

    그 찰랑이는 분홍빛 머리카락과 싱그러운 눈동자 사랑스러운 이목구비까지.

    이제는 보지 못하는 걸까?

    제이는 그런 리사를 바라보다가 슬쩍 미소 지었다.

    “곧 그 금지령이 풀릴 거야.”

    “....? 무슨 소리에요?”

    “그렇게 만들 거거든. 내가.”

    “엥?”

    “그러니까... 그만 조용히 하고....”

    제이의 목소리가 두 톤은 낮아졌다.

    리사는 침을 꿀꺽 삼켰고 이어 제이가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돌아 가주렴.”

    다정하게 미소 지은 제이의 모습에 리사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야생의 감에서 지금 제이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리사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 무슨.... 무슨 지.. 짓을 계획하는 거예요??”

    “무슨 짓이라니...”

    고개를 살짝 기울인 제이의 눈가 위로 은발이 흐트러졌다.

    고운 얼굴 위에 흩날리는 하얀 머리카락이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다.

    “단지. 조금 내부 분란을 노렸달까...?”

    “......”

    리사는 답지 않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아, 알았으니까 다음에 이야기해요!!”

    후다닥 사라지는 리사의 모습에 제이는 피식 웃었다.

    귀여운 고양이 같은 리사의 모습이 제이의 짙은 화를 조금씩 덜어주었다.

    제이는 창문을 바라보며 한 쪽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어디 내일 한 번 두고 봅시다. 모두.’

    제이는 무엇을 노리는 걸까?

    다음 날, 세린은 황제의 부름에 서둘러 집무실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황제가 부르는 일은 드물었기에 세린의 궁금증은 커졌다.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황제의 모습이었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파란 바다 같은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호박색의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나더니 세린을 바라보자마자 보다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세린은 제이의 얼굴을 발견했다.

    “황녀전하를 뵙습니다. 메리 스페라도라고 합니다.”

    여인은 부드럽게 몸을 일으켜 치마 끝을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아름다운 선에 한 번 놀라고 그녀의 이름에 두 번 놀랐다.

    ‘메리 스패라도라면 제이공자와 리사공녀의 어머니...?’

    황제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살짝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믿어도 되는 것인지 아직 짐은 헷갈리는군.”

    “심려치 마시기를... 예법이라면 전문이니까요.”

    “흠....”

    황제는 좁아진 미간을 펴고 세린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세린, 이리 오거라.”

    황제의 부름에 도도도 그에게 달려간 세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와 오똑한 코에서부터 제이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세린의 볼에 홍조가 올라왔다.

    황제는 그런 세린의 머리를 귀 뒤로 부드럽게 넘겨주며 말했다.

    “세린, 이제 너의 예법을 담당해줄 스페라도 부인이란다. 인사하거라.”

    “예법선생님, , , ?”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자 메리부인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전하의 예법선생이 되어 영광입니다.”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서둘러 꾸벅 고개를 숙였다가 고개를 들은 세린을 향해 메리부인이 붉게 달아 오른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아아... 사랑스러워...”

    황제는 단번에 미간이 좁아지며 세린을 반대로 끌어안았다.

    어쩌다보니 황제의 어깨에 기대어 벽을 바라본 세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만히 안겼다.

    황제가 말했다.

    “그 말투는 좀 어떻게 안 되겠나? 사랑스러운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예법선생이 사용하는 말투라고 하기는 좀 우습군.”

    “이런 스읍...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메리는 흘러내리는 침을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낸 후 다시 다정히 웃었다.

    황제의 눈이 조금 후회가 감돌았다.

    역시 예법선생은 다른 사람으로 들일 것을 그랬나.

    그러나 신분에서도 신뢰의 면에서도 스페라도 만한 귀족가문은 없었다.

    황제는 낮게 한숨을 쉰 후 세린을 다시 바르게 안아주며 말했다.

    “네게 필요가 없는데 괜한 일을 한 것 일까봐 미안하구나.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안 해도...”

    “할래요...!!”

    “... 세린?”

    “배우고 싶었어요!”

    세린의 연두색 눈동자가 반짝이며 작은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의지를 불태우는 귀여운 모습에 황제가 의아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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