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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2화 (32/218)
  • 32화. 팔불출의 행진과 황궁의의 눈물

    그렇게 도착한 제 1기사단의 연무장에서는

    예상했던... 조금 씁쓸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세린의 앞에 서 있는 이엔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잘랐는지 훨씬 깨끗해진 머릿결과 돋보이는 수려하고 섬세한 얼굴은 세린을 놀라게 만들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정돈한 것만으로도 외모가 달라보였다.

    끝이 살짝 올라가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는 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오똑하니 자리 잡은 콧대와 굳게 다물려진 붉은 입술이 눈매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수려한 그 외모로 세린을 지그시 바라본 이엔은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입을 열고 말했다.

    “트레일 전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연무장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세린은 가늘게 떨리는 눈동자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이엔이랑 같이 수련을 하는 걸까?’

    불편하다... 라기보다는... 미안해졌다.

    자신으로 인해 안 좋은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걸까봐 미안해졌고 자신의 일에 휘말리게 될까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세린이 고민에 빠져있을 때 트레일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세린~~~!”

    세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트레일을 향해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트레일은 가볍게 세린을 올려 안았고 눈을 마주치며 개구지게 웃었다.

    “어서와! 많이 기다렸지?”

    “아뇨.. 오빠 엄청 빨리 왔어요!”

    “윽... 왜 이렇게 귀여 운거야... 이런 옷을 입고도 예쁘면 어쩌자고...!”

    “히익!! 창피해요! 하지마세요!”

    민망한 말을 나불거리는 트레일의 입을 다급히 작은 두 손으로 막은 세린은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휙 돌린 1기사단의 기사들은 하고 있던 훈련을 이어하였고 이엔은 시선을 슬쩍 돌리며 못들은 척 했다.

    ‘이미 다 들었구나...’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 세린은 트레일의 어깨에 얼굴을 숨겼다.

    트레일은 나직이 웃으며 세린의 등을 두드려주다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작고 어리고 약한데 무슨 운동을 하라고... 애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세린은 그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 웃음이 나왔다.

    어딜 가나 저릴 가나 세린을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트레일의 모습이 마음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세린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빠가 제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위험할 거라고 했어요...”

    “나도 알고 있지만... 후.....”

    트레일은 더욱 시무룩해진 모습으로 세린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세린을 내려주었다.

    “세린 일단 기본적인 운동을 20분정도 하고 차근차근 늘려보자!”

    “네에!”

    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세린의 모습에 트레일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저 고사리같이 작은 손과 발로 운동을?

    저 예쁜 눈동자로 이 더러운 기사단들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욱하는 마음이 트레일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이내 세린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마음을 숨기기로 했다.

    ‘'착한 오빠. 착한 오빠... 착한 오빠가 되어야해!’

    트레일은 밝게 웃으며 세린에게 준비운동을 위해 동작을 알려주었다.

    양 팔을 좌우로 움직여보고 제자리에서 점프도 해보고 별의 별 동작을 다 해보는 세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집중했다.

    이엔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목각...’

    세린에게는 유연성이 없었다.

    삐꺽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몸과 그 행동이 참 웃기면서도 귀여웠다.

    트레일은 그저 너무 잘한다고 귀여워서 큰일이라며 걱정이 가득이었고 말이다.

    분란하게 움직이는 작은 몸을 바라본 이엔은 시선을 돌려 목검을 다시 바르게 잡았다.

    이엔은 얼마 전부터 지옥훈련 후의 단계로 넘어가 제대로 된 검술훈련을 시작했다.

    이제는 목검으로 하단, 상단 베기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굉장히 빠른 성장속도였다.

    이엔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눈앞에 서 있는 밀짚인형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쿠당!

    멈칫!

    누군가 처참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처음으로 밀짚인형을 목검으로 베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빠르게 뒤를 돌아본 이엔은 바닥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세린을 발견했고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시체마냥 창백해진 트레일이 보였다.

    세린이 후다닥 일어나 무릎을 털려고 팔을 굽히자 트레일이 더 빠르게 세린을 품에 안고 바지를 무릎 위로 올렸다.

    새하얀 다리를 건너 무릎위로 올려진 바지 아래로 상처가 생겨 피가 고인 세린의 무릎이 보였다.

    기사들의 한탄과 함께 이엔도 걱정이 물씬 생길 정도로 아파보였다.

    그런 이들의 반응 사이로 트레일은 창백해진 그 표정 그대로 굳었다.

    그러다 벌떡 세린을 안고 일어나 다급히 말했다.

    “세, 세린 괜찮아!! 하나도 걱정스러운 상처가 아니야!! 의원 의원한테 가자!”

    “오빠... 나 안 아파요...”

    “그래!! 아프지? 걱정마!! 오빠랑 얼른 치료하러 가자!”

