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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6화 (26/218)
  • 26화. 트레일의 질투

    넘어지는 기세에 놀라 눈을 찌푸렸던 이엔이 번쩍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아기 나뭇잎 같은 싱그러운 연두색 눈동자였고 그 눈동자 속 자신의 모습이었다.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그 거리에 놀란 이엔은 허겁지겁 몸을 비틀거리며 몸을 뒤로 했고 세린은 멜과 기사의 도움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자마자 이엔에게 세린이 말했다.

    “괜찮아? 어디 아픈거야?”

    외려 자신을 걱정하는 그 소리에 이엔은 주먹을 꽉 쥐었다.

    로레인이 세린만을 위한 방패로 키운다고 했을 때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눈에 보인 순진한 황녀는 정말 여러모로 보호가 필요했다.

    이엔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세린은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니야! 난 괜찮아! 그보다 어디가 안 좋은 거야?”

    “기사단 훈련을 처음 해보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웅... 그렇구나...”

    단호한 듯한 대답에 세린은 눈치를 보았다.

    ‘내가 싫은 걸까?’

    조금 민망해진 마음에 눈을 굴리다가 떨어진 상자에 시선이 갔다.

    “아...!”

    “...!”

    타르트가 바닥에 엉망으로 떨어져 있었다.

    세린은 속상한 표정을 지었고 당황한 이엔은 다급히 상자에 타르트를 주워 담았다.

    그리고 다급하게 말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걸 먹으면...”

    덥썩

    세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르트를 한 입에 넣은 이엔은 오물오물 입술을 움직였다.

    세린이 당황하며 뱉으라고 하자 이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땅에 떨어진 걸 먹는 건 익숙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걸 선물해주셨는데 버릴 수 없어요. 정말 맛있네요.”

    약간 붉어진 귀로 말하는 이엔의 모습에 세린은 가슴이 뭉클했다.

    많이 힘들게 자랐다는 것을 그 한 마디로 알 수 있어 속상한 마음이 일었다.

    다급히 이엔의 손에서 음식을 뺏은 세린은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줄래! 엉망인 선물을 줬다고 소문나면 내가 창피해.”

    “어....”

    “내일 다시 줄 테니까 이 시간에 여기서 기다려!”

    그 말을 끝으로 도도도 뛰어가는 세린을 이엔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쩌다보니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조금 설렘을 느낀 이엔은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 로레인에게로 향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가며 세린의 모습을 잠깐이라도 지워보려 노력했다.

    ‘착각하지말자 이엔. 난 여기에서 저 사람의 방패로 살아가야해.’

    뒤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서둘러 달려가는 이엔이었다.

    반짝이는 분홍머리가 눈썹아래로 흘러내려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그 사람은 불쾌한 얼굴로 이엔의 달려가는 모습을 관찰했다.

    ‘.....’

    그 사람은 이엔을 황궁으로 받아들인 장본인 제국의 황태자 테오였다.

    “... 불쾌하군...”

    테오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관심을 단 하루만에 가져간 이엔이 불쾌했다.

    감히 세린이 준 음식도 떨어트리고 (주워서 바로 먹고 사과한 것은 마음에 든다만...)

    우리 애를 차갑게 대하고 (사심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기도 하지만) 세린에게 감히 한 점의 관심도 안 보이려고 하다니? (흑심이 보였으면 바로 죽였겠지만) 테오의 일관성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고요하지만 격하게 요동쳤다.

    테오는 일그러진 얼굴로 세린이 돌아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 검은 꼬맹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말이다.

    세린은 오랜만에 함께 앉아 저녁을 먹는 트레일이 반가워 햇살처럼 웃었다.

    함께 앉는 것도 오랜만이고 같이 저녁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라 설레는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옅은 홍조를 붉게 물들여가며 트레일의 옆에 안착한 세린은 오늘 있었던 일과를 도란도란 말하기 바빴다.

    트레일은 세린의 한마디 한마디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응해주기 바빴고 말이다.

    황제은 그런 세린의 모습에 흐믓하게 웃었다.

    다정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로레인과 테오도 마찬가지였다.

    세린의 낭랑하고 귀여운 음성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따분한 일상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보다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늘 세린에게 약한 황족은 오늘도 세린의 말 하나에 이야기 하나에 환히 웃었다.

    저녁을 다 먹고 초콜릿이 가득 들어간 쿠키를 먹던 세린은 달콤한 그 맛에 눈을 크게 뜨다가 멜을 향해 말했다.

    “멜! 나 내일 이 쿠키 가져다주고 싶어!”

    멜은 난처하지만 다정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황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누구에게 말이냐?”

    세린은 황제의 물음에 미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멜이 알려준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이엔에게요! 오늘 주려고 했던 타르트를 떨어트려 엉망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챙그랑!

    트레일과 황제의 손에 있던 포크가 떨어지며 그릇과 부딪혔다.

    애처롭게 떨어진 포크를 무시하고 트레일이 다급히 세린에게 물었다.

    “그.. 그 애한테 오... 오.. 왜???!!”

