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8화 (28/218)
  • 28화. 다가오지 말아주세요

    세린의 선물은 다양해지고 있었다.

    달콤한 간식부터 따뜻한 차, 상처에 바르는 약까지.

    점점 섬세해지는 선물에 이엔은 의문이 커져갔다.

    도대체 왜? 자신에게 왜 이리 잘 해주는 것이지?

    황녀는 무슨 마음으로 자신을 향해 이리도 호의를 보이는 것인가.

    이엔은 조금 굳은 얼굴로 세린을 향해 말했다.

    “황녀전하.”

    “응?”

    “왜 제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 겁니까?”

    “에...?”

    세린은 당황한 눈동자로 눈을 굴렸다.

    이엔은 단호한 모습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이대로 황녀에게 무언가를 더 받았다가는 스스로가 이 작은 소녀에게 의지할 것 같았다.

    “제가 어둠술사라는 것은 알고 계시는지요?”

    “아, 알고있어...”

    “그럼 제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계시나요?”

    “..... 알아...”

    대화가 이어질수록 세린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이엔은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황녀전하. 저는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감옥까지 갔습니다.”

    “.....”

    “저는....”

    황녀와 거리를 두어야했다.

    더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걸 말해도 괜찮을까?

    이엔은 고민을 하다 이내 결심했다.

    여기서 더 가까워진다면... 조금이라도 황녀에게 가까워진다면... 앞으로 벌어질 미래가 무서워졌다.

    자신이 만약 커져가는 어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서... 그 능력으로 조금이라도 황녀가 다친다면 자신은 이 황궁에서도 이 제국에서도 숨을 붙일 수 없다.

    예전부터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했던 이엔이었다.

    지금도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너라도 살아.’

    ‘살아서 나가.’

    '탈출에 성공하면 부디 전해주세요.’

    도망치는 제 등을 떠밀어주던 그 기억 속 목소리가 이엔의 머리를 괴롭혔다.

    이엔은 떨리는 입술로 황녀를 향해 말했다.

    “저는... 죄가 없는 민간인들의 마을을 저주로 몰살했습니다.”

    “!!!!!”

    세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엔은 창백해져가는 세린의 얼굴을 바라보며 굳은 마음으로 이어 말했다.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제가 제 손으로 마을사람 모두를 죽여 버렸습니다.”

    “.......”

    “하나의 마을만 몰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몇 명을 죽였는지 수를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이엔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 수많은 일들을 겪은 아이의 나이가 겨우 13살이었다.

    이엔은 아직 어린 아이였고

    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 어린 죄인이었다.

    그가 내뱉는 말들 속에서 깊은 상처가 보였고 세린은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이엔은 눈물을 거칠게 닦고 물었다.

    “이런 살인마인데도 황녀전하는 제게 잘 해주실 겁니까?”

    “.....”

    “그러니 제게 다가오지 말아주세요. 혹시라도 제 능력이 황녀전하께 상처라도 입힌다면...”

    세린은 눈물로 인해 반짝이는 이엔의 눈동자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너의 그런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 그게 아니..”

    “너를 힘들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난 단지...”

    세린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난 말이야... 정말 정말 슬픈 일이 생겼었어.”

    “....”

    “매일매일 악몽을 꿨어. 매일 불안했어. 몰론 네가 겪은 일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난 그때 정말 슬펐거든/”

    이엔은 입술을 꾹 다물고 세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때... 아빠랑 오빠들이 나를 안아줬어. 나를 챙겨주고 나를 생각해줬어... 난 그게 너무 기뻐서 울기도 했다? 바보 같지?”

    세린이 힘없이 웃었다.

    “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막 따뜻해져서 악몽도 안 꾸고 밥도 더 잘 먹어졌어.”

    “.....”

    “그래서... 너도 힘들게 살아온 것 같아서... 내가 네 생각을 하고 너를 챙겨주면 너도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것 같아서 그랬어.”

    이엔의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세린은 “미안해.” 라고 말한 후에 돌아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엔은 그 자리에 서서 그런 세린을 바라보았고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세린은 오지 않았다.

    테오는 기운이 없다는 세린의 소식을 접하고 제일 먼저 세린의 방 앞에 도착했다.

    문을 가볍게 두드린 후 세린의 허락을 받고 들어선 테오는 들어오자마자 품으로 폭 안기는 세린을 가볍게 안아 올리며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품에 쏙 안긴 세린을 데리고 침대에 앉아 자리를 잡은 테오는 세린의 분홍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주며 물었다.

    “우리 막내가 왜 이리 슬퍼진 걸까?”

    세린은 테오의 물음에도 고개를 그의 품에 숨기며 대답하지 않았다.