    세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혼란이 가득한 트레일을 바라본 이엔은 싱그러운 풀잎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본 소녀는 조금은 쑥스럽게 고개를 돌리다가 다시 그를 올곧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앙증맞은 손을 좌우로 작게 흔들며 다정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빠르게 이엔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엔은 굳은 표정으로 세린을 바라보았고 세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작은 입모양으로 말했다.

    ‘미안해.’

    훈련을 방해해서?

    아니면 그 때의 그 일 때문에?

    무엇이든 그녀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이엔은 조금 다정한 눈동자로 세린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였고 세린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다만 문제는 그 훈훈한 광경 속에서 트레일은 세린을 안고 전력질주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의원!!!!! 레인형님!!!!!!”

    황궁의 지붕이 떨어질 것 같은 그 목소리에 세린은 창피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만끽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말 창피했다.

    트레일은 다급히 세린을 안고 의원이 거처하고 있는 황궁 의료실에 들어섰다.

    얼마나 빨리 달린 것인지 세린의 머리카락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트레일은 점심을 먹고 있던 황궁의의 건너편 의자에 세린을 허겁지겁 고이 모셔 앉혀주며 외쳤다.

    “황녀가 다쳤다고???!! 당장 치료해줘!!!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어!!”

    놀란 눈의 의원에게 버럭 화를 낸 트레일은 얼굴이 가득 붉어진 세린의 무릎을 보여주며 빨리 치료하라고 난리쳤다.

    의원은 소스가 묻은 얼굴로 다급히 세린의 무릎을 진찰하며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처에 소독 솜을 올리자마자 따끔한 통증에 세린이 작게 움찔 떨자 트레일이 또 한 번 버럭 소리쳤다.

    “아프지 않게 해달란 말이야!! 애가 아파하잖아!!!!!”

    “아니... 소독이란 건 원래 따가운 건데....”

    의원이 창백해지며 보다 부드러운 손길로 세린의 상처를 치료했다.

    ‘아니 왜 나한테 그래...!!’

    부들부들 떠는 손길이 안쓰러워 세린은 미안해졌다.

    그러다 의료 실 앞 복도를 울리는 단정하지만 빠른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문이 벌컥 열렸다.

    “세린!”

    세린을 아끼는 이들 중 제일 극성인 테오였다.

    테오는 다급히 세린에게로 다가오며 세린의 무릎에 난 상처를 살폈다.

    “어쩌다...! 트레일 너는 아이가 이렇게 다칠 때까지 뭘 했던 거지? 한심하구나. 작은 아이 하나 지키지도 못하는 애가 황실기사단장? 웃기는 소리였어.”

    “형.. 형님....”

    면목 없는 눈빛으로 눈치를 보는 트레일과 테오를 번갈아 바라보던 의원은 테오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아름다운 그 사람은 인상을 왈칵 찌푸리며 소리쳤다.

    “황녀가 다쳤다는데... 어서 치료를 하거라!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비난을 신명나게 퍼부은 테오는 의원이 다급히 다시 세린의 다리를 치료하는 모습과 난처해하는 트레일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어깨를 움찔 떠는 세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놀랐겠구나. 다행스럽게도 큰 상처는 아니야.”

    “... 네에..”

    알고 있던 사실인지라 세린은 쑥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쑥스러움이 창피로 물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세린!!”

    “세린!!!!”

    로레인과 황제의 침입으로 인해 책상이 크게 흔들렸고 책상 위로 곱게 정리된 서류들이 무너졌다.

    의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트레일, 세린이 다쳤다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세린, 아픈 곳은 괜찮니? 어디가 얼마만큼 아픈 거니. 어디서 다친 거야?”

    아무 죄도 없는 의원은 슬픈 눈동자로 다 흐트러진 서류들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눈물을 삼켰다.

    세린은 결국 의원에게 말을 걸 시간도 없이 서둘러 궁으로 이동해 고이 침대에 누웠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벌떡 일어나 황궁의 정원으로 달려 나갔고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이든 장미를 한 아름 따서 품에 안으며 황궁의 의료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의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세린이 문을 열어 고개를 빼꼼 기울였다.

    그리고 놀란 의원의 눈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도도도 달려와 의원의 품에 장미를 안겨주었다.

    잔뜩 상기된 볼로 웃은 세린이 말했다.

    “저기... 어제는 치료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리고...”

    “...?”

    “오빠들이랑 아빠가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요.”

    세린의 말을 들은 의원은 조금 눈을 크게 뜨다가 다정하게 웃었다.

    털털한 웃음소리를 내며 부드러운 손길로 세린이 준 장미를 만진 의원은 말했다.

    “전하. 생각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것을 봐주세요.”

    “??”

    세린은 의원이 가리킨 진료실 책상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무슨 호화스러운 도시락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세린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의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트레일 황자님이 어제의 일을 사과하시며 보내주신 도시락입니다.”

    트레일 오빠가?

    세린은 눈을 반짝이며 의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제는 황녀님이 다쳐서 흥분했다고 하면서 한가득 들고 오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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