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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3화 (33/218)

33화. 무서운 애교

방금 전.

‘황자님???’

‘어제는 아니 그 뭐야... 그냥... 내가 좀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좀 이해해주라.’

‘예..??’

‘자! 이거 줄 테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의원은 다급히 도시락을 내려놓고 붉어진 얼굴로 돌아가는 트레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의원은 두 눈을 반짝이는 세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태자님도 어제 저녁에 제게 제국의 유명한 가게의 식권을 선물로 가져오셨지요.”

“... 테오 오빠가요??”

“예. 2황자님도 저기에 있는 백합을 주셨고 황제폐하께서는 또 저기 있는 먹을 수 있는 금을 곱게 포장하셔서 주셨습니다.”

세린은 황족들이 선물한 것들을 바라보며 궁금한 눈으로 의원을 바라보았다.

의원은 두 눈가의 부드러운 주름을 고이 접으며 웃었다.

“네 분 모두 황궁의 사람들을 아껴주시는 것입니다. 어제의 일 같은 경우에도 예전에 비하면 애교지요.”

“예전이요??”

“황녀님이 오시기 전에는 폐하께서도 황태자님, 황자님들께서도 모두가 지금처럼 감정에 솔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의원은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상처투성이로 의료실에 자주 드나드는 트레일은 항상 표정 없이 묵묵했고 생살을 파고든 칼날을 꺼낼 때에도 그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 차가운 공기와 상처의 깊이에 의원은 매번 가슴이 아팠었다.

그런 트레일을 보러 황궁 의료실로 온 황제도 괜찮냐는 말 한 마디도 없이 그저 두 눈으로 상처를 관찰한 뒤에 다시 뒤돌아 태양궁으로 돌아갔었다.

그 날카롭고 위태로운 황실의 분위기와 황족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로레인도 가끔씩 마력소진으로 인해 스스로 치료가 불가능하자 의원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상처도 상처였지만 두 눈을 날카롭게 뜨며 “치료해“라고 말하는 그 앳된 얼굴의 표정이 참 슬퍼보였다.

걱정하는 마음과 괜찮다는 말을 전하지 못하는 황족들의 모습은 의원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런 황족들이 황녀를 찾은 후부터 바뀌었다.

다정한 그 웃음과 그 표정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한 그 모습과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치는 말투심지어 어제의 일을 사과한다며 바리바리 무언가를 싸들고 온 황족들의 모습에 의원은 순간 제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날카로운 황궁의 분위기가 온화해져가는 그 흔적들에 황궁의 사람들도 안심했다.

그건 다 이 작은 황녀님 덕분일 것이다.

세린은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의원의 눈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다가 이내 다정히 웃었다.

“자주 올게요!”

“하하 다쳐서 오시는 것은 안 됩니다만...”

아무리 착해졌다고 하지만 그 네 사람에게 또 당하고 싶지 않은 의원이었다.

세린은 의원과 수다스러운 아침을 보낸 후 멜을 따라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작은 운동들을 이제 막 시작했는데 도중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1기사단의 연무장으로 막 들어온 세린은 멀리서 훈련에 열중한 이엔을 발견했다.

이엔은 목검을 들고 밀짚 인형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훈련하고 있었다.

세린은 그런 이엔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의 금빛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당황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이엔은 천천히 세린에게로 다가왔다.

이엔은 분홍색 머리카락을 곱게 하나로 묶은 세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아... 응! 하나도 안 아파!”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폴짝 뛰어보는 세린의 모습에 이엔이 설핏 웃었다.

“그래도 무리하시지 마세요.”

세린은 이엔의 다정한 그 말에 조금 기뻤다.

저번의 그 일 이후로부터 이엔을 찾아오는 것도 다가가는 것도 여러모로 어색했던 세린이었다.

하지만 이엔과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보다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에 그 상황이 속상했던 참이었다.

밝게 웃은 세린은 이엔을 향해 한 발 다가가며 물었다.

“이엔은 훈련 잘 하고 있어?”

“아... 네. 목검을 들고 수련중입니다.”

“멋지다!”

반짝이는 세린의 싱그러운 연두색 눈동자에 이엔의 볼이 붉어졌다.

멀어지기 위해서 일부러 힘든 기억까지 내뱉었는데... 이 상황이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엔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난 후 말했다.

“위험합니다. 황녀님.”

“응? 아..”

세린은 찰랑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이엔이 멀어진 만큼 한 걸음 더 뒤로 걸어갔다.

이엔과의 경계선이 여기까지일까?

세린은 가만히 자신의 발과 이엔의 발을 바라보았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

“이엔!”

“... 네”

이엔의 수려한 눈동자가 올곧게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포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이엔이 위험하지 않을 때까지 이 거리에서 이야기하자!”

“.....?”

“이엔이 스스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면 그때는 네가 나한테 다가오는 거야! 어때?”

분홍색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세린은 환하게 웃었다.