    테오는 세린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녀의 등을 천천히 두드려주었다.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연 세린은 테오를 향해 물었다.

    “오빠... 이엔은 누구에요?”

    “.....?”

    “이엔은 왜 사람을 죽였어요?”

    “......”

    “이엔은 왜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해요?”

    “.....”

    “내가 잘못을 한 걸까요?”

    세린의 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렁그렁 눈물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테오는 그런 세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그녀를 꼭 안아주며 한숨을 쉬었다.

    어린 꼬맹이가 왜 세린을 밀어냈는지 알고 있었고 세린이 왜 그 꼬맹이에게 다가갔는지 알고 있었다.

    꼬맹이에게 화가 나면서도 얼마나 두려웠으면 세린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하며 멀리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들이 협박을 해오고 있고 무언의 압박을 계속 주고 있으니 당연했다.

    꼬마가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세린에게 조금이라도 위험이 되었다면 망설임 없이 치워버릴 생각이었으니까.

    테오는 가만히 세린의 등을 두드려주다가 말했다.

    “그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고 했니?”

    “.... 마을 사람들을.....”

    “.... 그래.”

    세린은 테오를 바라보았다.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에 테오는 쓰게 웃었다.

    “정말이란다.”

    “..........”

    눈물이 가득 차올라가는 세린의 눈가를 다정히 닦아주며 테오는 이어 말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아이의 의지가 아니었어.”

    “...?”

    “그 마을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가족이 죽었을 테니까 말이다.”

    “!!!!”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고 테오는 세린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마탑에서 노예로 살았던 아이란다. 마탑은 제국이나 다른 나라에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마법사들의 탑이지. 제국이나 나라에서 요청하는 의뢰를 받아주면서 수고비를 받는 마법사들인데... 질이 굉장히 나빠.”

    “...?”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족속들이라 그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나 다른 생명들을 죽이는 것도... 생체로 실험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

    세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테오는 단호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너에게는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조심하라는 의미로 말해주는 것이란다. 세린. 마탑의 마법사들을 조심해야 해.”

    “...... 네.”

    “그들은 욕심도 많아서 자신들의 탑이 아닌 제국이나 나라에 마법사가 존재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지. 마법사의 인재가 늘어날수록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그리도 경계했었고.”

    “엄마를요??”

    “그래.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하사한 것부터 황후가 되려는 것마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지. 어머니는 마탑에 있어야 하는 귀중한 마법사라나 뭐라나.”

    “.... 그랬구나.”

    “그런 것에 넘어갈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어서 제국사람인 어머니를 넘길 일은 없다고 단칼에 잘라 이야기를 했었단다. 그 때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제국에서 난동을 부려 민간인이 많이 죽었었지. 그게 제국과 마탑의 전쟁이었다... 그 정도로 질이 나빠.”

    세린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그 꼬맹이가 마탑에서 버틴 것을 보면 대단한 것이지. 그리고 굉장히 삶을 힘들게 보냈을 거야... 마을을 몰살시킨 건 어둠술사의 능력을 실험해보려 한 연구였다고 하는구나. 그 아이에게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말이다.”

    세린의 얼굴이 저절로 창백해졌다.

    “... 너무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 작은 아이한테는 무서워서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마디로... 원하지 않았던 일이지.”

    “.....”

    “네가 왜 그 아이에게 다가가는지 알고 있단다, 세린. 하지만 그 아이는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게 살아온 아이라서 네가 다가갈 때에는 그만큼 상처받을 것을 각오를 해야 해.”

    테오는 진중한 눈으로 세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기다려줄 필요가 있겠구나. 그 아이가 널 피하는 이유는 저주도 어둠을 사용하는 능력도 제어가 어려워서 널 다치게 할까봐 그런 것이란다.”

    “...!!”

    “그러니 그 아이가 안정적으로 변했을 때... 그 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은 어떠니.”

    “..... 네.”

    세린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숨어있는 이유가 있었다.

    이엔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지만 반면 테오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엔이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살기 위해서 수백 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 몇 백 명의 사람 중에서는 여인도 노인도 아기도 있었다.

    이건 인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쥐도 고양이를 공격할 수 있다.

    영웅이 아닌 이상에는 죽는 것이 두려운 모든 이들의 선택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저 어린 꼬맹이가 마을사람들을 망설임 없는 모습으로 죽였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남녀노소를 몰살할 만큼 인성이 쓰레기도 아니었다.

    분명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이 끔찍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손 한번 놀리지 못하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몰살? 그렇다는 것은 마탑이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로레인에게 모든 기억을 읽어보라고 해야겠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