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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9화 (29/218)
  • 29화. 스페라도 남매의 싸움

    같은 시각, 스페라도 대공의 성에서는 제이와 리사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대공과 함께 황궁으로 이동하는 단 한명의 자리를 위해서.

    “오라버니. 죄송하지만 황녀님과의 시간을 제가 가져야겠네요.”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 원래부터 그랬었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어.”

    “제 여동생을 말로 때리는군요? 제 정신은 언제나 온전했답니다.”

    “그 온전함의 의미가 나와 다른 듯해서 안타까워 리사”

    “오라버니야말로... 스스로 포기를 할 줄 아셔야 남자지요. 아 오라버니는 여. 성. 처럼 생기셔서 괜찮을 수도 있겠네요.”

    제이의 웃음이 가득한 눈가가 일그러지고 비웃음이 면면에 가득 찼다.

    그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자 하얀 백발이 그의 촘촘한 속눈썹 위를 간지럽히고 눈가에 담긴 미미한 웃음이 진해지며 그를 더욱 화사하게 만들었다.

    미성의 목소리로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는 제이의 볼에는 비웃음이 가득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하긴... 내가 생선 같은 여동생보다 아름다워 간혹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구나. 그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리사 네가 조금 더 노력해야겠어. 그런데... 어떤 노력을 해야 네가 나보다 아름다워질까?”

    “...... 으득.”

    “이런, 어디서 고상하지 못하게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도대체 누가 어디에서부터 배워온 예절이기에 그 기본적인 예의와 예법을 어기는 것인지 알 수 없구나...”

    “... 오라버니...”

    리사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이는 고운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리사. 생각해보니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의 껍질이 아닌 속이라고 하더구나. 아 이런...! 이 아름다움마저 너는...”

    제이는 애처로운 눈동자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한 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미안함이 가득한 눈동자가 아주 죄책감이 가득한 여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리사는 제이의 뱀 같은 모습에 얼굴로 열이 올랐다.

    화가 부글부글 끓는 와중에 제이는 리사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리사. 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겠구나. 외모도... 그리고 인성마저도 없으면 넌 그냥 사람일 뿐이니까. 아 사람은 맞을 것이란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인정해주셨으니 너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거라.”

    순진한 척하는 제이의 얼굴을 보며 리사는 느꼈다.

    완벽히 실패했다.

    정확히는 성격참기에 실패했다.

    쿠당탕탕!!!! 콰광!!!!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하나뿐인 여동생한테 뭐라고???? 생선??!!! 인성?!!!!! 사아라아암???!!!!!”

    리사가 던지는 막무가내의 물건들을 피한 제이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내게는 분명 여동생이 있다고 했는데... 남동생만 보여서 난처해.”

    리사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고 거대한 짐승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이 스페라도!!!!!!!! 죽여 버릴 거야!!!!!!”

    대공은 옆방에서 들리는 그 비명 같은 외침에 혀를 찼다.

    역시 이번에도 제이의 승리였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남매의 다툼은 항상 교활하고 뱀같은 제이의 승리였다.

    앞으로 달려 나가는 돌진형 리사는 교묘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항상 제이에게 당하기만 했는데... 오늘도 그 당한 일 중에 하나였다.

    그래도 애초에 리사를 많이 아껴주는 제이인지라 리사와 싸우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즘 둘의 공통 관심사가 황녀에게로 몰리니 그 많지 않던 싸우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뭐 싸움구경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으니 대공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제이 스페라도와 리사 스페라도는 닮지 않은 남매였다.

    서로 닮은 것이라고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와 하얀색의 백발이었다.

    나머지 성격, 외모, 취미, 특기부터 같거나 비슷한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매는 항상 대공의 눈에는 신기할 뿐이었다.

    제이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비해 말 수가 은근히 적었고 낯을 많이 가렸다.

    누구에게나 사근해보여도 어느 정도의 선을 그어 놓으며 다른 이들과 무난하게 소통하고 지내는 아이였다.

    보이지 않는 벽을 치는 제이에 비해서 리사는 보이는 벽을 치고 다녔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 때문에 입이 쉬지를 않았고 예의상 내뱉는 말 중에서 숨기는 단어들이 없었다.

    뜰채 없이 내뱉는 단어들의 나래에 대공의 미간이 펴질 틈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리사의 큰 자랑이겠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다.

    사교계에 나가면 한 획을 크게 그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대공은 그저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그에 비해서 제이는 사교계에서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다.

    나쁜 말로는 교활한 아이였고 좋은 말로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아이였다.

    지금도 이처럼 리사를 말로 뜯어버리고 황녀를 보러 유유히 따라오지 않았던가.

    대공은 스페라도 대공의 마차에 당연하다는 듯 앉아서 황궁으로 이동하는 제이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마차에 앉아서도 책을 읽는 제이를 바라보며 조금 웃음이 나왔다.