그 바람과 미소가 왜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소리도 소문도 없이 이엔의 마음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때까지는 이 정도 거리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고 그러자! 그러면 함께 있을 수 있잖아!”

햇살 같은 미소가 눈부셨다.

나부끼는 머리카락도 아름다웠다.

작은 입술에서 나오는 그 다정한 말도 따스했다.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며 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의미의 그 말이 이엔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그 날, 한 소년의 짝사랑이 천천히 시작되었고 작았던 마음은 점차 크기가 부풀어질 것 같았다.

그런 다정한 분위기 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들어왔다.

테오였다.

“테오 오빠!”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한 세린이 맑게 웃으며 두 팔을 뻗었고 테오는 자연스럽게 세린을 품에 안았다.

가볍게 안긴 세린을 다정하게 바라본 테오는 부드럽게 세린의 무릎을 감싸보며 말했다.

“상처가 다 나으면 해도 괜찮은데 말이지...”

그의 걱정을 알기에 세린은 두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나도 안 아파요..! 오빠도 제가 꼭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렇지만... 다치면서 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단다.”

테오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세린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이렇게 다치면서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몰론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막상 다친 모습을 보니 당장 훈련을 그만두게 하고 싶어졌다.

세린은 키득키득 웃으며 테오의 어깨에 얼굴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마주친 이엔의 금빛 눈동자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살짝 손을 흔들며 웃었다.

또 이엔의 훈련을 방해한 것은 아닐까?

물씬 미안한 마음이 생겼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씩이지만 이엔에게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엔은 붉어진 볼로 묵묵히 고개를 숙인 후 하고 있던 훈련을 지속하러 이동했다.

테오는 그런 이엔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나직이 한숨 같은 말을 내뱉었다.

“후... 왜 이리 예뻐서...”

“네에?”

“아니다. 트레일이 오기 전까지 오빠와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은 어떠냐.”

“좋아요!!”

세린은 맑게 웃으며 테오의 품에 안겨 도란도란 이야기에 빠졌다.

세린의 입에서 나온 일상 이야기에 테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저 작은 머리 안으로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품고 어떤 상상의 나라를 펼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황제와 길에서 마주쳤고 테오의 인상이 왈칵 일그러졌다.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세린을 받아간 황제 때문이었다.

황제는 세린을 품에 안아주며 다정히 인사했다.

“아픈 곳은 좀 어떠냐?”

세린은 그런 황제의 넓은 품에 안겨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아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프지 않다고 해서 무리하지는 말거라”

다정한 걱정과 부드러운 말투의 황제의 모습에 세린이 고운 눈가를 휘며 웃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가족들의 마음이 간지러우면서도 즐거워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느 날처럼 함께 저녁을 먹었고 황제의 품에서 잠이든 세린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세린과는 반대로 스페라도 대공성에서는 제이의 기분이 매우 저조하였다.

로레인의 발 빠른 대처로 인해서 황녀에게로 편지가 닿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황녀가 알아낼 사실이지만 교활한 황자의 모습에 약이 올랐다.

고운 눈가를 일그러트리며 인상을 쓴 제이는 하얀 백발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넘기며 생각에 빠졌다.

‘황궁출입까지 금지?’ 자신의 짜증을 유도한 것이라면 아주 성공이라고 전하고 싶었다.

그만큼 열불 난 제이는 어떻게 하면 토끼 같은 황녀를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이?”

그 때, 뒤에서 들리는 고운 미성의 소리에 제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스페라도 대공부인 메리 스페라도였다.

깊은 바다 같은 파란색의 머리카락은 구불거리며 허리 아래로 찰랑였고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보이는 반짝이는 호박색의 눈동자가 너무도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사르르 접히며 웃는 눈가와 화사한 이목구비는 제이의 얼굴과 많이 닮아 있었다.

메리대공부인은 의자에 앉아 고민을 하는 아들의 옆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우리 제이가 무슨 일로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까?”

제이는 메리의 등장에도 입술을 꾹 다물고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을 거부했다.

무언가를 피하는 기색이 면면에 가득한 모습에 메리의 눈이 반짝였다.

메리는 그런 제이의 태도에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을 기다렸고 역시나 대답은 침묵이었다.

“.....”

“어머나. 엄마한테도 비밀인거니?”

서글프다며 우는 표정이 가득해진 메리를 바라보며 제이는 점점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시작이다...’

메리는 우는 표정에서 볼을 부풀리고 입술을 쭉 내밀며 두 팔을 양 허리에 올렸다.

“제이 너무햇!! 엄마한테도 비밀이라닝!! 힝 엄마 슬퍼!!”

“......”

제이의 얼굴이 창백해져갔다.

자기가 싫어하는 말투를 뻔히 알고도 일부러 더 하는 어머니의 장난기에 허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쩨이이~! 엄마 말 무시? 너뮤햇 !! 쩨이쩨이~! 말해죠!”

“하하...”

황녀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얼마나 놀릴지 상상도 가지 않아서 가만히 닥치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제이는 아직 어머니의 이 무서운 애교에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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