    세린은 큰 눈동자를 더 크게 뜨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힘냈으면 해서요...”

    “아니 세린. 그러니까 그 애를 왜 응원하는 거야?? 남남이잖아?”

    트레일의 물음에 로레인과 테오, 황제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세린은 조금 찌푸려진 눈동자로 트레일을 바라보았다.

    “그치만 그 아이... 힘들게 살아온 것 같아서요... 어린 아이인데 기사단에서 훈련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힘들 것 같아서 응원하고 싶었어요...”

    “아니...! 세린 그 아이는 네가 굳이 응원할 필요도 없는 아이야! 네 응원 아니어도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힘을 낼 거야!! 그 녀석은 남자잖아?? 그러니까 그 애 신경을 쓰지 말고...!”

    세린은 트레일의 말에 인상을 왈칵 구겼다.

    “오빠!! 너무해요! 오빠 나빴어요! 마음이 하나도 안 예뻐요!”

    그리고 씩씩거리는 귀여운 얼굴로 서둘러 의자에서 내려온 세린은 후다닥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다시 달려와 트레일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오빠 만나러 연무장 안 갈 거예요!”

    세린은 그 말과 동시에 돌이 되어버린 트레일을 무시하고 달려갔다.

    황족들은 말없이 굳어버린 트레일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미한 불쾌함을 들어냈다.

    “그 꼬맹이... 주술로 우리 아이를 홀린 것이 아닐까 의심마저 드는군.”

    테오의 말에 로레인이 긍정했다.

    “형님 말에 동의하네요.”

    “.......”

    황제도 침묵했다.

    그 침묵은 불쾌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정리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정이 많고 상냥하고 다정한 아이다. 그래서 더욱 챙겨주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그건 그렇죠...”

    세린의 인성을 칭찬하며 저녁을 마무리한 황족들은 은근슬썩 그런 말을 먼저 해준 트레일에게 감사했다.

    세린에게 미움 받는 것은 트레일이면 족했기에.

    냉정한 황궁의 세계였다.

    세린은 화가 난 눈으로 넓은 침대를 뒹굴었다.

    그러다 조금 속상한 표정을 하였고 다시 화난 표정을 했다가를 반복했고 조심스럽게 멜을 향해 물었다.

    “멜... 내가 트레일 오빠한테 심하게 말을 한 걸까...?”

    멜은 조금 슬퍼 보이는 세린을 향해 다정히 웃었다.

    “황녀님. 제가 말씀드리기에는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심한 말씀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만... 황자님께서는 많이 속이 상하셨을 겁니다.”

    멜은 세린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해주며 이어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신 이유가 황녀님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랍니다.”

    “정말?”

    “그럼요. 그것을 질투라고 하지요.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충실한 감정입니다.”

    “질투...??”

    “소중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챙기고 생각을 해줄 때의 속상하고 조금 심술이 나는 감정을 그리 부르지요.”

    세린은 멜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트레일 오빠는 내가 이엔 생각을 하니까 그랬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미안해진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엔에게 선물은 해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면 이엔에게 선물도 주고 오빠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조금 침대에 누워 고민하던 세린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멜에게 말했다.

    “멜! 나 나가고 싶어!”

    “알겠습니다.”

    멜은 귀여운 세린의 모습에 다정히 웃었다.

    트레일은 풀이 죽어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 위로 검은 안개가 울렁거리는 효과가 보일 정도로 어두운 기색이 가득이었다.

    ‘아니... 내가 나쁜 거야...?’

    단지 세린이 그 애를 신경 쓰는 것이 너무 싫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세린은 뭘 해도 예쁘고 사랑이 가득한지라 그 애송이가 반하기라도 하면 화가 치밀 것 같았다.

    반하지 않는게 이상하지만...

    트레일은 그런 생각으로 몸을 뒤척이다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속이 쓰리고 입 안도 쓰리고 마음은 뒤엉켰다.

    세린에게 미움 받는 것이 벌써 두 번째라고 생각하니 정말 나에게 정이라도 떨어졌다 한다면 어찌하나...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걱정에 고개를 숙였다.

    똑똑

    “전하. 손님이 오셨습니다.”

    “나가라고 그래... 아무도 안 만나고 싶어.”

    “네 전하. 그러면 황녀전하께 돌아가시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

    벌떡

    쿠당탕탕!!!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침대에서 구르며 문까지 뛰쳐나온 트레일은 문을 활짝 열자 보이는 몽글몽글한 분홍빛 머리카락에 환해졌다.

    “세리인~~~!!!”

    세린은 자신을 반기는 트레일의 모습을 바라보다 조금 미안해졌다.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서 속도 상하고 민망하기까지 했다.

    세린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트레일에게 상자를 건네주었다.

    트레일은 고개를 갸웃하며 상자를 받으며 물었다.

    “이게 뭐야 세린?”

    “.... 오빠한테 드리는 거예요... 열어보세요!”

    볼에 홍조가 붉게 올라온 세린은 고개를 숙였고 트레일은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열자마자 훅 끼치는 달콤한 향기에 트레일의 붉은 눈동자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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