    제 어머니를 쏙 빼닮아서 외모도 외모고 능력도 능력이었다.

    제이는 자신을 관찰하는 대공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금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여동생을 이겼다고 신난 것은 아니에요... 조금 부끄럽지만 황녀님을 다시 한 번 뵙고 싶었어요.”

    “그랬구나. 이해한다.”

    알고 있었다.

    자신도 들소같은 황족들 사이에 있는 작고 귀여운 토끼 같은 황녀를 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대공은 눈을 돌려 황궁에 들어서는 마차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스페라도 대공은 제국의 통일을 위해 황제와 함께 수많은 전쟁 속에서 많은 적들을 도륙한 기사였다.

    그 시절, 황후 아리엘과 다투며 황제의 오른쪽 자리를 차지하던 대공은 평화로운 황궁의 분위기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암살의 위협과 빗발치는 항의서.

    죽어가는 황녀와 구겨진 민심.

    그 어두운 황궁의 이야기가 이제는 꽃봉오리가 되었고 지나간 기억의 일부로 변했다.

    황녀의 귀환이 폭군으로 변해가는 황제를 다잡았다.

    아인대공은 점차 가까워지는 태양궁의 모습을 관찰하다 나풀거리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세린의 앙증맞은 뒷모습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세린은 로레인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이동하는 중이었다.

    새로운 마법도구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멜에게 접하여 구경을 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설레임이 가득한 두 볼을 하고 달려가는 세린은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로 인해 자리에서 멈추었다.

    “황녀전하.”

    “아인대공!!”

    마차에서 내려 황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아인대공과 제이는 다정하게 웃으며 황녀를 바라보았다.

    총총 뛰어서 대공의 앞으로 온 세린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아빠를 만나러 오셨나요??”

    “네. 황녀전하는 어디를 가시는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레인 오빠를 만나러 가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대공은 조금 아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웃었다.

    세린이 당황하며 왜 그런지 물어보자 제이가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실은 제가 황녀전하를 뵙고자 온 것이라... 난처하게 해드릴 생각은 없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 으아!!! 미리 편지를 주셨으면 약속을 잡았을 텐데요...!”

    제이는 슬픈 얼굴로 태평하게 말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황녀님 그러면 앞으로는 황녀님께 편지를 보내어 미리 약속을 잡겠습니다. 오늘은... 아쉽지만 다음으로 만남을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세린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제이를 향해 말했다.

    “아니 그... 차 한 잔도 먹고 간식도 먹을 시간은 있어요...!! 같이 먹으러가요!”

    “하지만 너무 송구하여..”

    “제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그러지 말고 가요!”

    맑게 웃는 세린을 향해 제이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황녀전하”

    대공은 조금 질린 얼굴로 제이를 바라보았다.

    황녀가 미안한 감정이 들도록 일부러 저렇게 말하여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는 수작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의외의 득으로 편지까지 나눌 수 있는 이유를 만들었다.

    제 아들이지만 참 무서운 녀석이라고 대공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 제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 대공을 바라보았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아들을 바라보자 제이는 밝게 웃으며 대공을 향해 말했다.

    “아버지는 황제폐하께 서둘러 가보셔야 겠군요. 저로 인해 시간을 지체하면 폐하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황녀님과 기다릴 테니 천천히 용무를 다 하시고 오세요.”

    “.... 그래.”

    그냥 빨리 꺼지고 알아서 늦게 데리러 오라는 말이었다.

    대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일그러지려는 미간을 펴고 세린에게 인사를 한 후 태양궁으로 향했다.

    세린은 대공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대공이 멀어지지 제이를 향해 말했다.

    “어떤 간식을 좋아해요?”

    “황녀전하께서는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에? 저는 레몬케이크를 좋아해요!”

    “저도 같습니다. 똑같은 취향을 가졌네요.”

    “우와 정말요?”

    박수까지 치며 즐거워하는 세린의 모습에 제이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같은 시각, 로레인은 자신의 궁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제 하나뿐인 여동생이 자신에게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막 들은 참이라 기다리는 중이었다.

    입구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주변을 서성이던 로레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시녀를 무감정하게 바라보았다.

    시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황녀전하께서 조금 늦게 도착하실 듯합니다.”

    “뭐? 왜지?”

    인상이 왈칵 구겨진 로레인이 날카롭게 물어보자 시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스.. 스페라도 대공가의 공자와 잠시 티타임을 가지겠다고...”

    콰쾅!!!!!!

    “꺄악!!!”

    시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성 입구에 있는 기둥이 강한 폭발로 인해 터지며 무너졌다.

    처참하게 무너진 기둥의 파편도 모르는 척하며 로레인은 가만히 세린이 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대공의 공녀여도 자신과 세린의 시간을 방해한다면 목까지 차오를 화였으나 그 상대가 공자라고 하니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갔다.

    로레인은 이를 으득 갈며 포탈을 타고 세린에게로 워프하였다.

    파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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